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128. 이재원, 당가를 비호하다
'하아 시발'
남자가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고는 이마를 짚었다.
"상공, 제 말을 들어보세요!"
녹빛의 고운 비단 옷을 입은 귀부인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 제 말부터 들어주세요!"
눈처럼 하얀 빛의 고운 비단 옷을 입은 귀부인 또한 지지 않으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이보세요. 황보부인 지금 제가 말하는 거 안보이나요?"
"흥, 보나마나 상공께서 신경 쓸 필요 없는 하찮은 일이겠죠. 당부인은 항상 그런식이지 않습니까? 별것도 아닌일을 큰일인냥 호들갑 떨면서 말이죠."
"말 다했나요?"
"다 못했다면!"
두 귀부인은 서로 삿대질까지 해가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하아 시발 머리아파'
이마를 짚은 남자, 이재원은 지금 심각한 두통에 휩싸였다.
월말쯤 되면 항상 벌어지는 월례행사라지만 항상 적응이 안되었다.
이 망할 계집년들은 월말쯤 되면 쪼르르 달려와서 이거해달라 저거해달라 지랄하는 것이 일상이 년들이었다.
저 년들이 원하는 것은 뻔하였다.
삼부인 당진설의 경우 외가인 사천당문이 마교에 의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가까스로 멸문은 피했다지만 직계 혈족들의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기에 피해가 막심하다고 들었다.
세가가 운영하던 사업체들을 대다수 정리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니 아마 지원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왔을 것이다.
육부인인 황보유연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황보세가에서 서역 유통 사업을 손대었다가 큰 손해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세가가 가진 자본의 절반이상을 쏟아부은 사업인 만큼 손해 또한 막심했으리라
그녀 또한 분명 원조를 요청하러 왔으리라
"황보유연! 네년이 정녕 죽고 싶은게로구나!"
"당진설, 네년이야말로 살기 싫은게로구나!"
두 여인은 기세를 피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당진설과 황보유연 모두 초절정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여인들이었다.
우우우우웅
덜그럭 덜그럭
그들이 기세를 피어올리니 집무실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만"
사태가 심각해지니 이재원은 짧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비록 한마디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당진설과 황보유연은 기세를 낮췄다.
'하아 시발'
이재원은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예전에 젊었을 때는 캣파이트라며 자신을 두고 부인들이 싸우는 것을 은근 즐기던 그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성숙미가 더해진 그녀들의 싸움은 이재원으로서는 더 이상 보기싫은 관례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십대 특유의 상큼함과 풋풋함이 사라져 버린 채 저 쓸데없이 커다란 젖탱이를 부비며 기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니 역겨움이 올라왔다.
'여자는 자고로 적당한 가슴과 늘씬한 허리 아담한 둔부가 제격이지, 시발'
이재원은 속으로 마누라를 욕하며 입을 열었다.
"설매부터 차근차근 말해봐."
이재원은 짐짓 위엄있는 척을 하며 말하였다.
"상공, 지금 이십여 년 전 사라졌었던 마교가 다시 발호하여 중원을 침략한 사실을 잘 알고 계실겁니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천무맹의 비선들은 중원 곳곳에 퍼져있기에 마교 발호에 대한 정보를 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천당문은 그들의 발호를 일찍이 눈치채고 이를 저지하였습니다. 무림의 안전을 위해 가문의 존망을 걸려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서서 마교의 무리들을 저지한 것입니다. 어찌 무림을 수호한다는 천무맹 입장에서 이를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
물론 당가는 제일 먼저 마교의 먹잇감이 된 것에 불과하였지만 당진설은 이 사실을 교묘하게 숨기고는 마교에 맞선 영웅들로 당가를 포장하였다.
아마 천무맹의 원조를 받기위해서는 마교의 습격으로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마교와 용감히 맞서싸우다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포장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흥, 그냥 습격을 받은 것이지, 무림의 수호는 무슨."
그때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황보유연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가 마교의 습격을 교묘히 포장하려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당진설은 도끼눈을 뜨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째릿
황보유연도 이에 질세라 똑같이 도끼눈을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싸움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내가 어찌해주면 되겠소?"
이재원은 빠르게 결론을 지어버렸다.
다 늙어빠진 년들의 캣파이트 따윈 더 보고 싶지 않았기때문이다.
당가는 마교로 인해 최초로 피해를 입은 세가였다,
제대로 된 보상이 없다면 모두들 나서길 꺼려할 것이다.
"상공."
자신의 편을 들어준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당진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당가에 방위할 수 있는 무력부대를 하나 보내주세요. 그리고 천무맹의 이름으로 당가를 비호하겠다고 선언해주세요."
