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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5화 (116/1,419)

〈 115화 〉 116. 당가를 떠나다-2

모닥불 앞

두 명의 남녀가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남자는 검은 색 바탕에 용이 자수되어 있는 멋들어진 용포를 입고 있었고 여자는 당가 특유의 녹색 바탕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이게 뭐야!"

녹색 무복을 입은 여자, 요랑은 선우를 보며 소리쳤다.

그녀는 지금 심기가 무척이나 불편하였다.

당가를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 딱딱한 길바닥에서 노숙할 일도 없었지 않겠는가

푹식한 침상이 그리웠고 자신을 이리로 끌고 온 선우가 원망스러웠다.

"뭐 임마."

용포를 입은 남자, 선우는 그녀의 불평에 심드렁히 대답하였다.

하루에도 수십번이나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불평을 해대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였다.

몇 번이나 쥐어박고 협박도 해봤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힘도 어느정도 회복했는지 몇대 쥐어박는 것 정도로는 당최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평 몇 마디 했다고 개패듯이 애를 잡아 팰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지금 당가에 있었으면! 당대부인이 월병도 챙겨주고! 밥도 같이 먹고! 목욕도 같이 가고! 다했을거 아니야!"

요랑이는 이때다 싶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딱딱한 바닥에 월병도 없고 당과도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너 나오기전에 월병이랑 당과 산더미처럼 챙겼잖아!"

선우는 그녀가 싫다고 징징대면서도 월병과 당과를 가득 담기 보자기를 냉큼 챙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된다고! 다 먹었지!"

"그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처먹어!"

대충 어림짐작만 해도 몇 달은 먹을 분량이 것만 이 돼지같은 거미는 그걸 또 다처먹은 모양이었다.

"당가에 있을 땐 그것보다 더 많이 먹었어!"

"망할, 식비가 존나 나간다했더니 범인이 너였구만!"

사실이었다.

서류정리를 하면서 식자재 구입 비용이 상당수 나가는 것에 의문을 느낀적이 있었다.

그때는 애들이 힘들어서 고깃국 좀 먹였구나하고 그냥 넘겼었는데, 아무래도 범인은 요랑인 듯 싶었다.

"아 몰라 몰라!"

요랑은 듣기 싫다는 듯 귀를 먹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걸 쥐어 박아? 말아?'

선우는 속으로 극심한 고민에 빠졌다.

이정도면 참을만큼 참은 것이 아닐까?

한 대 정도 쥐어박아도 정당한 것이 아닐까?

수 많은 상념들이 머리속을 휘저었다.

물론 요랑의 기분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따뜻하고 푹신한 침상에서 잠을 자면서 때 되면 고기 잔뜩 올라가있는 진수성찬이 올라오고 입이 심심할까봐 월병이나 당과같은 간식거리까지 물려주던 당가였다.

그런 주지육림을 강제로 벗어나게 되었으니 불평이 많을 만도 했다.

그래도 떼를 써도 너무 쓰는 것이 아닌가

이미 되돌아오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출발한지 사흘이란 시간이 지났것만 요랑은 여전히 떼쟁이였고 선우의 인내심의 한계를 도달하기 만들기 충분하였다.

선우는 조용히 주먹을 말아쥐며 내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넌 뒤졌다.'

오랜만에 살풀이를 할 참이었다.

그때였다.

꼬르르륵

마치 천둥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선우의 귀를 강타했다.

꼬르륵 꼬르르륵

마치 박자를 타는 듯 반복되는 소리에 선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눈을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가보니 요랑의 배가 보였다.

"힝, 여기서 자꾸 꼬르륵 소리가 나."

요랑은 힘이 잔뜩 빠진 목소리로 주린배를 가리키며 선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에휴"

선우는 한숨을 한 번 내쉬며 주먹을 풀었다.

그래도 정신연령이 이제 겨우 소녀 정도되는 애한테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기다려, 임마."

말을 마친 선우는 품 속에서 말린 육포 몇 개 꺼내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끼워넣은 후 모닥불 위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지글 지글 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그들 주위를 에워쌌다.

"킁 킁"

고기 냄새가 마음에 들었는지 요랑은 연신 킁킁거리며 고기향을 음미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옛다."

선우는 그녀에게 고기 꼬치를 그대로 던져주었다.

