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148. 착각을 하다
도칠은 직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사실대로 말한다면 자신은 죽고 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저...기...위쪽 최상층에 있는 집무실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도칠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거짓을 내뱉었다.
물론 해원루 최상층에는 지부장인 삼척의 집무실이었지만 알게 뭔가
자신부터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 그래?"
도칠의 대답을 들은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폴짝 뛰어올라 도칠이 있는 난간에 착지하였다.
터턱
"허억"
갑작스레 다가온 그의 모습에 당황한 도칠은 짧은 비명성을 내질렀다.
"근데 진짜야?"
선우는 의심스러운 듯 그에게 물었다.
그의 경험상 하오문도 새끼들은 처맞기 전까지는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불대는 믿지 못할 인간들이었다.
그런데 맞기도 전에 술술 불어버리니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말입니다! 소인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선우의 의심에 찬 시선에 도칠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욕심이 그득하다고는 하나 그는 하오문 요성지부의 부지부장이었다.
그 짬밥이 어딜 가는 것은 아닌지
그의 거짓말에는 영혼이 담겨 있었다.
진짜 억울하다는 듯한 말투와 표정 그리고 눈빛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였다.
"지랄하네."
물론 선우의 입장에서는 같잖게 보였지만 말이다.
선우는 그대로 도칠에 머리채를 잡았다.
꽈악
"으윽 왜..이러십니까 공자."
"네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할 거 아니야?"
선우는 애초에 하오문도를 믿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도 돈만 쥐여주면 제 마누라도 팔아먹을 놈들이라고 묘사하지 않았던가
그럼 놈들을 말 몇 마디에 믿을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망할`
그의 말을 들은 도칠은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그의 시선을 지부장에게 돌린 뒤 곧바로 도망칠 요량이었건만 아무래도 실패한 듯싶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절망적인 상황에 마주하게 된 그는 혼란스러워졌다.
상황을 타개할만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지부장 앞에 끌려들어 간다면 자신이 도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그렇다면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아!`
고심하던 도칠은 이내 꼼수를 생각해내었다.
"공자!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뭐?"
선우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딱봐도 침입자인 자신을 안내하겠다고 나서니 수상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데리고 가실 것이 아닙니까? 그럴 바엔 제 발로 직접 걸어서 안내하는 것이 더욱 낫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한 차례 생각에 빠졌다.
확실히 머리채나 잡고 질질 끌고 가는 것보단 제 발로 걸어가게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시적이긴 하더라도 냄새 풀풀 나는 아저씨와 밀착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도 하였고 그가 뭔 짓을 하더라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있었다.
선우는 천천히 그의 머리채를 놔주었다.
"안내해."
"넵!"
도칠은 재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는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생각할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걸어가면서 고심하고 또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는 쾌재를 불렀다.
생각해보니 최상층 쪽에는 조칠이 있었다.
삼척검(三尺劍) 조칠
그는 요성에서도 이름 난 고수였다.
그의 별호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하나는 삼척 길이의 검을 귀신같이 다룬다 하여 삼척검(三尺劍)이라 불렸고 또 하나는 지부장인 삼척(森隻)을 지키는 그림자라 삼척검(森隻劍)이라 불리는 자였다.
지부장인 삼척의 호위무사면서 일대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알려진 요성지부 최고의 고수인 것이다.
그렇게 강한 조칠이라면 이 악마 같은 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크흐흐흐`
도칠은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넌 뒤졌어, 이새끼야.`
도칠은 걸음걸이를 더욱 빨리하여 최상층으로 안내하기 시작하였다.
조칠과 이자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터벅 터벅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척
그들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이내 막아선 자의 정체를 확인한 도칠은 화색이 피어났다.
조칠이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조칠은 그들을 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믿음직한지 도칠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졌다.
도칠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조칠의 뒤편에 섰다.
"저놈은 하오문을 습격한 습격자다!"
