〈 185화 〉 186. 정말 제 몸을 바치면 딸아이를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선우의 말을 들은 이예설은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그에게 뿜어져 나온 살기에 두려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째서 저 남자가 이곳에 있다는 말인가?
그곳도 저리 멀쩡한 행색으로 말이다.
"물었잖아. 네가 저렇게 만들었냐고."
선우는 피투성이가 된 당서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분명 주소양은 말하였다.
당서윤을 구속하긴 하였으나 물리적인 위해를 가한 적은 전혀 없다고 말이다.
은원이 있는 것은 선우이지 그녀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막상 만난 당서윤은 피투성이의 몰골이었다.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벅 저벅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이예설에게 업혀있던 당서윤을 빼앗다시피 안아 들었다.
선우는 당서윤을 안아 들고 그대로 침상으로 걸어갔다.
"비켜"
침상 앞에 선 선우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는 당서윤을 그대로 눕히고 그녀의 옆에 앉아 맥을 짚어봤다.
다행히 기혈이 뒤틀리거나 심맥이 손상된 곳은 없는 듯하였다.
선우는 당서윤의 몸에 음양조화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 안에 혈도 곳곳이 꽉 막혀있는 느낌을 받았다.
`금제군`
선우는 그것이 금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우우우우웅
선우는 더욱 더 많은 음양조화기를 흘려보내었다.
흘러들어간 음양조화기는 당서윤의 혈도 곳곳을 전부 뚫어버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몇 번을 일주천 시켰을까?
그녀의 몸에 활력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새액...새액.."
거칠게 호흡하던 그녀의 호흡이 차츰 안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후우`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큰 내상은 없었기에 이 정도로 처치해두면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다.
선우는 그녀의 얼굴에 있던 핏물들을 닦아주기 시작하였다.
그 고운얼굴이 핏물에 가려져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으득
선우는 이를 갈았다.
이 고운 얼굴을 이리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이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이예설을 노려보았다.
`죽인다.`
살의가 치솟았다.
이예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분명 살릴 생각이었다.
이재원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서윤이 이런 꼴을 당한 것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죽일 것이다.
죽이고 말 것이다.
선우는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래, 다 같이 데리고 서역에라도 가서 살자. 무공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나름의 계획을 세운 후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 수에 머리통을 터트릴 요량이었다.
텁
순간 뒤편에서 용포를 잡아끄는 힘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 당서윤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선우의 용포를 붙잡고 있었다.
"기..다려."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죽..이지마."
"너를 이꼴로 만든 년을 가만히 냅두라고?"
선우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복수는...내가 해."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당서윤이 입을 열었다.
"만약...건들면..용서 안해."
말을 마친 그녀의 눈에는 결연의 의지가 엿보였다.
"후우..알았어, 알았으니까 이거 좀 놔줘"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당서윤은 확답을 듣고 나서야 겨우 용포를 놔주었다.
새액 새액 새액
그리고는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며 기절해버렸다.
아무래도 선우가 이예설을 죽일까봐 걱정이 된 듯싶었다.
"죽이지는 않을게, 죽이지는"
선우는 기절한 그녀를 제대로 눕힌 후 말을 이었다.
선우는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니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이예설의 모습이 보였다.
선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이예설을 노려보았다.
움찔
그 시선을 받은 이예설은 몸을 움찔거렸다.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이리 와봐."
선우는 이예설에게 손짓을 하였다.
그 손짓에 이예설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기 시작하였다.
"안 와? 내가 갈까?"
이예설이 가만히 있자 선우는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선우와의 거리가 가까이 올 때마다 이예설은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잠..잠깐만요!"
주소양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선우를 막아섰다.
"비켜."
"딸의 잘못은 제 잘못이에요, 제발 저를 탓해주세요."
그녀는 눈가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을 이었다.
딸이 또다시 이 남자에게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는 그녀였다.
두려움이 들었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
물론 선우에게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쥐어팰 인간은 따로 있건만 왜 주소양이 난리란 말인가?
"제발 부탁드려요. 모든 들어드리겠어요. 제발 딸아이만큼은 건들지 말아 주세요."
그녀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저리 비켜."
탁
선우는 그녀를 옆으로 강제로 밀친 후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그녀가 부탁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이었다.
덥석
그때 밀쳐진 주소양이 선우의 다리에 매달렸다.
"제발 부탁드릴게요. 제발 딸아이에게 손대지 말아 주세요. 차라리 저를 벌해주세요. 그 아이에게 더는 상처를 주지 말아주세요."
주소양은 넘치는 모성애로 이예설을 감싸고 또 감쌌다.
선우에게 공포가 각인된 그녀였다.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조건반사적으로 바로 수행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였지만 딸아이가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당서윤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참혹한 죄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그녀는 자신의 딸이었다.
그런 딸이 이 무도한 남자에게 고통받는다 생각하니 없던 용기가 절로 솟아났다.
두려웠다.
미치도록 두려웠다.
하지만 딸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더욱 두려웠다.
`모성이라는 건가.`
선우는 그런 주소양을 보며 혀를 찼다.
분명 공포에 복종을 선택한 주소양이었지만 딸에 대한 모성이 그 공포를 이긴 듯싶었다.
하지만 선우는 다시금 그녀를 밀쳤다.
