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152. 배상을 요구하다-2
"말도 안 되네!"
선우의 말을 들은 철무득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일년 동안 금철방에서 순익을 제외한 매출이 칠십 만 냥이 조금 안되었다.
그런데 사십 만 냥을 내놓으라니?
반절 이상을 내놓으란 소리가 아니던가?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이 없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내어준다고 하지 않았소?"
선우는 그런 금철방주를 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면서 돈이나 받고 떨어지라고 말 할땐 언제고 이제 와서 화를 낸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사십만 냥은 너무 많소! 십만 냥으로 합세!"
"사십 만 냥!"
"어떻게 십만 냥정도 밖에 안되는 위약금을 네 배나 올린단 말인가! 내 인심 쓰겠네! 십오만 냥으로 합세!"
"사십 만 냥!"
"이거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자로구먼! 명문가의 무인이라는 작자가 어찌 이리도 무도하게 군단 말인가!"
선우의 단호한 태도에 화가 난 금철문주는 더욱더 언성을 높였다.
뭐 이리 무도한 자가 있단 말인가?
그가 예상은 위약금은 기껏해야 십 만 냥 정도였다.
딱 그 정도가 당가제 무기로 팔아치운 수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도 해지의 경우 위약금을 네 배로 배상한다는 조약이 있긴 하였지만, 어찌 세상일이 계약대로 흘러가겠는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것이 계약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원제일세라고 불리우던 당가라면 몰라도 지금의 당가에게는 위약금을 전부 받아낼 만한 능력이 없었다.
본전인 십만 냥이라도 돌려주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무도한 자는 금철방의 크나큰 배려도 모르고 사십 만 냥이나 되는 거금을 부르는 것이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제시한 십오만 냥만으로도 난 당문에 대한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네만?"
철무득은 화를 억누르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협상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느낀 탓이었다.
"묻겠소 금철방주, 금년 당문과 체결한 계약 규모는 얼마나 되오?"
"십만 냥이오!"
"그렇다면 위약금은 그 네 배인 사십만 냥이 되는 것이 맞지 않소? 그런데 어찌 위약금을 물어내는 것을 거절한단 말이오?"
"서류상으로는 그렇지만 관례상으로는 네 배까지 물어내는 경우는 거의 없소이다."
관례상으로는 그렇다.
보통 계약의 당사자들은 계약이 어그러질 경우 그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지금은 여건상 계약이 어렵다 해도 나중은 또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다시는 안 볼 상대라면 여지를 마련해두기 위해 위약금을 빡빡하게 무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이라면 계약금만 돌려주거나 네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배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당가에서는 이런 관례를 무시한 채 네 배나 되는 위약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금철방과 척을 지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인 소리였다.
"그렇다면 다시금 묻겠소, 관례상 거래 중지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오?"
"............그렇지는 않소."
관례상 계약 해지에 관련돼서는 양자 간의 충분한 합의를 거친 후 최종 조율을 통해 해지하는 것이 맞았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구려, 금철방주께서는 당가와 계약을 해지할 땐 관례고 뭐고 싹 다 무시한 채 일방적인 통보만 했으면서 어찌 위약금을 무는 일에는 관례를 찾으시오?"
".........."
선우의 말을 들은 철무득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할 말을 찾았다.
"금철방주께서 필요할 때만 찾는 관례 따윈 필요 없소, 세상이 관례대로 행해진다면 어찌 돌아가겠소? 계약서에 적힌 대로 처리하리다."
선우는 그런 철무득을 보며 단호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빠드득
선우의 말을 들은 금철방주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물론 그의 말 중 틀린 말은 없었지만, 관례를 무시하는 처사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례를 무시한다는 것은 곧 금철방과 척을 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마어마한 분노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금철방이 무엇이란 말인가?
산동 곳곳에 퍼져있는 수많은 철방들의 연합체이자 산동에서 금력으로는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단체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금철방을 이제 망해서 육대세가로 조차 불리지 못하게 된 당가따위가 척을 진다고 선언한 것이다.
