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150. 황보세가와 척을 지다.
황보세가
산동성 제녕에 위치한 황보세가는 산동성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지역의 패자였다.
물론 산동성 제남에 천무맹이라는 정파 최대 전력을 갖춘 집단이 들어서면서 영향력이 줄어들긴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보세가는 산동성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황보세가는 정마대전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바로 정마대전의 영웅이자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강의 존재 덕분이었다.
천왕신권(天王神拳) 황보강
정마대전에서 수많은 마인들의 골통을 부숴버린 황보세가 최강의 무인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누구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 골통을 부숴버리는 그의 모습은 많은 무인들의 마음을 울렸고 곧이어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가 살아있는 한 황보세가에는 위기 따윈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마대전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황보세가는 승승장구를 하였다.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하였고 상인들 너도나도 황보세가에게 투자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그리고 황보강은 크나큰 착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무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사업수완마저 뛰어나다는 크나큰 착각을 말이다.
사실 지금까지 성공한 사업들은 표국과 같은 운송업들로 세가의 위신과 무력이 크게 작용하는 사업들이었다.
때문에 정마대전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황보세가는 비교적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있었고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과신하게 된 황보강은 무리한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잘나가던 운송업은 더욱더 사업을 확장하였고 요식업, 유통업, 유흥업까지 손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결과는 망(亡)이었다.
새롭게 손대었던 사업들은 물론 잘나가던 운송업까지 거하게 말아먹게 되었다.
그리고 황보강은 깨달았다.
자신이 사업적인 소질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을 얻는 인생의 수업료는 너무나 고달팠다.
황보세가는 재정은 급격히 나빠지더니 이내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황보강은 어떻게든 세가를 살리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천왕신권이라는 체면도 잃은 채 여기저기 허리를 숙여가며 돈을 빌리러 다녔다.
심지어 은근 경쟁 상대로 여기던 당가까지 찾아간 후 독왕에게 무릎까지 꿇을 정도였으니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안 봐도 훤한 일이리라
결국 세가가 파산하는 것을 어찌어찌 막긴하였지만 천왕신권의 크나큰 자존심에는 엄청난 금이 가게 되었고 수치심에 물든 황보강은 나이조차 잊은 채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황보강의 자존심까지 굽힌 덕택인지 황보세가의 재정은 어느 정도 안정화할 수 있었고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세가가 안정화 되던 어느 날
다시금 황보세가는 위기를 맞게 된다.
황보강의 사업병이 도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가 이번에 꽂혀버린 것은 서역행 무역 사업이었다.
투자 대비 어마어마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홀라당 넘어가게 되버린 것이다.
물론 황보강 또한 아주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기에 서역행 무역 사업이 얼마나 위험 부담이 큰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만금전장이 주도했던 서역행 사업에 투자했던 청성파가 크게 낭패를 본 이력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황보강은 걱정하지 않았다.
서역으로 떠나는 상단에 황보세가의 정예 고수들을 딸려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황보강은 서역으로 떠나는 상단에 황보세가의 장로 셋과 황보 세가의 타격부대 하나를 딸려보냈다.
과거 본파제자 몇 명과 속가제자들만 파견했던 청성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전력이었다.
그는 자신하였다.
이번 서역행 사업으로 황보세가가 저 위로 비상할 것을 말이다.
그렇게 서역행 사업을 성공만을 고대하던 어느 날
황보강은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서역으로 떠났던 상단들이 타국 군대에 의해 전멸당했다는 소식이었다.
황보강은 말도 안 된다는 일이라면 길길이 날뛰었다.
마적 떼도 아니고 군대가 어찌 상단들을 죽인단 말인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상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황보세가에서 딸려 보낸 장로들이 문제였다.
서역에 도착한 후 타국의 귀족들과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황보세가의 장로들과 선민의식으로 똘똥 뭉친 귀족들이 맞부딪히게 된 것이다.
결국, 타국의 귀족들은 장로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 일을 빌미로 타국의 군대는 상단을 전멸시켜버렸다.
무역품들을 전부 압수당한 것은 덤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황보강은 입을 턱 하니 벌렸다.
딸려 보낸 황보세가의 장로들이 대형사고를 친 것이다.
상단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황보세가를 드나들었다.
피해액을 보상하라는 내용이 주요하였다.
황보강은 절망하였다.
