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126. 용봉들을 털어먹었다-1
그때였다.
"그렇다면 혹 살인멸구를..?"
용봉 중에 한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아, 들키면 안되니까 아예 죽여버리자고?"
"네, 그렇습니다. 독왕에게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고 고하는 것이.."
남자는 확신에 찬 듯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숨길 수 없다면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너 이름이 뭐냐?"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
"모용계입니다."
"혹시 계자가 닭할 때 계(鷄)야?"
"아니요, 용맹하다할 때 계(猤)입니다."
"이제부터 바뀌, 닭 계(鷄)로."
말을 마친 선우는 그대로 그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을 하였다.
퍽
"크악"
퍽
"으억"
선우의 주먹질에 모용계가 비명을 질렀다.
"개소리 할래?"
선우는 모용계가 기절하기 직전까지 쥐어 패버렸다.
기껏 분위기를 잡았놨더니 이게 무슨 산통깨는 소리란 말인가
분명 배울만큼 배운 무림의 후기지수임에도 불구하고 어벙한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면 어딜가나 고문관은 존재하는 듯했다.
선우는 짐짓 신색을 회복한 후 다시 용봉들을 향하였다.
"죽일거면 니들을 죽였지, 육부인을 왜 죽이겠냐?"
선우의 서슬퍼런 말에 용봉들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아오 저 닭대가리새끼 진짜'
'아가리좀 닥치고 있을 것이지.'
'눈치없는 새끼 진짜'
평소 모용계는 용봉들 사이에서도 눈치 없기로 정평난 자로 거기다 생각 또한 짧아 경솔하기 그지 없었다.
용봉들은 널부러진 모용계를 보며 혀를 찼다.
저 눈치 없는 놈이 매를 벌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해결해야 할 것은 두 가지야, 하나는 사부님을 만나기 전에 육부인의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녀의 입을 막는 일."
선우는 용봉들을 되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사부님께서는 현재 은거하신 옛 지인을 만나기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이야, 칠주야 뒤에 만나기로 하였지. 그전까지 육부인을 원상태로 되돌려놔야해."
선우의 말에 용봉들은 절망에 빠졌다.
고작 칠일 남짓한 시간 안에 온몸이 난도질 된 여인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단 말인가
가문의 소속된 어떤 의원을 데리고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모용계말대로 살인멸구하는 방법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번쩍
선우의 말에 용봉들은 다시금 그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절망적이던 그들의 표정에 희망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사천당문은 천하제일독문이라고도 불리우지만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우지."
".........천하제일의문"
그의 말에 들은 이예설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
당가는 천하제일독문이면서 천하제일의문이라고 불리우는 최고의 의문이었다.
만약 육부인을 치료하여야 한다면 당가에서 맡는 것이 당연한 일이리라
"나 또한 사부님에게 독공뿐만 아니라 의술까지 전수받았기에 그녀를 치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이예설의 눈에 희망이 서렸다.
만약 육부인만 원래 상태로 되돌아온다면
풍천루에 일어났던 일들이 없던 일만 된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육부인을 단기간에 말끔히 치료하는 일은 일반적인 약재들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야."
선우는 희망에 찬 그들을 보며 말을 하였다.
"희귀한 약재들이 대량으로 필요할거야, 열양초, 음월지초, 오십년 묵은 하수오같은 것들로 말이야."
선우의 말을 들은 용봉들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열양초는 남만지방에서만 난다는 희귀한 영초였다.
극양의 기운을 품고 있기 때문에 열양지공을 익힌 무인 뿐만 아니라 정력 보충을 위해 거부들이 돈을 아끼지 않고 사들이는 영초였다.
그리고 음월지초는 무엇이란 말인가
달빛을 듬뿍 받고 자란 음기가 가득한 영초가 아니던가
이 또한 극음의 기운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음한지공을 익힌 무인들에게는 천고의 영약처럼 여겨지는 영초였다.
오십 년 산 하수오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무인들이라면 너도나도 탐을 내는 귀하디 귀한 영약이었다.
이 남자는 그들에게 하나같이 귀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다.
"모두 합하면 대략 은자 오만냥 정도 나올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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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의 물음에 그들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아무리 자신들이 명문대파 소속이라지만 그렇게 귀한 것들을 살만한 큰돈은 없었다.
"말도 안돼요! 어떻게 자상을 치료하는데 열양초와 음월지초 같은 상극의 약재를 혼용해서 쓰는 거죠?"
