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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69화 (170/1,419)

〈 169화 〉 170.천검후天劍侯 주소양-2

타타탁

두근 두근

당서윤은 쿵쾅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재빠르게 내빈실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무척이나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슴 속 깊이 동경해왔던 우상이 당가에 왔기 때문이다.

주소양

과거 무림맹주의 딸이자 현재는 천무맹주 이재원의 첫 번째 부인.

하지만 세인들은 그녀를 그저 이재원의 여자로만 기억하지 않았다.

천검후(天劍后)!

여중제일인(女中第一人)!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수식하는 명칭들이었다.

주소양은 이립이 채 안된 나이에 화경이라 불리우는 절대지경에 도달한 절대고수였다.

또한 과거 정마대전 당시 수많은 마인들을 단숨에 베어내어 그 위명을 널리 알렸었는데 특히 백 명이나 되는 마인들을 홀로 베어낸 일화는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여협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일화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수백년 무림의 역사에서 화경에 이른 여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수는 현격히 적었다.

오죽하면 여성문도들만 존재하는 아미파의 장문인조차 초절정 경지에 멈춰서 있겠는가

그런 무림에서 주소양의 존재는 수많은 여협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여자로서가 아닌 무인으로서 이름을 날린 살아있는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무림의 여인들은 그녀를 동경하였고 모두가 그녀처럼 되기를 원하였다.

이는 당서윤 또한 마찬가지였다.

처음 무공을 접하던 때도

수많은 당가의 혈족들이 무공을 익히는 것을 반대할 때도

무공의 경지에 올라섰을 때도

그녀의 머리에는 항상 주소양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라선 주소양이라는 존재가 실재하였기에 그녀는 더욱더 무공에 매진할 수 있었다.

언젠간 자신도 그녀와 같은 경지에 닿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주소양은 당서윤에게 동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목표였다.

그런데 그런 동경의 대상이 당가를 방문한 것이다.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쿵 쿵 쿵

내빈실에 가까워질수록 심장 박동이 더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제발 진정 좀 해!`

그녀는 애꿎은 심장을 탓하였다.

평생을 동경해왔던 여인을 만나는 자리이다.

떨리는 심장 때문에 추태를 보일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심호흡으로 심장을 진정시키며 더더욱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머지않아 그녀는 내빈실 바로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문고리를 열면 주소양이 있는 것이다.

쿵 쾅 쿵 쾅

갑자기 심장 소리가 더더욱 커지기 시작하였다.

"후우우우~"

그녀는 크게 호흡을 뱉어내었다.

달칵

끼이이이이이익

그리고는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러자 경첩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실내 전경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탁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름다운 귀부인의 모습을 말이다.

당서윤이 그녀를 처음 보고 든 생각은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작았는데 그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반듯하게 박혀있었다.

왠지 모를 우아함이 느껴지는 눈매와 오똑한 콧날 그리고 매혹적이게 빛을 내는 붉은 입술, 불혹에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처짐이 없는 깨끗한 피부까지 아름답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흑단처럼 윤기 나는 머릿결을 뒤로 묶은 곳에는 고급스러운 옥비녀가 꽂혀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녀에게 우아함을 더해주었다.

두근

주소양을 실제로 본 당서윤은 가슴이 더욱더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이토록 아름다운 외견을 가지고도 무공으로서 이름을 날린다는 것은 그녀가 가진 무공이 더욱더 특별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오셨나요?"

주소양은 문을 열고 들어온 당서윤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당서윤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물음에 당서윤은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작은 아이였죠."

둘은 초면이 아니었다.

과거 언니인 당진설의 혼인날 주소양과 담소를 나눴던 기억이 있는 그녀였다.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들떠 그녀를 귀찮게 하였지만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던 주소양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었다.

어린 소녀가 나이를 먹어 완연한 여인이 되었지만 들뜬 마음은 이십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함이 없었다.

당서윤은 주소양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함박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가라앉히며 신색을 회복하였다.

사적으로는 동경하고 좋아하는 여인이었지만 지금 공적인 자리였다.

더구나 자신은 당가를 대표하는 입장이 아니던가

어린 계집애처럼 철없이 굴 수는 없는 것이다.

"영광입니다. 주 여협께서 저를 기억하고 계시다니요."

그녀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호감만을 표한 것이다.

"무에 영광스럽기까지...전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주소양은 겸양을 떨며 입을 열었다.

"여중제일인이라고 불리우는 주 여협이 대단치 않다면 세상에 대단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당서윤은 다시금 그녀를 높이며 말을 받았다.

그녀의 말에 주소양은 맑은 미소로 화답을 하였다.

그 후 서로 간에 화기애애한 담소가 오갔고 내빈실에는 훈훈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나저나 주 여협께서는 어찌하여 저희 당가를 방문하신 겁니까?"

담소를 나누던 당서윤은 슬며시 본론을 꺼내었다.

사실 처음부터 궁금하던 사안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주소양은 사업체를 따로 운영하지도 않았고 소수 제자만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제자들은 무림맹에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취업에 관련된 일은 아닐 것이고 사업체를 운영하지 않았으니 사업적인 목적 또한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당가와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던 사이 또한 아니었다.

오죽하면 그녀의 열렬한 신봉자인 당서윤조차 이십여년 전 언니인 당진설의 혼인식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보지 못하였겠는가

당서윤은 그녀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용건은 간단합니다."

그녀의 물음에 주소양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체 어떤 용건이 있으신지요?"

"저는 독왕의 제자를 죽일 심산입니다."

