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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73화 (174/1,419)

〈 173화 〉 174. 준비를 마치다-2

수련동 앞

네 명의 여인들이 그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영약을 전부 흡수할 수 있을까요?"

금적화는 궁금하다는 듯 옥령에게 물었다.

선우는 당가에 있는 영약들을 모두 들고 수련동으로 들어가버렸다.

전부 흡수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벌써 네 시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나올 기미가 안보이니 걱정이 앞섰다.

"전부는 무리일 거예요. 영약은 먹을수록 내성이 생기거든요."

그녀의 물음에 옥령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영약이라는 것은 먹으면 먹을수록 내성이 생기게 된다.

같은 종류의 영약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당가에 있던 영약들은 하나같이 전부 뛰어났지만 중복되는 영약이 많았다.

그만큼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다치진 않겠죠?"

당대부인이 옥령을 바라보며 말을 받았다.

그녀는 선우가 너무나 걱정되었다.

그녀 또한 절정에 도달한 고수였기에 알 수 있었다.

영약의 과다한 복용은 몸에 엄청난 부담을 야기한다는 것을 말이다.

선우가 들고 간 영약들은 못해도 수십만 냥 치는 될 정도의 양이었다.

그만한 영약을 전부 흡수한다고 하니 자연히 걱정이 앞섰다.

"괜찮을 거예요."

옥령은 당대부인의 손을 꼬옥 맞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가 감당치 못할 일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옥령은 말갛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대부인은 옥령의 위로에 심란함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후아아암"

그때였다.

요랑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였다.

졸음이 몰려드는 것이 느꼈기 때문이다.

수련동 앞에서 선우를 기다린 지 벌써 네 시진째였다.

밤을 넘어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건만 선우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절로 하품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요랑님 졸리시며 주무시러 가셔도 돼요."

그 모습을 본 금적화가 요랑에게 말하였다.

"아니야, 참을 수 있어."

금적화의 말에 요랑은 고개를 좌우로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같아선 푹신한 침상 위에 몸을 날린 뒤 잠이 빠져들고 싶었다.

하지만 선우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컸기에 요랑은 자리를 지키는 것을 택하였다.

그녀 또한 경지에 도달한 영물이었다.

감당치 못할 자연기를 갑작스레 흡수하였을 때의 부작용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요랑은 모든 것이 걱정되었다.

납치당했다던 당서윤도 걱정되었고 그녀를 구한다고 영약을 흡수하러 간 선우 또한 걱정되었다.

그저 당가에만 돌아오면 행복한 일상을 구가할 것이라 여겼건만 그런 그녀의 소망이 무참히 무너졌다.

요랑은 갑자기 울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항상 순탄치 않으니 슬퍼졌기 때문이다.

"힝"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요랑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 모습을 본 당대부인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물었다.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는 요랑을 보니 덜썩 가슴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모르겠어. 서윤이도 걱정되고 선우도 걱정돼, 마음 속에 자꾸자꾸 걱정이 쌓이니까 눈물이나....."

요랑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이 느낀 심정을 토로하였다.

꼬옥

당대부인이 글썽이는 요랑을 꼬옥 껴안아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 울지 말아요."

그녀는 품 안에 요랑을 안은 채 등을 토닥여주었다.

요랑 또한 그녀의 품 안에서 소리죽여 울었다.

옥령은 그런 요랑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영물인 요랑이 인간의 감정을 배워간다는 게 기쁘긴 하였지만, 그 감정이 슬픔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분노가 차올랐다.

그 분노는 당서윤을 납치해간 주소양에 대한 분노였다.

마음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천월궁으로 쳐들어가 그녀의 멱을 따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천변환영무연진(千變幻影霧煙陣)에 휩싸여 있는 천월궁을 뚫고 지나가는 것은 아무리 화경에 이른 그녀로서도 무리였다.

으득

옥령은 이를 갈았다.

선우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소양`

그녀는 천검후의 이름을 곱씹었다.

만에 하나이지만 만약 선우가 그녀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면 옥령에 검에 다시금 혈향이 묻어나오리라

쿠쿠쿠쿵

그때였다.

