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185. 네가 저렇게 만든거냐?
"어..떻게 알았죠?"
당서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예설에게 물었다.
곡식창고로 들어온 것은 그렇다쳐도 어떻게 자신이 있는 항아리를 콕 집어서 부숴버린단 말인가?
"추종향 덕분이죠."
당서윤의 물음에 이예설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추종향?!"
그녀의 말에 당서윤은 놀라듯 되물었다.
"당소저가 기절한 틈에 틈틈히 발라두었답니다."
이예설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몸 여기저기에 냄새를 맡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후각에 집중해 보아도 이질적인 냄새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의아함이 들었다.
독을 다루는 당가의 무인은 후각과 미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 돼 있었다.
당가무인 중 경지에 오른 당서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당서윤이 추종향의 향을 놓친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소용없어요, 천월궁에서 만든 추종향은 오직 천월명륜신공을 익힌 자만이 맡을 수 있는 특수한 향이랍니다."
이예설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 소저, 저는 지금 무척 화가 나 있어요, 어떻게 사람의 호의를 그런 식으로 배신하나요?"
"흥, 다짜고짜 사람을 납치한 건 괜찮고요?"
이예설의 물음에 당서윤은 코웃음 치며 반박하였다.
"후우"
당서윤의 말에 이예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리 말하니 또 할 말이 없긴 하다.
납치범 입장에서 호의를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따라오세요."
이예설은 당서윤을 잡아끌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휙
하지만 그녀의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당서윤이 뒷걸음질 치며 손을 피하였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이죠?"
이예설은 싸늘한 눈빛으로 당서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보이는 그대로예요, 저는 끌려갈 생각이 없어요."
당서윤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비록 들키고 말았지만 이대로 순순히 잡혀갈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버티고 버텨야 했다.
적어도 자신 때문에 선우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당소저, 이런 식이면 저도 힘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어요! 그걸 원하시나요?"
말을 마친 이예설은 기운을 끌어올리며 당서윤을 압박하였다.
사아악
당서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내공이 금제된 당서윤에게 절정에 다다른 이예설의 기세는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크윽"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대로는 물러설 수는 없었다.
여기서 잡힌다면 도망칠 기회를 영영 잃게 되는 것이다.
당서윤은 소매 끝을 꽉 쥐었다.
아직 수화독(水和毒)이 소량 남아있었다.
절정에 다다른 이예설에게 치명적이진 않겠지만, 중독만 시킨다면 적어도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이다.
당서윤은 이예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녀를 중독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예설은 그런 당서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독서시가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삼십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런 지고한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공이 금제된 상태에서 자신에게 덤비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력을 운용할 수 없다면 전력 대부분을 잃어버린다.
단련된 신체를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당서윤과 자신과의 격차는 속된말로 이르는 어른과 아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났다.
거기다 독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당서윤의 경우에는 그 격차가 더더욱 클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리 반항하니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얼마나 자신을 얕봤으면 저리 행동하겠는가?
이예설을 내력을 적당히 담아 당서윤에게 손을 뻗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긴 했지만 다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휘익
당서윤은 안력에 최대한 집중하였다.
손이 날아오는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내력을 잃긴 하였지만 극한으로 단련한 동체시력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손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정도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였다.
`오른쪽 가슴`
어깨와 발을 내딛는 것을 보았을 때 손이 뻗는 곳은 가슴 부근이었다.
당서윤은 몸을 살짝 틀었다.
쇄애액
그러자 옆으로 이예설의 손이 지나갔다.
`지금!`
당서윤은 이예설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질렀다.
그대로 중독시킬 심산이었다.
텁!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예설이 반대 손이 당서윤의 팔을 잡아챘기 때문이다.
"제가 이 정도 술수에 당할 것 같나..악!"
그때였다.
손을 잡힌 당서윤이 그대로 손을 펴 분말 형태의 수화독을 그대로 뿌렸다.
그리고 그 독은 말을 하고 있던 이예설의 입안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아아악!"
이예설은 입안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물과 반응하는 수화독이 그녀의 침과 섞여 독기를 내뿜었기 때문이다.
입안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탁!
당서윤은 그 틈을 타 이예설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안돼!"
꽈악
하지만 그녀의 도주는 이예설의 손길에 의해 저지될 수밖에 없었다.
이예설이 손을 뻗어 당서윤의 머리채를 잡은 것이다.
"이거 놔!"
당서윤은 이예설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몸을 바둥거렸다.
"가만히 있어!"
하지만 그럴 수록 머리채를 잡은 이예설의 손아귀는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어떻게든 도망가려는 당서윤과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이예설간의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둘의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격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짝!
큰 소리와 함께 당서윤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그러니까 제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요!"
이예설은 뺨이 퉁퉁 부은 당서윤을 보며 소리쳤다.
그녀는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녀는 당서윤에게 나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혼자의 은원에 얽혀 팔자에도 없는 납치까지 당한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정혼자는 어머니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겠는가?
죄책감이 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당서윤에게 최대한 거친 언행과 무례한 행동은 삼가하였다.
그게 자신이 가진 최선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그런 배려를 짓밟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도망이야 칠 수 있다지만 독을 뿌리다니?
이건 명백히 살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입안에 있는 머금은 독기가 소량이었기 망정이지
만약 그 양이 조금만 더 많았으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동안 자신의 배려를 전부 짓밟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화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그녀의 뺨을 때린 것이다.