터업

"와압"

와작 와작

재빨리 고기꼬치를 받아든 요랑은 그대로 입을 벌려 씹어먹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가기싫다고 징징대더니 뭐 처먹을 땐 잘 처먹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떼를 쓰고 지랄발광을 해도 처먹을 때랑 처 잘때만 보면 천사나 다름없는 그녀였다.

인간으로 탈피가 잘된 것인지 외모하나만큼은 당서윤과 맞먹을 정도니까 말이다.

"더 줘."

어느새 다먹었는지 요랑은 선우를 향해 나뭇가지를 뻗었다.

고기를 더 구워달라는 요구이리라

"그만 처먹어."

하지만 선우는 그녀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다음 마을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식량을 아낄 수 있을만큼 최대한 아껴야했다.

"씨잉"

요랑은 손에 든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그대로 던져버렸다.

짜증이 났다.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 것은 그러려니해도 먹고싶은 것도 원하는 만큼 못먹으니 성이 난 것이다.

"왜 또 지랄이야!"

선우는 그녀의 행태에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잘처먹다가 왜 또 지랄이란 말인가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 이럴거면 왜 나를 데리고 나온거야? 먹고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푹신한 침상도 없고! 당과없고 월병도 없잖아! 같이 나올 때만해도 다 풍족하게 해주겠다며! 근데 이게 뭐야! 고생만 하잖아!"

선우의 욕짓거리에 요랑이 폭발하였다.

이제는 불평하는 수준이 아닌 거의 화를 내는 수준이었다.

"아니 망할 애초에 넌 영물이잖아 근데 왜 인간 흉내를 내는데! 언제부터 당과랑 월병을 처먹었다고! 거기다 너 원래 둥지나 틀고 자던 애가 잠자리는 왜 따지는 데?"

요랑의 말을 들은 선우 지지않고 맞받아쳤다.

애초에 요랑이는 사람이 아닌 짐승이 아니던가

사냥에 실패하면 며칠 굶을 수도 있고 안전만 보장되면 어디든 누워서 잘 수 있는 짐승이 무슨 사람 흉내를 내면서 불평을 한단 말인가

"난 이제 영성을 이룩한 영물이야, 과거에 미개한 짐승이 아니라고!"

요랑 또한 항변하였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과거에는 생각보다는 그저 동물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요선에 되기 위한 발판으로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지 아직도 미개한 짐승 취급을 한단 말인가

"영물도 짐승이잖아!"

"전혀 달라, 난 이제 생각이란 것을 하고 감정이라는 것도 느끼고 있어! 본능에 따라 움직였던 과거와는 달라!"

요랑은 열변을 토하였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자신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과거랑 달라졌다는 놈이 당과랑 월병이 없어서 징징대냐?"

"있다가 없으면 원래 더 슬픈거랬어!"

"누가그래?"

"당서윤이!"

선우는 이마를 탁 짚었다.

갈수록 말빨이 느니 이길 엄두가 안났다.

억지와 말빨 그리고 어리광의 삼종지랄기는 선우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급한 일이 생겼으면 날 두고가면 되잖아! 왜 잘 사는 사람을 데리고 가는데!"

"망할, 널 뭘 믿고 거기에 두냐? 그리고 니가 언제부터 사람이었다고 사람행세야?"

"아 몰라 몰라 난 이제 한발자국도 안갈거니까, 혼자 처가던, 두고가던 마음대로해 난 당가로 돌아갈거야!"

그녀는 그대로 몸을 홱 돌려버렸다.

아무래도 뿔이 나도 단단히 난 듯 싶었다.

'망할년 진짜'

선우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은 후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화를 풀어줄 심산이었다.

"야아"

선우는 요랑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건들였다.

"놔아!"

하지만 요랑은 선우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다시금 뒤로 돌아앉았다.

아무래도 평소보다 더욱 화가난 듯 싶었다.

"하아"

선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덥썩

그리고는 뒤에서 그녀를 껴안은 뒤 목에 팔을 둘렀다.

"뭐, 뭐야!?"

요랑은 갑작스러운 선우의 행동에 당황하였다.

갑자기 뒤에서 껴안는 것은 무슨 짓이란 말인가

선우는 지금껏 단 한번도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뒤에서 껴안다니?!