이는 그녀 나름 타당한 요구였다.
당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죽은 직계들을 대신할 전력들이었다.
지금 사업체를 한꺼번에 전부 정리한 이유 또한 사업체를 유지할 돈이 없다기보단 사업체를 유지할만한 전력의 공백이 생겼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 천무맹에서 무력 부대를 지원해준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 분명하였다.
작금 중원에는 당가라는 매력적인 먹잇감을 집어삼키려는 자들이 여기저기 즐비해 있었다.
당가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지만 무력의 부재가 생긴 것일 뿐
당가는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적인 야장기술과 뛰어난 약초학 및 의술을 소유한 금덩어리 같은 집단이었다.
그들을 집어삼킬 수 만있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이때 천무맹에서 무력부대를 지원 후 공식적으로 비호를 선언한다면 누가 되었든 함부로 당가를 건들지는 못할 것이다.
천하제일인이 직접 비호를 약속하는데 누가 감히 그들을 함부로 대할 것인가
"그리하겠소."
이재원은 그녀의 대답에 의무적으로 답하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뿐더러 이 시끄러운 아줌마를 치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였기에 깊은 생각 없이 결정한 일이었다.
"그다음 연매도 말해보구려."
"저희 황보세가는........."
황보유연도 그에게 황보세가의 재정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황보세가는 당가와는 달리 무력의 부재가 아닌 재력의 부재가 컸다.
이번 서역진출에 너무나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이미 출가한 몸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뒷배가 되어주던 황보세가였다.
이대로 몰락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말에 이재원은 고민에 빠졌다.
전력이 부족한 당가의 경우 무력부대만 보내고 비호만 약속하면 되었기에 혼쾌히 허락하였지만 황보세가의 경우는 달랐다.
경제관념이 전혀없는 그였지만 함부로 지원을 약속했다간 등골이 빼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지원 받길 원하오?"
"대략 은자 오십만냥 정도입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말하였다.
'시발년이 진짜, 오십만냥이 누구집 애 이름이야?'
이재원은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오십만냥이 누구집 개 이름인가
뭐 그리 쉽게 내뱉는단 말인가
물론 천무맹 측에서 못 지급할 만한 돈은 아니였다.
천무맹은 세력이 큰 만큼 운영하는 사업체 또한 전 중원에 퍼져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명분도 없이 돈을 쥐어줄만큼 사사로운 단체도 아니었다.
"연매도 알다시피 천무맹에서 공식적인 지원을 하기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오, 당가의 경우 마교로 인한 피해 극심하였기에 지원을 약조하였지만 사업에 실패한 황보세가에 경우 명분이 서질 않는구려, 내 개인적인 자금의 지원은 약속할 수는 있지만 천무맹 측의 공식적인 지원은 힘들겠구려."
이재원은 머리를 굴려 대충 둘러대기 시작하였다.
틀린 말 또한 아니었다.
천무맹이 무슨 자선단체도 아니고 사업 실패한 곳에 돈을 왜 준다는 말인가
그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지금 황보세가는 상황이 심각하였다.
여기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세가 급격히 작아질 것이다.
남편인 이재원이 개인적인 자금 지원을 약속하긴 하였으나 기껏해야 몇 만냥이 고작일 것이다.
그정도로는 사업실패 자금을 메꿀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고소를 머금었다.
무식하게 무력만 갈고닦아서 그런지 황보세가의 인물은 폭급하고 저돌적이기 그지 없었다.
서역유통 사업 또한 큰 돈에 눈이 멀어 앞뒤재보지 않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쯔쯧, 멍청한 놈들'
아마 황보세가가 파산하게 된다면 천무맹에서 황보유연의 입지 또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후계싸움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그럼 얘기는 이것으로 끝난 걸로 알겠소, 내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따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포할터이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시구려."
이재원은 자연스레 당진설과 황보유연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더 냅둬봤자 괜히 골만 깊어진다.
빨리 눈앞에 치우는게 상책이리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진설과 황보유연은 이재원에게 짧게 목례를 한 후 그대로 나가버렸다.
"하아 시발"
이재원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렸다.
드디어 저 귀찮은 년들을 내쫓은 것이다.
이재원은 집무실 책상에 두 다리를 올리고 그대로 의자에 기대어 누웠다.
이재원은 연달아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음양마와 사라진 장삼을 찾아죽여야하것만 마교까지 발호해버렸다.
골머리가 아파왔다.
