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163. 신검합일身劍合一을 배우다-2
쇄액
선우는 다시금 옥령에게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노리는 곳은 그녀의 오른쪽 어깨였다.
챙
하지만 선우의 검은 너무나도 쉽게 막혀버렸다.
퍽
그녀는 선우의 검을 부드럽게 걷어낸 후 검면으로 선우의 머리통을 갈겨버렸다.
"으윽"
선우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선우, 검로를 단순하게 할 거면 속도가 빠른 쾌검(快劍)을 쓰거나 무게가 있는 중검(重劍)을 써야 해요. 그런데 방금처럼 이도 저도 아닌 검을 휘두르면 반격당하기 쉬워요."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짐짓 엄하게 말하였다.
그 말 그대로였다.
맥 없는 검만큼 상대하기 쉬운 것도 없었다.
머리를 주무르던 선우는 다시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검에 여러 가지 변화를 넣을 심산이었다.
선우의 검이 다양한 변화를 그리며 옥령을 덮쳐들기 시작하였다.
목 쪽을 향하던 검이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가슴 쪽으로 향하였다.
챙
하지만 이내 옥령의 검에 의해 다시금 막히게 되었다.
"환검(幻劍)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손목뿐이 아니라 팔 전체 그리고 몸 전체까지 사용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변화를 주기 힘들답니다."
검을 다시금 튕겨낸 옥령은 다시금 검을 내질렀다.
챙
선우는 튕겨낸 검을 곧바로 회수하여 그녀의 검을 막아섰다.
그리고 곧바로 발을 들어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대로 뻥 차버릴 심산이었다.
"큭"
하지만 어느새 오른발을 뻗은 옥령은 선우가 발을 짓밟았다.
선우는 발을 들어 올리기도 전에 차단당해버렸다.
퍽
이내 그녀는 왼손을 뻗어 선우의 명치를 가격하였다.
"으윽"
선우 또한 왼 주먹을 뻗어보았지만 번번이 그녀의 손에 막히기 시작하였다.
옥령은 박투술에도 일가견이 있는지 선우의 주먹질마저 여유롭게 막아내기 시작하였다.
"크윽"
선우는 신음성을 내뱉고는 그녀의 검을 튕겨낸 후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더 대치했다간 상처만 늘어날 듯싶었기 때문이다.
"하아..하아..하아.."
선우는 거침 숨을 몰아쉬며 옥령을 쳐다보았다.
선우의 눈에는 경악이 담겨있었다.
새삼 옥령이 얼마나 괴물인지 깨닫는 게 된 것이다.
그녀가 화경의 끝자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였지만 설마하니 이정도로 수준 차이가 날거라곤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나 차이가 났던 것이다.
자신과 화경의 끝에 도달한 고수 간의 차이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황보강과의 내력이 없는 상태에서 싸울 때도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하였지 결코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선우는 승기를 잡을 수 없었던 이유가 황보강이 도검불침(刀劍不侵)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옥령과 비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저 자신이 약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좀 쉬면서 할까요?"
옥령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선우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선우와 달리 호흡이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하아...아니!"
선우는 그녀의 물음에 숨을 고르며 답을 하였다.
"하루종일이라도 할 수 있어!"
선우의 대답에 옥령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검을 들었다.
"저는 선우의 그런 끈기있는 부분이 좋아요."
말을 마친 그녀는 선우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쇄액
그녀는 엄청난 빠르기로 선우의 어깨를 찔러 들어갔다.
챙
선우는 재빨리 검을 올려 그녀의 검을 비껴낸 후 그대로 그녀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는 앞발을 축으로 이용하여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오른 팔꿈치에 회전력을 더하여 선우의 관자놀이 노려 들었다.
선우는 몸을 뒤로 젖혀 그녀의 팔꿈치를 피하였다.
그리고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워 그녀에게 박치기를 가하였다.
옥령은 왼손으로 선우의 목대를 잡고 그대로 오른쪽으로 밀어버렸다.
