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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57화 (158/1,419)

〈 157화 〉 158.신검합일身劍合一

저벅 저벅

황보강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자신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망할`

선우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황보강의 무자비한 주먹질에 온몸 여기저기가 시퍼런 멍으로 도배되었으며 갈비뼈가 반절 이상이나 부러져버렸다.

게다가 부러진 뼛조각이 폐에 박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으며 턱을 강타당할 때 뇌가 흔들려 정신마저 혼미하였다.

안 그래도 건곤대나이의 영향으로 심력이 소모된 선우였다.

그런 상태에서 한계까지 신체가 몰아붙여 지니 버티기가 힘들었다.

이대로 쓰러져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솟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여기서 정신을 놔버린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황보강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는다면 죽는 것이다.

꽈악

선우는 검을 고쳐 쥐었다.

결국, 믿을 건 검밖에 없었다.

지금 선우에게는 내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황보강을 뛰어넘을 신력조차 갖추지 못하였다.

단 하나

그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검술 하나뿐이었다.

선우는 뻣뻣하게 뻗어있는 용미연검을 천천히 아래로 늘어뜨렸다.

장삼이 검을 잡은 지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선우의 머릿속에는 장삼의 이십여 년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선우는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베어내야 한다.

검술만으로 말이다.

저벅 저벅

선우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고개를 들자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황보강의 모습이 보였다.

칠 척이 넘는 키에 돌덩이 같은 근육들이 가득 차있는 육체는 마치 사천왕과도 같은 위용을 뿜어내고 있었다.

강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선우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 괴물 같은 자를 칼 한자루로 상대할 수 있겠다고 자신했단 말인가

기관총이라도 쥐여준다면 모를까

칼 한 자루로는 턱도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마치 코뿔소 한 마리를 상대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황보가에 홀로 들어오게 된 것도 자신의 선택이었다.

옥령과 요랑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보강의 일격을 모든 내력을 사용하여 흩어낸 것도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의 일격을 맨몸으로 받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였고 자신은 그 결과를 감내해야 했다.

"쿨럭...쿨럭."

기침과 함께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몸 상태가 말해주고 있었다.

기회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허락 된 검은 고작해야 일 검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만신창이가 된 자신이 고작해야 휘두를 수 있는 검은 일 검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껏 몇 번이고 휘둘렀음에도 생채기 조금 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어찌 단 일 검만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단 말인가

실소가 터져 나왔다.

꽈악

하지만 검을 쥔 선우의 손에는 더욱더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단 일 검이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저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내지를 뿐이었다.

선우는 걸어오는 황보강을 바라보며 최적의 경로를 찾기 시작하였다.

황보강에게 치명타를 먹일 만한 곳을 말이다.

황보강에게 두 가지 자상이 있었다.

하나는 화살에 박혔던 어깨였고 다른 하나는 칼에 꿰뚫렸던 옆구리였다.

하지만 두 부위 모두 승부를 뒤집을 만큼의 치명적인 부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격이 먹힌다 해도 그를 죽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결국 도검불침을 넘어서 그를 한 번에 죽일 만한 곳을 꿰뚫어내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심장이나, 머리와 같은 급소를 말이다.

`가능할까?`

선우는 의심이 들었다.

도검불침이 어찌하여 도검불침이겠는가

검이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외피를 완성하였기 때문에 도검불침이 아니겠는가

과연 자신의 실력으로 뚫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의심을 지워버렸다.

의심이고 뭐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슨 쓸데없는 생각이란 말인가

선우는 온 신경을 검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금 고심하였다.

저자를 벨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선우는 머릿속에 지금껏 겪어봤던 모든 검수가 망라되기 시작하였다.

이내 자신이 보았던 이들 중 가장 강했던 검수 두 명을 뽑을 수 있었다.

한 명은 검황 양태산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저 한 자루의 검이라고 불러달라던 사내였다.

두 사람 모두 천외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검을 보유한 자들이었다.

검황은 비록 반쪽자리에 불과하였지만, 심검(心劍)이라는 지고한 경지를 보여줬던 이였고 검이라 불리던 자는 화경에 이른 자신이 각성까지 해가며 싸워도 생채기 하나 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선우는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하였다.

양태산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검을 휘두르고는 말하였다.

그저 베고 싶은 것을 베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일대종사급 실력을 갖춘 남자는 말하였다.

그저 한자루의 검이라고 불리우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검(劍)이라

중원에는 검을 다루는 수많은 문파가 존재하였다.

그만큼 검수들도 많았으며 검에 대한 이해와 해석 또한 제각각이기 마련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검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양의 의미를 가진 도구라고 말이다.

혹자는 말한다.

검은 그저 누군가를 해치고 죽이기 위한 살인을 위한 도구라고 말이다.

혹자는 말한다.

검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 있으며 쓰는 자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인 도구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말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선우는 그저 보고 느꼈던 경험을 신뢰할 뿐이었다.

그가 아는 최고의 검수들은 말하였다.

그저 베고 싶은 것을 베는 한 자루의 검일 뿐이라고 말이다.

어려웠다.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말로는 표현키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검이라

그저 검이라

뚜벅 뚜벅

선우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내 선우는 황보강의 코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부웅

그리고 황보강이 돌덩이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공기를 꿰뚫는 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휘청

선우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이내 황보강의 주먹을 한 끗 차이로 피하였다.

`쳇`

황보강은 혀를 찼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작용한 듯 싶었기 때문이다.

