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38. 옥령, 눈을 뜨다.
흐름을 인지한 선우는 건곤대나이의 구결에 따라 천천히 내력을 이동시켰다.
이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체화시켜야해했다.
선우는 온몸에 내력을 퍼트렸다.
오년 치 내공이 서서히 선우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이내 선우의 온 몸에는 실낱같은 내력이 감싸졌다.
그리고 온몸을 작용하는 힘의 흐름을 내력을 이용하여 그대로 비틀었다.
들썩
그러자 온몸이 누르고 있던 흙 중 일부가 파지더니 이내 선우의 몸 주위로 조그마한 공간이 생겨났다.
성공이었다.
건곤대나이를 구현해낸 것이다.
"후아"
선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조그맣지만 숨을 쉴 정도의 공간이 확보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선우는 파여진 공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온신경을 집중하여 건곤대나이를 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숨쉴 정도의 공간밖에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건 내력의 문제였다.
수천 수만 근에 이르는 흙의 무게를 비틀기에는 내력이 모자란 것이리라
'시발'
선우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탈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기때문이다.
선우는 눈을 감고 다시금 감각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몸에 닿고 있는 작용의 흐름을 잡아챘다.
들썩
선우는 다시금 건곤대나이를 시전하였다.
다시금 조금이지만 흙이 파지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이 작업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할 듯 싶었다.
선우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집중을 하였다.
어차피 그에게 선택지 따윈없었다.
그저 나아갈 뿐이었다.
*************
옥령은 꿈 속을 영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선우와 함께 였다.
그들은 백화봉을 거닐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과 청초하게 피어난 이름모를 들꽃, 푸른 녹음들이 가득 찬 숲속, 상쾌하기 그지없는 바람 등 모든 것들이 그녀를 즐겁게 하였다.
특히 옆에 있는 그녀의 어린 낭군
선우는 존재는 그녀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녀는 빌고 또 빌었다.
평생 이런 나날들이 반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였다.
이내 천둥번개를 내리치며 그녀를 행복하게 하였던 모든 것들을 철저히 부수기 시작하였다.
들꽃과 푸른 녹음들은 전부 불타기 시작하였고 햇살을 먹구름에 가려졌으며 바람은 돌풍이 되어 모든 것들을 날려버리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선우만큼은 잃기 싫다는 그녀의 소망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옆에 있는 선우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손을 타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좋아?"
그때였다.
선우에게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선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선우가 아니었다.
"옥령, 묻잖아. 내가 그렇게 좋아?"
그녀가 손을 잡고 있는 자는 이재원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놓으려고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이재원은 그녀의 손을 억세게 잡고 있을 뿐이었다.
"크하하하하하 오랜만에 옥령이 맛좀 봐볼까?"
이재원은 바지춤을 내려 하물을 드러내었다.
옥령은 절망하였다.
싫었다.
너무나도 싫었다.
이 남자에게 더 이상 농락당하기 싫었다.
그녀는 애타게 선우를 불렀다.
"어차피 그새끼는 안와! 그 새끼는 나와 똑같은 새끼야! 널 이용하고 비참하게 버리겠지!"
"아니야!"
"아니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 그 녀석은 너를 속였다. 선우가 아니다 장삼이다!"
"아니야!"
"옥령아, 또 속냐?"
이재원은 한껏 옥령을 비웃었다.
옥령은 부아가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아니었다.
선우는 이재원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황 양태산을 상대하기 위해 나섰던 마지막 모습을 말이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재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성치 않은 몸으로 자신을 업고 산길을 타던 그의 모습을 말이다.
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달랐다.
홱
그녀는 이재원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이년이 미쳤나!"
이재원은 그런 그녀를 보며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꺼저."
그녀는 이재원을 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이,이,이 개같은 년이!!!!!"
이재원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응?"
순간 이재원은 무언가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잘린 그의 하물이 꿈틀대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재원은 비명을 질렀다.
양물이 잘려버린 것이다.
"꿈속에서까지 날 휘두르려고 하지마."
옥령은 그대로 이재원의 양물을 짓밟아 터트려버렸다.
