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171. 납치를 당하다-1
"허어"
당서윤의 올곧은 눈을 마주한 주소양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결연의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이보세요. 당 소저,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주소양을 휘감고 있던 기운들이 더욱더 덩치를 키우더니 이내 당서윤은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크흑"
화경이라 불리우는 절대지경에 도달한 주소양의 기운에 노출된 당서윤은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강대하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말이다.
그녀 또한 초절정 상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고수였지만 화경에 이른 주소양의 기운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식은땀이 흘렀고 온몸이 벌벌 떨렸다.
고작 한 단계 차이였지만 그 격차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소양은 당서윤을 압박하는 기운을 더욱더 키우기 시작하였다.
"으그윽"
그 기운에 노출된 당서윤은 더욱 고통스럽다는 듯 신음성을 내뱉었다.
"당신도 머리가 있다면 알 텐데요? 천검후를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를 말이죠."
".크윽....알다마다요"
당서윤은 주소양의 강대한 기운을 견뎌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천검후라는 거물과 척을 진다는 것은 현재 아니 중원제일세라고 불리던 시절이라해도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이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주소양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당가의 대답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는 당가의 사람이예요. 겁박당하여 혈족을 넘겨준다면 그 또한 무림세가로서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겠지요."
"엄밀히 말하면 혈족이 아니지 않나요?"
"아니요, 혈족이나 다름없습니다. 당가의 데릴사위가 된다는 것은 당가의 혈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혈족이 아닌 것은 아니랍니다."
당서윤은 나름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입매가 이상하지 않으려나?`
그녀는 걱정이 앞섰다.
온몸을 압박하는 거대한 살기를 참고 참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혹여 이상한 모습으로 보일까 걱정이 앞섰다.
사실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벌벌 떨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은 당가를 대표하는 자였다.
그에 맞는 품격을 보여야 했다.
`호오`
그녀의 미소를 바라본 주소양은 속으로 감탄성을 내뱉었다.
참으로 대가 강한 아이였다.
화경 끝자락에 다다른 자신의 살기에 노출되었음에도 억지로나마 미소를 짓다니 말이다.
분명 이런 일로 마주하지 않았다면 좋은 인연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 또한 당서윤같은 여장부를 좋아하니 말이다.
"아쉽네요. 서로 의견이 갈렸으니 말이죠."
주소양은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제 의견이 바뀌는 일은 없을 거예요."
"후우"
그녀의 단호한 의지를 확인한 주소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협상을 결렬된 듯싶었기 때문이다.
스릉
그리고 천천히 옆구리에 매어둔 검대에서 검을 빼내었다.
검을 빼내자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게 무슨 뜻이죠?"
주소양이 검을 빼 들자 당서윤은 당황한 듯 되물었다.
"같이 가주셔야겠어요. 당 소저."
당서윤의 물음에 주소양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소리죠?"
"당신의 정혼자를 끌어들일 미끼가 돼주어야겠다는 소리예요."
"제가 그걸 허락할 것 같나요?"
"그러니 이렇게 검을 뽑은 거랍니다. 순순히 따라오신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주 여협, 지금 당가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당서윤은 으르렁거리듯 말을 받았다.
"어머, 저희는 이미 적이 아니었던가요?"
그녀의 물음에 주소양은 새삼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세인들이 주 여협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에요. 아무도 모르면 된답니다."
"........."
당서윤은 주소양의 막무가내식의 발언에 할 말을 잃었다.
당가의 직계혈족인 자신을 납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엄청난 맹비난이 쏟아질 만큼 말이다.
그런데 주소양은 그런 정치적인 입장을 전혀 고려치 않는 모습이었다.
대체 무얼 믿고 저리 행동한단 말인가
"당 소저는 평소에 동경하던 저를 따라 천월궁으로 꽃놀이를 간 거예요. 모두 그리 알게 될 거랍니다."
"그게 가능하리라 여기십니까?"
당서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당가에는 수많은 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눈들을 피해 자신을 납치한다니?
아무리 화경에 이른 주소양이라도해도 무리였다.
"물론 가능하죠."
당서윤의 물음에 주소양은 한껏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에게는 당 소저를 손쉽게 기절시킬만한 무력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 그대를 몰래 태울 마차마저 준비되어 있죠. 당 소저를 몰래 옮기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계획적이었군요."
당서윤은 화가 난 듯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일이 잘못됐을 경우 자신을 납치할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선우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말이다.
"제가 사라진다면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당가의 모든 서류의 결재를 맡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사업이 승인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꽃놀이를 하러 사라졌다?
지나가던 개도 안 믿을 소리였다.
"상관없어요. 그렇다 해도 절 의심할 이는 없을 테니까요."
그녀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녀는 자신하였다.
당서윤이 아무리 의심스럽게 모습을 감췄다 하더라도 자신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느 누구도 수상하다는 낌새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천검후라는 별호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신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서신 한 장만 남기고 간다 해도 자신을 의심할 이는 없으리라
우우우우우웅
당서윤은 재빠르게 만류귀원신공을 끌어올렸다.
그녀가 자신을 제압하기 전 위급한 상황을 주위에 알릴 셈이었다.
쇄액
퍽
"커억"
하지만 그녀는 생각한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만류귀원신공을 전부 끌어올리기도 전에 검파에 명치를 가격당하였기 때문이다
당서윤은 명치부근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고개를 숙인 채 신음성을 내질렀다.
