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30. 한 자루 검 같은 남자를 만나다-2
"어떻게 아신겁니까?"
선우는 그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하니 요랑의 정체가 간파당할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에 변명조차 생각해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궁금증이 일었다.
요랑은 화경의 경지인 자신이 봐도 사람인지 영물인지 구분 안될 정도로 완벽한 사람의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도대체 어떻게 그녀의 정체를 간파한 것일까
"살다보니 저런 것들과 엮여진 적이 많았거든 그래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 사람인지 아닌지 말이야, 내 직감이 말하더군. 저 여인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그의 말에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그가 요랑의 정체를 간파한 것은 무공의 경지가 높아서는 아닌 듯 싶었다.
중원에 화경의 고수는 공식적으로는 대략 스무명 정도가 있었다.
천라지망을 펼쳐 전 무림을 긁어모은다면 그 숫자는 더 되겠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스무명 정도였다.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할 수도 없는 숫자였다.
만약 화경에 이르렀다고 모두가 요랑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다면 그녀는 어디든 모습을 드러낼 수 없으리라
"너무 긴장하지말게나 내가 특이한 거지 , 왠만한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에 혹할 뿐 알아채지는 못할 걸세."
"그렇군요."
선우는 그의 답에 짧막히 대답하였다.
말을 하면 할 수록 저자는 선우의 마음을 속속히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말이 안나왔다.
"이제 내 물음에 답해주겠나?"
"네?"
"자네는 정체가 무엇인가?"
선우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독왕의 제자라는 새로 만들어진 신분을 대야하는가
아니면 또 다시 거짓말을 해야하는가 하고 말이다.
"제 이름은 장선우입니다."
이내 선우는 결정을 하였는지 입을 열었다.
"그저 운좋게 무공을 익힌 범부입니다."
그저 애매하게 말을 흐트리기로 하였다.
저 남자에게는 무슨 말을 하든 간파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허 , 숨기고 싶다면 그리 캐묻지는 않겠네. 그나저나 정말 사람처럼 생긴 아이구만 "
그는 요랑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에 요랑은 부담스러웠는지 선우에게 파고들어 얼굴을 감췄다.
"자네를 잘따르나 보구만."
"따르긴요, 말도 지지리 안듣습니다."
꽈악
그의 말을 들은 것인지 요랑이 선우를 깨물었다.
"아파 임마!"
쾅
선우는 그대로 요랑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물어도 허벅지를 물어젖히니 아픔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요랑은 선우의 주먹질이 아팠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하하하하 유쾌하구만."
"이거보십시오. 이리 맨날 싸웁니다."
"원래 정이 있으니 싸우는 법이라네 , 정이 없으면 말 섞는 것만으로 화가 나니 말일세."
남자는 웃으며 선우에게 말을 하였다.
남자의 부드러운 반응에 선우는 경계심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합석한 내내 무척이나 예의가 있었고 호의가 가득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적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모습에 선우는 경계심을 슬그머니 낮췄다.
"그나저나 대협은.."
"아니. 아닐세."
"네?"
"나는 협이라는 호칭으로 불릴만한 인물이 아닐세."
남자의 말을 들은 선우는 눈앞의 남자가 정파쪽 인물은 아니구나하고 어림짐작하였다.
확실히 꼰대끼 다분한 정파의 인물과는 궤를 달리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그들에게 예의가 바르게 행동하였고 존중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나이로 찍어누르며 명분만 찾는 정파의 꼰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선배님께서는 어쩌다 이곳에?"
"사실 윗선에서 명이 내려져서 말일세, 어쩌다보니 이곳을 지나가게 되는구만"
선우의 물음에 남자는 웃으며 답하였다.
"자네야 말로 어쩌다 이곳에 오게됬는가?"
"저는 만날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이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만날 사람은 여인보군."
남자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말하였다.
"그걸 어찌?"
선우는 놀라 되물었다.
뭐 이리 다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저 그리 느꼈을 뿐이라네."
남자의 말에 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든 것을 다알고 있듯 간파하는 그의 직감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자네는 대단하구만, 젊은 나이에 그정도 경지에 들어섰고 말이야."
남자는 선우를 보며 감탄하듯 말하였다.
"선배님께서는 다른 이의 무공 경지도 간파하시는 겁니까?"
"하하하하 감이 말해주더이."
"뭐라고 말입니까?"
"한바탕 붙으면 재밌겠다고 말일세."
남자는 스스럼 없이 선우에게 말하였다.