안 그래도 세가의 운용 자금 중 절반 이상을 투자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피해 보상금까지 내놓으라 하니 골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그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금 백방으로 도움을 청하기 시작하였다.
오대세가는 물론 시집간 딸에게조차 손을 벌리는 수모를 겪었다.
다시금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가문의 적자인 황보악이 사고를 쳤다.
만금전장에서 삼천 냥이나 되는 전표를 가문의 이름으로 빌린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황보강은 황보악을 곤죽이 될 때까지 패버렸다.
이유 따윈 묻지도 않았다.
그저 주먹을 들고 후려칠 뿐이었다.
그런 아비가 무서웠는지 황보악은 돈을 빌린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전해 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이제 같은 명문가라고 칭하기 부끄러운 당가가 황보세가의 적자에게 돈을 뜯어낸 것이다.
그는 당장에라도 당가로 찾아가 독왕과 생사결까지 벌일 각오까지 하였다.
그러다 문뜩 머리가 탁 트이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당가를 이용하여 황보세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말이다.
황보세가와 당가가 다른 점은 독점 사업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신의 무력만을 휘두를 줄만 아는 황보세가와는 달리 당가의 경우 병장기와 약재 제조술이 대체 인력이 없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당가는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고 실패한다 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일이 수틀려질 경우 사업체를 정리하고 주력 사업에 몰두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만약 황보세가가 당가의 독점 사업을 흡수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위기의 극복은 물론 중원제일세로서 당당히 이름을 날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상만 하여도 기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을 마친 황보강은 재빨리 다른 오대세가의 가주들을 불러모았다.
같은 피해를 입은 그들은 황보세가와 뜻을 같이하는 조력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을 불러모은 후 황보강은 은밀히 속내를 비쳤다.
그리고 제안을 하였다.
만약 당가의 사업체를 먹기만 한다면 일정 지분을 약속해주기로 말이다.
다른 오대세가들은 황보세가의 의견에 얼씨구나 하면서 동의하였다.
당가의 사업체가 탐나기는 하나 당가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천무맹의 눈치 보였기에 내심 포기하던 차에 황보세가가 총대를 매준다니 어찌 싫을 수 있겠는가?
거기다 일정 지분까지 보장해준다니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황보강의 뜻대로 움직여 주었고 당가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지역 내에 있는 모든 철방과 약방에게 고하였다.
당가와 거래를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반발하였지만, 칼 찬 세가의 무사들이 몇 번 들락날락하니 바로 꼬리를 내리고 당가에게 거래중지 요청을 하였다.
만약 당가가 건재한 상태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마교의 습격으로 인해 세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당가였다.
그들은 저 멀리 사천에 있는 당가를 믿기보단 눈앞에 있는 무력에 굴복을 택하였고 당가에게 거래중지를 통보하였다.
그렇게 오대세가가 있는 모든 지역에서 일제히 당가와의 거래 중지를 통보하게 되었고 당가는 거래처의 절반을 잃어버리는 타격을 받게 되었다.
모든 것이 황보강의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다.
"크하하하하하하"
황보강은 미친 듯 이 웃음을 터트렸다.
유쾌하였다.
유쾌해도 너무 유쾌하였다.
당가의 화해 서신에 불가(不可)라는 답장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당가에서 선물과 함께 서신 한 장이 날아들었다.
사천에서 만들어진다는 촉금(緋緞)이라는 귀한 비단과 다시금 화해를 청하는 서신이었다.
선물을 확인한 황보강은 입가의 웃음이 떠나갈 줄 몰랐다.
어찌 웃음을 멈출 수 있겠는가?
중원제일세가라고 불리우던 당가가
정마대전의 일등공신이라 칭송받던 당가가
황보세가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극도의 쾌감을 느꼈다.
결국 천왕신권이 독왕을 이긴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그의 웃음이 대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총관인 황보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신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이 지랄 맞은 가주가 만족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보게 총관!"
황보강이 총관인 황보갑을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가주님."
그의 물음에 황보갑은 재빨리 답하였다.
"지금 당가가 보낸 서신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아는가?
황보강은 만연한 웃음을 간직한 채 말을 이었다.
황보강은 이 기쁜 사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당가의 항복선언이라네, 크하하하하하 그 콧대 높은 당가가 황보세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말일세!"