탁 탁 탁
그때였다.
주소양이 고통에 신음성을 내지르는 당서윤의 혈도를 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당서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졸음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혈(睡穴), `
수혈을 점혈 당한 것이다.
"주...소...양"
그녀는 흐려져는 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툭
그녀는 내빈실 탁자 위에 미리 준비해둔 서신 한 장을 올려두었다.
이 정도만 해도 의심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녀는 잠이 든 당서윤을 들쳐멘 뒤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게 조심히 말이다.
******
탁 탁 탁
금적화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함을 달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조함을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재를 해줘야 할 당서윤이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를 가신거지?"
그녀의 실종에 금적화는 의문을 품었다.
당서윤은 아무 말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당서윤은 딱딱한 성격답게 하루 일정 또한 딱딱 짜여진 계획에 맞춰 움직이는 여인이었다.
처음에는 자러 갔나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숙면을 취하고 온 그녀였다.
다시 자러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갈만한 곳을 전부 뒤져보았지만, 그림자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초조함이 절로 들었다.
아직 당서윤이 결재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건만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쾅 쾅
그때였다.
밖에서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그 소리를 들은 금적화는 문을 보며 말을 이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정체는 이번에 내근직으로 발령이 난 당감이었다.
"부인, 내빈실에 이런 서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금적화에게 걸어와 한 장의 서신을 건네주었다.
"서신이요?"
금적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신을 받아들였다.
갑자기 무슨 서신이라는 말인가
서신을 받아든 그녀는 내용을 찬찬히 훑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눈에 경악의 빛이 서렸다.
"혹시 오늘 내빈실에 천검후 주소양 여협이 방문 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오늘 낮에 방문하셔서 제가 직접 내빈실로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당감은 금적화의 물음에 기억난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혹여 언제 떠났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가씨와 접견을 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 떠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금적화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말인즉슨 당서윤이 그녀와 함께 당가를 떠났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그것도 반나절이나 전에 말이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당감은 그녀의 반응에 모르겠다는 듯 물음을 표하였다.
"아..아니예요. 서신 가져다주셔서 고마워요."
그녀는 감사를 표하며 은근한 축객령을 내렸다.
"아닙니다. 또 필요한 일있으면 불러주십시오."
그 뜻을 알아챈 것인지 당감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금적화의 표정이 덧없이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서신에는 별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천월궁 주위에 꽃이 만개하는 시기이니 그 꽃을 보러 당서윤과 같이 길을 떠나겠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별것도 아닌 내용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었다.
요 몇 달 간 당서윤과 같이 수많은 일 처리를 하며 당서윤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다.
그러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리 무책임하게 일을 내팽개쳐버리고 떠나갈 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당가는 오로지 당서윤 한 명의 결재만을 기다리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대부인과 자신이 아무리 돕는다 해도 결국 최종결정권자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주소양을 따라 꽃놀이를 간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불길함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설마 납치?`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검후가 뭣 하러 당서윤을 납치한단 말인가
근거와 명분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순순히 따라갔다는 소리인데 이 또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책상에 걸어가더니 이내 곧바로 앉았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있는 붓을 집어 들고 먹을 칠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결코, 그녀가 꽃놀이를 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스스로 갔던, 불가항력에 의해 갔던 말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납치를 당한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녀는 천월궁에 보낼 서신을 써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마음 같아선 추격대라도 보내고 싶으나 아직 전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추격대라는 수를 둬버리면 사태가 커져 버린다.
당서윤이 주소양을 따라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천월궁에 간 사실이 진짜라면 빼내 와야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스스로 의지는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녀는 화지에 거침없이 먹을 칠했고 이내 한 장의 서신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천월궁의 전서구를 불러들였고 서신을 발목에 묶은 후 천월문을 있는 방향으로 날려보냈다.
목적지는 천월궁이었다.
이내 날개를 편 전서구가 천월궁이 있는 곳으로 힘차게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금적화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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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야! 왜 안 들어가고 서성이는 거야!"
요랑은 답답하다는 듯 조막만 한 주먹을 가슴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기다려봐, 이 망할 요물아."
선우는 자신에게 소리치는 요랑에게 되려 성질을 부렸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대로 당가에 들어가도 될까라는 고민이었다.
분명 자신은 당서윤에 두 달이면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였다.
당서윤 또한 그정도 기간이라면 충분히 괜찮다며 흔쾌히 허락하였고 말이다.
그런데 왠걸 이러저리 건곤대나이를 익힌다고 석 달을 까먹고 사고 친 거 수습한다고 또 며칠을 까먹었다.
아마 지금 들어간다면 당서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몰랐다.
선우는 불안감에 빠졌다.
당서윤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묘한 박력이 있었다.
또한, 절로 경청하게 만드는 마력 또한 갖추었다.
만약 그녀가 맞는 말을 따박따박하면서 그를 압박한다면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선우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졌다.
선물이라도 하나 사들고 들어가야 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선우는 신색을 회복하였다.
어차피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그냥 이대로 부딪히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왼손으로는 요랑의 손을 잡았고 오른 손으로는 옥령의 손을 잡았다.
그녀들의 온기가 느껴지자 무언가 용기가 샘솟는 느낌이 들었다.
선우는 당가의 현판이 걸려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당가에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