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160. 황보세가 봉문封門을 하다
"자..잠깐만! 당가주님 부디 진정해주십시오."
선우의 말을 들은 황보갑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쟁이라니
절대로 안 될 말이었다.
물론 황보갑은 당가와의 전쟁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가가 가진 재력과 기술력을 전부 독점하여 가세가 기울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독왕이 살아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안 이상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무림에서는 한 명의 절대고수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거기다 당가주는 독공의 고수가 아니던가
물량 공세 따위가 의미 있는 자가 아니었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면 황보가는 멸문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내 어찌 진정할 수 있겠소! 나를 초대하였던 황보세가가 직접 나를 죽이려 하였소! 거기다 벽력탄까지 터트렸더군! 그런데 내 어찌 진정할 수 있겠소!"
선우는 황보갑을 보며 큰소리를 쳤다.
그는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만약 선우가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서 내력을 전부 회복하지 못했다면 선우는 꼼짝없이 벽력탄의 폭발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그 폭발력을 막아내는데 내력의 칠 할 이상이 날아가 버렸다.
얼마나 위력적인 공격인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그나마 천장에서 무너진 돌덩이들이 연쇄폭발을 막아주었기 망정이지 만약 그것들조차 없었다면 건곤대나이로도 전부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목숨이 위협당하였는데 화내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
"아이고, 가주님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이 모든 일은 가주인 황보강과 천왕대가 꾸민 일입니다!"
황보갑은 재빨리 태세를 전환하여 꼬리 자르기에 들어갔다.
물론 이와 같은 발언은 죽어버린 황보강과 천왕대의 명예에 누가 될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벽력탄은 터트린 자는?"
"그들 또한 황보강이 일전에 지시해놓은 것을 따른 자들이었습니다."
"이보게, 총관."
선우는 살기를 내뿜으며 황보갑을 불렀다.
" 하..하명하시요."
선우의 살기에 노출 된 황보갑은 말을 더듬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대는 내가 바보인 줄 아는가?"
선우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히익"
"세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를 황보강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리 없지 않겠는가? 분명 동조한 자들이 수두룩하겠지."
사실이었다.
황보강이 주도하긴 하였으나 대다수의 장로들과 원로들의 찬성이 있었기에 황보강은 독왕의 암살 계획을 세울 수가 있던 것이다.
털썩
"제발! 제발! 노여움을 거두어주십시오!"
황보갑은 무릎을 꿇고는 그대로 몸을 엎드렸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절대자에게 자비를 비는 것밖에 없었다.
황보세가는 독왕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멸문이다.
살려야 했다.
식솔들을 살려야 했다.
"네놈이라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
선우는 그런 황보갑을 보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목숨을 노리던 자들을 살려주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 아니던가
자신이 살인에 미친 살인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살려둘 만큼 자비롭지도 않았다.
목숨은 목숨으로밖에 갚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자신이 정한 규칙이었다.
그는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모든 이들을 전부 죽일 셈이었다.
어차피 명분은 차고 넘쳤다.
중원에 그 누구도 자신과 당가를 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전부!"
그때였다.
어느새 고개를 살짝 든 황보갑이 선우를 바라보며 외치기 시작하였다.
"암살 사건에 관여했던 모든 이들의 목을 전부 바치겠나이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말을 마친 황보갑은 다시금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이 수밖에 없었다.
독왕의 분노를 가라앉힐만한 방법은 말이다.
그때였다.
쿵
쿵
쿵
폐관 수련장을 따라왔던 모든 황보가의 무인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머리를 땅에 박았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일제히 선우를 향해 용서를 빌기 시작하였다.
그들도 느낀 것이다.
자신들의 가문이 멸문할지도 모를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쿵
쿵
쿵
그들은 수도 없이 머리를 박으며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대협! 어찌 아무것도 모르는 식솔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이번 사태에 연관된 자들의 목을 전부 바치겠나이다. 부디 부디 멸족만은!"
쿵
쿵
바닥에 어찌나 세가 박았는지 황보갑의 이마에 피가 철철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은 것인지 더욱 강하게 머리를 박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말 한 치의 거짓도 없으렷다!"
선우는 그런 황보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연관된 자들은 제가 모조리 알고 있습니다. 정 의심된다면 가주님께서 직접 목을 치셔도 무방합니다!"
