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3화 (114/1,419)

〈 113화 〉 114. 인면지주, 요랑姚娘이라는 이름을 얻다.

'하아 시발'

선우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운적자는 인면지주에게 푹 빠져있었고 불허사태는 그녀를 제자를 들이고 싶어 안달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인면지주를 지아비가 있는 여인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운적자가 아무리 격렬한 사랑에 빠졌다고 한들 지아비가 있는 여자에게 집착할 수는 없을 것이고 불허사태 또한 지아비가 있는 여인을 비구니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거...거짓말!! 거짓말이오! 그럴리가 없소!"

운적자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 선우의 말을 맹렬히 부정을 하였다.

"저 또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십이 넘은 당가주께서 새장가를 든다니요? 그것도 마교의 습격이 받은지 얼마나 지났다고 말입니다."

불허사태 또한 말도 안된다는 듯이 선우에게 말하였다.

"불허사태, 이 여인은 습격이 있기 전부터 혼인을 약속한 사이였소."

"그렇다해도 이해가 안됩니다. 가주님은 지금 쉰이 넘으셨습니다."

"어허 , 불허사태는 어찌 그리 꽉막힌 사고방식을 갖고 있단 말이오?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인종도 없다오."

"............"

"이번에 후계를 이을만한 자식들이 전부 죽고말았소, 지금 세가에는 직계혈족이 없다는 말이오, 후대를 잇기위해서라도 혼인은 불가피하오."

"............"

선우의 유들유들한 대답에 불허사태는 할말이 없어졌다.

확실히 무림에서 당가주정도 되는 인물이 새장가 든다는 것은 그리 큰 흉이 아니었다.

그는 돈도 많았고 잘생겼으며 무력도 강하였기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하필 그 대상이 자신이 운명처럼 여겼던 아이란 것이다.

"말도안돼!! 소저, 소저 말해보시오, 당가주의 말이 사실이오? 정녕 저런 오십이 먹은 당가주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오!?"

운적자는 다급한 기색으로 인면지주를 보며 말하였다.

그의 얼굴은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과 절망이 섞여있는 기묘한 얼굴이었다.

그의 물음에 인면지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이나와서 이해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혼인은 뭐고, 시집은 뭐란 말인가

부인은 당대부인과 같은 부인을 뜻하는 것 같은데 자신도 당대부인처럼 젖통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녀는 여러가지 의문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워하였다.

[그렇다해]

그때 귓가에서 선우의 전음이 들려왔다.

선우의 말을 들은 인면지주는 화들짝 놀라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 끄덕

"맞아! 혼인할거고! 시집갈거야!"

그녀의 말은 들은 운적자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평생 다시없을 것 같은 운명같은 여인이 하필 다른 남자의 여인이란 말인가

그것도 자신보다 강하고 돈 많고 잘생긴 당가주를 말이다.

무엇하나 이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이정도?

하지만 당가주의 외관은 이미 나이를 뛰어넘은 듯한 매력이 있었다.

무리였다.

저자를 뛰어넘기란

운적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절망 한 것은 운적자만이 아니었다.

불허사태마저 이마를 짚으며 몸을 휘청거렸다.

운명처럼 느꼈던 아이다.

저 아이만 있다면 후대에 사천제일의 칭호는 아미파에게 전해질 것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더욱 기대하고 설레었다.

하지만 저 아이가 당가주의 부인이란다.

그것도 정실로 선택받은 여섯 번째 부인말이다.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하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한숨이 절로나와버렸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 또한 커진 것이리라

선우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일말의 동정이 들었다.

사람도 아닌 것한테 홀려서 뻘짓을 하긴하였지만 본인들 딴에는 얼마나 필사적이었겠는가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 쪽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는 없으니 이번 일은 불문으로 부치기로 하겠습니다."

선우는 성큼성큼 걸어간 뒤 인면지주의 팔을 잡았다.

