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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82화 (183/1,419)

〈 182화 〉 183. 굴복시키다

물컹

처음 선우의 손이 가슴에 닿았을 때

그녀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부군인 이재원을 제외하고 딸인 이예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이들에게도 허락지 않았던 소중한 가슴이었다.

그런데 이 무도한 자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무리 자신이 패배하였다지만 이것은 선을 넘는 행위가 아니던가

그녀는 한바탕 호통을 내지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갑작스레 밀려오는 독기에 호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독기의 근원지는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 손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선우가 손을 올린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심장에 가장 가까운 곳에 독기를 퍼트릴 요량인 것이다.

그녀는 천월명륜신공(天月明輪神功)을 운용하여 재빨리 독기를 막으려 하였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독까지 중독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변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는 선우가 날린 주먹질 한 방에 모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그의 주먹질에 천월명륜기가 순식간에 흩어져버린 것이다.

이내 그 틈을 타 그가 흘려보낸 독기가 온몸 곳곳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표정이 암울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

따뜻했다.

처음 독이 스며들었을 때 그녀가 느낀 감정이었다.

따뜻함과 포근함이 그녀의 온몸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좋겠다는 감정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따뜻한 정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며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더위가 느껴졌다.

한여름에 후덥지근하고 불쾌할 정도의 더위가 말이다.

그리고 이내 더위는 뜨거움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한여름에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 햇빛을 온전히 쐬고 있는 듯한 착각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뜨거웠다.

숨이 턱 막히고 고통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내 뜨거운 정도 또한 더더욱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마치 사막에 있는 듯한 강한 햇빛에 노출되는 느낌이 들었다.

생살이 익어가는 고통이 몰려들었다.

주소양은 놀라 당황하며 눈을 돌려 온몸을 바라보았다.

피멍투성이긴 하였지만, 살이 탄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깨달았다.

선우가 흘려보낸 독기가 자신에게 이런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내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뜨거움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온몸을 속박한 후 불구덩이 속에 넣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고통스러웠다.

미치도록 말이다.

생살이 불에 타버린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용암에 들어간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 할 수는 있었다.

이러다가는 미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주소양은 크나큰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괴로움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온몸을 바둥거리며 몸부림쳤다.

벗어나고 싶었다.

이 모든 속박과 고통의 굴레에서 말이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

선우는 다시금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린 후 독기를 천천히 빨아들였다.

그러자 주소양의 온몸을 괴롭히던 작열독이 서서히 진기를 타고 이동하더니 이내 선우의 손안에 다시금 안착하기 시작하였다.

"하아...하아..하아."

주소양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이 타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는 숨조차 제대로 못 쉬었기 때문이다.

"이제 공손해질 마음이 들어?"

선우가 그런 주소양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주소양은 시선을 올려 선우를 쳐다보았다.

"퉷"

그리고 핏물이 가득 배어있는 침을 선우에게 그대로 뱉어내었다.

핏물은 그대로 선우의 흑룡포에 묻어졌다.

쓰윽 쓰윽

선우는 흑룡포에 묻은 그녀의 핏물을 천천히 닦아내었다.

`과연 화경의 고수라 이건가?`

그리고 속으로 그녀의 정신력에 감탄하였다.

딸인 이예설조차 얼마 버티지 못한 작열독은 수 분이나 버텨낸 것이다.

과연 경지에 이른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다고 굴복할 것 같더냐! 차라리 날 죽여라!"

주소양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선우를 향해 소리를 쳤다.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무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선우는 소리치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다시금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내 녹빛의 음양조화기가 일렁이더니 선우의 혈도를 거칠게 지나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생각을 바꿨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작열독으로는 그녀를 굴복시키는 것은 힘든 것처럼 보였다.

선우는 몸속에 있는 작열독의 농도를 더욱 진하게 배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기존보다 훨씬 더 짙은 농도의 작열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선우는 작열독을 다시금 손바닥 쪽으로 보내었다.

독기들은 혈도를 타고 천천히 선우의 손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붉은 빛을 띤 독장毒掌이 만들어졌다.

물컹

선우는 다시금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한층 강화된 작열독을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크으으으으윽!"

주소양은 몸속에 몰려드는 고통을 버텨내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끄아아아아악!"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번에 스며들어온 고통은 그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팠다.

따뜻함부터 느꼈던 먼젓번의 독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저 아픔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아픔은 더더욱 커져가기 시작하였다.

처음 스며들었을 때도 아팠던 것이 시간이 지날 수록 두 배, 세 배 ,열 배씩 아파오는 것 같았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극심한 고통에 눈물샘이 자극되었는지 눈물이 질질 흘러나왔고 입에는 하얀 침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였다.

표정 따위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그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칠 뿐이었다.

피부가 타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백옥의 피부가 빨갛게 익더니 이내 진물이 질질 흐르는 상상이 떠올랐다.

그다음은 피부 속이었다.

피부 속에 있는 속살마저 열기가 파고들더니 이내 힘줄, 뼈 ,내장까지 닿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후회가 들기 시작하였다.

그저 한 번만 머리를 숙일걸

그저 한 번만 납작 엎드릴걸

자존심을 챙긴다고 이 억겁과도 같은 고통 속에 몸을 날려버린 것이다.