아무리 빌어도 벌을 받을 것은 받아야 했다.
어디서 감성팔이란 말인가?
21세기에 살다 왔던 그에게 즙짜기와 감성팔이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선우는 허리에 두르고 있던 용미연검을 뺴들었다.
챠르르르
그리고 그대로 이예설을 향해 날려버렸다.
"안돼!"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은 비명을 질렀다.
용미연검은 순식간에 이예설의 목을 검 면으로 감싸기 시작하였다.
"커컥"
이예설은 목을 압박해오는 용미연검에 의해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선우는 그대로 손을 뒤로 빼었다.
부웅
그러자 용미연검에 목이 묶인 이예설이 그대로 선우에게 날아들었다.
쿵
선우는 코앞까지 날아든 그녀를 바닥에 패대기쳐버렸다.
"아악!"
갑자기 온몸을 강타하는 충격에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선우는 용미연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목이 묶인 그녀가 천천히 선우의 손을 따라 들어 올려지기 시작하였다.
"당서윤이 부탁도 있으니 죽이지는 않을게, 대신 많이 아플 거야."
물컹
선우는 그녀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그대로 독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물론 독의 종류는 작열독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머지않아 독기가 스며들었고 이예설의 비명소리가 방안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
이예설은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도 극심한 고통이 온몸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고통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과거 균현에서 그녀를 정신줄을 놓게 만들었던 그 고통이 아니던가
그녀는 절망하였다.
눈가에는 울음이 절로 나왔다.
고통이라는 것은 겪고 또 겪어도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공포라는 감정이 더해질 뿐이었다.
알고 있기에 더욱 두려웠고
알고 있기에 더욱 절망하였다.
이 고통이 어디까지 커질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말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알고 있다.
이 고통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저 비명 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하였다.
*******
"아아아아아악!"
이예설의 비명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였다.
"제발..제발..독기를 거둬주세요."
그녀의 비명을 들은 주소양은 다급히 선우에게 매달리며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고작 일각이야."
주소양의 말에 선우는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 죽겠어요. 제가...제가 대신 독기를 맞겠어요. 제발 딸아이를 해방시켜주세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구슬픈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심적으로 너무 괴로웠다.
너무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거기다 천월궁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단 하나 뿐인 직전제자이기도 하였다.
딸이자 제자인 이예설은 주소양에게 덧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딸이 눈을 뒤집어까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눈물, 콧물 , 타액까지 줄줄 흘리며 미쳐가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내공이 금제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애원하고 비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악!"
이예설의 비명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에 맞춰 주소양의 심적 괴로움 또한 더욱 커지기 시작하였다.
"저러다 죽겠어요!"
주소양은 드물게 언성을 높이며 선우를 재촉하였다.
저 미칠듯한 고통을 직접 겪어본 그녀였다.
저 독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화경의 극의에 다다른 자신조차 괴롭다 못해 굴복까지 하였는데 고작 절정에 다다른 이예설이 저 고통을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이대로 두었다간 고통에 빠져 백치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소협, 제발 설아는 용서해주세요. 제가 원하는 것을 모든 들어드리겠어요. 돈을 원하시나요? 천월궁의 모든 보물들을 드리겠어요. 복수를 원하시나요? 스스로 자진하여 죗값을 치르겠어요. 여자를 원하시나요? 그 어떤 여인이 되었든 납치를 해서라도 소협에게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용서해주세요. 흑흑흑"
결국 주소양은 선우를 바라보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사랑스러운 딸이 고통받고 있는데 그 무엇도 해주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흑...흑..흑"
그녀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선우에게 애원하였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말이다.
"역겹군."
선우는 그런 그녀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 납치를 해서라도 여자를 대령하겠다고? 네 년의 그 잘난 딸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주는 것은 괜찮다는 거야?"
선우는 경멸한다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주소양의 말을 들은 선우는 화가 났다.
애초에 당서윤의 납치조차 제 잘난 딸인 이예설의 복수를 위해 그녀가 강행한 짓거리가 아니던가
그 이기적인 행태로 인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고도 느낀 바가 없다는 말인가?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여자는 이예설을 위해서라면 언제고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친년."
선우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그녀의 이기적인 언행에 경멸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자를 바치려면 네년의 그 잘난 몸뚱아리를 바쳐라. 괜히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선우는 뼈있는 말로 그녀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선우의 신랄한 비판에 정곡이 찔린 듯싶었다.
선우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때 사모로서 존경하던 여인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와 우아하고 품격있는 분위기 게다가 여중제일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고강한 무공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녀였기에 내심 대단하다 여기며 존경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민낯을 속속히 알게 됐다고 생각하니 입맛이 쓰렸다.
설마 이리도 이기적이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여인일 줄이야.
부창부수라더니 과연 이재원의 마누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끼리끼리 만났구만.`
선우는 고개를 돌려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예설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대화로 시간을 빼앗겼다.
이제는 이예설의 고통을 좀더 감상할 요량이었다.
스르르륵
그때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선우의 귓가를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스윽 스윽
"정말 저로서 만족하시는 건가요?
옆쪽에서 주소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고개를 옆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느새 거대한 가슴을 한팔로 애써 가리고 오직 고의만 입고 있는 주소양의 알몸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말을 이었다.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정말 제 몸을 바치면 딸아이를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