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175.천월궁天月宮-1
천월궁
"당소저 정말 미안해요."
이예설은 당서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당서윤에게 상당히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과 선우 사이에 얽힌 은원에 의해 애꿎은 피해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서윤은 그런 그녀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볼 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아, 맞다."
탁 탁 탁
이내 이예설은 마혈이 점혈 당한 것을 깨닫고 그녀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이 소저, 이게 정말 맞는 일이라고 여기시나요?"
마혈이 풀리자 당서윤은 이예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어머니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그녀의 물음에 이예설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주소양이 하는 짓은 흑도패와 다를 바가 없는 짓이었다.
은원을 풀기위해 납치를 감행하다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저를 풀어주세요. 만약 풀어주기만 한다면 이 일은 불문으로 부치겠어요."
당서윤은 이예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주소양과는 달리 이예설은 어느 정도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녀를 설득해야 했다.
"아니요. 이미 그러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어요."
당서윤의 말에 이예설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으며 말을 받았다.
"어머니는 지금 끝을 볼 작정이에요. 장선우의 피를 보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거예요."
"대체 선우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까지 하는 건가요!"
그녀에 말에 당서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분명 주소양은 자신의 딸인 이예설의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이예설은 엉망진창은커녕 여전히 어여쁜 외모를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상처가 치유됐다고 치욕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녀의 말에 이예설은 담담히 답하였다.
분명 지금 이예설은 선우에게 당한 상처를 모두 치유하였다.
그녀의 상처를 확인한 주소양이 수많은 명의와 천고의 영약들을 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겪었던 수치와 굴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차후 무림을 이끌어갈 후기지수들 앞에서 오줌을 지렸고 돈은 물론 용미연검이라는 보물까지 빼앗기게 되었다.
그걸 주소양이 용납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소저가 저의 은원에 끼게 된 것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깊이 사죄할게요. 하지만 풀어달라는 말은 못 들어드릴 것 같아요. 당신에 대한 연민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를 배신할 만큼은 아니에요."
결국 이예설은 잘못된 길인 것을 알면서도 어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이 사실이 드러나봤자 그녀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위선 떨지 마요."
그런 그녀의 대답에 당서윤은 앙칼진 목소리로 답하였다.
그녀는 이예설의 모든 말이 위선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 방관하고 사과만 한다?
제 양심의 가책을 덜려는 가증스러운 위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저 여자는 위선 덩어리면서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사과를 해봤자 당신이나 당신의 어미나 저한테는 똑같은 쓰레기예요. 마음에도 없는 사과로 당신의 마음의 짐을 덜 생각 마세요."
당서윤은 날카로운 눈으로 이예설을 바라보았다.
움찔
날카로운 당서윤의 눈빛에 이예설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내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그녀에게 정곡이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당신이! 뭘 안다고 멋대로 지껄이는 건가요!"
이예설은 언성을 높이며 당서윤을 노려보았다.
"제가 장선우에게 어떤 꼴을 당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요!"
"모르죠, 그럼 말해주세요. 대체 그에게 어떤 꼴을 당했는지요."
당서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예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
그녀의 말에 이예설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려니 부끄러움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건의 전말을 파고들어 가면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알겠네요. 적어도 선우가 생사람을 잡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녀의 반응에 당서윤은 안도한다는듯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반응을 보면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이 가네요. 부끄럽지도 않나요?"
"..........."
그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에 무엇하나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저는 위선자예요."
당서윤은 이예설을 보며 날카롭게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말에 이예설은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였다.
"네년은 약자고."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당서윤의 귓가를 때렸다.
당서윤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감히 소중한 내 딸에게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그곳에는 화가 잔뜩 난 주소양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제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나요?"
당서윤은 주소양을 바라보며 당당히 말을 이었다.
"흥, 위선자니 뭐니 하는 것은 약자가 강자를 우롱하고 싶을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구나."
당서윤의 말에 주소양은 코웃음치며 반박을 하였다.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 같은 약자들밖에 없단다."
주소양은 고압적인 태도로 당서윤에게 말을 하였다.
그전까지 어느 정도 예의를 차리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당신이 약자의 입장이 될 것이란 생각은 안 해봤나요?"
"호호호호"
그녀의 말에 주소양은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주소양의 눈매가 반원 모양으로 휘었다.
"타고나길 강자로 태어났고 이미 강자로서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약자가 된다고?"
주소양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화경에 극에 다다른 고수였다.
그런데 대체 누가 그녀를 압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지금껏 패배감을 느껴본 것은 단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절대무신 이재원과 비무를 하였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마교의 교주인 천마와 조우했을 때였다.
그녀는 그 둘에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그리고 깔끔히 인정하였다.
결코, 넘지 못할 벽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재원은 그녀의 남편이었고 천마는 이재원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그녀를 제압할 인물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독왕도 검황도 천왕신권도 그 누구와 붙어도 지지 않을 자신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 어떤 누가 그녀를 약자로 만든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럼 말해보거라. 누가 대체 나를 약자로 만든다는 것이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당서윤에게 말하였다.
"설마 네년도 독왕이 현경에 이르렀다는 헛소문을 믿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주소양은 당서윤을 보며 알겠다는 듯말하였다.
"아해야, 무림에서 소문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단다, 만약 그가 정녕 현경에 이르렀다면 황보세가는 봉문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경에 이른 이들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만약 독왕이 현경에 이른 것이 사실이었다면 황보세가는 그 힘에 휩쓸려 멸문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소문이 와전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독왕이 온다해도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독왕 뿐아니다. 검황이 되었든 천왕신권이 되었든 그 누가 되었든! 나를 약자로 만들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녀는 당서윤을 보며 열변을 토해내었다.