"어떤가? 한바탕 어울려볼텐가?"
그의 말은 진심이었는지 눈빛에는 왠지모를 열망이 담겨있었다.
"에이 됐습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말이죠."
"크하하하 그거 아쉽구만."
두 남자는 그렇게 불가에 앉아 도란도란 웃음꽃을 피워나갔다.
'우웅....지루해'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요랑은 밥먹는 것도 깜빡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아무래도 그들의 얘기는 요랑의 관심밖인 듯 하였다.
********
터벅 터벅
숲속을 걷던 남자는 이내 또다른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기쯤이면 되려나?"
말을 마친 중년의 남자는 공터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기세를 피어올렸다.
우우우우우웅
이내 그의 몸 주위로 거대한 기운이 일렁이더니 숲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
선우는 몸을 뒤척였다.
무언가 알 수없는 거대한 압박이 선우의 몸을 짓누르는 듯하였기때문이다..
압박은 시간이 지날 수록 거세졌고 선우는 더욱 몸을 뒤척였다.
번쩍
이내 선우는 눈을 뜨게 되었다.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압박은 여전히 선우르 짓누르고 있었다.
'뭐야 이거?'
선우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옆을 돌아보았다.
옆을 보니 태평한 표정으로 용포를 덮고 잠을 자고 있는 요랑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 거대한 중압감은 자신만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우는 다시금 주위를 돌아보았다.
합석하여 같이 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눴던 남자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우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자다.'
지금 이 거대한 중압감을 보내고 있는자의 정체가 바로 그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나를 부르고 있어.'
선우는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 터벅
그리고 천천히 거대한 기운 쏘아져오는 근원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터벅 터벅
공터를 벗어나고
터벅 터벅
숲길을 지났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선우는 머지않아 또 다른 공터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중앙에 서있는 남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오, 이제 왔구만.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네."
선우의 등장에 남자는 반색하며 말을 이었다.
"선배님은 저의 적입니까?"
선우는 대뜸 그에게 물었다.
갑자기 기운을 흩뿌려 그를 부르다니 적이 아니라면 뭣하러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아닐세."
선우의 물음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나 , 난 오늘 자네를 해칠 생각이 없다고 말일세"
남자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저 아깝더군, 자네와 같은 강자와 칼을 섞지 못한다는 사실이 말이야."
스르릉
남자는 천천히 옆구리 차고 있던 검대에서 검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자네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남자는 웃으며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 또한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대에서 검을 뽑았다 .
스르릉
그의 검이 달빛의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그럴리가요."
선우는 남자의 말에 부정하였다.
자신은 그저 눈앞의 남자가 위험이 될만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나선 것 뿐이었다.
제 목숨 챙기도 바쁜 와중에
호승심이라니 말도 안되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네, 무인이 호승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세."
그의 말에 선우는 혼란스러웠다.
호승심이라니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그 증거로 자네가 여기 와있지 않는가? 나를 만나러 말일세."
선우의 반응에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자, 내 검을 보게나"
남자는 선우를 향해 검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흔들기 시작하였다.
"어떤가? 부딪혀보고 싶지 않나? 전력으로 말일세."
부딪히고 싶었다.
전력을 다해서 말이다.
"흐흐 그럴 줄 알았네."
선우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남자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하였다.
선우는 갑자기 느껴진 감정에 얼떨떨하였다.
호승심이라니
지금까지 항상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자나 약한자들과 싸워왔던 선우였기에 그런 감정은 생소하기 그지 없었다.
"서론이 길었구만. 자 어서 오게나."
남자는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고 선우에게 손짓하였다.
남자의 손짓에 선우는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선우는 검에 내력을 잔뜩 불어넣었다.
선우는 남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창
남자는 선우의 검을 어렵지 않게 받아넘겼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튕긴 후 재빨리 손목을 꺾어 그의 몸통를 베어들어갔다.
'빨라'
남자의 대응에 선우는 감탄하였다,
저리도 빠른 전환이 가능할 줄이야
챙
선우는 튕겨진 검을 재빨리 회수한 후 치켜들어 가까스로 남자의 검을 막아내었다.
선우와 남자는 검과 검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하하하하 과연 감이 좋구만."
남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을 터트렸다.
"선배님이야말로 강하시군요."
선우 또한 남자를 보며 감탄성을 내뱉었다.
강한 줄은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검을 섞으니 상상이상으로 강하였다.
"그럼 계속하게나."