그때 제갈지아가 선우의 말에 불신을 표했다.
그녀의 말대로 열양초와 음월지초는 각 각 극양과 극음을 품고 있는 영초였다.
둘이 혼합될 경우
섞이긴 커녕 약효가 해소 될 것이 뻔하였다.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육부인의 상처를 핑계로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리라
'예리한데'
선우는 날카로운 지적에 감탄하였다.
제갈지아는 선우가 무슨 거짓말을 하던 그 허점을 찾아 잘 찔러들어왔다.
과연 치지봉다운 면모이리라
"누가 섞어서 쓴대? 따로 따로 쓸거야. 약재는 어떻게 쓰냐에 따라 독이 되고 약이 되지. 열양초와 음월지초도 마찬가지야, 어떤 방식으로 쓰냐에 따라 천고의 영약이 될 수 있지. "
선우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나불대었다.
어차피 저들은 의술이라곤 티끌만큼도 모를 것이 뻔하였기에 선우는 마음 편히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너희들이 따질 처지는 아닐텐데? 지금 나말고 육부인을 되돌릴수 있는 사람 있어?"
"............"
선우의 물음에 제갈지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이었다.
지금 이 사태를 수습할만한 인물은 눈앞의 남자밖에 없었다.
용봉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쫄지마,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있잖아? 각자 조금씩 보태면 돈을 만들 수 있을거야."
선우는 사색이 된 그들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인원은 대략 스무명 정도였다.
그렇다면 못해도 인당 은자 이천 오백냥정도는 납부해야한다는 소리였다.
기껏해야 후기지수에 불과한 그들이 그렇게 큰 돈을 굴릴만한 재주가 있을리가 없었다.
그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더.
"왜 말이 없어?"
"저..기 대협"
그때 제갈지아가 선우를 보며 입을 떼었다.
"뭐?"
"저희가 비록 세가나 문파에서 용봉이라 불리울 정도로 유망한 후기지수긴 하지만 그렇게 큰 돈을 융통할만한 위치는 아니예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문파와 가문에서 알아주는 기재라고는 하지만 은자 이천오백냥이라는 거금을 덥석 내줄리 만무하였다.
아마 무공을 익히다 돌아버렸다며 매서운 매질이 날아올 것이 분명하였다.
"괜찮아 괜찮아 다 방법이 있어."
선우는 그들을 보며 태연히 말을 이었다.
"다들 신분패 가지고 있지?"
그는 뜬금없이 그들에게 신분패의 여부를 물었다.
그의 물음에 용봉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안가지고 다니는 자가 어디있겠는가
그들이 무인이기는 하나 타 성이나 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분패 검사를 맡아야했다.
"잘됐네."
그들의 반응에 선우는 쾌재를 불렀다.
다행이도 신분패가 없는 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풍천루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쭉 걸어 들어가면 만금전장 균현지부라는 곳이 나올거야. 검증된 신분패 하나와 수결 도장 하나만 있으면 작은 금리로 큰돈을 융통해주는 아주 고마운 곳이지. "
선우들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빌려와."
선우의 말을 들을 용봉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아..아니! 대협 지금 저희보고 사채를 끌어다 쓰라는 건가요!?"
제갈지아는 흥분한 기색으로 선우에게 되물었다.
선우의 말을 요약하자면 가문의 이름을 보증으로 돈을 빌리라는 소리가 아니던가
그럴 순 없었다.
만약 그들이 돈을 제때 갚지 못한다면 만금전장은 가문으로 돈을 받으러 올 것이 자명하였다.
더구나 만금전장은 당가주의 삼부인 금적화의 처가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가문이나 문파의 힘으로 함부로 겁박할 수 있는 곳 또한 아니었다.
"말도 안됩니다. 대협!"
"가문의 이름으로 돈을 빌린 사실을 알려지면 저는 맞아죽습니다."
"그렇게 큰 돈을 사문의 이름을 걸고 함부로 끌어다썼다간 몇 년을 면벽수련을 해야할지 모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용봉들은 여기저기 반발하였다.
말도안되는 일이었다.
사채를 쓴 사실을 알려졌다간 가문이나 사문에서 난리가 날 것이 자명할 것이다.
입지가 좁아질 것은 물론 잘못했다간 죽기직전까지 맞아죽을지도 몰랐다.
"그럼 돈은 어떻게 마련하게?"
"........."
"........."
"........."