"크아아아아악!"
이재원은 괴성을 질렀다.
"꺼저"
파스스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이재원은 먼지가 되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옥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금 세상은 처음처럼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훈풍, 이름모를 청초한 들꽃, 푸르게 빛나는 녹음들까지 말이다.
옆에는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그녀가 행복을 꿈꾸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녀는 천천히 양손으로 선우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제 헤어져야할 시간이야."
선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만들어진 꿈속에서 영유하는 것은 그만두려고 해. 시간이 됐거든"
그녀의 말에 선우는 그대로 그녀를 꼭 안았다.
"지금껏 위로해줘서 고마워."
그녀는 선우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활짝 웃었다.
이내 그녀 주위에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옥령은 가만히 그 모든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
.
.
.
.
누워있던 옥령의 눈이 슬며시 떠지기 시작하였다.
오랜 꿈에서 드디어 깨어난 듯 싶었다.
눈을 뜬 그녀는 주위를 살며시 둘러보았다.
익숙한 모양의 토굴이 보였다.
그리고 주위에는 항아리들이 가득 하였다.
그녀는 이곳의 어디인지 잘알고 있었다.
이곳은 백검문의 비처였다.
비틀 비틀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우기 시작하였다.
콰당
하지만 무리였다.
너무 오랫동안 누워있던 것인지 근육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꽈악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대로 힘이 돌아올때까지 재활할 시간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확인해야했다.
선우가 어디있는 것인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말이다.
그녀는 천천히 내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내 몸속 곳곳에 활력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없어진 근육들을 내력으로 대체한 후 그녀는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비틀 비틀
아직은 걸음이 어색한지 비틀 거리긴 하였지만 힘이 없어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저벅
저벅
그녀는 천천히 토굴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
선우가 땅속에 파묻힌지 벌써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요랑은 여전히 선우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이대로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요랑은 그럴때마다 음양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선우의 안부를 묻곤 하였다.
물론 시끄럽다며 음양마에게 머리를 쥐어박히긴 하였지만 선우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요랑은 음양마의 말을 철떡같이 믿고 그저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도 오늘도 선우가 묻힌 곳 근처에서 잠을 청하였고 코를 골고 있었다.
"도로롱 휘유....도로롱 휘유"
요랑의 잠자리는 언제나 선우가 묻힌 곳 근처였다.
언제든 그가 나오면 반갑게 맞아주기 위해서였다.
저벅
흠칫
잠에 빠져 있던 요랑은 순간 몸을 움찔 잠에서 깨고 말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기 때문이다.
저벅.
발소리가 다시금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누구지?'
요랑은 의문이 들었다.
음양마의 발소리라고 하기에는 한 없이 가벼운 발소리였다.
요랑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토굴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가 더욱 커지더니 이내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발소리의 주인은 하얀 백의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요랑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요랑은 저 여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음양마에게 치료하고 있는 여인의 정체를 몇 번이고 물었기 때문이다.
선우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버린 여인.
선우가 목숨을 걸고 당가로 잠입하게 만든 여인.
선우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
옥령이었다.
"아이야, 어찌하여 백검문의 비처에 있는 것이냐?"
옥령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있는 요랑을 보며 말을 이었다.
"............."
요랑은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입을 오물거렸다.
옥령은 그런 요랑을 그저 가만히 응시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여인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
황보세가 대전 안
회의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중년인들이 거대한 탁자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급지기 짝이 없는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
또한 풍채 또한 상당하여 왠지 모를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가장 상석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들 중 가장 상석에 앉은 남자, 황보강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했구려,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소?"
황보강은 그들을 보며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었다.
"인사는 됐소, 본론부터 들어가시게"
황보강의 인사를 받은 팽가의 가주 팽상기는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아마 산동에서 모인 것이 못내 자존심이 상한 듯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득이하게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주들께서는 혹여 최근 만금전장에 은자 삼천냥에 달하는 돈을 빚지지 않았소?"
움찔
그의 말에 가주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아니 도대체 이자가 그 사실을 어찌 알고 있다는 말인가
"자네가 그 사실을 어찌 아는가?"