남자는 다시금을 선우의 검을 다시 튕긴 후 재빠르게 선우의 팔을 베어들어갔다.
쇄애애액
어찌나 빠르게 휘둘렀는지 공기가 가르는 소리가 선우의 귀를 강타하였다.
'이건 못막는다.'
그리고 직감하였다.
이미 막기에는 너무나 빠른 검속이라고 말이다.
직감은 곧이어 행동으로 이어졌다.
선우는 용천혈에 내력을 집중한 후 그대로 폭발시켰다.
펑
선우의 다리가 땅을 박차고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남자의 검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크하하하하 즐겁구나 즐거워."
남자는 그런 선우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는 지금 무척이나 즐거웠다.
이정도 경지에 이른 검수는 오랜만에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렇게 젊은 나이에 말이다.
검이란 것은 겪으면 겪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법
눈앞의 젊은이의 검은 그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절로 흥이 돋아났다
"자아, 다시 놀아보자구나!"
흥이 돋은 남자는 그대로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챙
서로의 검격이 부딪히며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챙
남자는 선우의 허점이라 생각되는 부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챙
선우 또한 남자의 검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 발악을 하였다.
챙
하지만 검격이 오갈 수록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강했다.
선우 이상으로 말이다.
그는 선우보다 강하였으며 기술 또한 범접치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챙 챙
하단을 노리고 들어간 공격은 그가 가볍게 휘두른 검격에 막혀버렸다.
퍽
그리고 그의 발이 선우의 가슴을 가격하였다.
그는 검만 쓰는 것이 아니었다.
검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이용하여 선우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퍽
이번에는 턱이었다.
뇌가 흔들렸는지 정신이 아찔하였다.
하지만 선우는 쓰러지지 않았다.
피슉
이내 팔에 가벼운 자상이 나버렸다.
고통이 밀려왔지만 선우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즐거웠다.
미친 듯이 즐거웠다,
여기저기 멍든 자국이 새겨졌지고 자상이 생겼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았다.
검을 섞으면 섞을 수록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선우는 무공을 익히고 처음으로 호승심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의 검이 더욱 요란하게 휘둘러졌다.
지금은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챙 챙 챙 챙
수 많은 금속음이 공터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
.
.
.
.
.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쿠쿵
이내 선우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마음같아선 더 휘두르고 더욱 집요하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한계였다.
그의 빠르기 그지없는 검격을 막기위해 무리하게 몸을 굴렸다.
근육이 파열되기 직전까지 힘을 쥐어짰으며 뼈가 상하기 직전까지 검을 휘둘렀다.
멀쩡하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리라
선우는 천천히 자신 앞에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선우와 달리 남자의 호흡은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와 선우의 수준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리라
"하아..,하아...선배님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선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물었다.
"말하지 않았나? 한 자루 검에 불과하다고 말일세."
남자는 선우의 물음에 씨익 웃으며 말하였다.
"기분이 어떤가?"
"즐겁습니다. 미치도록 말입니다."
"지금 그 기분을 잊지말게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터이니."
남자는 선우에게 웃으며 답하였다.
선우 또한 남자의 말에 미소로 화답하였다.
*************
"선배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선우와 요랑은 짐을 챙긴 후 남자에게 목례를 하였다.
"하하하 살펴들가시게나"
선우의 인사에 남자는 웃음으로 화답하였다.
"선배님, 혹 이름이라도 가르쳐줄 수 없으십니까?"
선우는 막상 헤어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짧은 시간였지만 선우는 그와의 비무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화경에 오른 이후 깨달음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던 그에게는 덧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최고의 선물을 안겨준 이와 헤어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 석자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누히 말하지 않았나, 내게 이름은 의미가 없다네."
"역시 그렇군요."
선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 남자는 이름을 끝까지 이름을 말해주지 않을 생각인 듯 싶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선우는 다시금 목례 후 몸을 돌린 후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요랑 또한 남자를 향해 손을 몇 번 흔든 후 선우를 따라 몸을 돌려 걸어갔다.
남자 또한 요랑에게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배웅해주었다.
"또 붙어보면 좋겠구만"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남자는 기분 좋은 흥얼거렸다.
오랜만에 재밌는 상대였다.
검을 섞을 수록 성장하는 모습이 마치 과거의 양태산을 보는 듯 하였다.
남자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니 끝이 안보일정도로 쭉 이어진 대로가 보였다.
"하아 북해까지 언제 걸어갈꼬"
대로를 본 남자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해는 멀어도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