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176.천월궁天月宮-2
처음 선우가 기련산에 당도했을 때
선우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당서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천월궁이 있는 기련산에 오긴 하였으나 천변환영무연진을 그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아니 시발 미리 거둬놔야 할 것 아니야?"
선우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분명 선우는 기련산으로 출발 전 천월궁에 전서구를 보내었다.
당서윤을 데리러 갈 터이니 진을 해제하던가 사람을 보내라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기련산에 당도하니 시야가 막막해질 정도로 뿌옇기 그지없는 연기와 안개들이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선우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진이 해제되거나 데리러 올 사람이 내려올 것인지 아니면 그냥 무작정 밀고 들어갈 것인지 말이다.
마음같아선 후자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성질대로 일을 치렀다간 분명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았다.
천변환영무연진(千變幻影霧煙陳)은 화경의 고수라 하더라도 쉬이 감당치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인즉슨 화경에 이른 선우조차도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전자를 선택하자니 적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는 것 같기도 하였고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답답하였다.
선우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결정을 내렸다.
털썩
선우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이 걷힐 때까지 마냥 기다릴 요량이었다.
천변환영무연진을 뚫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굳이 들어가서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다 하더라도 주소양은 화경 극의에 다다른 무인이었다.
최고의 몸 상태가 아니면 그 또한 승기를 잡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비록 자신이 신검합일(身劍合一)을 이룬 뒤 화경 중경에 이르긴 하였지만 화경 극의에 다다른 이의 격차는 상상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감정만 앞세우는 멍청한 실수를 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무림에 떨어지고 수없이 많은 실수와 멍청한 짓을 저지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운 선우였다.
결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였다.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생각대로만 이루어지겠는가?
우우우우웅
갑자기 가슴팍에 패왕귀면신갑이 공명음을 내기 시작하였다.
`뭐야?`
선우는 가슴에 느껴지는 자극에 당혹스러운 심정을 내비쳤다.
얘는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그러더니 앉아 있던 선우의 몸을 띄우기 시작하였다.
"뭐야!?"
선우는 패왕귀면신갑에 의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천변환영무연진을 향해 날아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선우는 당황하면서도 천변환영무연진 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며 버티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왠 지랄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갑자기 허리 쪽에서도 상당한 압력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넌 또 왜 지랄이야!"
용미연검이었다.
용미연검 또한 선우를 진법 안으로 들여보내려는 것이 아닌가?
선우는 내력을 집중하여 용미연검과 패왕귀면갑에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들을 제압하려는 의도였다.
음양조화기가 두 귀물들을 붙잡고 힘을 억제하기 시작하였다.
압박이 휠씬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선우는 안도감을 느꼈다.
꼼짝없이 천변환영무연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막은 듯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는 안도는 예상치 못한 복병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팟!
선우는 순간 온몸을 잡아끄는 힘이 느껴졌다.
흑룡포였다.
선우는 내력을 끌어올려 저항하려고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음양조화기는 패왕귀면갑과 용미연검을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선우는 흑룡포에 의해 천변환영무연진 안으로 한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리고 발을 디디는 순간 그의 주위에 뿌연 연기와 짙은 안개들이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아오 시발"
선우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
진에 들어서니 각종 연기들과 안개들이 선우의 몸을 휘감았다.
"케케케켁"
선우는 호흡기를 통해 스며는 연기에 기침을 토해내었다.
"웁"
선우는 재빨리 숨을 막았다.
아무리 선우가 아무리 무공이 높다지만 폐에 연기가 가득 차고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선우는 숨을 막은 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눈앞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와 연기가 혼합되어 온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발 시발 시발`
선우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망할 놈의 귀물들 때문에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욕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일 터
선우는 지독한 연기에 눈마저 고통스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선우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굳이 뜰 이유가 없었다.
눈을 감은 선우는 감각에 의지하여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매캐한 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숨통을 조여올 테니 말이다.
선우는 하염없이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쿵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기둥에 머리를 부딪혔다.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앞이 보이질 않으니 장애물조차 피하질 못하였다.
