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129. 한 자루 검 같은 남자를 만나다-1
"도로롱 휘유 도로롱 휘유"
요랑의 코골이가 객방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쓱 쓱
선우는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숨쉬는 것도 힘들어 하던 애가 저리 코를 고는 걸보니 몸 상태가 원래대로 회복 된 듯 보였다.
선우는 이불보를 살짝 들쳐올린 뒤 그녀의 몸상태를 확인해보았다.
여기저기 베인 곳이 가득하던 그녀의 몸에는 어느새 새살이 돋아났는지 말끔해져 있었다.
과연 영물이라 그런지 인간과는 전혀 다른 회복력을 자랑하는 그녀였다.
"후우"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그녀의 상태를 봤을 때만해도 얼마나 놀랐던가
온몸은 피투성에 여기저기에 자상이 가득한 모습에 선우는 머리끝까지 화가 솟는 것을 느꼈다.
결국 분이 풀릴 정도로 날뛰고 나서야 진정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후에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후에는 요랑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느꼈다.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그들을 죽이지 않았던 그녀 덕분에 선우는 어떻게든 일을 수습할 수 있었다.
만약 요랑이 그들을 전부 죽였다면 일은 수습조차 못할 정도로 커졌으리라
쓰윽 쓰윽
선우는 더욱 부드럽게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우웅"
그때였다.
요랑은 몸을 뒤척이기 시작하였다.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굴까?
당대부인일까? 아니면 당서윤? 금적화?
궁금증이 일은 요랑은 눈을 살며시 뜨기 시작하였다.
"선우야?"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인물을 확인 할 수있었다.
선우였다.
그녀는 꿈일까 싶어 눈을 비볐다.
선우가 자신의 머리를 이리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다니 흔치 않는 일이었다.
그는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기 보단 냅다 주먹을 갈기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이리도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니 위화감이 들었다.
"더 자."
선우는 눈을 비비는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으으으"
선우의 부드러운 말투에 요랑은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에 낯선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랑아"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에?"
"고마워."
"뭐가?"
"약속 지켜줘서."
만약 그녀가 선우와의 약속을 잊고 그들을 전부 죽였다면 지금쯤 선우는 추살대에 쫓기는 몸이 되었으리라
"새끼 손가락 걸었잖아?"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새끼 손가락을 걸면 무조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인간 사회의 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무엇이 고맙다는 말인가
요랑은 이해가 안되었다.
쓰담 쓰담
선우는 그 모습이 귀여워 다시금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작 그런 말 한마디로 신뢰를 지켜낸 그녀가 대견하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선우는 그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짐하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만들겠다고 말이다.
"우응"
요랑은 영문을 몰랐지만 머리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 좋았기에 그저 대답만 짧막하게 하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요랑아"
"응?"
"내가 너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은 절대 해치지 말라고 했잖아?"
"맞아, 나 잘지켰어!"
"그 약속 새롭게 바꿔도 될까?"
"뭔데?"
"네 목숨이 위험할 땐 그냥 죽여버려."
"뭐?"
"차라리 그게 낫겠더라고"
진심이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는다면 평생 후회 속에 살 것 같았다.
"싫어."
하지만 선우의 그런 말에 요랑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응?"
"사람 죽이면 너랑 당대부인이랑 삼부인이랑 당서윤이랑 헤어져야 하잖아. 난 그런거 싫어."
요랑은 손가락을 하나씩 꼬물거리며 선우에게 설명을 하였다.
그모습을 본 선우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까짓게 뭐라고 자기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단 말인가
"그럼 다르게 약속하자, 목숨이 위험하면 힘을 개방해서라도 도망치기로"
"좋아!"
요랑은 선우에게 말갛게 웃으며 답하였다.
그 모습에 선우 또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꼬르륵
그때였다.
요랑의 뱃속에서 우레와도 같은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선우야아아 , 나 배고파아아"
뱃속 상황을 인지한 요랑은 선우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것도 못 먹고 하루종일 기절해 있었으니 배고플만도 하였다.
"잠깐만 기다려, 밑에다 먹을 것좀 올려달라고 말해놓을테니까."
