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180. 주소양과 싸우다-3
까드득
주소양은 선우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회심의 일격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전이라는 것은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었다.
천월명륜신공(天月明輪神功)의 비기인 명륜(明輪)에는 두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원할 때 언제든 강기를 폭발시킬 수 있는 기폭 기능이었고 다른 하나가 바로 적을 끝까지 추적하여 날아드는 유도 기능이었다.
날아드는 강기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건만 이런 비밀까지 숨어있으니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일반적인 무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듯 하였다.
그 강대하기 짝이 없다는 명륜을 정통으로 두 방이나 맞았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온몸이 터져나가 죽어도 진즉 죽을 정도의 부상이었건만 저 남자는 피를 몇 번 토해내는 게 전부였다.
아무리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해도 말도 안 되는 내구성이었다.
그녀는 더욱 긴장된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화가 잔뜩 난 것인지 얼굴이 잔뜩 상기돼 있는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네놈 정체가 무엇이더냐?"
주소양은 날 선 눈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알고 있잖아?"
그런 그녀의 물음에 선우가 답하였다.
"독왕의 제자이자 당서윤의 정혼자 장선우다."
"웃기지마!"
선우의 대답에 주소양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찌 제자라는 놈이 제 스승보다 강하다는 말인가?
거기다 저 남자는 독공보다는 검공을 주로 사용하였다.
누가 봐도 의심스럽지 않겠는가?
"네가 믿든 안 믿든 난 관심 없어."
선우는 검을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말 좀 그만 걸어. 싸우고 있는데 흥이 떨어지잖아?"
"개자식!"
주소양은 다시금 검에 천월명륜기를 흘려보내었다.
그리고는 명륜을 생성해내기 시작하였다.
챠르르르
하나의 륜이 그녀의 검 주위를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또 다른 륜이 생성되더니 그 또한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뭐야?`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당황하였다.
설마하니 두 개나 형성이 가능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겪어본 명륜은 검환보다는 약하지만, 엄연히 검강보다 강한 기의 집약체였다.
그런 것을 여러 개를 생성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무리였다.
기의 소모도 소모지만 어마어마한 심력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려져도 모두 흩어져버리는 것이 강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집약하는 것은 강기를 유지하는 일보다 더더욱 큰 심력이 소모되는 일일 텐데 그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런데 주소양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웅
쇄애애애애애애앵!
이내 주소양이 선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쌍륜(雙輪)"
주소양의 말과 함께 두 개의 명륜이 거칠게 회전하며 선우를 덮쳐들기 시작하였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새 선우의 지척까지 도달하였다.
선우는 심유한 눈으로 명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건곤대나이의 구결에 따라 내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온 몸에 내력이 스며들더니 이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휘이이이잉
머지않아 주변의 공기가 빨아들여 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명륜(明輪)이 다가온 것이다.
두 개의 명륜은 각 각 선우의 목과 단전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선우는 검을 들었다.
그리고 명륜을 향해 곧바로 베어버렸다.
가장 처음 검에 닿은 명륜은 선우의 목을 향해 날아오던 것이었다.
검에는 명륜의 강대한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선우는 명륜의 흐름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명륜 안에 집약된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말이다.
선우는 그대로 명륜의 흐름을 비틀었다.
그러자 목을 향해 날아오던 명륜이 방향을 바꾸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밑에는 단전을 향해 날아들었던 명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콰콰쾅!
이내 두 명륜이 부딪치더니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그대로 선우를 덮쳐들었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았다.
건곤대나이를 이용해 충격파의 방향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콰콰쾅
이어 선우의 몸을 중심으로 주위 바닥이 굉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솨아아아악
바닥이 터져나가며 매캐한 먼지가 사방에 퍼져나가더니 온 시야에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먼지가 걷어지며 한 사람의 인영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금빛 수실이 달린 묵빛의 용포를 입고 있는 남자.
선우였다.
엄청난 폭발력이 덮쳐들었음에도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아니!?"
