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137. 무(無)의 세계에 들어가다-2
"선우야아아아아!"
파묻히는 선우를 보며 요랑은 비명을 질렀다.
오일만에 만난 선우가 그대로 땅에 파묻혀버린 것이다.
비명이 안나올 수 없었다.
"선우를 파묻으면 어떡해!"
요랑은 음양마를 노려보며 소리를 쳤다.
지금 요랑은 눈에 뵈이는 것이 없었다.
선우가 나오길 오매불망 기다렸던 요랑이었다.
그런데 선우가 나오자마자 그대로 땅속으로 파묻혀버리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어떡해?"
요랑의 말에 음양마는 으르렁 거리며 꼬투리를 잡았다.
"....요."
요랑은 부아를 잠시 내려놓고 다시금 존대를 하였다.
아무리 화가나도 생존이 우선이 아니던가
"걱정말거라, 그저 무(無)의 세계에 방문한 것 뿐이니라"
"무(無)의 세계가 뭔데...요?"
요랑은 어설픈 존댓말로 음양마에게 물었다.
"무척이나 춥고 외롭우면서 고독하고 슬프며 답답하기 그지 없는 공간이지."
음양마는 진중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지금 저 녀석은 오일간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이다. 체력이 극한의 상황까지 몰렸다는 이야기지."
꾸욱 꾸욱 꾸욱
음양마는 구덩이의 메꾼 흙은 발로 밟으며 말을 이었다.
"무(無)의 세계를 체험하기 가장 알맞는 상황이다."
음양마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사람은 죽음에 가까워질 수록 조금씩 감각을 상실하게 되지 , 귀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고 맛을 느낄 수 없게 될 것이며 고통에 둔감해질 것이고 졸지에는 눈마저 멀게 된다. 그럼 그후에는 가만히 누워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지."
음양마는 요랑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 생과 사의 경계. 모든 감각이 소실되고 오로지 머리속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럼 선우를 파묻은 건!?"
"그래, 강제로 무(無)의 세계로 들여보내기 위한 조치이니라, 흙덩이에 파묻힌 몸에 엄청난 압력이 쏟아질 것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저 존재만을 느낄 뿐이지."
음양마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죽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정신을 붙잡고 있어야하지. 아마 저녀석은 한계까지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을게다. 끌끌"
"저러다 죽으면 어떡해..요!"
요랑은 울먹이는 얼굴로 음양마에게 물었다.
"그거야 제놈의 명줄이지 않겠느냐?"
음양마는 그런 요랑에게 대수로운일이 아니라는 듯 답하였다.
"으윽"
그의 말에 요랑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
선우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죽음이외에는 무엇조차 생각할 수 없는 상태이다.
오일 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건곤대나이만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오일 째되던 날
비로소 건곤대나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고 바위를 두동강 낼 수 있었다.
선우는 쾌재를 불렀다.
건곤대나이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사실보다 이제는 제대로 먹고 자고 할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다.
하지만 그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음양마의 손에 끌려 깊고 깊은 구덩이에 빠져 그대로 매몰되어버렸다.
선우는 절망하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파묻힌 선우는 구덩이를 빠져나오기 위해 갖은 수를 써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고작 오년 치로 제한된 내력으로 이렇게 깊고 깊은 땅속을 탈출할 수 있을리 없었다.
게다가 그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허기가 졌다.
오일 간 제대로 먹지 못하였기 떄문이었다.
항거할 수 없느 수마가 쏟아졌다.
이 또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부작용이리라
그의 체력은 엉망진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다.
거기다 온몸을 압박하고 있는 흙들의 압력이 그를 더욱 괴롭게 하였다.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그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곳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무엇하나 맡을 수 없었다.
시각, 청각, 후각 이 모든 것이 차단 당한 것이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온몸을 압박하는 압력정도?
하지만 이조차도 몸이 적응한 것인지 느슨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추웠다.
흙 속에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이내 추움 또한 고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답답했다.
무엇하나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얼마나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내력이 없으면 무엇하나 할 수 없는 인간인것이다.
두려웠다.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을 뿐
공포가 몰려왔다.
이대로는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말이다.
'살려줘!'
선우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흙 속에 묻혀버린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비명을 지를 뿐
.
.
.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추위나 압박따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무감(無感)에 도달한 듯 싶었다.
선우는 정신을 꽉 붙잡았다.
감각이 소실되고 무엇하나 느낄 수 없는 공간에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신 뿐이었다.