황보강은 반대 주먹을 움켜쥐고는 이격(二擊)을 준비하였다.

어차피 독왕의 검으로는 자신을 벨 수 없었다.

도검불침(刀劍不侵)에 이른 자신의 신체를 어찌 뚫을 수 있단 말인가

검황의 경지에 이른게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리라

한편 휘청거리는 몸으로 황보강의 주먹을 피한 선우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우득

아귀에 힘을 더욱 쥐었다.

불끈

하체 근육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그 힘을 그대로 허리로 전달하였다.

허리에서 받은 그 힘이 어깨로 전달되었다.

이내 어깨는 그 힘을 이용하여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쇄액

그저 베고 싶은 것을 베는 한 자루의 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검이 휘둘러졌다.

하지만 살을 파고드는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검을 확인하였다.

새하얀 검신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선우는 절망하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한 수였지만 결국 그를 베어내지 못한 듯싶었다.

거리가 부족했던 것이리라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선우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눈에는 절망감이 서리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황보강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최후의 검을 휘두르긴 하였지만 결국은 도검불침을 극복하진 못한듯싶었다.

천하의 독왕이 절망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주저앉은 것이다.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황보강은 이격을 날리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마침 독왕은 머리통을 터트리기 좋게 주저 앉아있었다.

그대로 머리를 터트려버리리라

"응?"

그때였다.

갑자기 알 수 없는 기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분명 독왕은 눈앞에 주저앉아 있건만 앉은 상태로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의아함이 들었다.

어째서 사람이 주저앉은 채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황보강은 눈동자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점점 가까워지는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목이 베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황보강이 기억하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데구르르르

황보강의 머리가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독왕과 더불어 정마대전의 영웅이라고 불렸던 화경의 고수.

천왕신권(天王神拳)이라고 불리우며 수많은 마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황보세가가 배출한 절대고수 황보강은 그렇게 선우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최후를 확인한 선우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공터에는 독기에 절여진 천왕대의 시체들과 목과 몸이 분리된 황보강의 시체 그리고 기절한 선우만이 있을 뿐이었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난 것일까

선우는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기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심력이 회복된 듯싶었다.

선우는 감긴 눈을 억지로 뜨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눈꺼풀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지긴 하였지만 선우는 굴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잠에 빠져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천왕대와 황보강을 전부 죽였다고는 하나 이곳은 적진이었다.

적진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선우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순간 선우는 얼어붙게 되었다.

눈앞에는 눈을 부릅뜬 원통한 표정의 황보강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선우는 서서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얼굴 밑에 목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후우"

긴장이 풀린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이 잘린 황보강의 얼굴이 선우의 눈앞까지 굴러들어온 듯싶었기 때문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선우는 이제야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력이 없는 상태로 도검불침에 이른 황보강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피 한 방울 묻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말이다.

베었다는 감촉조차 느낄 새도 없이 말이다.

최후의 한 수를 날렸을 때 기분을 선우는 잊지 못하였다.

검과 하나가 되어 오직 한 자루의 검이 되는 기분.

그렇다.

잠깐이지만 신검합일(身劒合一)의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선우는 뒤늦은 희열이 찾아오는 것을 느껴졌다.

검을 쥔 검수라면 바라마지 않는 경지였다.

그런 경지에 자신이 도달했다고 생각하니 희열에 휩싸인 것이다.

아마 이 깨달음을 갈무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한층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화경 초입을 벗어나 중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의 실마리가 잊히기 전 지금 당장에라도 갈무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왔다.

하지만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폐쇄되었다고는 하나 이곳은 엄연히 적지였다.

여유롭게 깨달음을 갈무리할 시간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였다.

적어도 옥령과 요랑에게 호법을 부탁하여야 하리라

생각을 마친 선우는 일단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최대한 빨리 몸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떄문이다.

음양조화기가 선우의 몸을 타고 거침없이 온몸을 누비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웅

세맥과 혈도 곳곳에 음양조화기가 스며들더니 이내 치유력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멍들었던 곳 과 피가 터졌던 곳 모두가 서서히 아물어갔다.

부숴졌던 뼛조각들이 차츰차츰 제자리를 찾아갔다.

선우는 더욱더 운기요상에 집중하였다.

다행히 외상이 극심할 뿐 내상은 심하지 않았기에 치료가 그전보다는 수월하였다.

우우우우우웅

.

.

.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우는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벌떡

선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외상을 완치시키진 못했지만 적어도 내력만큼은 모두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죽은 황보강이 다시 일어나 덤빈다 하더라도 두렵지 않으리라

우드득 우드득

선우는 몸을 하나둘씩 돌려보며 이상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다행히 거슬릴 정도의 큰 부상은 없는 모양이었다.

뚜벅 뚜벅

그때였다.

공동 입구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소리가 제각각인 것을 보면 한두 명이 아닌듯싶었다.

아마 일정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사람을 들여 보낸 듯싶었다.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허리를 숙인 후 황보강의 머리를 쥐어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제 황보가에게 개고생한 만큼 뜯어먹을 차례였다.

이내 발소리가 커지더니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모두 황보가의 상징인 황색 바탕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황보세가의 무인인 듯싶었다.

선우는 그들에게 황보강의 목을 들어 보이며 크게 외쳤다.

"황보강과 천왕대는 전멸하였다!"

선우의 말을 들은 황보가의 무인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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