그 모습을 보고 주소양은 경악성을 내뱉었다.
*******
선우의 멀쩡한 모습을 보며 주소양은 경악하였다.
명륜은 일반적인 무공과 궤를 달리하는 절대무공이었다.
폭발력도 폭발력이지만 적을 끝까지 추격하는 유도성은 쉬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그 명륜을 생채기 하나도 없이 받아내었다.
그것도 두 개의 명륜을 말이다.
`말도 안돼!`
그녀는 재차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멀쩡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떻게 한 거지?"
그녀는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저 남자는 분명 목으로 날아드는 명륜에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방향을 아래로 바꿔버렸다.
그다음 단전을 향해 날아드는 명륜과 상쇄를 시켜버린 것이다.
"별거 없어."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냥 네 힘을 이용했을 뿐이야."
번뜩
순간 주소양의 머리에 무언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적의 힘을 역이용하여 타인을 제압하는 수법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설마 이화접목(移花接木)!?`
그렇다.
이화접목이었다.
순간 주소양은 머리가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덮쳐드는 쌍륜을 서로 상쇄시킨 것도 저자가 이화접목에 다다른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꽃을 옮겨 나무에 이어붙인다는 뜻을 가진 이화접목은 적의 힘을 역이용하여 반격을 가하는 최상의 경지였다.
오직 유검(柔劍)의 극의 다다른 검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네 녀석 이화접목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더냐!"
주소양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선우를 보며 소리쳤다.
"뭐?"
그녀의 말에 선우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치미 떼지 말거라! 적의 공격을 역이용하여 다른 공격을 상쇄시키는 수법이 이화접목말고 어디 있단 말이더냐!"
주소양은 그런 선우의 태도에 발뺌한다고 여겼는지 언성을 높였다.
`허어`
선우는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저 여자가 단단히 착각한듯싶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화접목은 건곤대나이와 비슷한 부분이 많기는 하였다.
특히 타인의 힘을 이용하여 다른 이를 공격할 수 있다는 부분이 말이다.
물론 범용성만 따지자면 건곤대나이가 훨씬 낫지만 말이다.
그녀가 착각한 것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원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선우는 명목상 독왕의 제자였으니 마교의 호교무공인 건곤대나이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그 짧은 시연 동안에 말이다.
"멋대로 생각해."
선우는 잔뜩 성이 난 그녀를 바라보며 심드렁히 말하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선우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선우가 이화접목의 경지에 다다른 이상 쌍륜은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쌍륜을 날린다 해도 몇 번이고 상쇄시켜버릴 것이 뻔하였다.
`그렇다면!`
이내 그녀는 다시금 검에 명륜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선우를 향해 휘둘렀다.
명륜이 맹렬한 기세로 선우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대로 검을 든 뒤 명륜을 후려쳤다.
쾅
그러자 선우를 향하던 명륜의 방향이 그대로 땅을 향하였다.
땅에 꼬라박을 심산이었다.
쿵
"응?"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땅에 파고든 명륜이 터지지 않고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내 땅에 파고들었던 명륜이 다시금 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선우는 건곤대나이를 이용해 몇 번이고 흐름을 비틀어 명륜을 날려보냈지만 명륜은 여전히 형체를 유지한 채 다시금 선우에게 달려들 뿐이었다.
쾅
쾅
쾅
그렇게 몇 번을 부딪혔을까?
명륜의 강기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쾅
그리고 이내 머지 않아 선우의 검에 아예 소멸이 되었다.
"후우"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명륜이 폭발하지 않아 얼마나 당황했던가
아무래도 명륜의 기폭은 주소양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흐음"
그녀는 그런 선우를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내 결론이 났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주소양은 검에 내력을 집중하여 순백의 명륜을 다시금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력이 무한한 것도 아닐진대 어찌 저리도 많은 명륜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리고 이번에는 한 개가 아니었다.
두개..세개...네 개... 여 섯개의 명륜이었다.