"히히히히히 알았어"
요랑의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
타타탁 타타탁
두 명의 남녀가 산길을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와그작 와그작
"와압 냠냠냠"
그리고 여자는 입에 월병을 잔뜩 넣고는 마구 씹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너 그러다 속 뒤집힌다."
옆에서 앞장서 뛰던 남자, 선우가 요랑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개와나 나아챠햐(괜찮아 나 안체해)"
그의 말을 들은 요랑은 입에 가득찬 월병 때문인지 우스운 발음을 하며 답하고 있었다.
균현에서 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삼일이 흘렀다.
객잔에서 하루밤을 보낸 그들은 아침 일찍 짐을 챙겨 출발하였다.
원래라면 잠깐만 식료품만 챙겨서 이동할 생각이었지만 요랑의 회복을 위해 하루를 더 소비하였다.
예상치 못한 문제로 예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선우는 백화봉을 향하는 속도를 더욱 높였고 요랑은 그런 선우의 속도를 잘따라오고 있었다.
균현에서 요깃거리를 많이 챙겨둔 덕인지 그녀는 삼일이나 고된 행보를 이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큰 불평이 없이 잘 따라왔다.
그 모습을 보며 선우는 후회하였다.
처음부터 월병이나 당과만 잔뜩 챙겨놨으면 옛적에 도착했겠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잠도 최소화하고 쉴새없이 달릴 덕택인지 그들은 하남의 끝자락까지 도달할 수있었다.
이 상태로 하루정도만 더 간다면 백화봉에 닿을 수 있으리라
"서우야 햐뎌뮤러셔!(선우야 해저물었어)"
그때 요랑이 손가락으로 지평선을 가리키며 우물거리는 입으로 말을 이었다.
그녀에 말에 선우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요랑아 속도좀 늦춰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달리고 머무를 곳을 찾자."
마음같아선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고 싶었으나 밤중에 산을 타고 이동할 경우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선우는 서슴치않고 노숙을 결정하였다.
선우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어디 머무를만한 곳이 없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꽤나 넓직한 공터를 찾을 수 있었다.
숲속에 공터라니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일까?
과거 화전민이 밭을 일궈놓은 흔적 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꽤나 아늑하게 생긴 공간이었기에
선우는 쾌재를 불렀다.
"여기 괜찮네."
"맞아, 맞아 여기 괜찮아."
어느새 공터로 달려간 요랑은 벌써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꽤나 열흘에 가까운 시간을 노숙으로 보낸 덕인지 그녀도 자리를 잡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야 누가 먼저 누우래?"
선우는 벌써 자리를 깔고 누운 그녀를 타박하였다.
"왜에에"
"가서 마른가지좀 주워와."
"싫어, 니가 해"
이미 자리를 잡고 드러누운 요랑은 혀를 쏙 내밀고는 선우에게 반항을 하였다.
"왜 맨날 나만 시켜? 오늘은 니가 해"
그녀는 나름 이유있는 반항을 하였다.
그동안 노숙할 때마다 선우는 그녀에게 마른가지를 주워오게 시켰다.
한두번이야 생각없이 잘다녀오긴 하였는데 이게 반복되니 은근 부아가 쌓였다.
"나는 요리하잖아!"
선우는 나름의 항변을 하였다.
"참나, 육포 쪼가리 굽는게 무슨 요리야? 너 인성에 문제 있어?"
선우의 항변에 요랑은 코웃음치며 말을 이었다.
날이 갈수록 언변에 능숙해지는 그녀였다.
'썩을'
요랑의 말에 선우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그동안 알게모르게 귀찮은 일을 떠넘겼는데 그걸 또 눈치 챈듯 싶었기 때문이다.
"요랑아 너 혼자 여기 냅뒀다가 무슨일이라도 나면 어떡하냐? 저번에 풍천루에서 일 기억안나?"
선우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럼 혼자 보내는 건 괜찮고? 난 바보가 아니야. 생각해보면 지금껏 마른 가지도 내가 주워왔고 잠자리도 내가 만들었잖아!
'똑똑한 년'
이제는 그녀의 지능이 소녀정도는 아닌듯 싶었다.
"근데 너는 뭐했어? 육포 쪼가리 몇 개 나뭇가지에 끼워서 굽기만하고 가만히 누워서 쉬기만 했잖아!"
"............"