선우의 박치기는 허공을 향하였다.
"칫"
선우는 혀를 찼다.
아무래도 먹히지 않는듯했기 때문이다.
퍽
그때였다.
그녀가 검을 쥔 상태로 선우에게 주먹질하였다
선우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고통에 안면을 찌푸렸다.
선우는 뒷걸음질 치며 다시금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개싸움은 어디서 배운 거야?"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아한 듯 되물었다.
곱디곱게 생긴 외관과 다르게 옥령은 박투술의 일가견이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말이다.
잠깐의 공방이 오간 것만으로 쉴 새 없이 맞았다.
"실전에서요."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그녀의 대답에 선우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과거 거악방이라고 불리우는 거대한 사파집단과 홀로 전쟁을 벌인 전력이 있었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사파무리들이 어디 검들 여유조차 주었겠는가
그녀의 박투술은 그들과 싸우며 자연스레 얻어진 것이리라
선우는 검을 다시금 치켜세웠다.
그는 지금 확신이 들었다.
그녀라면
옥령이라면
자신을 조금 더 멀리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이런 좋은 스승을 놔두고 혼자 끙끙 앓았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검을 치켜들었다.
옥령 또한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검을 세웠다.
챙
둘은 다시금 맞부딪히기 시작하였다.
*********
챙
챙
챙
수도 없이 많은 검격이 오가기 시작하였다.
어떨 때는 중검이
또 어떨 때는 쾌검이
또 다른 때는 환검이 오가면서 검격을 어지러이 하기 시작하였다.
"하아..하아"
옥령의 입가에서 처음으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여유롭게 상대했던 때와는 상당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지금 내심 놀라고 있는 상태였다.
선우의 성장세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만 하더라도 그녀는 선우에게 자신이 마냥 지켜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내력을 못 쓴다고 한껏 얕보고 있는 선우에게 골탕먹일 생각도 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선우는 너무나도 쉽게 그녀에게 목을 내주었고 목에 자그마한 상처가 나게 되었다.
그 얼떨떨한 모습을 보며 얼마나 웃음을 지었던가
그리고 그녀는 검을 휘두르며 선우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비록 경지는 높았지만 기(技) 부분이 경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선우의 말도 안 될 정도의 성장세였다.
선우는 그녀가 가르쳐주는 것을 물을 머금은 솜처럼 듬뿍듬뿍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검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으며 무거워졌으며 다양해졌다.
무공에 재능이 없다는 음양마의 말이 영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무공은 정(精) 기(氣) 신(神). 심(心),기(技), 체(體) 이 여섯 가지 요소들이 모두 조화를 이뤄야만 높은 성취를 이룰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엔 선우는 기(技)에 관한 재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겪으면 겪을수록 그대로 학습을 하는 것이다.
검술뿐만이 아니었다.
박투술 또한 이제는 그녀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밑천이 털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챙
챙
챙
시간이 지날수록 검격간의 교환만 이뤄질 뿐
처음처럼 옥령이 압도하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선우는 지금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그저 손이 이끄는 대로 검이 가고자 하는 대로 휘두를 뿐이었다.
목을 노리고 검이 들어왔다.
챙
검을 살짝 들어 튕긴 후 그대로 베어 들어갔다.
팟
하지만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것이 팔을 밀어 검로를 바꿔버렸다.
선우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선우는 재빨리 검을 회수한 후 다시금 휘둘렀다.
챙 챙 챙
검격이 오가는 소리가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본능대로 검을 휘두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잠깐이나마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올랐었던 자신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선우는 천천히 그때의 느낌을 되새겨 보기 시작하였다.
황보강을 베기에 앞서 선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강했던 검수 두 명을 생각하였고 그들이 했던 말을 되새겼었다.
[그저 베고 싶은 것을 벤 것뿐이란다.]
[나는 그저 한자루의 검일 뿐이란다.]
베고 싶은 것을 베는 한 자루의 검.