선우의 말에 희망을 얻을 탓일까
선우의 말을 들은 황보갑은 필사적으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좋다!"
황보갑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황보성씨는 쓰는 모든 자를 전부 독에 절여 멸족시키고 싶지만, 어찌 아무것도 모르는 식솔들마저 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연관된 이들의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가진 재산의 절반을 내놓는 것으로 죄를 마무리하겠다. 이의 있는가!"
선우는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있는 황보가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선우도 황보세가를 멸족시킬 생각 따위는 없었다.
현대에 살던 선우에게 연좌제라는 것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어찌 잘못한 이는 따로 있건만 같은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죄값을 같이 받겠는가
자신이 대량학살범도 아니고 연관된 자들만 죽이고 재산을 절반 정도만 몰수하면 충분하리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선우의 말을 들은 황보갑은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땅에 머리를 박았다.
사실 독왕의 입장에서는 황보씨족을 전부 몰살시켜도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식솔들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재산의 절반마저 남겨준단다.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으랴
황보갑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멸족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암살 사건의 배후자들에게 안내하라. 내 직접 멱을 따리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황보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리고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또한 그를 따라 발걸음을 떼었다.
비록 황보강과 천왕대가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그 동조자들이 남아있었다.
그들에게 혈채를 받아내야 했다.
선우의 눈에 살기가 번뜩거리기 시작하였다.
**********
황보세가가 봉문(封門)을 선언하였다.
이 소식을 처음 접한 세인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 코웃음을 쳤다.
봉문이라니
봉문이 무엇이란 말인가
무림에 관련된 모든 대외적 활동들을 일시에 금지하는 행위가 아닌가
봉문을 하게 되면 구성원들의 강호활동과 출입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 무림과 관련된 모든 경제적 활동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이는 무림세가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치명적인 일이었다.
강호활동을 못한다면 위명을 날리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자연히 세가의 존재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차츰 잊히게 만들 것이다.
거기다 경제적 활동마저 금지되니 그들이 관리하던 모든 경영체는 무주공산이 될 것이고 세가는 자금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무림세가에서 봉문을 선언한다는 것은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코웃음을 쳤다.
어찌 오대세가 중 일각이라고 불리는 황보세가가 봉문을 선언한다는 말인가
비록 황보세가가 무역 사업에서 큰 손해를 봤다지만 그들에게는 천왕신권(天王神拳)이라 불리는 절세고수와 수많은 고수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값이라면 결코 망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문의 신빙성을 보태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천왕신권 황보강과 천왕대를 비롯한 황보세가의 주 전력들이 싸그리 몰살당했다는 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악하였다.
황보강이 누구란 말인가
이십여 년전 정마대전에서 위용을 날린 영웅이자 화경이라고 불리는 절대지경에 이른 고수가 아니던가
거기다 천왕대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무림에서도 이름을 널리 알린 황보세가의 주 전력이 아닌가
그들이 몰살당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세인들은 그 소식을 접하고 마교의 습격을 예상하였다.
과거 중원제일세라고 이름을 널리 알리던 당가조차 마교의 습격을 견디지 못하고 세가의 직계 혈족들이 싸그리 몰살당하지 않았던가
아마 황보세가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다시금 뒤이어 오는 소문에 세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황보강과 천왕대를 비롯한 황보세가의 주전력을 몰살시킨 자는 독왕이라는 소문이 돈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경악하였다.
아니 독왕이 어찌하여 황보세가를 봉분시킬 정도의 피해를 입힌단 말인가
비록 육대세가에서 퇴출당하여 오대세가가 되긴 하였지만 당가는 여전히 명문정파였고 독왕은 여전히 정마대전의 영웅이었다.
어찌 영웅이라 불리는 자가 그토록 잔혹한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사람들은 이유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이내 그 이유가 밝혀지고 사람들은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황보세가가 독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독왕은 그들의 암살 계획을 정면으로 당당히 맞서 극복하였고 사건에 연관된 모든 이들의 목을 전부 취하게 된 것이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세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명문정파라 불리는 황보세가에서 비열한 짓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거니와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한 독왕의 엄청난 무공에 경악한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를 죽이기 위해 악마의 병기라고 불리는 벽력탄마저 사용했다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왕이 버텨낸 것이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세인들은 그가 혹여 반선의 경지라고 불리는 현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추측은 소문으로 퍼져 온 무림을 들끓게 하였다.