"밤이 늦었으니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냉큼 그녀를 끌고 외빈실 밖을 향하였고 인면지주는 자신을 잡아끄는 선우의 손에 이끌려 따라나가게 되었다.

끼이이익

문이 닫히고 외빈실에는 절망의 빛이 물든 두 남녀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가주전 집무실 앞

"아파!! 살살 잡아!"

인면지주는 자신의 팔을 잡은 뒤 질질 끌고가는 선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망할 사고뭉치야, 너는 들어가서 뒤졌어."

선우는 그녀를 향해 윽박을 지른 후 말을 이었다.

이 사고뭉치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팔자에도 없는 마누라를 들이게 생겼다.

이 사실을 당서윤이나 당대부인, 금적화가 알게된다면 얼마나 황당해할 것인가

세가의 정리도 다 안된 판국에 내연녀를 끌여들였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될것이다.

선우는 골머리가 아파왔다.

천무맹을 대항할만한 세력을 만들려면 세력을 키워야하고 세력을 키우려면 명성을 높여야한다.

그런데 가주라는 작자가 여색의 미친 망나니가 되어버렸다.

"망할"

선우는 인면지주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가주전으로 돌아가 개패듯 팰 속셈이었다.

다리 몽둥이를 부숴버리면 어디 함부로 나돌아다니지 못할 것이다.

"대체 왜 그러는데! 아까 하라는대로 다했잖아!"

그녀는 나름의 항변을 하였다.

시키는대로 다했것만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힘으로 겁박하는 것은 무슨 짓이란 말인가

"너 때문에 혼인하게 생겼잖아!"

"네가 하자메!"

"니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갑자기 네가 사랑 어쩌고 하면서 개지랄해서 그렇잖아!"

선우는 그녀의 경솔한 입을 탓하며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너만 보면 개같아서 온몸이 떨리는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그게 사랑이라면서?"

"썩을 년이!"

선우는 주먹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다시금 쥐어박으려고 하였다.

그때였다.

"재밌는 말을 하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어라...아..아직 안갔어?"

선우는 모습을 드러낸 여인을 보며 말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얘가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아직 일이 남아서"

모습을 드러낸 여인, 당서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나저나 계속 말해바. 누구랑 혼인한다고?"

당서윤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시발'

선우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삼켰다.

*************

"그러니까? 인면지주님을 여섯 번째 부인이라고 거짓말을 한거네?"

당서윤은 집무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선우는 인면지주와 함께 그녀의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얌전히 시립해 있었다.

뭔가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자리에 앉기가 좀 그랬다.

"하아."

그녀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좀 세가가 안정되나 싶더니 이건 또 무슨 대형사고란 말인가

"지금 네 모습은 사천당문의 가주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세가뿐만아니라 온 무림에 영향을 끼친단 말이야."

그녀는 선우에게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하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은 지금 선우가 아니었고 장삼도 아니었으며 당세기 또한 아니었다.

무림에서 대영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독왕 당진철인 것이다.

선우는 자신이 경솔하게 행동한 것을 반성하였다.

잘못을 저질러놓고 강짜 부릴만큼 염치없는 이는 아니었다.

선우가 침울한 기색으로 표정을 굳히자 당서윤이 고운 입술을 떼었다.

"그래도 외척가의 늙은이들과 선을 그은 거랑 청성과 아미에게 무력 시위한 건 잘했어."

"응?"

"안그래도 그들한테는 당가주의 건재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잘해줬어."

이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다른 상가들이나 어중이떠중이 무인들과는 달랐다.

만약 외척가문의 가주들에게 제때 선을 긋지 않았다면 여기저기서 간섭하려 들었을 것이고 청성과 아미의 장로들에게 무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사사건건 당가를 방해하려고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때 마침 선우가 이를 한번에 해결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녀의 칭찬을 들은 선우는 얼떨떨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당서윤은 이래서 좋았다.

어떤 일이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충고하는 식으로 그를 이끌어준다.

"일단 인면지주님의 처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어떻게하게?"

"어떻게 하긴 진짜 혼인해야지."