그 어조에는 확신을 넘어선 맹신이 담겨있었다.
자신의 무력에 대한 엄청난 맹신이 말이다.
"있어요."
그녀의 맹신이 가득 담긴 말에도 불구하고 당서윤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뭐라!?"
그녀의 말에 주소양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세상천지에 그런 이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비록 천하제일인은 되지 못하였지만 검황과 함께 천하제이인을 다투던 그녀였다.
그런 자신을 약자로 만들 이가 누구란 말인가?
"독왕보다 그리고 검황보다, 천왕신권보다 더욱 무서운 남자가 올 거예요."
"하아, 말도 안 되는 허..."
콰콰콰쾅!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굉음이 그녀의 말을 그대로 끊어버렸다.
"!??"
굉음 소리에 놀란 주소양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딸인 이예설을 쳐다보았다.
이예설을 보니 그녀 또한 토끼눈을 뜨고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잘못 들은 것은 아닌 듯싶었다.
콰콰콰쾅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굉음이 다시금 그녀들의 귓가를 강타하였다.
아무래도 천월궁 입구 쪽에서 나는 소리인 듯싶었다.
"말했잖아요. 그가 온다고."
주소양과 이예설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당서윤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흥!"
탁 탁 탁 탁
그녀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재빨리 당서윤의 마혈을 점하였다.
쓸데없는 말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잘 감시하고 있거라."
주소양은 이예설에게 당서윤을 떠넘기고 말을 이었다.
"알겠어요."
이예설의 대답을 들은 주소양은 꺼릴 것없이 곧바로 신법을 시전하였다.
아무래도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봐야 할 듯싶었기 때문이다.
**********
콰콰쾅
그녀는 빠르게 몸을 날려 천월궁의 입구쪽으로 향하였다.
소리를 들어보니 분명 입구에 있는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월궁은 입구는 거대한 철문으로 막혀져있는 데 허가되지 않는 자가 들어설 경우 더욱 굳게 닫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속하게 달려간 주소양은 철문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철문 앞에 도달한 그녀는 머지않아 굉음에 진원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굉음의 진원지는 그녀의 예상대로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쾅!
바깥에서 누군가 강맹한 기운으로 철문을 두드리고 있던 것이다.
쾅!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이 더욱 거세졌는지 굉음 또한 크기를 더욱 키워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천월궁의 입구에 세워진 철문은 일반적인 힘으로는 결코 부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께만 따져도 무려 다섯 치나 되는 크기를 자랑하는 철문이었다.
이 정도 두께라면 웬만한 고수들이 떼로 달려든다 하더라도 부수지 못하리라
하지만 상황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쾅!
쩌저저적
굉음이 울리더니 철문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그녀는 경악성을 내뱉었다.
천월궁의 철문은 두께만 따져도 다섯 치는 족히 넘는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철문이 어찌 금이 간단 말인가?
쾅!
쩌저저적
다시금 굉음이 울렸고 철문에 난 균열이 더더욱 커지게 되었다.
콰콰콰쾅!
이내 굉음과 함께 철문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녀는 재빠르게 검을 들었다.
철문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파편들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캉
캉
캉
날아드는 파편 베어내면서 그녀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범인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떨어져 내리는 문의 파편 사이에서 범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범인은 젊은 남자였다.
금색의 용이 수놓아져 있는 검은색 용포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무척이나 익숙해 보이는 검을 들고 있는 이였다.
`응?`
주소양은 안력을 돋구어 검을 더욱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용미연검!?"
검의 정체는 과거 이예설이 독왕의 제자인 장선우에게 빼앗겼던 무림 기보 용미연검이 아니던가
그녀는 경악성을 내뱉으며 정면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정체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네놈이 장선우냐?"
주소양은 살기어린 시선으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
"맞아, 그럼 네년은 주소양이냐?
선우는 주소양의 물음에 사납게 되물었다.
"입이 더러운 아이구나."
주소양은 선우의 버릇없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나이 차이만 따져도 어미뻘에 가까울진대 어찌 저리 무도한 말을 한단 말인가?
"우리가 예의를 차릴 사이는 아니잖아?"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도 그렇군."
선우의 말에 주소양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제 서로 죽이기 위해 싸울 사이였다.
그런데 뭣 하러 예의를 차린단 말인가?
"어떻게 천월궁으로 들어올 수 있었지?"
주소양은 선우를 바라보며 의뭉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천월궁 근처에는 천변환영무연진(千變幻影霧煙陳)이 포진하고 있었다.
천 번 동안이나 변화하는 환영과 숨을 틀어막는 안개와 연기 사이를 어찌 뚫고 들어온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는 화경의 고수에 이른 그녀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게 아니지."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뭐라!?"
선우의 대답에 주소양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잘못했습니다부터 해야지 이 개같은 년아."
선우는 음양조화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선우의 몸 주위에 어마어마한 음양조화기가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선우의 음양조화기를 느낀 것일까
주소양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머지않아 그녀의 몸에서도 거대한 기운들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쾅 쾅 쾅
두 사람에게서 피어오른 거대한 기운들이 서로 부딪히며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예의가 없구나."
주소양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좆까고 있네. 아가리가 왜 이렇게 길어? 누가 계집년 아니랄까 봐 아가리로 싸우네."
빠직
선우의 천박한 말에 주소양은 얼굴을 찌푸렸다.
나름 정파의 동량이라는 작자가 천박하기 그지없는 언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오냐, 목이 잘리고도 그리 말할 수 있나 확인해 보아야겠구나!"
주소양은 검을 치켜든 뒤 그대로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선우 또한 그녀에게 곧바로 달려들었다.
콰쾅
둘의 검이 부딪히며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