그리고 선우를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래층에 있던 대다수 하오문도들 대다수가 저놈에게 당했단 말이다!"
도칠은 언성을 높여가며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성토하였다.
스르릉
도칠의 다급한 말을 들은 조칠은 이내 삼척의 검을 빼들었다.
그에게 할당된 임무는 삼척의 호위였지만 그 또한 하오문도였다.
하오문을 침입한 자를 가만히 냅둘리 만무하였다.
"네놈 침입자인가?"
그는 진중한 음색으로 그에게 물었다.
대답에 여하에 따라 팔을 잘라버릴 셈이었다.
"쯔쯧, 왠지 신나서 안내하더니, 속셈이 있었구만?"
선우는 자신을 노려보는 삼척을 보며 혀를 차며 말하였다.
왠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다.
"네놈이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었나보구나!"
그 말을 들은 도칠이 말을 이었다.
"조칠은 요성에서도 이름난 절정의 검수이다! 네놈 따위는 단번에 불귀의 객으로 만들 수 있는 실력자라는 소리다!"
"그러냐?"
선우는 그런 도칠의 말을 심드렁히 받았다.
너무 덧없는 말이었기에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어깨를 위아래로 붕붕 돌렸다.
어차피 집무실에는 도달한 듯하니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조칠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움직임을 느낀 조칠은 재빨리 검을 들어 방어하였다.
아니 방어하려고 하였다.
퍽
하지만 조칠이 검을 들어 올리기 전
이미 선우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타하였다.
"끄악!"
조칠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쾅
쾅
각종 집기구들이 부서지며 조칠의 몸을 강타하였다.
콰쾅
이내 거대한 굉음이 울리며 조칠은 벽에 처박히게 되었다.
"끄어억"
조칠이 처박힌 벽에는 그의 고통스러운 신음성만 울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도칠은 입을 턱 하니 벌렸다.
`시발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인생이 조져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조칠이 누구란 말인가?
산동성 요성에서도 이름난 고수이자 요성지부 최고의 고수가 아니던가
그런 조칠이 단 한 수 만에 당한 것이다.
식은 땀이 미친 듯이 흘러넘쳤고 온몸이 덜 덜 떨리기 시작하였다.
"아오, 이 귀여운 새끼를 어떻게 조지지?"
선우는 그런 도칠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무엇보다 차가웠다.
도칠은 알 수 있었다.
저 인간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였다.
투툭 투툭
"크아아!"
벽에 처박혔던 삼척검 조칠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새끼, 맷집 좀 있네."
선우는 그런 조칠을 보며 나름 감탄하였다.
힘 조절을 하긴 했다지만 머리가 충분히 울릴 정도의 힘이었다.
그런데 그걸 버텨내고 일어선 것이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저자의 습격을 알리십시오!"
재빨리 선우 앞에 걸어온 조칠은 도칠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주인인 삼척의 안위가 걱정된듯하였다.
끄덕 끄덕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 도칠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삼척이 있는 집무실을 향해 뛰어갔다.
"오, 저기가 집무실이구나."
이내 도칠이 뛰어간 곳의 위치를 보며 선우는 입을 떼었다.
아무래도 일일이 뒤져볼 필요는 없는 듯하였다.
"너는 못 지나간다!"
조칠은 검을 치켜들고 그를 겨눴다.
그의 눈빛에는 결연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눈물겨운 충정이구만."
선우는 그런 조칠을 보며 말을 이었다.
척 봐도 대쪽같은 인물이라 그리 싫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아플 거야."
선우는 다시금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주먹을 뻗어 그의 면상에 꽂아넣었다.
퍽
부웅
이내 선우의 주먹을 맞은 조칠은 그대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공교롭게도 그가 날아간 곳은 도칠이 들어간 삼척의 집무실이었다.
콰쾅
이내 집무실 문이 박살 나며 조칠이 그대로 집무실 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
선우는 재빨리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습격하라고 명하였던 도칠을 말이다.
"야"
선우는 도칠로 보이는 사내에게 소리쳤다.