수련동을 막고 있던 돌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그리고 머지않아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옥령은 눈을 빛내었다.

이내 수련동 입구 쪽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금색 용이 수놓아져 있는 검은색 용포를 입고 있는 남자.

선우였다.

"선우!"

"상공!"

"선우야아!"

"가주님!"

수련동 밖에 있던 여인들은 저마다의 호칭으로 선우를 불렀다.

호칭은 달랐지만, 그녀들이 내비치는 감정은 모두 같았다.

반가움이었다.

제일 먼저 요랑이 선우에게 달려갔다.

퍽 퍽 퍽 퍽

"왜 이제왔어! 나쁜 자식아! 기다리느라 혼났잖아!"

그리고 선우의 가슴을 토닥이면서 말을 이었다.

"아파, 임마."

선우는 그런 요랑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평소라면 머리통을 후려쳤겠지만, 그녀의 걱정을 눈치챈 선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성공하셨나요?"

어느새 다가온 옥령이 선우를 바라본 채 말을 이었다.

"응, 충분해"

선우는 요랑을 떼어낸 뒤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하였다.

수많은 영약을 들고 간 선우였지만 중복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모든 약력을 흡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효율을 양으로 떼운 선우였다.

지금 상태라면 전처럼 내력에 허덕여 목숨이 위급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상공 여기요."

그때 당대부인이 꾸러미 하나를 선우에게 건네었다.

"이건?"

"천월궁까지 가는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약간의 식량과 돈을 조금 넣어뒀어요."

터업

"고마워, 가려."

선우는 당대부인이 건네준 꾸러미를 받아들였다.

천월궁은 감숙에 있었다.

사천 바로 위에 있다고는 하나 전력으로 달린다 해도 사나흘은 걸릴 거리였다.

그동안 간단히 요깃거리를 챙겨준 것이리라

선우는 꾸러미를 품속에 넣어뒀다.

품 안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아."

선우는 그녀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약력을 흡수한다고 시간을 너무 끌었다.

지금이라도 전속력으로 달려갈 심산이었다.

"정말 홀로 괜찮으시겠어요?"

옥령은 선우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혼자가 아니면 천월궁에 들어설 수 없어."

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천변환영무연진(千變幻影霧煙陣)은 절대고수마저 현혹시키는 힘을 가진 어마어마한 진법이었다.

아무리 화경 극의에 다다른 옥령이라 하더라도 그걸 뚫는 것은 무리였다.

"걱정하지마. 옥령, 널 두고 죽을 생각 따윈 없어."

선우는 옥령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우의 말에 옥령의 표정은 시무룩하게 변하였다.

선우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해소가 안 되는 듯했다.

"만약...선우가..잘못..된다면...저는...저는.."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두 앞에서 대범한 척했지만, 그 누구보다 선우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그녀였다.

막상 선우가 위험한 여정을 떠난다 하니 꾹꾹 눌러놨던 감정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꼬옥

선우는 그녀를 꼬옥 안아주며 진정시켜줄 뿐이었다.

그녀는 마치 비에 젖은 참새처럼 몸을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약속할게,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돌아오겠다고. 당서윤과 함께 말이야."

선우는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을 더욱 다정히 안아줄 뿐이었다.

얼마나 그녀를 부둥켜안았을까

그녀의 떨림이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선우는 그녀를 천천히 놔주었다.

몸의 떨림은 멈췄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선우는 손을 들어 그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의 눈물을 닦은 선우는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고개를 들어 주위에 있는 여인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다들 걱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선우는 고마움이 절로 들었다.

무림에 떨어지고 언제나 정에 굶주렸던 그였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잃어버린 그에게는 그녀들의 존재는 정말 많은 의지가 되었다.

옥령과 당대부인은 가끔은 엄마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그를 챙겨주었고 금적화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누나처럼 그를 보살펴주었다.

또한, 애같은 요랑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생처럼 그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고마워 다들`

선우는 속으로 그녀들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만약 그녀들이 없었다면 암울한 삶을 영위하였을 것이다.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반짝였다.

이제 당서윤을 되찾으러 갈 시간이었다.

선우는 땅을 박찬 뒤 풍진보를 밟기 시작하였다.

