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146. 하오문을 찾아가다-2
서환은 재빨리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무척이나 흥분했는지 얼굴이 홍시마냥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흐흐흐 대어로구나`
서환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오늘 환희루를 찾은 손님은 그냥 손님이 아니었다.
무려 수천 냥짜리 전표를 턱 턱 내놓는 대박 손님인 것이다.
처음 그의 행색을 볼 때만 하더라도 서환은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깔끔한 차림새였긴 하였지만 돈이 많거나 무공이 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값비싼 비단옷을 두른 것도 아니고 금이나 은으로 된 장신구 하나 없었다.
거기다 경지에 따라 볼록 솟는다는 태양혈 또한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거물은커녕 개털인 것이다.
오랜만에 받는 금급 손님이라 큰 기대를 했것만 아무래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인 듯하였다.
하지만 서환은 노련한 자답게 친절한 모습으로 사내를 맞이하였다.
비록 개털이긴 하지만 나름 금급 밀어를 알고 있는 자였다.
함부로 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필요한 정보를 묻고 친절히 신분증명을 권유하였다.
보통 배가되는 정보료 청구에 부담스러운 대부분 사람들은 신분을 증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비싼 돈을 들여도 상관없다면 신분증명을 거부하였다.
여기서 서환은 의구심이 들었다.
문서 몇 장과 말 몇 마디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질에 따라 천금과도 가치를 가지는 것이 바로 정보였다.
그런데 배로 들여도 상관없다니?
정보의 가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일까
의구심이 든 서환은 무례한 행위였지만 그에게 돈의 증명을 요구하였다.
사실 돈이 있냐고 묻는 것부터가 무림인이나 상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너무나도 흔쾌한 태도에 멋모르는 무림초출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수천 냥의 전표를 보여주었을 때 서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직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대어라고 말이다.
금방 돌아오겠노라 말을 한 서환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어서 이 사실을 지부에 알려야 했다.
********
하오문 지부에 도착한 서환은 곧바로 부지부장인 도칠을 찾았다.
마음같아선 혼자 꿀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이 정도로 큰 건수라면 혼자 먹기에는 부담도 되었다.
더구나 어느정도 무력지원 또한 필요하였기 때문에 그는 미련없이 도칠을 찾을 수 있었다.
"호오, 천 냥 짜리 전표가 수두룩하였다고?"
"흐흐 그렇습니다. 간만에 대어를 잡은 듯싶습니다."
"그래?"
서환의 말을 들은 부지부장 도칠은 흥미롭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표를 던지는 것을 보면 품 안에는 더욱더 많은 전표들이 있을 겁니다!"
서환은 확실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천냥짜리 전표를 탁자 위에 던지듯 놓았다.
몇 천 냥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증거이리라
"무공은 익힌 것 같더냐?"
"손에 굳은살이 박혀있기는 하나 태양혈이 밋밋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자이거나 삼류나 이류 수준밖에 안 되는 자일 것입니다."
도칠의 물음에 서환은 확신하듯 답하였다.
정보를 다루는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눈썰미였다.
조그만 단서만 가지고 추론하고 추리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본연의 눈썰미에서 나오는 법
하오문은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단체인 만큼 무력이 높은 자들보다는 눈썰미가 타고난 자들을 선호한다.
요성지부의 간부인 서환 또한 그런 눈썰미가 뛰어난 자에 속한 이였다.
서환은 그 짧은 새 남자의 외양 그리고 행동거지를 제 나름대로 분석을 한 것이다.
"거기다 고압적인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누군가를 부리는 위치에 있던 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남자는 친절하였다.
보통 무림의 경우 하오문을 천히 여기기에 수양이 깊은 정파의 고수가 아닐 경우 무척이나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기색이 없이 친절하였다.
이 말인즉슨 높은 자리에서 부리는 위치에 있는 자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정파의 고수일 가능성은?"
서환의 물음에 도칠이 되물었다.
"없습니다. 그는 신분증명을 거부했습니다. 정파의 고수가 뭣 하러 신분증명을 거부하겠습니까?"