선우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혹시 모를 장애물에 대비하기 위해였다.
선우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호흡이 부족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가 아무리 화경에 다다른 고수라 해도 본질은 인간이었다.
산소 없이는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선우는 쉼 없이 걸어갈 뿐이었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우는 슬며시 눈을 떠보았다.
앞은 여전히 뿌연 연기와 안개들만 보일 뿐이었다.
선우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변환영무연진 안에 있는 것이다.
선우는 점점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선우는 전신에 내력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몸에 음양조화기가 일렁였다.
선우는 그대로 달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쾅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에 부딪혔다.
하지만 선우는 멈추지 않고 직행을 하였다.
우드드득
그러자 나무 기둥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머지않아 선우와 부딪혔던 나무가 무너져내렸다.
선우는 멈추지 않고 다시금 달려나갔다.
쾅
쾅
쾅
이내 나무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지축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쓸데없는 내력 낭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내력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선우는 끊임없이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쾅
다시금 선우의 몸통과 나무가 부딪혔다.
쿵
나무가 머지않아 무너져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선우는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력은 아직 충만히 남았으나 산소가 부족하여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험하다.`
선우는 위급함을 느꼈다.
대충 세어보면 수십 그루의 나무들을 부숴버린 듯싶었다.
만약 이렇게까지 했는데 무연지대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끝이었다.
선우는 눈을 천천히 뜨기 시작하였다.
제발 무연지대를 벗어났길 바라면서 말이다.
눈을 뜨니 맑은 전경이 보였다.
"후아!"
선우는 막아놨던 숨을 한 번에 내쉬었다.
다행히 무연지대에서 벗어난 듯싶었다.
`뒤질뻔했네.`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을 위기는 벗어난 듯싶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무연지대를 벗어나니 끝이 보이지 않은 넓은 평야만 보일 뿐이었다.
선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기련산은 나무가 가득한 숲 지대였다.
거기다 산길이다 보니 비탈길도 수두룩하였다.
그런데 넓은 평야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선우야!"
그때였다.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아버지?"
"그래 이눔아! 언제까지 처 자빠져 잘거여!"
"네!?"
선우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아버지야 말로 여기에 어떻게 오셨어요?"
"이눔아! 아들래미 집에 애비가 찾아오지도 못허냐!"
아버지는 선우를 보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아버지의 말에 선우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야!?`
그러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항상 드러누워 핸드폰을 하던 침대, 작업겸용으로 쓰던 밥상, 맥주가 가득했던 소형 냉장고까지
선우 눈에 들어오던 것은 8평 남짓의 작은 자취방이었다.
선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어졌기 때문이다.
꼬집
선우는 상황이 믿기지 않아 볼을 꼬집어봤다.
`아얏`
볼에는 선명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꿈이 아닌듯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얼빠진 얼굴로 뭘 하는겨, 어여 이거나 받아."
선우가 멍하니 있자 어느새 다가온 아버지가 검은 비닐 봉투를 건네었다.
"이..게 뭐예요?"
"부추여, 이게 남자 정력에 와따인거 알제?"
선우의 물음에 아버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웃음기를 흘렸다.
"오랜만에 부추전 좀 해먹자, 막걸리도 사왔응께."
아버지는 반 대손에 들고 있는 막걸리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그런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캬아아 이게 사는 맛이제, 안그러냐?"
아버지는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하였다.
"........."
선우는 그런 아버지를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게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은 분명 천변환영무연진에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아버지가 나오고 주위는 자취방으로 바뀐단 말인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찬찬히 아버지를 살펴보며 다른 점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탁
그때였다.
"야 이새꺄 밥상머리 앞에 두고 무슨 딴생각이여."
아버지가 선우의 이마를 후려치며 말을 이었다.
"아으"
선우는 이마에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아파요!"
선우는 아버지를 보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딴 생각말고 전이나 처먹어 임마."
"웁"
아버지는 선우의 입에 전을 강제로 먹인 후 말을 이었다.
우물우물
선우는 입 안에 든 전을 우물거렸다.