**********

대전 안

대전 안에 있는 커다란 옥좌에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형상을 가진다면 저리 생겼을까?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고상하면서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그때였다.

"어머니!"

누군가 대전 안에 들어와 그녀를 불렀다.

대전 안에 들어온 자는 여인이었다.

그것도 무척 아름다운 여인 말이다.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신 건가요!"

아름다운 여인, 이예설은 옥좌에 앉아있는 여인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 딸 왔구나."

우아한 여인,주소양은 사랑스러운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라니?"

주소양은 이예설의 물음에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당서윤 소저 이야기예요!"

이예설은 주소양의 태도에 짐짓 화가난 듯 언성을 높였다.

"아무리 화가 나셔도 그렇지, 당가의 직계혈족을 납치해오시면 어떻게 해요!"

"납치라니? 당 소저는 제 발로 천월궁에 왔단다."

그녀의 말에 주소양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말을 제가 믿을 것 같나요? 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는 건가요. 이 사실이 들통 나면 모두가 어머니를 비난할 거라고요!"

그녀의 말에 이예설은 더욱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당가의 직계혈족을 당가에서 납치하였다.

이는 당가를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걱정말거라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거죠!"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할 테니까."

주소양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 이 어미가 무림에서 끼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듯싶구나. 내가 입 한 번 벙긋하면 독서시 정도를 매장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란다."

그녀는 자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에게 용서할 수 없는 치욕을 주었던 장선우는 음약을 뿌려 나를 겁탈하려고 했던 색마로 소문이 날 것이다. 그리고 독서시는 그의 정혼자로서 당가의 명예를 위해 그를 변호하는 여인이 되겠지."

그녀는 사랑스러운 딸에게 자신의 계획을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그런!"

주소양의 말을 들은 이예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그리 무도한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어머니, 제가 치욕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는 장선우와 둘이 풀 일이지 당 소저는 관련 없습니다."

이예설은 나름의 항변을 하였다.

장선우에게 받은 치욕을 되갚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으나 그 원한 때문에 당서윤이 피해를 받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 또한 협을 추구하는 정파인이었다.

그런 무도한 일을 묵과할 리 없었다.

"아니 그의 정혼자라는 점에서 이미 충분한 관련이 있다."

그녀의 말에 주소양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무도한 자식을 정혼자로 삼은 그녀 또한 벌을 받아야 해."

"독왕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흥, 제 놈이 뭘 어떻게 하겠어? 명분이 없다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파이고 가문이다. 그는 나를 어찌할 명분이 없단다."

그녀의 말에 주소양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정파의 싸움은 결국 명분 싸움이었다.

여론을 조작하여 명분을 만들어버린다면 오히려 독왕이 자신에게 사과를 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독왕이 찾아온다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만약 장선우 대신 독왕이 찾아온다면 그녀가 준비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어찌 저리 여유롭게 말을 잇는단 말인가?

"사랑스러운 딸아, 천변환영무연진(千變幻影霧煙陣)은 아무리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라 한들 뚫을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란다. 현경에 이르렀다던 초대 천월궁주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진법을 독왕따위가 뚫을 수 있을 리 없지 않느냐?"

주소양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가 아무리 경지에 오른 이라해도 천변환영무연진을 뚫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장선우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 저희는 정파입니다!"

이예설은 주소양을 바라보며 비명지르듯 소리쳤다.

그녀가 선우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한 것은 사실이었고 용미연검이라는 보물을 빼앗긴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것은 그저 개인 간의 은원이었다.

그런데 그 은원을 어찌 이런 식으로 푼단 말인가?

그녀는 이해가 안 되었다.

항상 우아하고 품격 넘치던 어머니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정파니까, 이리 귀찮은 일을 하는 거란다. 그들이 정파가 아니었으면 나는 당가에 방문한 그 길로 당가의 모든 이들을 멸족시켰을 것이다."

이예설의 물음에 주소양은 싸늘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오싹

그녀의 싸늘한 음색에 이예설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지금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너도 잘 배워두거라, 결국 명분이란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딸을 보며 주소양은 말갛게 웃음을 지었다.

딸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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