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151. 배상을 요구하다-1
산동성 제녕
"선우야,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요랑은 선우의 옷을 부여잡으며 말을 걸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 담겨있었다.
"알아서 뭐하게."
선우는 그런 요랑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왜에에에 가르쳐줘어어"
요랑은 선우의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집요하게 묻기 시작하였다.
팟
선우는 그런 요랑의 손길을 그대로 쳐내버렸다.
"아야!"
그 손길이 너무 강했는지 요랑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냥 따라와!"
선우는 그런 요랑을 보며 신경질을 내었다.
그냥 따라오면 되는 것을 뭐 그리 따박따박 물어본단 말인가?
평소처럼 여유가 있던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설명해주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가히 그녀의 물음에 대답해줄 시간조차 아까웠다.
선우의 짜증 섞인 태도에 본 요랑은 풀이 죽었다.
제 딴에는 너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의 마음을 풀어줄 요량이었건만 아무래도 선우의 심기를 건드린 듯했다.
"선우"
그때였다.
부드러운 옥령의 목소리가 선우의 귓가를 들려왔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옥령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싸늘히 굳어있었다.
"저희가 비록 선우를 따라가는 처지긴 하지만 엄연히 선우의 동행이에요. 그런데 그런 퉁명스러운 태도는 요랑 소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싸늘한 표정을 고수하며 말을 이었다.
부드러운 인상을 유지하던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급한 것은 알아요. 하지만 적어도 같이 가는 동행으로서 목적지 정도는 물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저 질문했을 뿐인데 그렇게 날 선 태도를 취해 상처를 줄 필요가 있었을까요?"
".........."
"분이 많이 쌓인 것은 알아요. 하지만 그 분을 남한테 풀어내선 안 돼요."
옥령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짐짓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날선 태도로 요랑을 대하였다.
그저 질문했을 뿐 이것만 마치 그녀가 귀찮다는 듯한 취급을 한 것이다.
"미안해요. 옥령, 제가 아무래도 예민했나 봐요."
잘못을 눈치챈 선우는 사과를 하였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가 그녀들에게 상처를 준듯했기 때문이었다.
"사과는 요랑 소저한테 하셔야죠."
선우의 사과에 옥령은 사과의 주체를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다.
"요랑아, 미안해."
선우는 요랑에게 몸을 돌린 후 고개를 숙여 사과하였다.
"용서해줄게!"
요랑은 그런 선우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었다.
선우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속에 품고 있는 화를 다른 이에게 표출되면 안되 것만 자신도 모르게 만만한 요랑에게 표출하고 있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사과를 받아들인 요랑은 다시금 선우에게 물었다.
선우는 그녀의 끈질김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런 그녀에게 짜증을 부린 자신이 바보 같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우리 금철방(金鐵幇)으로 갈거야."
"금철방?"
요랑은 모르겠다는 듯 선우에게 물었다.
뜬금없이 그곳으로는 왜 간다는 말인가?
"그곳을 왜 가는 거죠?"
선우의 말은 들은 옥령은 다시금 되물었다.
그는 분명 황보강을 죽여 반면교사 삼겠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어찌 황보세가가 아닌 금철방으로 자리를 옮긴단 말인가?
그런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눈을 반짝였다.
"명분을 만들어야 하거든."
"명분이라면?"
"천왕신권과 독왕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이야."
선우의 눈에 맺힌 빛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요랑과 옥령은 그런 선우를 모르겠다는 듯 쳐다볼 뿐이었다.
*******
금철방(金鐵幇)
산동성은 온난한 기후와 넓은 평야 지대가 위치해 있어 인구가 많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인구가 많은 만큼 무림세가들도 많았는데 특히 협을 숭상하는 정파의 협객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 또한 산동성이었다.
그리고 정마대전 이후 산동성 제남에 천무맹이라는 거대한 무림단체가 들어서게 되면서 무림인들은 더욱 산동으로 모여들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무림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림인들이 많은 산동성에서 가장 성업을 이루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혹자는 말한다.
집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무림인들에게는 객잔이야 말로 가장 성업을 이루는 장소라고 말이다.
또 혹자는 말한다.
호탕한 무림인들은 술과 미녀를 좋아하니 술과 기녀가 있는 주루야 말로 가장 성업을 이루는 장소라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 정답이 아니었다.