당서윤의 물음에 주소양은 다시금 담담히 답하였다.

"네?"

순간 당서윤은 저도 모르게 반문을 하였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요. 저는 독왕의 제자를 죽일 예정입니다."

주소양은 확신에 찬 어조로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답을 들은 당서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

"잠,잠깐만요... 주 여협,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요?"

당서윤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내비치며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별안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정파의 거두인 그녀가 어째서 독왕의 제자를 죽인단 말인가

"그는 제 딸에게 말 못할 치욕을 선사했습니다. 그 치욕을 갚아주기 위해서는 죽음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그녀의 물음에 주소양은 별일 아니라는듯 말을 이었다.

"일단 고정하시지요. 어떤 치욕인지는 모르나 지금 너무 감정적이십니다."

당서윤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장선우!`

그리고 속으로 선우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아니요, 저는 지금 충분히 이성적입니다. 수많은 시간동안 고민하다 내릴 결론이에요. 그 아이의 상처는 독왕의 제자의 목숨으로밖에 되갚을 수 없습니다."

"대체 어떤 치욕을 겪었길래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서윤은 주소양을 바라보며 사건의 전말을 물었다.

"당소저도 아시다시피 제 딸은 천검봉(天劍鳳)이라 불리우며 차세대 무림을 이끌어갈 용봉으로 꼽히는 아이랍니다."

그녀의 말에 당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소양의 딸에 관한 소문은 그녀 또한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균현에서 열린 용봉지회의 모임에 다녀 온 딸의 상태가 현저히 이상하더군요."

그녀는 슬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밥도 제대로 먹지않은 채 밤마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게 아니겠어요?"

그녀의 말에 당서윤은 불안감이 드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딸이 그리된 원인이 장선우때문이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딸의 모습에 저는 참지 못하고 억지 문고리를 부숴버리고 딸의 모습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녀의 용태가 걱정된 까닭이었지요. 그리고!"

갑자기 주소양이 분노에 찬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저는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터져나가 피고름이 흘리고 있는 딸의 얼굴을 말이죠. 그리고 그녀를 다그쳐 이유를 물어봤죠."

주소양은 점점 더 언성을 높이며 자신의 분노를 성토하였다.

"알고보니 균현에서 작은 오해가 있었는데 독왕의 제자라는 작자가 문답무용으로 주먹을 휘둘렀다고 하더군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아무리 무인이라고는 하지만 여인의 얼굴을! 그것도 무림을 구한 대영웅의 딸을! 사소한 오해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소리입니다!"

주소양의 얼굴이 분노로 이해 붉게 상기 되기 시작하였다.

"세상천지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더구나 그자는 상처 하나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거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겠나요? 현격한 무공의 차이가 나는 선배가 연약하기 그지 없는 후배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입니다. 그저 `사소한` 오해 때문에 말이죠! 게다가 고문까지 가했다고 하더군요. 제 딸은 그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실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이죠!"

그녀는 이제 분노를 넘어 살기까지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주씨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까지 빼앗겨버렸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 사태를 그저 묵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정파의 인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파인이라기보단 마인에 가깝지요. 저는 딸의 명예와 더불어 무림의 안녕을 위해 그자를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몸 주위에 농익은 살기가 천천히 흘러나와 방안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 이예설이 독왕의 제자라는 자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였고 오줌을 지렸으며 주씨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 용미연검마저 빼앗겨 버렸다.

어미로서 딸이 이런 치욕을 당하였는데 어찌 감내하고 있으랴

사랑해 마지 않는 딸이었다.

그리고 후에 천무맹을 이어받아 무림의 절대자로서 커갈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준 것이다.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살점을 도려내고 눈알을 파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였다.

"가능하겠지요?"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당서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고작 제자 하나였다.

독서시와 정혼한 사이라고는 하나 아직 혼례조차 치르지 않은 외인에 불과하였다.

고작 외인에 불과한 자 때문에 여중제일인이자 천검후라 불리우는 주소양과 척을 진다?

가문의 입장에서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선택일 것이다.

천검후라는 이름값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자신의 뒤에는 천무맹이 있었고 자신을 따르는 집단들은 수두룩하였다.

거기다 전 무림의 여인들은 그녀를 동경하고 선망하였다.

비록 사업체도 없고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력은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이제 날개를 펴고 다시금 날아오르려는 당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눈앞의 당서윤도 생각이 있다면 자신의 의견에 따를 것이다.

주소양은 그렇게 자신하였다.

"아니요."

하지만 당서윤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당서윤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불가합니다."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주소양은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지금 고작 외인 하나 때문에 저와 척을 지겠다는 생각이신가요?"

주소양은 살기 어린 시선으로 당서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외인이 아닙니다. 그는 제 정혼자입니다."

당서윤은 주소양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혼인을 안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아직은 안했을 뿐 곧 하게 되겠지요."

"그는 고작 외인이에요."

주소양은 날이 선 눈빛으로 당서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눈빛에는 고작 외인에 불과한 자 때문에 자신과 척을 지겠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아니요, 외인이 아닙니다."

당서윤은 또한 그녀의 날 선 눈빛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당가입니다."

그녀의 말에 주소양의 살기의 농도가 더욱 더 깊어졌다.

그리고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당서윤이 어떤 대답을 할지 예상한 것이리라

"그를 넘기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주 여협"

당서윤은 이에 지지 않고 기운을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우우우웅

당서윤의 올곧은 눈이 살기 어린 주소양을 응시하였다.

그녀의 눈에는 결연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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