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155. 황보세가와 전쟁을 벌이다-2
선우의 주위에 독기가 잔뜩 품어있는 음양조화기가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독기가 얼마나 강한지
그의 발밑에 대리석이 녹아들기 시작하였다.
"호오"
그 모습을 본 황보강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봐, 황보강"
선우는 황보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독공의 고수인 내게 합공 따위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실이었다.
독왕에게 수적열세 따위가 의미 있을 리가 없었다.
화경에 다다른 고수가 뿜어내는 독기를 고작 절정의 고수 따위가 버텨낼 리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우가 독왕만큼의 독기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독기를 흡수한 결과 적어도 당서윤 정도는 되는 독기를 가지고 있었다.
초절정 이상의 고수를 제외한다면 모두가 꼼짝없이 중독되리라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겠지."
그의 물음에 황보강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내가 그런 생각도 안 해봤을 것 같은가?"
쭈우우욱
팽 팽
그때였다.
뒤편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봤다.
뒤를 돌아보니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천왕대의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활?"
그들은 본 선우는 헛웃음이 나왔다.
어찌 권왕가에서 활이라는 병장기를 들고 있다는 말인가?
"독기가 위력적이기는 하나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자존심도 없는가? 두 주먹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며 호언장담하던 권왕가에서 활이 왠 말인가?"
선우는 황보강을 쳐다보며 이죽거렸다.
"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결투가 아닌 사냥이라고 말일세, 사냥을 맨손으로 하는 멍청한 사냥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선우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황보강은 별일 아니라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선우는 그런 황보강의 태도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만반의 준비를 다 한 듯싶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독공은 대량학살에 특화돼있다고 할 정도로 대인전에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이었다.
경지가 낮은 자는 꼼짝없이 중독당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능인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독기는 위력적이었지만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시전자의 몸에서 독기가 멀어질수록 그 농도가 옅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독공의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궁수들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비를 참 열심히 했군."
선우는 감탄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천하의 독왕이 아니던가!?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뭐라?"
"저런 같잖은 장난감들로 날 감당할 수 있냐는 말일세."
선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애초에 활을 주력으로 삼았던 혈궁대조차 선우를 감당치 못하였다.
그런데 주먹질이나 하던 황보가의 무인들이 쏘는 화살이 그에게 위협이 될 리 만무하였다.
"상관없다네, 어차피 자네를 정면으로 맞이하는 것은 나니까 말일세."
황보강은 징글징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순간의 틈이면 충분하다네, 자네의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 시간은 말일세."
말을 마친 황보강은 성큼 성큼 선우에게 걸어오더니 그의 앞에서 멈췄다.
"다시 한 번 말하겠네, 백만 냥을 내놓게나 , 그럼 팔 한 짝 정도로 용서해주겠네."
"나도 다시 한번 말하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우우우우웅
두 절대고수의 주위에 어마어마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파지직 파지직
그리고 기운들이 부딪히며 마찰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부우우웅
먼저 움직인 것은 황보강이었다.
왠만한 사람의 머리통보다 거대한 주먹이 선우를 향해 휘둘러지기 시작하였다.
어찌나 강맹한 위력이 담겼는지 공기의 떨림마저 느껴졌다.
`머리!`
선우는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황보강의 권격을 인지하였다.
황보강의 권격은 거대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신속하였다.
선우는 재빨리 몸을 틀어 황보강의 권격을 한 끗 차이로 피할 수 있었다.
펑
황보강이 주먹을 내지른 곳에 파공성이 터져나갔다.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황보강의 주먹이 얼마나 강맹한 위력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선우는 그 위력에 전율을 느끼는 한편 재빨리 반격을 준비하였다.
그의 가슴에 독장을 내리꽂을 속셈이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온몸에 싸늘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선우는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격!?`
그곳에는 황보강의 반대 주먹이 내질러지고 있었다.
퍽
돌덩이같은 주먹이 선우의 몸통에 내리꽂혔다.
부웅
황보강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선우의 몸이 그대로 공중에 떴다.