무림인들로 인해 성행을 이루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님 철방이었다.
무림인들이 많은 만큼 그들은 산동성에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크고 작은 싸움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이 일어나는 과정에서는 무기가 부러지고 잃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무림인은 철방을 찾아 자신만의 무기를 구매하였다.
산동성에 위치한 객잔이나 주루 또한 벌어들이는 수입이 어마어마하다고는 하지만 철방에 비하면 손색 있는 수준이었다.
그만큼 산동성에서 철방은 돈을 갈퀴로 쓸어담는다는 표현을 하여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여 들었다.
그리고 이 수많은 철방들이 모여 만들어진 단체가 있었으니 세인들은 그들을 금철방(金鐵幇)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무림인들에게 제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핍박받던 철방들이 이권 보호를 위해 하나둘 모여들어 만들어진 작은 단체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산동성에 존재하는 모든 철방들이 금철방에 가입하면서 그들은 무림세가 못지않은 권력을 쥐게 되었다.
산동성에서 가장 큰돈을 쥐고 있는 철방들의 단체였다.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할 리 만무하였다.
만약 금철방에 속한 철방이 무림인에게 핍박을 받는다면 금철방은 모든 재력을 이용하여 그 무림인을 단죄하였으며 무림세가에서 외압이 들어올 때 단체로 일어서서 맞서길 서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가격담합과 물량 조절을 통해 병장기의 가격을 조율하면서 산동성에 있는 병장기 유통을 통제하였다.
이권 보호를 위해 모였던 조그마한 단체가 거대한 정치적 조직으로 성장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들의 눈 밖에 난다면 산동성에서 활동하는 것을 포기하여야 하리라
그리고 그런 어마어마한 단체의 지도자인 금철방의 방주 철무득은 지금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하였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손님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당가에서 오셨단 말씀입니까?"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를 찾아온 자들은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인들이었다.
남자는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었고 두 명의 여인을 면사를 쓰고 있었기에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방주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먼 길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의 물음에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말을 받았다.
"저희 거래 중지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충분히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그에 따른 위약금 또한 지급할 용의가 있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심드렁한 태도로 철무득은 말을 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 자체가 무척이나 귀찮고 마음에 안 들었다.
이미 다 끝난 일을 두고 뭣 하러 여기까지 찾아온단 말인가?
금철방은 이미 당가를 손에서 놓기로 하였고 번복할 용의가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말이다.
"이유를 알 수 있겠소?"
철무득의 예의 없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중년인은 정중한 태도로 다시금 물었다.
"별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저 금철방 입장에서는 당가의 병장기가 필요 없어진 것이지요."
"흐음"
그의 태도를 본 냉막한 중년인, 선우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선우는 당진철의 모습으로 금철방을 방문하였다.
금철방주의 기를 죽일 요량으로 말이다.
다행히 당가에서 왔다는 전언을 전해들은 것인지 곧바로 금철방주와 대담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금철방주는 당가주의 얼굴을 모르는 듯하였다.
그는 기가 죽긴커녕 무척이나 시건방진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아무리 당가가 위세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일개 철방의 방주에 가지기에는 무척이나 거만한 태도였다.
선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방주의 태도를 보건대 아무래도 금철방은 외압에 의해 거래를 중지시킨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재고해줄 수는 없소? 만약 다른 외압이 들어오는 것이라면 당가가 그대들의 방패가 되어드리리다."
하지만 선우는 혹시 몰라 다시금 제안하였다.
태도는 저리 거만하게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황보세가가 두려워 저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풋"
하지만 선우의 말을 들은 철무득은 비웃음을 쳤다.
"이보게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 들으시게나."
철무득은 선우를 바라보며 존대를 하던 말투를 편히 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 눈앞에 있는 당가의 무인을 얕본다는 증거이리라
철무득은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이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한 무인에게 금철방이 어떤 곳이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금철방은 말일세, 일반적인 철방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네, 산동에 있는 모든 철방들의 연합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그 어떤 자들이 금철방에게 외압을 가한단 말인가? 천무맹도! 황보세가도! 그 어떤 누구도! 우리에게 압력을 가할 수 없다네. 우린 그만한 금력이 있고 기술력이 있으니 말일세."
