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153. 배상을 요구하다-3
바닥에 누워있는 금철방 무사 진삼은 지금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감정에 빠져들어 있었다.
금철방에서 그 실력 인정받아 가장 촉망받는 무사로 뽑혔던 자신이었다.
비록 명문대파의 제자로서 신공을 전수받지는 못하였지만 수십 년을 갈고 닦아 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였다.
세인들은 말한다.
하늘도 그의 노력에 감복하여 상위 경지에 들어서게 해준 것이라고 말이다.
진삼 또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자였다.
만약 명문대파의 제자만 아니라면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하였다.
하지만 그의 자신은 단 일각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꺾이고 말았다.
고작 한 수였다.
금철방 최고의 무사인 자신이 땅바닥에 드러눕게 된 수는 말이다.
그는 첫눈에 남자가 만만치 않은 고수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정면승부를 한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일행 중 하나를 인질로 잡을 생각을 하였다.
아무리 무림 고수라도 짐짝이 있다면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 못 할 것이 자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검을 든 여자는 논외로 쳤다.
그녀가 검을 휘둘러 금철방 무사들의 검을 일제히 잘라버린 것을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의 시선은 다른 여인에게로 이동하였다.
검은 면사를 쓰고 여리여리하기 짝이 없는 몸을 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기세가 전혀 안 느껴지는 것을 보면 아무런 무공도 익히지 않은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는 기회만을 엿보았다.
저 여자를 덮칠 기회를 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기회는 찾아 왔다.
검을 든 여인과 남자에게 다른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든 것이다.
그는 고민할 새도 없이 그대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뒤로 돌아간 다음 곧바로 목에 칼을 들이밀 심산이었다.
우드득
하지만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계획은 또한 같이 망가지게 되었다.
그는 천천히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곳은 자신의 다리였다.
어느새 가까이 온 여인이 그의 다리를 그대로 밟아 부러뜨린 것이다.
쿵
다리가 부러진 그의 동체는 땅바닥으로 떨궈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땅바닥에 누워 싸움을 관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금철방 최고의 실력자치고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다.
싸움은 그야말로 일방적이었다.
검을 든 여인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금철방의 무사들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갔고 또 다른 여인이 주먹을 휘두르자 무사들은 그대로 벽에 처박혀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응접실을 가득 채웠던 금철방의 무사들은 자신과 같이 땅바닥을 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비상식적인 광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삼은 꿈이라 치부하며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고작 세 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금철방의 무사들을 전멸시킬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멍
금철방주 철무득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처음 그들이 강짜 부릴 때만 하더라도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다 망해가는 당가따위가 금철방을 압박할 수 있을 리 없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멸하였다.
금철방이 자랑하는 최고의 전력들이 말이다.
그는 무력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실력 있는 무사들을 양성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영약과 무공비급을 비싼 값에 구입하였고 이름난 무림인들을 고용하였다.
지키지 못하는 돈 따위는 벌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십 년을 투자한 끝에 금철방은 전원 일류이상의 실력자들을 갖춘 무력집단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웬만한 중소문파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할 수 있었다.
돈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신념이 박살 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각이 채 되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 돈을 처발라가며 투자했던 금철방의 무사들이 단 반각 만에 전멸해버린 것이다.
너무 허탈해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의 최고의 역작이라 자부했던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말이다.
저벅 저벅
이내 금철방의 무사들을 모두 전멸시킨 남자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고작 이 정도로 전력으로 당가와 척을 질 생각을 한 건가?"
선우는 음울한 목소리로 철무득을 향해 말을 이었다.
고작 반 각이었다.
그의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시간은 말이다.
"고작 반 각이다."
그의 눈에는 분노조차 느끼지 않을 정도로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당가를 얕보았다면 이따위밖에 안 되는 전력으로 당가에게 덤벼들었겠는가
괘씸하였다.
무척이나 말이다.
"네놈이 자랑하는 무사들이 전멸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반 각이란 말이다!"