콰쾅
그리고 그대로 구석퉁이까지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본 천왕대원들은 감탄성을 자아내었다.
황보강이 강하다는 사실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긴 하였다.
하지만 이렇듯 쉽게 독왕에게 일격을 먹일 줄은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다.
세간의 평에 의하면 둘은 동급의 강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실상을 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가슴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이 모시는 주군의 강함을 체감하니 존경심이 솟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황보강은 그들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덧없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내려 이격을 가한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는 이격을 독왕의 몸통에 정통으로 내리꽂았다.
몸통을 뚫어버릴 심산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몸에 닿는 순간 내력의 흐름이 꼬이더니 내력의 일부가 흩어져버렸다.
위력이 낮춰진 것이다.
`죽일 심산이었거늘.`
황보강은 의아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투툭 투툭
그때였다.
이내 벽에 처박혔던 선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퉷"
그는 입가에 머금어 있던 피를 바닥에 내뱉었다.
건곤대나이로 위력을 급감시켰기는 하나 천왕신권의 주먹이었다.
내상을 입지 않았을 리 없었다.
선우는 고개를 들어 황보강을 쳐다보았다.
그는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선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해`
선우는 새삼 얕봤던 마음가짐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합공이라는 비열한 술수를 썼다고는 하나 그가 화경에 이른 고수라는 사실은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강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상대가 안될 만큼 말이다.
"이보게 독왕, 오히려 경지가 쇠퇴했나? 어찌 그런 간단 수에 당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황보강이 비웃음이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자네야말로 실력이 많이 죽었나 보군, 어찌 일부러 틈을 내주었건만 기회조차 살리지 못한단 말인가?"
선우 또한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흥, 입만 살았군!"
황보강은 그런 선우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위력이 감퇴했다고는 하나 엄연히 화경에 이른 자신이 내지른 주먹이었다.
그걸 정통으로 맞고 멀쩡할 리 없었다.
"입만 산 것인지 진짜인지는 직접 확인하게나."
선우는 허리에 감싸고 있던 용미연검을 풀었다.
챠르르릉
이내 용미연검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선우는 내력을 끌어올린 후 용미연검에 흘려보내었다.
팽 팽
그러자 흐느적거리던 용미연검이 꼿꼿하게 세워졌다.
이내 푸르디 푸른 기운들이 넘실거리더니 아내 검을 타고 그대로 응집되어 형상을 이루었다.
검강劍罡이었다.
"아까와는 다를 걸세."
팡
말을 마친 선우는 땅을 박찬 뒤 그대로 황보강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쾌속한지 황보강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황보강 또한 재빨리 내력을 집중하여 권강拳罡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선우에게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쾅
이내 선우의 검강과 황보강의 권강이 맞부딪히더니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주르르르
선우의 강대한 힘을 감당치 못한 것일까
황보강의 동체가 서서히 뒤로 밀리기 시작하였다.
"크윽"
황보강은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주먹에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황보강은 버티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검을 튕겨내었다.
주르르륵
황보강의 주먹으로 검을 튕겨내자 선우와 황보강은 각자 뒤로 밀리게 되었다.
선우는 삼보 정도 뒤로 밀렸고 황보강은 다섯 보 정도 뒤로 밀리게 되었다.
힘의 차이로 인한 결과였다.
순간 황보강의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힘 싸움에서 밀리고 만 것이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타고난 신력을 바탕으로 내공뿐만 아니라 외공마저 뼈를 깎는 단련을 통해 극한까지 끌어올린 절대 고수가 아니던가
그런 자신이 힘에서 밀려버린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리라
한편 선우는 황보강을 보며 내심 감탄을 하였다.
건곤대나이신공을 연마하면서 내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알게 된 선우였다.
내력 본연의 힘을 손실 없이 모두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힘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수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런데 황보강은 그런 힘의 차이를 육체의 힘으로 버텨낸 것이다.
놀랍지 않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리라
무서울 정도로 단련된 신체였다.
"개같은 자식!"
자존심이 상한 황보강은 그대로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힘을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수많은 권격이 선우를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하였다.