"신분증명을 거부했다고?"
"그렇습니다."
"정보료가 배로 청구된다는 이야기는 했느냐?"
"상관없다는 태도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떳떳한 인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
확신에 찬 서환에 대답에 도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정파의 인물이면 개방으로 가서 떳떳히 신분을 밝히고 정보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비싼 돈 들여 하오문으로 기어들어 올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그 말인즉슨 그 인간이 떳떳한 인간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놈 우리가 먹자."
도칠은 짐짓 생각하는 척을 하더니 이내 결정하였는지 말을 내뱉었다.
본래라면 지부장인 삼척에게 보고한 후 정보를 제공하는게 맞겠지만 도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보통 정보료를 받게되면 삼분지 이는 하오문 본단에 보내진다.
그리고 나머지 삼분지 일은 지부에서 먹게 되는데 대부분은 지부관리비라는 명목으로 지부장의 뒷주머니에 들어가게 되는 게 보통이었다.
직접 발로 뛰는 그들에게는 푼돈 몇 푼만 떨어지는 것이다.
불합리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오문의 생리가 이런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하오문을 찾아온 금급 애송이는 신분도 불분명하였고 무공도 낮아보였으며 돈도 많아 보였다.
그 말인즉슨 스리슬쩍 해처먹어도 아무도 모른다는 말과 같았다.
윗선에는 멋모르는 애송이가 행패를 부리다 죽어버렸다고 보고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완전범죄를 위해서는 지부장까지 포섭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그 콩알만 한 간을 가진 지부장은 결코 허락지 않을 것이다.
삼척은 욕심을 부려 돈을 모두 먹기보단 안전히 삼분지 일정도만 먹어도 안심할 인간이었다.
거기다 수 천 아니 수 만냥이 될지도 모를 일이이었다.
나눌 사람은 적을수록 좋은 법.
도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흐흐흐흐 서환, 입 무겁고 칼은 가벼운 놈들로 몇 놈 보내주마."
"흐흐 감사합니다."
"대신 확실히 끝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두 남자는 히죽 웃으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들어올 돈을 생각하니 마치 첫사랑을 만난 듯한 설렘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환은 도칠에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일어났다.
그리고는 재빨리 몸을 돌려 밖으로 향하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경우 의심을 사거나 그냥 가버릴 수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서환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
"하아암"
선우는 길게 하품을 하였다.
서환이 물러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서환은 물러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기미가 안보였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린 탓일까
절로 몰려드는 지루함에 선우는 하품을 하였다.
`언제오냐.`
선우는 하염없이 문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드르륵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고, 공자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서환이었다.
"아닙니다."
선우는 짧게 대꾸하였다.
"그것보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요. 지부장님께서 직접 뵙기를 청합니다."
"지부장이요?"
선우는 의아한 듯 그에게 되물었다.
그냥 당가에 관한 문서 쪼가리 몇장만 들고오면 되는 것을 무슨 지부장까지와서 면담을 한단말인가
"아시다시피 당가는 몇 달 전만 해도 중원제일세가로 불리우던 명문가입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지부장님께서 직접 뵙길 청하시더군요."
`당가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중대한 사안이었나?`
선우는 속으로 의아함이 들었다.
무슨 거대한 비밀을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당가의 상황 정보면 충분하거늘 뭐 이리 복잡하게 나선단 말인가
"하오문 지부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금방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선우의 눈빛의 의구심이 떠오르자 서환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의심의 싹이 피어오르기 전에 재빨리 자리를 옮겨야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말을 마친 서환은 곧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랐다.
의심이 들긴 하였지만 상대는 하오문이었다.
하류 잡배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곳이었지만 그들 나름의 법도가 있었다.
설마 돈을 싸들고 정보를 사러온 고객을 통수라도 치겠는가
선우는 서환을 등을 바라보며 그를 따라나섰다.
*******
환희루 밖으로 나온 서환은 환희루 뒷편에 있는 음습하고 어두운 골목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서환은 입가에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칼잡이들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칼잡이의 손에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수중에는 수천 아니 수만냥의 전표들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생각만해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루주님"
그때였다.