요랑은 당혹스러움이 앞섰다.

등에서 선우의 체온이 느껴졌고 귀에서는 선우의 숨결이 느껴졌다.

'따뜻해.'

요랑은 선우의 품이 그리 싫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였다.

"켁!"

그녀는 그대로 숨이 막힐 듯한 고통에 비명성을 질렀다.

"뒤질래? 화 안풀어?"

선우가 그대로 그녀의 목을 양팔로 조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켁! 켁 ! 켁!"

그녀는 열심히 발버둥쳤지만 그럴수록 선우는 더욱 세게 조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눈물이 범벅이 되서야 선우는 팔을 풀어줬다.

"케엑....케엑"

요랑은 눈물을 잔뜩 흘리며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모자랐던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창백하게 질려있던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뭐하는 짓이야!"

"자꾸 짜증내니까 나도 짜증나잖아."

선우는 담담히 자신의 심정을 말하였다.

심술도 어지간히 부려야지 화해하러 가면 받아줘야할 것이 아닌가

거기다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있는 목을 보니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인 듯 했다.

"이이익! 개자식!"

"엿 먹어."

선우는 그녀에게 친절히 가운데 손가락 펴주었다.

"엿이 어디 있는데 먹으라는 거야!"

"나 혼자 다 처먹었다는 뜻이야."

"개자식!"

선우의 말을 들은 요랑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숨막혀 죽을 뻔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언제 챙겼을지도 모를 엿까지 다 먹다니 말이다.

그녀는 속이 부글브글 끓어올랐지만 간신히 가라앉혔다.

괜히 개겼다간 본전도 못찾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모닥불 앞에 앉아 손을 뻗어 불을 쬘뿐이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선우는 그녀의 반응에 미안함이 살짝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틈만 나면 괴롭히긴 했지만 시무룩한 그녀의 표정을 보니 조금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하아"

선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에 손을 넣어 육포 몇 덩이를 꺼내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끼워 다시금 그녀에게 건넸다.

"자아"

선우 나름의 화해의 의미였다.

"그만 처먹으러면서!"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는지 고대로 받아먹지 않는 요랑이었다.

"그래서 안먹어?"

".........."

선우의 물음에 요랑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먹을 걸로 넘어가기엔 너무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눈앞의 고기가 너무나도 맛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먹는다?"

선우는 그녀에게 뻗었던 고기를 회수하는 시늉을 하였다.

"누가 안먹는데!?"

그 모습을 본 요랑은 부리케나 선우에게 달려들어 고기꼬치를 빼앗았다.

화난 것은 화난 것이고 고기꼬치는 고기 꼬치지 않은가

굳이 고기 꼬치에게 화풀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글 지글

그녀는 재빨리 고기 꼬치를 모닥불에 위에 올려 구웠다.

꿀꺽

고기에서 노릇노릇한 냄새가 풍길 수록 그녀의 입가에 고이는 침의 양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참나"

그 모습을 본 선우는 헛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시무룩해있던 주제에 먹을 것을 주면 또 금방 풀린다.

그러면서 무슨 영성을 이룩한 영물이라면서 자화자찬 한단 말인가

그래도 한편으로는 귀여워 보였기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와압"

쩝 쩝 쩝

그녀가 고기를 먹는 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와 같이 지난지 벌써 한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오랫동안 그녀를 봐았기 때문에 선우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짐승보다는 인간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가졌으며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말하며 슬플 땐 울었으며 기쁠 땐 웃었다.

신기하면서도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분명 자신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괴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젠 그런 그녀가 인간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말 한 번 오질라게 안 듣는 여동생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혼란스러웠다.

그녀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될까하고 말이다.

"뭘 봐?"

선우의 그런 시선을 느낀 탓일까 요랑이 선우에게 물었다.

"야"

"왜?"

"넌 몸이 전부 회복되면 어떻게 할거냐?"

선우는 그녀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보호자 신세라지만 자신은 엄연히 그녀의 남편을 죽인 원수가 아니던가

만약 몸이 전부 회복되고 자신을 노린다면 곤란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번도 물었던 적이 없었기에 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우웅....."

그녀는 선우의 질문에 짐짓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말 끝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아마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입이 떼어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에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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