눈물이 더욱더 처절하게 흐르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후회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애초에 딸을 균현에 있는 용봉지회에 보내지 말걸

당서윤을 납치하지 말걸

독왕의 사과 정도로 끝낼걸

이 남자를 화나게 하지 말걸

그녀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고민하지도 않고 곧바로 납작 엎드려 그의 발이라도 핥으리라

하지만 그런 그녀의 내심을 알 리 없는 선우는 더욱더 많은 독기를 흘려보낼 뿐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찬 그녀의 비명소리가 더욱더 크게 울려 퍼졌다.

.

.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파들파들

주소양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몸을 파들거렸다.

목이 이미 쉬어버려 목소리를 낼 때마다 더한 고통이 차올랐고 성대에 힘을 줄 여유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컹

선우는 다시금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 흘려보냈던 작열독을 다시금 회수하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웅

작열독이 진기를 타고 다시금 선우의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많은 양을 흘려보냈는지

손을 댄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모든 독을 회수할 수 있었다.

선우가 모든 독을 회수하자 파들대며 몸을 떨던 그녀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멈추었다.

온몸을 휘감고 있던 작열독의 고통에 벗어났다는 증거이리라

그때였다.

쉬이이이이이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뒤편을 바라보니 김을 모락모락 내며 잔뜩 젖어드는 그녀의 아랫도리가 보였다.

고통이 해소되고 긴장이 풀리니 그만 실금을 하고 만 것이다.

"허어"

선우는 그 모습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딸래미도 작열독에 당해 오줌을 싸지르더니 그 어미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주소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는 의식을 잃었는지 눈을 뒤집어 까놓고 있었다.

모든 독이 해소되었음에도 주소양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듯하였다.

아무래도 독기를 너무 흘려보낸 듯 싶었다.

주소양정도 되는 고수라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거라 여겼거늘

그건 또 아닌듯싶었다.

"일어나봐."

선우는 주소양의 뺨을 가볍게 가격하며 깨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주소양은 축 늘어져 있을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선우는 그런 그녀의 장심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천천히 음양조화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손을 통해 장심으로 흘러들어간 음양조화기가 천천히 그녀의 세맥과 혈도를 일주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주소양의 몸에 활력이 돋기 시작하였다.

작열독으로 인해 망가졌던 혈도와 세맥이 차츰차츰 아물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번쩍

주소양이 어느새 의식을 차렸는지 눈을 번쩍 떴다.

"정신이 들어?"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덜 덜 덜

선우의 목소리를 들은 주소양은 몸을 벌벌 떨기 시작하였다.

고통속에서 각인된 공포가 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주소양"

선우는 그런 주소양을 만족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공손히 말해봐."

"그..만...해주세요"

온몸을 오돌오돌 떨던 주소양은 간신히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뭘 그만할까?"

선우는 짖궂은 말투로 말을 이었다.

"독..기를...흘..려보내...지..말.아주세요."

"부탁하는 태도가 뭐 이래? 더 정중해야지."

그때였다.

주소양이 양손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내밀어 진 양 손바닥을 합장하였다.

삭 삭 삭

합장된 손바닥이 스치는 소리가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두 손을 모아 공손히 빌고 있는 것이다.

"제..발..부탁...드..립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나도 굴욕적이고 자존심이 상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는 이와 같은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강했기 때문이다.

"좋아, 그 부탁 들어주지."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화색이 되었다.

드디어 고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온몸에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니 다시금 끝없는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아들뻘 되는 남자에게 가슴을 마구잡이로 만져진 것은 물론 오줌까지 지려버리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

거기다 손바닥을 빌며 목숨을 구걸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니 수치를 넘어 설움까지 몰려들었다.

그렁그렁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맺히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언제 이런 수치를 당해봤겠는가?

태어나길 천월궁주이자 무림맹주인 주천기의 딸로 태어난 그녀였다.

인생에 고난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애정을 독차지한 그녀였다.

게다가 과거 천하제일인을 배출한 천월궁의 비전무공인 천월명륜신공마저 완벽히 익힐 재능까지 갖추었던 그녀였다.

태어날 때부터 순탄하기 그지없는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런 수치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선사하였고 당장에라도 자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살아봤자 수치심으로 하루하루 피폐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 처울어."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가에 맺혀졌던 눈물이 거짓말처럼 금세 사라졌다.

선우의 대한 공포가 그녀에게 조건 반사라는 것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선우는 주소양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왜...그..러세요?"

그 시선이 두려운지 주소양은 말을 더듬대며 되물었다.

탁 탁 탁 탁

이내 선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몸에 몇 가지 수법을 발휘하였다.

"윽!"

주소양은 비명을 질렀다.

선우의 손길이 닿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공을 금제해놨어. 아마 마음대로 내력을 움직일 수 없을 거야."

선우는 그런 주소양을 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네..!?"

주소양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재빨리 내력을 일으켜보았다.

하지만 내력은 단전 속에 쥐죽은 듯 가만히 있을 뿐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이게 무슨!"

"죽이지 않은 걸로 감사히 여겨."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살벌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이는 사실이었다.

주소양은 애초에 명목상 정혼자인 당서윤을 인질로 잡고 선우를 죽이려 들었다.

오히려 죽이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다.

선우는 침중한 눈으로 주소양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다.

저년 때문에 겪었던 천변환영무연진을 생각하면 수십 번은 죽여도 할 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를 죽여버리기엔 이재원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비록 화경 끝자락에 다다른 고수를 압도할 정도의 무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이재원에게는 무리였다.

만약 여기서 주소양을 죽여버린다면 완전히 이재원과 등을 돌리게 된다.

세력구축을 하기도 전에 몰살당하게 되는 것이다.

`시발`

선우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원수를 앞에 두고도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주소양을 바라보는 선우의 눈이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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