그녀의 열변에 선우는 할 말이 궁색해졌는지 시선을 돌렸다.
사실이었다.
그동안 선우는 온갖 잡일을 전부 그녀에게 맡겨두었다.
그가 한 일이라곤 그녀가 가져온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피우고 육포를 구운 것 뿐
모를줄 알고 계속 시켰는데 사실은 다 알고 있던 듯 싶었다.
"이제는 내가 요리할테니까 니가 다른 일 다해!"
"........."
선우는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약간 머쓱해졌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허허허 마른 가지는 내가 주워줌세, 그만 싸우게나."
어디선가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당황하여 재빨리 몸을 튼 후 허리에 있는 용미연검을 잡았다.
선우는 긴장된 기색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중년의 남자가 나뭇가지를 한 아름 가득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
'분명 기척을 못 느꼈는데?'
꽈악
선우는 용미연검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욱 주었다.
선우는 절대지경이라고 불리우는 화경에 경지에 오른 이였다.
그런 그가 기척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말은즉슨 눈앞의 남자가 적어도 자신에 버금가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소리였다.
"누구십니까?"
선우는 긴장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허허 긴장할 것 없다네, 그저 지나가던 객일세."
"지나가던 객이면 그대로 지나가는게 어떻겠습니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야박해졌구만 불 정도는 나눠줄 수 있지 않겠는가?"
선우의 당돌한 말에도 남자는 그저 웃으며 말을 받을 뿐이었다.
"보다시피 불이 없어서요."
"괜찮네, 불이야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으니 말일세."
우르르
남자는 한아름 쥐고 있던 나뭇가지들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화르르
그리고 손에 불을 일으킨 후 마른 나뭇가지에 가져다대었다.
화르륵
나뭇가지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붙었다.
'삼매진화!?'
그렇다.
남자는 삼매진화를 일으켜 불을 피운 것이다.
털썩
남자는 그 곁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자네들도 어서 이리와서 앉게나."
남자는 선우와 요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거절한다면 저희를 죽일 겁니까?"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허허허허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선우의 말에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보다 무공이 강하다고 모두가 자네의 적은 아닐세."
남자는 선우를 씨익 미소를 지었다.
"거절해도 상관없다네 , 물론 밤을 같이 보낼 말 벗을 잃을테지만 그게 자네들을 죽일 이유는 되지 않지."
남자의 말에 선우는 긴장이 살며시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눈앞의 강대하기 그지 없는 남자는 자신에게 적의가 없는 듯 하였다.
하지만 완전히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쯔쯧, 그동안 삶이 고달팠나보구만, 뭐 그리 겁먹은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우는가"
선우의 그런 속내를 알았는지 남자는 선우를 보며 입을 떼었다.
"내 검을 걸고 맹세하지, 내 오늘 자네를 해칠 일은 없을 걸세."
남자는 옆에 비껴찬 검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한참 고민하더니 이내 걸음을 옮겨 그가 피워놓은 불가에 다가갔다.
털썩
"요랑아 너도 와."
자리에 주저앉은 선우는 요랑을 불렀다.
선우에 말에 요랑은 쪼르르 걸음을 옮겨 그의 곁에 앉았다.
"호오 이거보게."
그런 요랑의 모습을 본 사내는 흥미로운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선우는 긴장하였다.
설마 이자도 요랑의 외모에 반한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균현 풍천루의 사건은 선우에게 요랑의 외모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각인해주는 사건이 되었다.
그렇기에 선우는 긴장했다.
최소 자신과 맞먹을 정도의 무력을 가진 남자가 척을 질까말이다.
"이거 재밌구만."
그런 선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선우는 가만히 그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어째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행세를 하고 있는가?"
남자는 요랑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이 말을 들은 선우의 눈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어떻게 한눈에 그 사실을 안단 말인가
"당신...누구십니까?"
"내게 이름 따위는 없다네."
선우의 말에 남자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저 누군가의 한 자루 검일 뿐이지."
요랑을 보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선우를 바라보았다.
"자네야 말로 정체가 무엇인가?"
"네?"
"정체가 무엇이길래 사람도 아닌것과 같이 동행을 하고 있는겐가?
남자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선우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 선우는 입을 다물었다.
설마하니 요랑의 정체를 간파한 이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