만약이 대로 정신을 놓치게 된다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선우는 자신을 잊지 않기위해 그저 되뇌이고 되뇌일 뿐이었다.
자신은 아직 살아있다면서 말이다.
***********
요랑은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선우가 파묻힌 땅 앞에서 말이다.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선우는 여전히 나올 기미가 전혀보이지 않았다.
요랑은 걱정이 앞섰다.
땅속에는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도, 배를 채울 수 있는 밥도 없었다.
요랑은 알고 있다.
어떤 생명체든 숨을 못 쉬고 먹지 못한다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울컥
눈물샘이 자극되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영영 선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 한 구석이 미치듯이 아파왔기 때문이다.
"흐극..흐극.."
쾅
"으엑!"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음양마가 요랑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왜요!"
요랑은 머리통을 후려갈긴 음양마를 향해 소리쳤다.
또 뜬금없이 머리통을 왜 후려친단 말인가
"누가 죽었냐? 왜 이렇게 질질짜?"
".....그치만 땅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잖아요."
요랑은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흙속에도 공기는 녹아있다. 얼마든지 호흡을 할 수 있느니라"
"정말요!?
음양마의 말에 요랑은 반색하며 되물었다.
숨을 쉴 수 있다면 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시무룩해졌다.
"그치만 아무것도 안먹은지 벌써 열흘이 넘었어요."
"그건 제놈이 극복해야할 문제지 않겠느냐? 살고 싶으면 알아서 기어나오겠지."
"저렇게 무거운 흙덩이를 어떻게.....들어올려요."
요랑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저렇게 무겁기 그지 없는 흙덩이를 어찌 맨몸으로 들어올린단 말인가
"건곤대나이를 쓸수 있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니라"
요랑의 말에 음양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건곤대나이는 힘을 방향을 바꿔버리는 무공이 아니던가
제대로만 익히게 된다면 사방에서 가해지는 흙의 압력을 되돌려 탈출하는 것따위는 일도 아니었다.
"못 쓰면요?"
"죽는거지, 뭐"
음양마는 뭐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요랑에게 말하였다.
익히지 못하면 죽는다.
애초에 처음부터 묻지 않았던가
목숨을 걸 생각이 있냐고 말이다.
"우우"
음양마의 말에 요랑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선우는 지금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것이다.
요랑은 슬쩍 선우가 파묻힌 땅쪽을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파내야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저걸 파내면 네 녀석의 뇌수도 파내버릴테니까, 그리 알거라."
그런 요랑의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음양마는 그녀를 보며 넌지시 말을 이었다.
"히익"
음양마의 말에 요랑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흠칫 떨었다.
"크흐흐흐"
음양마는 그런 요랑의 반응에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놀리는 맛이 있는 짐승이었다.
수틀리면 쥐어패도 잘 죽지도 않고 반응도 재밌었다.
그리고 나름 제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갸륵해보이기도 하였다.
미물주제에 말이다.
곧이어 음양마는 시선을 돌려 선우가 묻혀있는 땅을 바라보았다.
요랑에게는 충분히 살 수 있는 환경이라고는 말하긴 했지만 지금 그는 극한의 상황에 몰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극복하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겨내보거라, 대적자여.'
음양마는 나름의 응원을 보낸 후 시선을 거뒀다.
**********
얼마나 시간이 흐를 것일까
선우는 시간관념에서 벗어나 있었다.
처음에는 초단위로 일초 이초를 세면서 시간을 재어봤지만 소용없었다.
세어가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절망만이 앞섰기에 머지않아 포기해버렸다.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시간을 세어도 구해줄 기미조차 안보이는데 어찌 시간만을 세겠는가?
선우는 살고 싶었다.
이대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선우는 천천히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이곳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내력이 필요하였다.
오년 치 내력이 천천히 온몸을 일주천하더니 이내 감각을 다시금 활성화시키기 시작하였다.
이정도 내력으로는 모든 감각을 활성화 시킬 수는 없었다.
선우는 오로지 호흡기쪽 감각을 활성화시켰고 이내 코와 입을 그 어떤 때보다 예민하게 만들 수 있었다.
코를 통해 흙 속에 녹아있는 산소를 흡입하였고 이내 입을 통해 천천히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조금이지만 몸속에 산소가 조금씩 돌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속으로 안도를 하였다.
아무래도 질식사할 위험에서는 벗어난 듯 싶었다.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었다.
