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182. 제압하다-2
"당장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주소양은 자신의 위에 올라탄 선우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무리 무도한 자라해도 이것은 선을 넘은 짓이었다.
임자가 있는 유부녀의 배 위에 올라타다니?
무인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못할 짓인 것이다.
"너 같으면 놓겠냐?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선우는 소리치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걸 놔준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네놈에겐 존장에 대한 예우가 없다는 것이냐!"
주소양은 선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당서윤을 납치한 네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코웃음을 치며 반박하였다.
사람 하나 납치해서 인질로 삼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예우를 찾는단 말인가?
전형적인 이중잣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꼰대 문화 가득한 무림의 높은 신 분 다운 발상이었다.
"나는 네 사부랑 같은 항렬에....!"
쾅!
열변을 토해내던 주소양의 말이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선우의 주먹이 그대로 얼굴에 작렬했기 때문이다.
"크윽!"
주소양은 안면부에 느껴지는 충격에 신음성을 내뱉었다.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잡설이 너무 기네, 처음에도 말했잖아? 우리가 서로 예의 차릴 사이는 아니라고 말이야. 쉽게 쉽게 가자."
쾅
말을 마친 선우는 다시금 주먹을 내리꽂았다.
"으윽!"
이번에 맞은 부위는 광대뼈였다.
뼈가 아릿한 고통이 두개골 전체에 퍼져나기 시작하였다.
"개같은 자식!"
그녀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몸을 바둥거리며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면 승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퍽
퍽
퍽
다리를 들어올려 선우의 등을 수차례나 가격하였고 손을 들어올려 그의 몸통을 몇 번이고 가격하였다.
하지만 되려 고통이 돌아오는 것은 그녀의 신체였다.
"으으윽!"
그녀는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뱉었다.
자신이 내지른 공격이 그대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쾅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이 다시금 선우의 주먹이 그녀의 안면부를 가격하였다.
주르륵
이번에는 콧대를 맞은 것인지 코에서 피가 터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주소양은 재빨리 양팔을 들어 얼굴을 보호하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급소 부위를 가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최대한 뇌가 흔들리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의식이라도 끊기는 순간 반격의 기회조차 얻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쾅
"끄으윽"
이번에는 안면과 다른 부위에서 격통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숨이 턱 막혀왔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명치였다.
"컥..컥"
명치를 제대로 적중당한 그녀는 헛기침을 몇 번이고 토해내었다.
선우는 그녀의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쾅
다시금 그녀의 안면부를 가격하였다.
이번에는 입술이 터지며 피가 튀었다.
쾅
쾅
쾅
선우는 내력을 듬뿍 담은 후 그녀의 온몸을 여기저기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주소양은 호신강기를 두르며 최대한 버텨봤지만 소용없었다.
일방적인 공세에 두르고 있던 호신강기가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쾅
"이 개같은 년아!"
선우는 감정을 듬뿍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이 여자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숨이 막혀 죽을 뻔한 것은 물론 스스로 자진할 뻔하기도 하였다.
몇 번이고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가장 화나는 것은 당서윤을 건드렸다는 것이었다.
무림에서 음양마 다음으로 큰 은혜를 입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였다.
꾸며낸 모습이 아닌 선우 본연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이를 납치한 것이다.
실추된 딸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말이다.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으랴
쾅
감정이 실린 선우에 주먹에는 더욱더 강대한 힘이 담기기 시작하였다.
그에 따라 주소양이 느끼는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갔다.
************
"하아..하아..하아"
주소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것에는 크고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고 있었다.
쾅
"커억"
다시금 주먹은 그녀의 안면부를 가격하였고 주소양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되었다.
자신은 천검후였다.
마교로부터 무림을 구한 정마대전의 영웅이자 무림에 있는 수많은 여협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여중제일인 말이다.
게다가 천하제일인이자 무림 최대 세력인 천무맹의 맹주인 절대무신 이재원의 정실 부인이다.
명예, 권력 ,무력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완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단 말인가
어째서 자신이 이런 자세로 이곳에 누워있다는 말인가?
어째서 자신이 자신보다 한없이 어린 남자의 밑에 깔려있단 말인가
자신은 그저 딸을 기만한 악적을 단죄할 목적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쾅
다시금 격통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아팠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고통이 어찌나 심한지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거기다 숨까지 턱 턱 막혀오기 시작하였다.
코는 물론 입안 가득 찬 핏물이 호흡조차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온갖 고통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남자를 밀쳐내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소용없었다.
자신이 그 어떤 공격을 한다 해도 이 남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은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녀는 절망하였다.
눈앞의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쾅!
다시금 격통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이번에는 가격당한 곳은 턱이었다.
뇌가 흔들리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정신이 혼미해지니 그녀의 머릿속에는 스멀스멀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이내 그 부정적인 감정이 하염없이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선우에게 생사결을 논하기는 하였지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었다.
독왕이 직접 온다 하더라도 우스울 판국에
고작 그의 제자가 온다고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자신의 검에 죽음을 맞이할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승리를 예상한 그녀는 애초에 목숨을 걸 생각 따윈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가 무릎을 꿇었을 때 그녀는 승리를 자신하였다.
결국, 이 남자도 천월명륜신공(天月明輪神功)의 비기라는 명륜(明輪)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었다.