절대무신이외에 현경에 이른 자가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무신의 등장에 열광하였고 그를 독왕(毒王)이 아닌 독황(毒皇)이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무림에 새로운 황제가 탄생한 것이다.
**********
천무맹 본단
"흑..흑.흑.흑...상공"
한 여인이 서럽기 그지없게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어찌나 울었는지 화장이 다 지워져 얼굴이 엉망이었으며 눈은 퉁퉁 부어 금붕어 저리 가라 할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목소리에는 얼마나 한이 담겨 있는지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 남편인 이재원에게 매달려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흐어어어어엉"
`시발
그녀의 울음소리가 거세지자 이재원은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안 그래도 늙어서 추하기 그지 없건만 화장까지 지워지니 가관이었다.
게다가 목청은 얼마나 큰지
울음소리가 집무실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골머리가 아파왔다.
"부인 진정하시오."
이재원은 그녀를 달래기 시작하였다.
"제가 어찌 진정할 수 있겠어요! 제 가문이! 상공의 처가가! 봉문을 당했다고요! 더구나 강이 오라버니마저 죽음을 맞이했다는 말입니다!"
이재원의 말에 황보유연은 비명 지르듯 말을 이었다.
그녀는 지금 너무 극심한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황보세가가 독왕에 의해 봉문당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허물없이 지내던 오라버니인 황보강마저 그에게 죽음을 맞이했단다.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리라
"상공, 복수해주세요. 부디 강이 오라버니의 한을 풀어주세요. 흑흑흑"
그녀는 이재원을 바라보며 구슬픈 음색으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소문으로는 반선이라 불리는 현경에 이르렀다는 독왕이었다.
그런 독왕을 제지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이재원뿐이었다.
이재원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그를 죽일 수 없으리라
`시발년아, 콧물 묻잖아.`
물론 이재원은 그녀의 슬픔 따위는 하등 관심 없다는 듯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귀찮았다.
나이 처 먹고 관심도 없는 년의 하소연 따위를 들어주기에는 자신은 너무나도 바빴기 때문이다.
봉황당에서 이번에 신입을 모집했다는 소식을 듣던 차였다.
몰래 잠입하여 괜찮은 년이 있나 확인할 셈이었건만 황보유연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존나 질질 짜네 시발`
이재원은 다시금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젊었을 때라면 우니까 더 귀엽다며 친히 자지를 꺼내어 위로를 해주었겠지만 늙어서 우니 청승맞고 보기 싫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연매."
"어째서요!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황보세가를 봉분시켰다고요!"
"아니 실상을 조사해보니 먼저 기습을 가한 것은 황보세가주라고 하던군. 독왕은 그저 대응했을 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에요! 어찌 한 쪽 말만 듣고 판단하는 건가요!"
이재원의 말에 황보유연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답을 하였다.
"이미 비선들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야, 황보세가의 수뇌부들도 인정하였고 황보세가에서 객잔에 묵고 있는 당가주를 초대했다는 증언도 확보했지."
이재원은 그런 황보유연을 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만 질질짜고 꺼저 시발년아. `
물론 속으로 욕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못은 지네 가문이 해놓고 어디 엄한데 화풀이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마교가 발호하여 전력도 부족한 판국에 굳이 독왕을 죽이는 무리수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대세는 황보코인보다는 독왕코인인 것이다.
"그...런! 모두 다 조작 된 거예요!"
이재원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다시금 그에게 소리쳤다.
`아오 시발련이 진짜`
이재원은 속으로 격하게 욕을 지껄였다.
존나 세세하게 열심히 설명해줬으면 알아서 처기어서 나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따지고 드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분명 외관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늙어서 저리 된 것이리라
`시발이래서 히로인은 20대 초반 처녀가 좋다니까, 저딴 밀프따위 개나줘라.`
이재원은 속으로 욕짓거리를 실컷 박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들어주다간 하루종일 시간을 뺏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끼이익
그때였다.
갑자기 집무실 문이 열리더니 뜻하지 않은 구원투수가 등장하였다.
"황보유연, 추한 짓은 그만하는게 어때?"
등장한 것은 삼부인인 당진설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이재원은 쾌재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