철무득은 호언장담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그의 표정은 그 대단하다는 당가의 무인 앞에서 당당히 맞선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서린 것이리라
"당가와 거래를 중지한 것은 우리의 뜻이라네, 물론 황보세가의 제의가 있긴 하였지만 선택한 것은 우리란 말일세."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신 것이오?"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에게 되물었다.
당가의 병장기는 진열대에 올려놓는 것만으로 완판이 될 정도로 수요가 높은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당가와 선을 긋는 그들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가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
선우의 물음에 금철방주는 당연하다는 것을 묻냐는 듯 그에게 답하였다.
일반적인 철방들에게는 당가처럼 질 좋은 병장기를 다량으로 만들 기술력이 없었다.
당가의 질 좋고 값싼 병장기로 인해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무인들은 자연히 철방제 제품은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고 점점 철방제 병장기는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당가의 병장기를 받아 파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당가에서 가격을 올리거나 공급을 중단할 경우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말과 같았다.
수십년간 기술을 갈고 닦고 연마한 장인들 차린 철방이 당가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금철방은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방도가 없었다.
당가는 중원제일세가라고 불릴 정도로 금력부터 무력까지 뭐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이 기술력까지 갖추니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병장기 매입을 최대한 제한하며 철방제 제품을 호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 당가가 마교의 습격을 받았다.
철무득은 쾌재를 불렀다.
그들과 오랜 거래를 유지하긴 했지만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차였다.
그런 그들이 중원제일세라는 명성을 잃게 되었는데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리고 금철방은 기회를 엿보았다.
당가와 거래를 끊을 만한 기회를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회가 찾아왔다.
황보세가가 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것이다.
만약 당가와 거래 중지를 한다면 당가의 기술력을 빼 온 후 공유해주겠다는 제안을 말이다.
철무득은 그들의 제안을 흔쾌히 허락하였다.
눈에 가시 같은 당가와 거래중지는 물론 그들의 기술까지 얻을 기회였다.
이런 천금과 같은 기회를 놓칠 리 만무하였다.
결국 금철방은 오랜 거래처였던 당가와의 의리를 저버리고 돌아서게 되었다.
외압이 아닌 자의로 말이다.
그런 그에게 외압이 있느냐고 물으니 코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동안 당가는 상도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네, 본인들 배만 채울 줄 알지, 다른 상인들의 사정은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는 소리지."
철무득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당가는 분명 질 좋은 병장기를 값싸게 제공하지 않소?"
"그게 문제라네, 질 좋은 병장기를 값싸게 제공하니 철방제 물건들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오! 경쟁력이 떨어지면 철방 쪽에서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를 한다든가 가격을 낮추면 되는 일 아니오?"
"쯧쯧 , 자네야말로 뭘 모르는구먼, 당가에서 병장기 제조기술을 독점하고 있는데 어찌 개발한단 말인가?"
"그건 철방에서 연구해야 할 일 아닙니까? 당가 또한 수 백 년 간 연구 끝에 개발해낸 신기술을 어찌 철방에 공유한다는 말이오?"
선우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당가의 병장기 제조술은 수백년 간 연구 끝에 만들어낸 그들만의 정수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신기술을 어찌 다른 이들과 나눈다는 말인가?
"그 점이 바로 상도덕이 없다는 걸세, 어찌 본인들만 살겠다고 기술을 독점한단 말인가? 명색의 정파라는 작자들이 말이야."
선우의 말을 들은 금철방주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다시금 거래할 생각이 전혀 없다네. 위약금은 챙겨줄 터이니 알아서 나가게나."
철무득은 무척이나 무례한 태도로 대화를 중단해버렸다.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리라
"후우"
선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다시금 관계를 회복하기에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소."
이내 선우는 금철방주 철무득을 보며 입을 열었다.
"대신 위약금을 챙기겠소."
"흥, 원하시는 금액을 부르시게나. 금액이 얼마가 되었든 내 흔쾌히 내어줄 터이니"
다 포기한 듯한 선우의 태도에 철무득은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이 찰거머리 같은 당가놈이 물러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십만 냥."
선우는 그런 철무득을 보며 단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뭐..뭐라!?"
선우가 내뱉은 금액을 들은 철무득은 놀라 되물었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십만 냥!"
그의 물음에 선우는 철무득을 노려보며 다시금 소리쳤다.
마치 타협의 의지 따윈 전혀 없는 듯한 단호한 태도였다.
선우의 말을 들은 철무득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서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