분노가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당가에 대한 열등감이 분노라는 불꽃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그는 예전부터 당가가 싫었다.
싫어도 미친 듯이 싫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금철방이 어떠한 노력을 해도 당가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일을 밤새워가며 만든 무기조차 당가제 양산품에 밀려버리는 현실을 마주한 금철방은 절망하였고 분노하였다.
무력과 금력 그리고 재력과 기술력까지 갖춘 당가를 이길 방도 따윈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교의 습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직계가 멸족 당한 것이다.
이제 그들을 지켜줄 무력이 부재한 것이다.
그러니 저런 뻗대는 태도 하나 하나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냉막하게 생긴 중년인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가의 무력이 부재한 이상
그들에게 겁먹을 필요 따윈 없는 것이다.
"거절하겠소!"
이내 생각을 마친 철무득은 단호한 음색으로 소리쳤다.
"당가를 선택하여야 할 것이오, 이대로 십오만 냥을 받고 물러날 것인지 아니면 과욕을 부리다 십오만 냥조차 얻지 못하고 쫓겨날 것인지 말이오!"
".........."
선우는 억지를 부리는 철무득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금철방주의 반응을 보니 당가가 무시당하긴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산동성 지방에서 돈놀이나 하는 작자에게 무시나 당하고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본보기를 보여야 할 대상은 황보세가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선택하겠소."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당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사십만 냥을 받아내겠소.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오."
선우는 철무득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에는 결연의 의지가 서려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을 받은 철무득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하게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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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갈 때까지 가자는 소리오?"
철무득은 분노의 찬 음색으로 선우를 향해 말하였다.
그의 주장은 일방적인 협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이는 금철방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것과 마찬가지였다.
"갈 때까지 간 것은 금철방주요. 어찌 적법한 위약금 요구를 거절한단 말이오!"
"말했지 않소, 관례상 그렇다고!"
"나 또한 말하지 않았소, 관례 따윈 필요 없다고."
금철방주의 억지에 선우는 냉막한 태도를 고수하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당신과는 말이 안 통하오! 더 높은 사람을 데려오시오!"
할 말이 궁해진 금철방주는 그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만약 어느정도 생각이 박힌 인간이라면 금철방이 산동에 끼치는 영향력을 충분히 인지할 것이고 이처럼 네 배나 되는 위약금을 요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두 저 어리숙한 무인의 그릇된 판단일 것이다.
"당장 나가시오!"
철무득은 선우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철무득의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선우는 그저 가만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정녕 이렇게 나오겠다는 소리오?"
그 태도를 본 철무득은 정색을 하며 선우에게 물었다.
"말하지 않았소, 사십 만 냥을 받아가겠다고 말이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손님 가신단다! 안내해주거라!"
선우의 단호한 말을 들은 철무득은 재빨리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래도 관을 봐야 정신 차릴 인간인 듯 싶었다.
눈앞의 남자가 당가의 무인이긴 하지만 직계혈족이 대부분 죽어버린 당가에 이렇다 할 고수가 있을 리 만무하였다.
금철방의 호위무사들로도 충분히 쫓아낼 수 있으리라
벌컥
그때였다.
응접실 문이 열리고 금철방의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는 기세를 품고 있었다.
저벅 저벅
"나가시지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들 천천히 선우가 있는 쪽으로 걸어 들어간 후 걸쭉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싫다면?"
선우는 그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희는 손님께 무례를 범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부디 무례를 범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금철방의 호위무사는 무척이나 정중하면서도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저 자신감을 만들었으리라
"나야말로 부탁하겠네, 부디 자네들을 바닥에 처박히게 만드는 무례를 범하지 않게 해주게나."
선우는 짐짓 정색하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는 진심이었다.
저리 있는 한껏 자신에 차 있는 상태에서 일제히 땅바닥에 고꾸라지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그들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다.