그러자 기름과 부추 특유의 향이 그대로 느껴졌다.
선우의 머릿속은 더욱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시각 뿐 아니다.
촉각 후각 미각까지 완벽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환영이 맞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이야~ 좋구만"
아버지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막걸리를 연신 들이켰다.
"아버지."
선우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왜?"
"정말 아버지가 맞으시나요?"
딱
이마에 다시금 격통이 느껴졌다.
"무슨 흰소리고? "
선우의 이마를 가격한 아버지는 다시금 술을 들이켜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고심에 잠겼다.
하는 짓을 보면 진짜 아버지가 분명하였다.
그런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선우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버지, 어머니는요?"
선우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음을 건네었다.
"느그 엄마는 말도 마라, 또 이모들이랑 놀러갔다."
아버지는 전을 질겅거리며 말하였다.
"곰국 하나 끓여주고 가더라, 망할 여편네."
선우의 물음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타박하였다.
"아버지도 따라가시지 그러셨어요?"
"성격에 안맞아. 뭐 좋다고 거기까지 따라가냐? "
선우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말을 이었다.
"됐고, 잔이나 받아라, 오랜만에 우리 아들 주량 좀 확인해봐야쓰겄다."
콸 콸
아버지는 막걸리를 들고 선우의 잔에 따랐다.
선우는 잔을 받아마시며 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갔다.
선우는 아버지와 주거니 받거니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가 먼저 취해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선우는 그런 아버지 위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앉았다.
선우의 머릿속에는 어마어마한 혼란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위화감이 느껴지기는 하나 아버지는 선우의 기억 속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술은 좋아하면서 주량은 약하고 입은 거칠지만, 장난기가 넘치는 그런 아버지 말이다.
혹시나 싶어 떠보는 듯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아버지의 대답은 의심할 건덕지가 없었다.
완벽한 아버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웠다.
기억 속의 아버지가 확실하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림에 떨어진 지 일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 긴 시간 동안 수없이 가족을 그리워한 선우였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를 보았을 때 드는 감정은 반가움이나 설움보다는 위화감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설마 모든 게 꿈?`
선우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꿈일 리가 없었다.
자신이 느꼈던 상실감, 외로움, 사랑 , 우정, 연민, 정욕, 분노, 슬픔 이 모든 감정들이 현실처럼 생생하였다.
그 모든 감정들이 거짓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일까?
기억과 전혀 변함이 없는 풍경이었다.
제주도로 여행을 간 어머니와 이모들 그리고 곰국이 지겹다며 부추와 막걸리를 사 들고 찾아온 아버지.
술에 뻗어 방바닥에 자고 있는 아버지까지
모든 것이 기억 그대로였다.
`응?`
그때였다.
선우는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재빨리 아버지를 거칠게 흔들어 깨우기 시작하였다.
"왜 임마!"
거친 선우의 손길 탓이었을까
아버지는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잠에서 일어났다.
"잠좀 자자 이새끼야!"
취기가 아직 가신게 아닌지 얼굴이 무척이나 붉은 상태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여행 간 곳이 어디죠?"
"깨워서 묻는 말이 고작 그거냐?"
선우의 말에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빨리요 아버지, 빨리요!"
선우는 아버지를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제주도다 제주도. 마트에서 경품 응모한 게 당첨됐다고 하던데…."
순간 선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핸드폰을 찾기 시작하였다.
주머니를 뒤져보고 서랍을 뒤져보고 머리맡을 뒤져봐도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핸드폰 좀 주세요!"
"왜?"
"그냥 빨리요오오"
선우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보채기 시작하였다.
"옛다."
선우의 묘한 박력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선우에게 던져주었다.
꾸욱
핸드폰을 받아든 선우는 재빨리 핸드폰 좌측 부에 버튼을 눌렀다.
팟
그러자 환한 빛과 함께 화면이 켜졌다.
그리고 중앙에 날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날짜는 2020년 5월 15일이라는 날짜가 적혀있었다.
순간 선우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하였다.
선우가 무림에 떨어진 날짜는 7월 10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