발등이 칼에 찔리고 다리를 잡혀 그대로 넘어졌으며 그 위를 올라탄 남자의 의해 샐 수 없는 폭력을 당한 것이다.
거친 반항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남자는 그저 묵묵히 주먹을 내지를 뿐이었다.
저항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패배라는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부정하였다.
말도 안 된다며
그럴 리가 없다며 말이다.
화경에 극의에 다다라 현경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어찌 이립도 안되는 자에게 절망감을 느낀단 말인가?
하지만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앞에 그녀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패배하였고 이대로 가다가는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말이다.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은 곧이어 그녀에게 두려움을 야기시켰다.
두려웠다.
온몸이 벌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무인으로서 언제나 생과사의 경계선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죽기가 싫었다.
이대로 죽기에는 그녀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아름다운 얼굴과 매혹적인 몸매 , 고강한 무공,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최고라 불리우는 사랑스러운 딸, 천하제일인인 남편 , 여중제일인이라는 명성까지
이대로 죽어버리게 된다면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잃는 것이다.
두려웠다.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것들이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이 말이다.
죽기 싫었다.
정말 죽기 싫었다.
"...그...그만.."
주소양은 온몸에 느껴지는 격통을 참아내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퍽
하지만 선우는 그런 그녀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채 주먹을 내지를 뿐이었다.
"커헉"
배를 정통으로 맞은 주소양은 위가 역류할 것 같은 고통에 신음을 내질렀다.
퍽
"아윽.제..발.."
퍽
"흐윽...그..만..."
퍽
"으윽....그..그만..해..다오."
그녀는 수없이 배를 가격당하면서도 고통을 참아내며 말을 이었다.
이러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부탁은 좀 더 공손하게 하는 거야."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퍽
"꺼윽!"
다시금 배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선우가 원하는 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주소양 자신의 자존심이 한없이 추락하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저자세로 비굴하게 기어드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빌기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해...주.."
그녀는 천천히 선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읍"
이내 그녀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공포감에 휩싸여 자존심을 내다 버릴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내 그녀는 부끄러움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살고 싶다지만 자신은 무인이었다.
고통에 굴복하여 무인으로서 자존심을 팔려고 하다니?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득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차라리 죽고 말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선우는 그런 주소양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것 봐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에라도 목숨을 구걸할 듯 입을 열었건만 금세 입을 다물어버렸다.
순간 선우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선우는 그녀를 쥐어팰 때만 해도 그저 최대한 고통스럽게 할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개고생한 것은 물론 당서윤이 당한 굴욕까지 전부 갚아줄 심산으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를 더욱더 괴롭게 할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정신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녀는 완벽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림에서 여인으로 최고의 자리에 이른 여인이었다.
이십여년 전 천하제일미에 거론될 정도로 완벽한 외모
여중제일인이라 불리울 정도로 강대하기 짝이 없는 무력.
천하제일인이자 무림 최대세력인 천무맹의 안주인이라는 지위.
정마대전에서 수많은 마인들을 베어넘긴 명성.
거기다 자식인 이예설 또한 천하에 둘도 없는 후기지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무림의 여인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춘 여인인 것이다.
그런 여인이 가장 굴욕적이고 정신적으로 힘겨운 일이 과연 무엇일까?
선우는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많은 것을 가진 만큼 그에 걸맞은 자존심 또한 끝도 없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목숨을 구걸하려다가도 입을 다물었던 이유도 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선우는 입을 꾹 다문 주소양을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저 고운 입에서 구차하게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비참해지겠는가?
마음속에 가학성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선우는 결심했다.
좀 더 나쁜새끼가 되기로 말이다.
`넌 좀 당해야돼`
선우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내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과거에도 이런 일에 적합한 무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우우우웅
머지않아 선우의 주위에 녹빛 기운들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내력 안에 있는 독기를 조합하고 또 재조합하여 고문용 독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작열독이었다.
과거 그 도도하던 이예설마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오줌을 지려버리게 하였던 그 독이었다.
머지않아 독기들이 선우의 손바닥에 담기기 시작하였다.
독기의 농도가 꽤나 높았는지 녹빛이 더욱 진하였다.
`됐다.`
이내 선우의 손에는 작열독이 가득 찬 상태로 변하였다.
선우는 서서히 손을 뻗어 주소양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물컹
부드러운 감촉이 손에 닿았지만 별 감흥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그녀를 괴롭게 할 생각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내 작열독이 그녀의 내부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주소양은 천월명륜기를 끌어올려 독에 저항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저항하기에는 몰려드는 독기의 양이 어마어마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여 독기를 밀어내려고 하였다.
"어딜"
그 모습을 본 선우는 그대로 주먹을 들어 그녀의 장심을 가격하였다.
퍽
"꺼윽!"
장심을 가격당한 주소양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선우의 주먹질에 끌어모으던 천월명륜기가 순간적으로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집중이 깨진 탓이었다.
그 순간 몸 안으로 밀고 들어오던 독기들이 순식간에 퍼져나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질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선우의 귓가를 강타하였다.
주소양의 비명 소리였다.
주소양은 비명을 지르면서 온 몸을 격렬히 떨며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쾌재를 불렀다.
작열독이 제대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