선우는 코웃음을 쳤다.
학습능력이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명륜을 많이 만들어내봤자 그대로 상쇄시켜버리면 될 뿐이었다.
땅에 처박아서 터트리는 것은 무리일지 몰라도 같은 명륜끼리의 충돌이면 충분히 터트려버릴 수 있으리라
선우는 검을 들고 명륜이 날아오는 것에 대비하였다.
휘이이이잉
그리고 머지않아 하나의 명륜이 선우에게 날아왔다.
선우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건곤대나이로 명륜을 그대로 튕겨내었다.
이번에 노리는 것은 주소양이었다.
하지만 주소양을 향해 날아가던 명륜은 얼마 가지 않아 움직임을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리고는 다시금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선우는 강기를 두른 검을 더욱 맹렬히 휘둘렀다.
쾅
쾅
쾅
그러자 점점 명륜이 깎여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휘이이이잉
다시금 선우에게 또 다른 명륜이 달려들었다.
선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존에 있던 것과 상쇄를 시킬 요량이었다.
선우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부웅
`응?`
검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안 들었다.
허공을 대고 휘두른 것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기존에 있던 명륜이 일정 거리 뒤로 물러나 있었다.
`제길`
그리고 이내 선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여자가 명륜끼리 상쇄되는 것을 가만히 놔둘 리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쇄애애애애액
두 번째 명륜이 바람을 가르며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선우는 건곤대나이를 이용하여 두 번째 명륜을 첫 번째 명륜이 있는 곳으로 날려보냈었다.
그러자 첫 번째 명륜이 위치를 이동하여 두 번째 명륜을 피한뒤 그대로 선우에게 날아들었다.
쾅
선우의 강기와 명륜이 부딪히며 굉음을 자아냈었다.
쾅
쾅
쾅
두 개의 명륜이 쉴새 없이 선우를 덮쳐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건곤대나이를 이용하여 상쇄시켜보려고도 했지만,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명륜을 상쇄시킬 만한 방법은 없었다.
그저 검을 휘두르며 막을 뿐이었다.
"두 개는 버틸만한가 보군."
그때였다.
주소양이 그런 선우를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캉
캉
캉
"........"
그녀의 물음에도 선우는 그저 묵묵히 명륜을 막아낼 뿐이었다.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세 개야!"
그녀의 말을 끝으로 세 번째 명륜이 선우에게 덮쳐들었다.
`젠장`
선우는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캉
캉
캉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선우에게 날아드는 명륜의 숫자는 벌써 다섯 개로 늘어나 있었다.
선우는 점점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쉴 새 없이 여러 방향에서 명륜이 그를 덮쳐들었다.
당장이라도 검환劍環이라도 만들어내어 명륜을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만약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저 괴랄 한 위력을 가진 명륜이 자신을 덮쳐들 것이다.
쾅
쾅
쾅
선우는 더욱 빠르게 용미연검을 휘둘러 사방위 뿐만 아니라 팔 방위에서 자신을 노려드는 명륜을 맞받아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명륜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조금만 버틴다면 모두 소멸시킬 수 있으리라
그때였다.
"설마 다섯 개까지 버틸 줄이야...."
그녀는 감탄스럽다는 듯 선우에게 말하였다.
부웅
"아해야, 마지막 명륜이란다."
주소양은 환한 미소가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명륜이 선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쇄애애애애액
여섯 번째 명륜은 바람을 가르며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다섯 개의 명륜을 쳐내는 것도 버거워죽겠는데 여섯 번째라니?
그런 선우의 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섯 개의 명륜들이 선우를 덮쳐들기 시작하였다.
까득
선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검을 들어 다시금 하나 하나 쳐내기 시작하였다.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었다.
일단 이 여섯 개의 명륜을 모두 소멸시켜야 했다.
검을 쥔 선우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쾅
쾅
쾅
선우의 강기와 주소양의 명륜이 부딪히며 엄청난 굉음을 토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