선우의 물음에 열화같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던 용봉들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의 말대로 돈을 융통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채를 끌어다썼다간 뭇매를 맞을 것이 뻔하였다.
"잘 생각해야 할거야, 만약 여기서 육부인은 회복시키지 못하면 너희들은 당가와 척을 지게 되는거야. 독왕, 그러니까 사부님이 이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 돈으로 무마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게 돼, 자존심이 상한 사부님은 너희들의 사문과 가문으로 쳐들어가서 말하겠지. 사태를 관망하며 지켜봤던 이들의 목을 내놓으라고 말이야."
선우는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후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된 이들을 위해 최악의 상황을 최대한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너희들의 사문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미 전 무림에 협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쓰레기로 낙인 찍혀버린 과거의 유망주를 택할까? 아니면 과거 무림을 구한 영웅이자 절대지경에 이른 독왕이라는 거물을 택할까? 십중팔구 후자일거야. 내기 해도 좋아."
선우의 말을 들은 용봉들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 중 틀린 것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날고기는 인재라하더라도 세가나 문파 입장에서는 독왕과 척을 지며 싸고 돌만큼의 위치는 아니었다.
그것도 육부인을 난도질하는데 방관한 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사문과 세가에서는 그들을 버릴 것이다.
고민 한톨없이 말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이정도 사고를 쳐놓고 은자 이천 오백냥 정도로 퉁치는 것은 싼값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가나 문파내의 입지가 낮아지면 어떤가
몇 년간 면벽 수련을 하면 어떤가
죽기직전까지 맞으면 어떤가
그래도 목숨을 붙일 수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서서히 사채를 끌어다쓰는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생각해보면 문파와 세가 내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불리우는 그들이었다.
은자 이천오백냥은 작은 돈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패죽일만한 돈 또한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빌리겠어요."
그의 얘기를 들은 이예설은 냉큼 대답했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니 혼자 오만냥을 전부 감당하라고 말해도 그렇게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위기에 몰려있었다.
그런데 고작 이천오백냥정도에 모든일을 해결할 수 있다니 어찌 싫다고 할 수 있으랴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당장 빌려오겠습니다."
"저도요."
이예설의 말을 필두로 용봉들은 너도나도 돈을 빌리겠다며 나섰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는데 그정도 액수라면 오히려 싼 편이리라
그때였다.
"잠깐만요."
제갈지아였다.
"뭔데?'
"그런데 육부인을 말끔히 치료한다고해도 그녀의 입을 막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요? 그녀의 입은 어떻게 막을셈이죠?"
제갈지아는 의구심이 들었던 부분을 말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육부인을 치료한다해도 정작 당사자가 입을 연다면 돈만 날리는 꼴이 되어버린다.
그녀가 치료가 되었든 안되었든 독왕은 분노할 것이고 그들의 목을 뽑아버릴 것이다.
"그건 걱정마."
선우는 그녀를 향해 자신감 있게 말하였다.
"육부인은 내 사촌누이야, 그녀도 내가 곤란하게 되는 것을 원치는 않을 거야. 만약 사건이 알려진다면 나 또한 문책을 피하지 못할테니까 그리고 자신 때문에 사부님이 명문대파와 싸움을 붙는 것은 원치 않을거야"
선우는 입에 침을 바르지도 않았음에도 거짓말을 술술 내뱉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부터 쉽다고 처음 거짓말을 쥐어짤때만해도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는데 이제는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인지라 속이 좀처럼 풀리지 않을 수도 있어, 그 감정이 쌓인다면 사부님께 그대로 고할 수도 있겠지."
"뭐라구요!?"
그의 말에 제갈지아는 놀라 되물었다.
그말은즉슨 완벽한 비밀은 보장해줄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이건 말이 다르지 않은가
"대신!"
선우는 흥분한 그녀의 물음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그녀에게 작은 성의 표시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질거야."
"성의 표시라면?"
제갈지아는 의아한 듯 그에게 되물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당가로 귀환했는데, 그곳에 결혼 예물이라던가 뭐 축하 선물이라던가 뭐 이런게 있으면 감동을 받지 않겠어?"
"저희가 그럴 돈이 어딨어요!"
선우의 말에 제갈지아는 말도 안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미 이천 오백냥이나 되는 큰돈을 빌릴 예정인 그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축하선물을 마련한단 말인가
"다 방법이 있지."
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천오백냥은 뭔가 애매하지 않아? 깔끔하게 삼천냥 어때?"
선우의 말을 들은 용봉들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바뀌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