선우가 서환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명색이 하오문 지부인데, 이리 좁은 골목에 위치하고 있는게 맞습니까?"
서환을 따라가던 선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그에게 물었다.
수많은 정보가 보관되어 있는 하오문 지부라면 크기가 상당할 것이 분명할 텐데 서환은 좁고 깊은 골목으로 그를 인도하였다.
그렇기에 의구심이 들었다.
이자가 정말 자신을 하오문 지부로 안내하는 것이 맞는지 말이다.
"하하하 하오문은 음지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양지에 버젓이 있을 수는 없지요."
"그렇군요."
그의 천역덕스러운 대답에 선우는 이내 납득을 하였다.
애초에 하오문은 하류인생들이 모이고 모여 만든 음지의 문파였다.
눈에 띄는 양지에 버젓이 있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흐흐 의심많은놈`
서환은 납득한 듯 보이는 선우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천역덕스러운 거짓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린 듯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선우와 서환은 앞이 막혀있는 막다른 골목에 도착하게 되었다.
골목에 도착하자 서환은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입니다."
그리고 선우를 보며 입을 떼었다.
"무슨?"
선우는 의아한 듯 그에게 되물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의 말을 끝으로 여러명의 발자국 소리가 선우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내 발자국의 주인들의 그의 뒷편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손에는 잘벼려진 칼들이 예기로 흩뿌리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선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서환을 쳐다보았다.
"크흐흐흐 눈치가 없는 놈이로구나. "
서환은 그런 선우를 보며 음습한 미소를 흘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몰렸는데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걸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런 초출 등처먹는 것만큼 짜릿한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서환의 말을 들은 선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상당히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하오문이 명문정파는 아니라고는 하나 나름 신망이 깊은 정보단체였다.
이렇게 고객의 뒤통수를 후리고 다녔다면 그런 신망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통수를 맞으니 뒷통수가 얼얼하였다.
"하아"
이내 선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균현에서 대형사고를 친 이후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요성에서는 더욱 조심하고 또 조심하였다.
분란거리가 될만한 절세미녀 둘에게는 면사를 씌운 것은 물론 별채까지 빌린 후 얌전히 놔두고 홀로 길을 나섰다.
거기다 당가와 관련된 신분을 밝히는 것 또한 꺼려졌기에 일부러 돈만 주면 어떤 정보도 준다는 하오문을 찾았다.
그들은 배가 넘는 정보료를 요구하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선우는 최대한 분란을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상당한 시간동안 기다리게 한 서환을 탓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가 이끄는대로 아무 말없이 잘만 따라왔다.
사실 의아하긴 하였다.
서환이 지부장을 만나야한다면 자신을 안내할 때부터 말이다.
그는 자신을 음습하고 어두운 골목으로 인도하였고 하나 둘씩 자신들의 뒤를 따라붙는 자들도 하나 둘 늘어갔다.
하지만 선우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서환과 하오문을 믿었다.
결과는 통수였다.
선우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진정하였다.
참을인 세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하지 않던가
오래도록 기다리게 한 것과 통수 친 것을 합치면 통합 두번 참았으니 이제 한 번만 더 참으면 될 것이다.
"무슨 오해가 있으신거 같습니다. 저는 충분한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고 당신들을 적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선우는 부드러운 어투로 그들에게 말했다.
안그래도 복잡한 상황에 하오문까지 엮이는 것은 사양이었다.
"흐흐흐 그 충분한 돈이 너무 탐나서 말이다. 너무 고깝게 생각지 말거라. 벌은 지옥에 가서 충분히 받을 터이니."
하지만 선우의 부드러운 말에도 불구하고 서환은 그를 조롱할 뿐이었다.
빠직
선우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말하는 본새가 너무 개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떠시오?"
"필요없느니라, 애들아 쑤셔라."
서환은 선우의 말을 깔끔히 거절한 후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저벅 저벅
하오문도들은 말없이 선우에게 걸어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