황보강은 서신을 황보갑에게 건넨 뒤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황보갑은 황보강이 건네준 서신을 받아 읽었다.
서신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선물을 받고 마음 풀어달라는 간곡한 청이 담긴 내용이었다.
`쯧`
서신을 확인한 황보갑은 혀를 찼다.
가주라는 작자가 얼마나 열등감에 찌들어 있으면 겨우 이런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하지만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간 가주의 돌덩이같은 주먹이 세례가 쏟아질 것이 분명하였다.
황보갑은 화색을 띤 얼굴로 황보강을 바라보았다.
"경하드립니다. 가주님"
황보갑은 고개를 크게 숙인 후 축하의 말을 건넸다.
저리 기분 좋아하는데 구태여 잡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서역행 무역사업이 실패한 이후 웃을 일이 없던 가주가 아니었던가
오히려 이런 식으로라도 웃는다면 다행이리라
"총관! 어서 당가에게 서신을 보내게!"
"뭐라고 보낼까요?"
"그렇게 용서를 받고 싶다면 가주가 직접 와서 무릎을 꿇으라고 말일세."
"네!?"
그 말을 들은 황보갑은 화들짝 놀랐다.
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아무리 당가의 세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상대는 독왕이었다.
정마대전의 영웅이자 무림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 자라는 소리였다.
그런 자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요청하라니!?
대놓고 싸우자고 덤비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말려야 한다.
"가주님, 고정해주십시오. 아무리 당가가 세가 줄었다고는 하나 그런 모욕을 받고 그냥 넘길 자들은 아닙니다!"
"흥, 상관없다. 난 천왕신권 황보강이다. 그딴 독물 새끼들을 두려워할 성 싶은가!"
총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황보강은 자신 넘치는 표정으로 성토하였다.
그는 자신 있었다.
독왕이 오든
당가 전체가 오든
전부 쓸어버릴 자신이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이걸 빌미로 쳐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뒷공작 할 필요도 없이 당가를 집어삼킬 수 있는 명분이 아니던가
황보갑은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도 황보가의 핏줄 이것만 뇌가 발바닥에 달린 듯 행동하는 황보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실상이 드러나면 여론 적으로 불리해지것은 오대세가를 비롯한 명문정파이거늘 어찌 이리도 생각 없이 군단 말인가?
아무래도 그득 찬 욕심이 그의 눈을 가린 듯하였다.
"가주, 아무리 그래도 다시 한 번 재고하시는 것이...."
황보갑은 말끝을 흐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를 말리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갈(喝)! 어찌 황보가의 핏줄이 이리도 맥아리가 없단 말인가, 싸움이 걸리면 맞설 줄 알아야지, 어찌 그리 계집애 마냥 말로 해결하려고 든단 말인가!"
하지만 오히려 황보강은 그런 황보갑을 나무랐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보내라! 독왕 당진철이 직접 무릎을 꿇지 않는 이상 용서는 없다고 말이야!"
황보강은 완강한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였다.
황보갑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이 완고한 가주는 생각을 바꿀 의지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황보갑은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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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가
당서윤은 멍한 표정으로 서류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퀭하였고 눈가에는 길게 그림자가 져 있었다.
첫 눈에 봐도 밤을 새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몰골이었다.
"아가씨, 가서 쉬시는 게 어때요?"
옆에 있던 당대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당서윤이 밤을 새운 지 벌써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초절정에 이른 무인이라고는 하지만 더 반복되면 과로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서류만 작업하고 자러 갈게요."
당서윤은 퀭한 얼굴로 답하였다.
그녀라고 밤새 일을 하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이번에 일제히 거래중지를 요청한 거래처에 대한 위약금 계산과 수수료를 정리하려면 손이 부족하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금 서류를 집었다.
그때였다.
"아가씨, 황보세가로 부터 서신이 왔습니다!"
금적화가 서신 한 장을 쥔 채 그녀에게 달려왔다.
"내용은 확인해 보셨나요?"
당서윤은 서신을 건네주는 금적화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금적화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당서윤은 의아함이 들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금적화가 이리도 심각한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서신을 건네받은 당서윤은 찬찬히 서신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퀭했던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얼굴 붉게 상기되기 시작하였다.
찌익 찌익
그녀는 서신을 그대로 찢어버렸다.
"황보세가는"
그리고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부로 저희의 적입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활화산 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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