자신이 존재하는데도 마교가 발호했다는 것은 적어도 이십여년 전에 상응하는 전력을 회복했다 증거였다.
"시발 설마 천마새끼 부활한 거 아니야?"
선옹이 말하길 천마는 불멸에 가까운 존재라고 하였다.
때문에 티끌도 남기지 않고 전부 없애야 말하였다.
이재원은 불안감이 들었다.
천마가 부활한 것이라면 무척이나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음양마만으로 상대하기 짜증나것만 천마라니
이재원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다.
천마는 분명 핏물만 남긴 채 온몸이 소멸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부활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재원은 주위를 환기 시켰다.
아무래도 요즘 업무에 치여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듯 싶었다.
피로회복을 위해 어린 계집 몇 몇을 납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되지만 요즘따라 자신이 낳은 딸년들에게 눈길이 가곤 한다.
절세미녀인 어머니의 피를 제대로 이어받은 것인지 하나같이 예쁘지 않은 년들이 없었다.
특히 주소양의 딸 이예설의 경우
딸년만 아니라면 진즉에 자빠뜨렸을 정도로 그의 취향 그 자체인 계집이었다.
'처녀겠지?'
이재원은 딸인 이예설을 상상하며 양물을 움켜잡았다.
아무래도 몇 발 빼야 될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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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맹 본단 중앙 연무장
수많은 천무맹의 무인들이 그곳에 시립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비장하였으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때였다.
뚜벅 뚜벅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소리가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발자국 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니 천무맹주 이재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단상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내 단상 위로 올라온 이재원은 그들을 돌아보며 입을 떼었다.
[자랑스러운 천무맹의 무인들이여, 오늘 그대들을 모두 집결시킨 이유는 다들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여긴다.
그렇다.
이십여년 전 무림을 짓밟았던 마교의 무리들이 다시금 중원 땅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한달여 전 우리의 맹우이자 과거 마교에 맞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중원을 수호하였던 사천당문이 마교의 무리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천의 영웅들은 이십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마교의 무리들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었다
본맹주는 이 사실을 알게된 이후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사천당문이 도대체 어떤 가문이라는 말인가
마교와 전쟁당시 모든 병장기와 모든 의료행위를 무상으로 제공하였던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정마대전의 영웅이 아니던가
또한 당가의 가주인 독왕 당진철은 당시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갑철기병을 단신으로 전멸시켜버린 영웅 중에 영웅이었다.
본맹주는 분명 마교가 당가의 영웅적인 행보에 원한을 품고 이러한 일을 벌였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그들은 강대하기 짝이 없다는 당가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최악의 경우 마교의 무리들은 적어도 이십여년 전 이상의 전력을 회복한 것일 수 도 있다.
중원의 수많은 문파들과 세가들이 당가와 같은 꼴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 맹주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았고 그에 걸맞는 대처를 하겠다 결정하였다.
제일 먼저 천무맹의 모든 타격부대를 각 지역의 주요 문파에 배치할 요량이다.
또한 당가와 같은 선례를 남기지 않기위해 철저한 준비할 것이다.
추악한 악의 무리들을 뿌리째 뽑아낼 것이다.
또한 마교와 용맹히 맞서 싸운 당가에는 천무맹 최고의 부대인 청룡당을 배치할 것이다.
그리고 천무맹주의 이름으로 당가를 비호할 것을 선언한다.
당가를 건든다는 것은 천무맹 그리고 나 절대무신 이재원과 척을 진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마교에 맞서 가장 용맹하게 나선 이들은 당가와 마찬가지로 나 절대무신 이재원의 비호를 얻게 될 것이고 두려움에 도망친 자들은 나 절대무신 이재원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무인들이여
이 자랑스러운 중원 땅을 마도의 무리에게 넘겨주겠는가?
우리의 얼이 서려있는 이곳이 짓밟히도록 냅둘 것인가?
자랑스러운 천무맹의 무인들이여
용맹히 들고 일어서라
영광이 그대들과 함께하리라]
"와아아아아아아!"
"마교놈들을 때려부수자!!"
"천무맹주 만세! 절대무신 만세!"
이재원이 연설을 끝마치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환호가 터져나왔다.
모두 이재원의 연설에 감동을 먹은 것이리라
이재원은 그들의 반응에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무슨 말을 하든 정의와 대의명분만 내세우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무림인들이 한 없이 웃겼기 때문이다.
'어디 꼴릿한 계집 없나?'
이재원은 단상 위에 서서 천무맹의 무인들을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다음 먹잇감을 물색할 요량이었다.
그런 이재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무맹 본단에는 함성 소리만 울려퍼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