내공이 금제 돼 있는 그녀가 절정의 고수인 이예설의 손길을 버텨낼리 없었다.
붉게 상기된 뺨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또한, 당서윤의 입에서는 핏물이 나오고 있었다.
입안이 터진 듯하였다.
이예설은 그제야 마음속 울화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혀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당서윤에게 담아뒀던 감정이 생각보다 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미안함보다 속 시원함이 올라올 리 없지 않은가?
짝
그때였다.
이예설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돌아갔다.
갑자기 얼굴에서 뜻하지 않은 충격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허어"
이예설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가소로웠다.
내공이 금제된 주제에 아득바득 덤벼드는 당서윤의 행태가 말이다.
그리고 화가 올라왔다.
얼마나 자신을 무시했으면 이렇게 제멋대로 굴겠는가?
이예설은 내력을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이 당가의 아가씨에게 무서움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줘야 할 듯 싶었기 때문이다.
짝
이예설은 재빨리 손을 뻗어 당서윤의 반대 뺨을 가격하였다.
홱
그러자 당서윤의 고개가 다시금 옆으로 홱 돌아가 버렸다.
짝
짝
짝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예설은 당서윤의 뺨을 쉴 새 없이 가격하기 시작하였다.
당서윤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으나 역시 내력이 금제된 상태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저 일방적인 폭행을 당할 뿐이었다.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쿵
맞다지친 당서윤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극심한 고통에 온몸에 힘이 빠진 듯싶었다.
이예설을 몸을 낮췄다.
꽈악
그리고 쓰러져있는 당서윤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순순히 따라오라고요."
이예설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서윤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나니 어느 정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
당서윤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그런 이예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미소를 보았을 때 당서윤은 직감할 수 있었다.
저 위선자의 가면이 벗겨졌다는 것을 말이다.
"퉷!"
그때였다.
당서윤이 입에 잔뜩 머금은 핏물을 그대로 이예설에게 뱉어내었다.
"아아아악!!!!!!"
그리고 핏물이 닿자 이예설을 비명을 내질렀다.
얼굴에 붙어있던 수화독이 핏물과 반응하여 독기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얼굴에 미친 듯이 따가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직감할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피부가 녹아내릴 것이라고 말이다.
이예설은 재빨리 천월천륜신공을 끌어올려 독기에 저항하였다.
이내 피부의 들러붙어 있던 독기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예설은 시선을 돌려 당서윤을 노려보았다.
신체의 활성을 극대화 시키는 천월천륜신공이 아니었으면 얼굴에 지울 수 없는 흉이 남을 뻔하였다.
이 아름다운 외모를 한순간에 잃을 뻔한 것이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개같은 년이!"
이예설은 그대로 당서윤은 패대기쳤다.
퍽
퍽
퍽
그리고 그대로 발로 그녀를 짓밟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밟고 또 밟았다.
"크윽"
당서윤이 간간이 신음성을 내뱉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서윤의 상태보다는 자신의 기분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당서윤은 뺨뿐만 아니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아..하아..하아."
이예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축 늘어진 당서윤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마치 시체처럼 축 늘어진 채로 간간이 미약한 호흡만 내뱉고 있었다.
`후우`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죽은 것은 아닌 듯 했기 때문이다.
"이건 전부 당소저 잘못이에요. 처음부터 얌전히 계셨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고요."
그녀는 당서윤을 쳐다보며 스스로를 합리화하였다.
이렇게라도 말을 안 하면 자신이 정말 나쁜 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서윤을 그대로 등에 업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방에 눕히고 치료를 해줄 심산이었다.
`하아..하아..하아.."
당서윤은 핏물 때문에 호흡이 곤란하였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쯧"
그녀는 그런 당서윤을 보며 혀를 찼다.
괜시리 양심의 가책이 올라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이건 모두 당신 잘못이에요.`
이예설은 그런 당서윤을 애써 무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속으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예설은 이내 자신의 방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중간에 당서윤이 깨어나 난동을 부리는 일은 없었다.
`후우`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난동이라도 부렸다간 또다시 그녀에게 무력행사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드르륵
그녀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당서윤을 침상에 눕힐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고 말았다.
방 안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방 안에는 두 남녀가 있었다.
여인은 그녀가 사랑해마지않는 어머니 주소양이었다.
그녀는 침상 위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녀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딸의 방에 있는 것이 무엇이 문제 겠는가
문제는 그 옆에 있는 남자에게 있었다.
어머니인 주소양 옆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검은 색 바탕의 용포를 입고 있는 젊은 남자.
이예설은 저 남자를 알고 있었다.
과거 균현에서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수치를 안겨주었던 남자.
수치를 안겨준 것은 물론 돈과 천월궁의 비보인 용미연검까지 강탈해간 남자.
홀로 용봉지회의 모든 후기지수들을 압도했던 독왕의 제자.
장선우였다.
덜 덜 덜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이예설의 온 몸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저 남자가 왜 자신의 방에 앉아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어머니인 주소양과 함께 말이다.
그때였다.
"으으윽!!"
갑자기 어마어마한 살기가 그녀를 덮쳐들었다.
그녀는 온몸을 옥죄어오는 살기에 신음성을 내질렀다.
살기의 근원지는 눈앞에 있는 선우였다.
"네가 저렇게 만든거냐?"
선우는 살의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이예설을 노려보았다.
이예설의 안색이 창백하게 바뀌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