"뭐라!"
물론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들에게는 덧 없는 모욕처럼 느껴졌지만 말이다.
"말로 해서는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손님이군!"
가장 앞에 선 자가 선우에게 손을 뻗었다.
그대로 잡아챈 후 던져버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선우를 향해 뻗은 그의 손을 허공에 있을 뿐이었다.
"어?"
그리고 시야가 반전되었다.
세상이 거꾸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순간은 말이다.
콰쾅!
금철문의 호위무사는 그대로 땅바닥에 고꾸라져 기절해버렸다.
"이자식!"
"감히!"
창
창
동료가 눈 깜짝할 새 땅바닥에 고꾸라진 것을 확인한 금철방의 무사들은 일제히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쇄액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들이 선우에게 쏟아졌다.
챙
후두두둑
하지만 그들의 검은 선우에게 닿기도 전에
모두 잘려 땅바닥에 떨궈졌다.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멀쩡한 검들이 갑자기 왜 잘려나간단 말인가?
이내 그들은 고개를 돌려 검을 잘라버린 원흉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하얀 백의에 면사를 쓴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 손에는 빛살처럼 빛나는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들을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검이 저 여인에 의해 모두 잘려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금철방에서 만든 검은 형편 없나 보군요. 아녀자의 검조차 감당치 못하니 말이죠."
옥령의 훈풍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울려퍼졌다.
물론 그 내용은 겨울의 냉풍처럼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사랑해 마지 않는 정인에게 어찌 칼을 들이민다는 말인가?
평소 고운 말밖에 하지 않는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독설이 나왔다.
"이이익!"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철무득은 얼굴을 더욱 붉혔다.
금철방이 자랑하는 검이 한낱 계집 따위에게 무시를 당한 것이다.
"끄아아아악! 뭣들하는 것이냐! 무사들을 더 불러와라! 저자들을 제압하란 말이다!"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그의 비명 지르듯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내쫓는다는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하였다.
장인으로서 품고 왔던 열등감이 그녀의 발언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그의 외침을 들은 무사들은 재빨리 몸을 돌려 지원군을 요청하러 달려갔다.
"방주님의 명이다!"
"침입자다!"
"모든 무사들을 응접실로 모여라!"
"방주님께서 습격당하셨다!"
그 소리를 들은 수많은 금철방의 무사들이 일제히 응접실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우르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응접실 내부에는 수많은 무사가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험악하기 그지없었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또한, 옆구리에 찬 병장기가 위협을 더 해주었다.
"자아 ,이제 어쩔 셈이냐! 아직도 사십만 냥을 받을 셈이더냐!"
수많은 금철방의 무사들을 본 철무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자라 하더라도 이 많은 인원들을 감당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금철방의 무사들은 전원 일류이상의 실력자들이었다.
이 정도면 왠만한 중소문파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상대는 고작 세 명이었다.
그것도 아녀자를 포함한 세 명 말이다.
개인이 단체를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이제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빌 것이리라
"요랑아"
그때였다.
금철방주의 말을 들은 선우는 요랑을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왜에에?"
"덤벼드는 놈이 있으면 패버려."
"진짜?"
"응, 대신 살기를 보인 놈만 죽여."
선우는 사족을 붙였다.
이렇게라도 힘조절을 시키지 않으면 대량학살이 일어날 것이다.
"걱정마, 걱정마!"
요랑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음양마에게 처맞으면서 힘 조절 하는 법을 배운 그녀였다.
사람을 죽지 않게 제압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자신에 찬 요랑은 앙증맞은 주먹을 꼬옥 쥐었다.
그녀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본질은 자신보다 약한 생물을 가지고 놀다 죽이는 포식자에 가까웠다.
그동안 항상 자신보다 강한 상대만 만나왔기에 그런 성향이 줄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요랑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눈앞에 있는 수많은 무사가 먹음직스러운 양 떼처럼 보였기 때문이디.
요랑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