스스로가 검 그 자체가 되는 경지.
그들은 검을 단순한 도구로 보지 않았다.
단순히 휘두르는 도구를 넘어서 그 자신을 투영하는 매개체로 생각하였다.
실마리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선우는 검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그저 검이라고
그저 베고 싶은 것을 베는 검일 뿐이라고 말이다.
이내 선우의 검이 휘둘러졌다.
창!
순간 검을 받아낸 옥령의 검이 휘청였다.
그전과는 전혀 다른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선우를 보며 옥령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그가 경지에 도달한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검을 치켜들고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깨달음을 온전히 그의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
"허억....허억."
"하아...하아.."
선우와 옥령은 검을 맞댄 상태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두 사람이 검격을 나눈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자연히 선우와 옥령은 지칠 수밖에 없었고 온몸은 땀범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아....선우"
옥령은 거침 숨을 몰아쉬며 선우를 불렀다.
"도달하셨나요?"
".....응."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호흡을 정돈하고 답하였다.
그녀의 도움 덕분에 선우는 드디어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짧은 새 어마어마한 성장에 이뤄낸 것이다.
"고생하셨어요."
선우의 대답을 들은 옥령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선우는 그녀의 미소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땀에 젖은 상태로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선우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온몸 여기저기에는 잔상처들이 가득하였다.
무아지경에 빠진 선우를 상대하느라 고생한 것이리라
"아프지 않아?"
선우는 그녀를 보며 걱정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무리 무아지경에 빠졌다지만 그녀의 고운 몸에 상처를 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괜찮아요. 무림의 여협들은 생각보다 강하답니다."
선우의 그런 걱정스러운 마음을 알았는지 옥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 그녀의 배려를 느낀 선우는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여자는 대체 어디까지 착하다는 말인가
와락
선우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그녀를 껴안아버렸다.
"아이참, 저 땀 때문에 더러워요."
그녀는 혹여 땀 냄새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땀 범벅이 된 그녀였다.
이렇게 더러운 꼴로 정인에게 안기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도 더러워졌는데 뭐 괜찮아."
그녀의 말에 선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하였다.
지금 선우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미친 듯이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두려움에 빠져 자책하는 자신을 보듬어주는 것은 물론 바라마지않던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몸을 아끼지 않았는데 어찌 그녀를 싫어할 수 있으랴
거기다 그녀에게는 땀 냄새 따위는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향긋한 체향만이 풍길 뿐이었다.
"옥령."
선우는 옥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사랑해."
선우는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하였다.
현대와 무림 통틀어 옥령같은 여자는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그녀에게 표하고 싶었다.
"저도 사랑해요."
선우의 뜬금없는 사랑고백에 옥령 또한 사랑을 표하였다.
세상에 정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우리 같이 씻을까?"
선우는 그윽한 눈빛으로 옥령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욕통이 작아서 두 사람은 안 들어갈걸요?"
선우의 말에 그녀는 어림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몸을 웅크리면 되지 않을까?"
"그랬다간 제대로 씻지도 못할걸요?"
선우의 말에 옥령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옥령의 단호한 거절에 선우는 고개를 숙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저 먼저 씻으러 들어갈게요."
옥령은 선우의 품에서 몸을 떼어내더니 그대로 뒤를 돌아 걸어갔다.
"아..."
선우는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자신의 사랑을 확인해주고 싶었건만 그녀는 오늘 피곤한 듯싶었다.
"맞다 선우."
그때였다.
옥령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몸을 돌린 후 선우를 불렀다.
"왜?"
"오늘 요랑소저가 피곤하다면서 먼저 잠에 들었어요."
그녀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요랑소저는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답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말아요."
옥령은 그런 선우를 예뻐죽겠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알..알았어!"
선우의 대답을 들은 옥령은 몸을 돌린 후 사뿐 사뿐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잘 익은 탱탱한 엉덩이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면서 말이다.
꿀꺽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