그때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진만이 으르렁 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얼마전 장남인 모용계가 은자 삼천냥이라는 큰돈을 만금전장에서 대출 받은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가문의 이름으로 말이다.
모용진만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은자 삼천냥이라는 돈이 가문을 좌지우지 할만큼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개인이 마음대로 쓰기엔 말도 안될 정도의 금액이었다.
모용진만은 모용계를 미친 듯이 두들겨팼다.
그리고 윽박 질렀다.
당장 돈을 뱉어내놓으라며 돈은 어디갔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모용계는 입을 꾹 다물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용진만은 분노하여 그가 죽기 직전까지 수도 없이 매질을 하였다.
만약 그의 어미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모용계는 모용진만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결국 모용계는 죽기직전까지 처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의 행방을 불지 않았다.
모용진만은 화가났지만 손이 귀한 모용가의 아들을 때려죽일 수도 없어 분을 삭힐 뿐이었다.
그때쯤이었다.
황보강의 서신이 도착한 것은 말이다.
서신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은자 삼천냥이라는 말과 함께 가주회의를 소집하겠다는 말 뿐이었다.
평소라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무시할 이야기였지만 왠지 모를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하여 산동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황보강이 삼천냥을 빌린 사실을 알고 있으니 되려 놀라 물었다.
설마 삼천냥의 행방은 황보강이란 말인가
"안심하게. 모용가주, 나도 이 사태의 피해자라네."
"이 사태라니?"
"여기 있는 모두가 은자 삼천냥을 뺴앗긴 피해자라는 말일세."
그의 말에 가주들은 감탄성을 자아냈다.
삼천냥을 대출 받은 것은 자신의 자식들만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들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어리더니 이내 분노가 서리기 시작하였다.
누가 감히 오대세가에게 돈을 뜯는단 말인가
이는 전무후무한 일로 있던 적도 없었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도대체 누가!"
팽상기는 언성을 높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하북의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팽가의 후기지수에게 돈을 뜯는단 말인가
이는 가문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도 궁금하군 ,그 똑똑한 지아가 입을 꾹 다물더군. "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용 또한 궁금증이 일었다.
치지봉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무림에서 이름 난 그의 딸이 삼천냥이라는 거금을 빌려놓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평생을 이런적이 없던 아이였기에 제갈용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움이 앞섰기때문이다.
그런데 황보강이 범인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니 흥미가 돋았기때문이다.
"범인은 당가라네."
"뭣!?"
"뭣이?!"
"허허 당가라니"
"그럴수가?"
황보강에 말에 가주들은 믿을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당가라니
설마 자신들이 아는 그 당가가 맞는지 다시금 되물었다.
"믿기 힘들테지만 사실이라네. 당가는 우리 아이들을 겁박한 후 삼천냥이라는 거금을 뜯어냈지."
황보강은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황보악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독왕의 육부인과 이예설 그리고 독왕의 제자까지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가주들의 눈빛에는 분노가 서리기 시작하였다.
감히 다 망해가는 당가주제에 누굴 건들였다는 말인가
"멍청한 녀석이군, 고작 당가따위가 우리와 맞먹는다는 생각을 한 것인가?"
"중원제일세라고 불리던 시절이면 모를까, 지금도 우리를 아래라고 생각하는가? 독왕은 오만하기 그지 없구나."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소, 당장이라도 항의를 해야합니다. 이예설과 풀 문제를 어찌 죄없는 후기지수에게 전가한단 말이오!"
그들은 하나같이 열변을 토해내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진정하시구려, 가주들의 마음은 잘 알지만 저희들은 항의를 할 수는 없소."
황보강은 흥분한 가주들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었다.
"이 일이 공론화된다면 그 사태를 관망한 후기지수들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소이다. 거기다 천검후 주소양과도 척을 지게 되겠지."
"크흠"
"흠흠"
그의 말에 가주들은 연신 헛기침을 하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이어지는 황보강에 말에 가주들은 눈을 반짝였다.
황보강은 눈을 반짝이는 가주들을 보며 자신의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음모가 깊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