선우는 다시금 철무득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외침에 철무득은 괴롭다는 듯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를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말에 의해 그는 강제적으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백만 냥이다."
"뭐..뭣!?"
그 말을 들은 철무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에게 되물었다.
"만약 돈을 내지 않는다면 금철방을 멸문시켜버리겠다."
그의 말을 들은 철무득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멸문이라니 그게 무슨
"대체 무슨 명분으로 그리한단 말이오!"
철무득은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는 선우를 향해 소리쳤다.
"네놈들은 당가를 적으로 돌렸다! 명분은 그 정도면 충분해!"
선우는 그를 보며 언성을 높여 말하였다.
"그런 일을 벌였다간 천무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철무득은 나름의 항변을 하였다.
만약 그런 일을 벌였다간 무림의 정의를 수호한다는 천무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당가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천무맹은 공식적으로 당가의 비호를 선언하였다. 그런 그들이 한낱 산동성의 촌부지렁이들이 모여 만든 금철방 따위를 신경 쓸 것 같은가?"
맞는 말이다.
애초에 당가와 금철방은 입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당가가 비록 반쯤 망하긴 하였으나 천무맹주 이재원과 사돈 간이라는 사실을 변함이 없으며 이 십여 년 전 마교로부터 무림을 구한 영웅의 가문이라는 것 또한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천무맹에서 공식적인 비호를 선언하였는데 누가 그들을 지탄하겠는가
"이이익! 말도 안 되는 억지오! 어찌 칼을 한 번 들이밀었다고 사십 만냥이 백만 냥으로 뛴단 말이오! 당신보다 더 높은 자를 불러오시오! 내 그자와 협상하겠소"
그는 억울한 듯 언성을 높였다.
백 만 냥이라니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만약 그 돈을 전부 낸다면 금철방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 자명하였다.
안 그래도 당가와 계약을 파기하여 수입이 줄어들 판국이었다.
그런데 백만 냥까지 부담하게 된다면 금철방은 휘청거릴 것이 자명하였다.
그리고 고작 협상이나 하러 온 이가 어찌 그런 중대사를 결정할 권한이 있단 말인가?
그는 책임자를 부르라며 언성을 높였다.
말이 통하는 자가 필요하였다.
이런 무식한 무인은 말고 말이다.
"당가에서 가장 높은 자가 나인데, 대체 누굴 데려온다는 말인가?"
그의 처절한 외침을 들은 선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히 말을 받았다.
"............."
선우의 말을 들은 철무득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순간적인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그의 머리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가 알기로 현재 당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자는 단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된다.
어찌 그자가 산동성까지 몸소 행차하여 금철방을 압박한단 말인가
그는 격렬히 고개를 흔들고 또 흔들었다.
아닐 것이다.
아니 여야 한다.
만약 그가 예상한 인물이라면 금철방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 깊이 자리한 불안감이 그의 가슴을 콕 콕 찌르기 시작하였다.
철무득의 온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하였다.
"저..."
이내 그는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입을 떼었다.
".....가..주이십니까?"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당진철이다."
그의 물음에 선우는 담담히 답하였다.
그리고 그의 담담한 대답은 철무득을 절망에 빠뜨리기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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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무득의 머릿속에는 절망이라는 감정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반쯤 망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당가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웅의 가문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런 곳의 가주에게
그것도 정마대전의 영웅인 당진철에게 검을 들이민 것이다.
명분은 충분하였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지금 당장 독왕이 금철방을 멸문시킨다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는 식은땀을 쉴 새 없이 흘리기 시작하였다.
풀어야 한다.
어떻게든 그의 노기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철방은 망하고 말 것이다.
"아이고 가주님, 제가 가주님을 몰라뵙고 큰 실수를..."
철무득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비굴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되었다. 네놈이 어떤 인간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있었다면 분명 큰 창피를 당했을 테지."
선우는 그런 철무득의 말을 끊어버렸다.