"뒤질래?"
선우의 목소리를 들은 사내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
퍽
"꾸웩!"
퍽
"꿰엑"
퍽
"아악"
선우에게 수도 없이 맞은 삼척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짜고짜 집무실을 쳐들어온 그는 삼척이 기절하면 깨우고 기절하면 깨우길 반복하며 수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였다.
삼척은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억울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맞아야 하는가
자신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사내는 삼척의 변명 따위는 들을 새도 없이 그저 주먹질을 이어갈 뿐이었다.
"어우 시발놈 진짜, 착하게 살려니까 더럽게 안 도와주네."
선우는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있는 삼척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때려도 때려도 분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성에 도착하고 얼마나 조심하고 또 조심하였는가
선우는 눈에 띄지 않기위해 멋들어진 용포도 벗어 던지고 요랑과 옥령에게 면사를 씌우는 것은 물론 아예 별채까지 빌려 그들만 있게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독왕의 제자나 독왕인 척 역용하고 개방을 찾아가면 될 일을 눈에 띄는 것이 싫어 일부러 돈을 싸들고 하오문까지 찾았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노력을 이렇게 허사로 만드니 분노가 차올랐고 그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한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도칠은 온몸을 덜덜 떨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말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서환이 등쳐먹자고 말했던 그 호구가 분명하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그를 털어먹으려고 하였던 진짜 범인인 도칠은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지금 삼척이 도칠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이건 기회였다.
저자의 잔혹한 손속을 보건대 삼척은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요성지부의 지부장이 될수 도 있는 것이다.
도칠은 야비한 속내를 감추며 슬금슬금 몸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야, 누가 움직이래?"
그때였다.
도칠의 귓가에 선우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도칠은 그대로 제자리에 멈췄다.
`젠장`
아무래도 자리를 뜨는 것은 힘들어 보이는 듯 했기 때문이다.
우두두둑
선우는 삼척을 바라보며 손을 풀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목숨을 노린 것이 괘씸하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팔다리 한군데 이상은 분지르고 시작하리라
"삼척님!!!!!!"
그때였다.
어느새 정신이 들었는지 조칠이 고함을 질렀다.
"이야, 맷집 진짜 좋네."
선우는 내심 감탄하였다.
이번에는 나름 기절할 정도로 내력을 쏟아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회복하고 일어난 듯했기 때문이다.
정신을 든 조칠은 몸을 움직이려고 하였다.
주군인 삼척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또렷한 정신과는 달리 그의 몸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젠장 젠장!"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분함을 성토하였다.
약하기에 그의 주군을 지키지 못하였다.
약하기에 주군이 피떡이 되도록 맞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어찌 분하지 않겠는가
"노오오오옴! 어찌 주군에게 그런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것이냐!"
조칠은 선우에게 비명을 지르듯 말하였다.
"이새끼가 내 목숨을 노렸으니까."
선우는 당연한 듯한 말투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주군께서는 사흘 간 집무실에만 계셨다. 그런데 어찌 네놈의 목숨을 노린단 말이냐!"
조칠은 그런 선우에게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삼척은 사흘 내내 집무실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런데 어찌 처음 보는 저 남자의 목숨을 노린단 말인가
"나를 습격한 서환이 다 말했다. 도칠과 합작해서 칼잡이를 보냈다고 말이야."
"그런데 왜 주군을 팬단 말이냐!"
"응?"
순간 조칠의 말을 들은 선우는 의아함을 느껴 되물었다.
"얘 도칠 아니였어?"
선우는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삼척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분은 하오문 요성지부의 지부장이신 삼척님이시다! 도칠은 네놈을 이곳으로 안내한 쥐새끼같은 놈이다."
순간 선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도칠을 노려봤다.
그는 다시금 슬금슬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선우의 시선을 받은 도칠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네가 도칠이냐?"
".........."
선우의 물음에 도칠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그의 눈에는 절망이 서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