최대한 흙속에 머금어 있는 산소들을 호흡하였지만 그 또한 떨어진다면 꼼짝없이 질식사 당할 것이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할 방법을 생각해야한다.
바둥거리며 몸을 움직이려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수천 수만 근에 이르는 흙덩이들이 그의 몸을 압박하고 있었다.
내력도 제한 된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을리 없었다.
선우는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이곳을 탈출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음양마는 어째서 자신을 이곳에 곧바로 처넣을 것일까
궁구하고 또 궁구해보았다.
이번에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살갗 좀 찢어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정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선우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음양마가 내어준 문제는 어렵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풀지 못할 문제도 던져주지 않았다.
일례로 얼마전 건곤대나이의 단초를 깨달아 오년 치 내공으로 바위를 두동강 내지 않았던가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선우는 호흡이 안정화 되자 천천히 건곤대나이의 구결에 따라 내력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오년 치 내력이 천천히 몸을 영유하였다.
그리고 선우는 이내 내력을 손날 부분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토굴에서 얻었던 건곤대나이의 단초를 활용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손날 부분에 기의 형체가 형성되더니 이내 밀집되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의 내력은 손날 모양에 맞춰 밀집을 이루게 되었다.
역시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어렵지 않은 듯하였다.
선우는 밀집된 손날 움직여 흙을 가격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몸 전체가 흙에 에워싸인 그가 팔을 휘두를 수 있을리 만무하였다.
이내 선우는 내력을 흐트려버렸다.
아무래도 정답이 아닌 듯 하였다.
골머리가 아파왔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곳을 탈출 할 수 있단 말인가
선우는 다시금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여 오년 치 내력을 모았다.
음양마에 의해 금제가 걸린 이후 아무리 내력을 모으려 해도 오년 치가 한계였다.
결국 오년 치 내력으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소리였다.
선우는 다시금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그리고 이내 결론을 내었다.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단초는 건곤대나이에 있다고 말이다.
건곤대나이는 시전자에게 작용하는 모든 힘의 방향을 바꾸는 무공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온 몸을 누르고 있는 수천 수만 근에 이르는 압력의 방향 또한 바꿀 수 있다는 소리였다.
살기위해선 건곤대나이를 시전해야한다.
선우는 건곤대나이에 대한 고찰을 하기 시작하였다.
건곤대나이는 시전하기 위해서는 작용하는 힘의 크기와 그 흐름을 인지하여야한다.
그리고 인지한 흐름을 내력을 이용하여 비트는 것으로 작용하는 힘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선우는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온몸에서 억누르고 있는 압력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가장 처음 그가 인지한 것은 압력이 느껴지는 방향이었다.
압력은 전방향에서 작용하고 있었다.
그다음 느껴진 것은 압력의 크기였다.
수천 수만 근에 이르는 압력이 그를 괴롭하게 하였다.
'크윽'
몸을 억누르고 있는 압력에 집중하면 할 수록 고통 또한 배가 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흐름을 잡아야 한다.
이 힘이 작용하는 흐름을 말이다.
선우는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크아아아아악!'
집중을 끌어올릴 수록 고통은 더해져만 갔다.
압력에 집중하는 만큼 고통에 예민해지는 것이다.
눈물이 절로 나올만큼의 압력이 느껴졌지만 선우는 더 더욱 집중을 하였다.
흐름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셀수도 조차 없는 영겁의 고통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선우는 참고 또 참아내었다.
오로지 흐름을 찾겠다는 일념하에 말이다.
그때였다.
무언가 알수 없는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촉각이나 후각, 시각, 청각같은 오감(五感)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정체불명의 감각이었다.
선우는 그 거슬리는 감각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 감각이 무언가를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느껴진 것은 혈액의 흐름이었다.
심장부터 시작하여 온 몸 곳곳을 이동하는 혈액의 흐름이 잡혔다.
그 다음은 산소의 흐름이었다.
흙이 머금고 있는 산소를 호흡하여 폐에 전한 후 다시금 혈액에 녹아드는 산소의 흐름이 잡혔다.
그뿐만 아니었다.
뼈 ,피부, 장기, 신경 같이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흐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선우는 희열에 휩싸였다.
드디어 잡아낸 것이다.
선우는 감각의 범위를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기 시작하였다.
심장을 넘어 장기로
장기를 넘어 뼈로
뼈를 넘어 혈액으로
혈액을 넘어 피부로
그리고 피부 넘어 온 몸을 억누르고 있는 압력으로 말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몸에 작용하고 있는 힘의 흐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