쾅
쾅
쾅
물론 선우 또한 지지 않고 검을 휘둘러 황보강의 검격에 방어하였다.
힘 차이로 우위에 서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권격에 부딪힐 때마다 저릿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지?`
마치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내 저릿한 느낌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크윽!"
선우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저릿한 느낌이 이내 고통으로 바뀌면서 알 수 있었다.
황보강의 권격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기운의 정체를 말이다.
뇌기(雷氣)였다.
`제길`
선우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은 후 용천혈에 내력을 집중하였다.
이대로 대치했다간 뇌기가 온몸을 휘감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용천혈에 집중된 기운을 그대로 터트린 후 폭발력을 이용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타탁
다행히 안전히 뒤로 물러날 수는 있었지만, 몸에 느껴진 저릿한 느낌이 가실 줄 몰랐다.
선우는 찌푸린 얼굴로 황보강을 쳐다보았다.
대체 이건 무슨 술수란 말인가?
"크흐흐흐흐흐 "
그런 선우를 본 황보강이 기분 좋은듯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선우가 물러난 이유를 어림짐작하고 있는 듯하였다.
"독왕이여, 어떤가? 천왕의 권이?"
"대체 무슨 술수를 쓴거지?"
선우는 의아한 듯 물었다.
"술수랄 것도 없다네, 그저 천왕의 권을 보여준 것일 뿐."
선우의 물음에 황보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황보세가의 신공절학인 만력천뇌신공萬力天雷神功은 뇌기를 다룰 수 있게 해주지. 때문에 황보의 성씨를 가진 자들의 주먹에는 예로부터 뇌기(雷氣)가 담겨져 있었다네, 내가 권왕(拳王)이 아닌 천왕신권(天王神拳)이라 불리우는 이유이기도 하지."
황보강은 선우를 보며 자신에 찬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뇌기가 담겨있다고는 하나 이렇게 강대하지는 않을텐데?"
선우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황보세가에서 뇌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황보강이 흘려보낸 뇌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무력 화경에 다다른 자신이 고통을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정도 뇌기를 머금기 위해서는 벼락을 수어번은 맞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힘이었다.
독공의 경우에도 독기를 머금기 위해 독물을 지속적으로 섭취하여야 하였다.
이는 만력천뇌신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력을 뇌기로 바꾸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리였기에 뇌기을 머금기 위해서는 몸에 뇌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중원에서 전기를 어떻게 구하겠는가?
벼락을 맞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리라
그렇기에 황보가 무인의 주먹에는 뇌기가 서려 있긴 하였지만,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황보강의 주먹에 그 궤를 달리하는 힘이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혈족이 희생을 아끼지 않았지."
선우의 물음에 황보강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말하였다.
"뭐라!?"
선우는 그의 답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 말인즉슨 혈족들의 내력을 갈취했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이내 선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용서받을 수 있는 짓이라고 생각하는가!"
선우는 그를 보며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였다.
내력갈취라니 흡성대법을 대마두나 할 법할 짓이었다.
"그들 또한 만족할 걸세, 덕분에 가문의 영광을 얻을 수 있지 않았는가?"
"하는 짓이 마교종자가 따로 없구나."
선우는 황보강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정도면 악마도 울고 갈 인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네놈 따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나는 오직 가문의 영광을 위해 달려갈 뿐이다!"
말을 마친 황보강은 본격적으로 만력천뇌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파지직 파지직
이내 그의 몸 주위에 뇌기가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닿는 것만으로 감전 되버릴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탐색전 따위는 끝났다. 전력을 다해 네놈을 상대할 뿐! 천왕대여! 독왕에게 화살을 겨눠라! 틈을 보이는 순간 단번에 죽여버리겠다!"
황보강은 시위를 겨누며 대기하고 있던 천왕대에게 명을 내렸다.
이제 간을 볼 만큼 봤으니 본격적으로 그를 사냥할 속셈이었다.
팽
팽
천왕대의 활이 일제히 선우를 향해 겨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