너무 뻔한 인간이라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강자한테는 누구보다 약한 자이나 약자한테는 누구보다 강한 자였다.
인간 군상은 소설 속이나 현대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말 필요없다. 백만 냥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말이다. 만약 지급 못 할 시에는 금철방은 멸문이다."
선우는 노한 기색으로 철무득은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타협의 의지 따위는 전혀 없었다.
"가주! 그 금액을 전부 내어주면 금철방은 망하고 맙니다!"
철무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부 전멸하는 것 보단 낫지 않겠는가?"
선우는 알 바 아니라는 듯 차갑게 말을 받았다.
금철방이 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당가에게는 명분이 있었고 그걸 행할만한 무력 또한 있었다.
"사..사..사십 만냥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제발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필요없어."
"그런..!"
"오로지 백만 냥이다."
선우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먼저 손을 놓아버린 것은 금철방주였다.
그런 그에게 인정을 베풀 생각도 사정을 봐줄 생각은 없었다.
그저 행할 뿐이었다.
금철방주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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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객잔 별채
"히히히히"
요랑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눈앞에 놓인 수많은 음식이 그녀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리구이부터 시작하여 이름 모를 해산물들까지 수많은 진수성찬이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다.
"잘먹겠습니다!"
그냥 크게 외치고는 그대로 손을 뻗어 오리구이를 잡았다.
찌익
그리고는 다리를 찢어 입가에 넣었다.
훈연한 오리구이의 담백한 맛이 그녀의 입안에 퍼져나갔다.
"흐으으으응"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었다.
"그렇게 맛있냐?"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심드렁히 물었다.
"완전!"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피식 웃었다.
굶고 다니는 것도 아니건만 음식을 먹을 때면 요랑은 언제나 저리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녀가 현대로 간다면 먹방으로 수십억은 벌어들이리라
"선우도 좀 드세요."
그때였다.
옆에 있던 옥령이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선우에게 건네주었다.
"너는 안 먹어?"
"저는 선우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답니다."
선우의 물음에 옥령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세상에 어찌 이런 여자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우, 팔 떨어지겠어요."
그녀는 짐짓 팔이 떨리는 시늉을 하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어서 먹이고 싶은 그녀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리라
와압
으적 으적
선우는 그녀가 건네준 고기를 낼름 집어먹었다.
그리고 천천히 씹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준 고기라 그런지 맛이 배가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애정보다 더한 조미료는 없는 것이리라
"맛있어!"
그때였다.
어느새 상에 차려져 있는 음식의 반절 이상을 먹어치운 요랑이 소리쳤다.
아마 혀를 자극하는 맛 난 요리들에 감탄한 것이리라
"선우야! 우리 여기서 며칠만 더 머무르면 안 돼?"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청풍객잔은 근래 먹었던 음식점 중 가장 맛있는 곳이었다.
며칠은 묵고 또 묵으면서 이 맛을 음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돼, 당가로 돌아가야지."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부드러운 태도로 그녀에게 답하였다.
그녀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백 년 만년 제녕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힝.... 그럼 내일 가는거야?"
요랑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맛난 음식들을 포기하고 간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아닐거야."
요랑의 물음에 선우는 웃으며 답하였다.
"진짜?"
"아직 해결 안 된 일이 있거든."
"그게 뭔데?"
"그게 뭐냐면..."
쾅 쾅
그때였다.
누군가 별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선우는 별채 문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청풍 객잔주입니다."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객잔주인 듯싶었다.
"들어오게나."
끼이이익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객잔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슨 일인가?"
"아래층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별채에 머무르고 있는 분들을 꼭 뵙고 싶다고 하셔서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오게 되었습니다."
"내 금방 내려가리라."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객잔주는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가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갔다 올게."
선우는 두 여자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어디 가게?"
요랑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렇게 맛난 음식을 놔두고 어딜 간단 말인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거든."
선우는 그녀의 물음에 그대로 요랑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을 해결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