당서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뭐!?"

그녀의 말에 선우는 놀란 듯 되물었다.

"잠깐만, 그냥 유야무야 넘기면 되는 거 아니야?"

"넌 가주로서 공식적인 발언을 했어, 그것도 청성과 아미의 장로들 앞에서 물릴 수 있을리 없잖아?"

"하지만.."

"거기다 만약 혼인을 안한다면? 그들은 인면지주님을 노릴거야 괜찮겠어?"

그건 또 안될 말이었다.

그들은 각각 인면지주를 절박한 이유로 노리고 있었다.

만약 부인으로 맞이한다는 말이 거짓인 것이 들통나는 날엔 그녀를 대놓고 노릴 것 이 분명하였다.

그러다가 만약 그녀가 인면지주인 사실이 들통나는 날에는 감당치 못할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뻔했다.

절대로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망할"

선우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자기도 모르게 코가 꿰어버린 듯 싶었다.

"약식으로라도 혼인을 하기로 해야 될 거야. 저 둘을 완전히 떨쳐내려면 말이야."

당서윤은 단호히 말하였다.

"....그래"

그녀의 단호한 말에 선우도 수긍을 하였다.

반박치 못할 정도로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일단 인면지주님의 이름부터 정하자."

"이름이라니?"

"혼인할 사이인데 이대로 인면지주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맞아! 맞아! 나! 나! 이름 지어줘!"

인면지주는 관심있는 주제였는지 이름을 지어달라며 방방 뛰었다.

그녀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안그래도 그 검을 휘두르던 인간이 이름을 물었을 때 대답조차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이들이 인면지주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지 않은가

"인면지주님은 무슨 이름을 갖고 싶으세요?"

당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간 후 물었다.

"으으음....뭐가 좋아?"

"인면지주님이 가장 좋아하는게 무엇인가 생각해보세요."

"나는 당과가 제일 좋아!"

"이런...죄송하지만 이름은 당과로 지을 수가 없어요."

"우웅....그래?"

그녀는 짐짓 실망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과말고 더 좋은 것이 있지 않을까요? 인면지주님은 원하는 것이 있나요?"

당서윤은 어린애 달래듯이 그녀를 다독였다.

"우웅.....나는....요선(妖仙)이 되고싶어!"

그녀의 물음에 인면지주는 솔직한 심정을 말하였다.

편안하게 대해주는 당서윤의 어투에 마음이 풀어져내린 것이리라

"그래도 인명인데, 요(妖)자를 쓸 수는 없으니까 요(姚)자를 쓰기로 해요."

"그럼 내 이름은 요선이 되는거야?"

"아니요, 인면지주님은 예쁜 아가씨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요선(姚仙)보다는 요랑(姚娘)이 어떠세요? 예쁜 아가씨라는 뜻이랍니다."

"좋아! 좋아! 나 이제부터 요랑할래!"

폴짝 폴짝

요랑은 자신이 이름이 마음에 든 듯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쁨을 표했다.

"알겠어요 요랑님"

당서윤은 그 모습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그런 요랑의 머리를 몇번 쓰다듬었다.

"헤헤헤헤"

요랑은 그런 당서윤의 부드러운 손길이 좋은지 얌전히 그녀의 손맛을 즐겼다.

"선우! 너도 요랑이라고 불러!"

"오냐"

선우는 그녀의 말에 심드렁히 대답하였다.

사실 이름이 뭐가 되었든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또 대충 대답한다!"

요랑은 천천히 선우에게 다가가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뭐냐?"

선우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의아한 듯 물었다.

"자 새끼 손가락 걸어, 앞으로는 요랑이라고 부르기로!"

그녀는 볼을 잔뜩 부풀리며 말을 이었다.

피식

그 모습이 예상치 못하게 귀여워 선우는 웃음을 흘렸다.

새끼 손가락 걸고하는 약속이 얼마나 인상 깊었으며 이리도 중히 여긴단 말인가

"자"

선우는 그녀에게 새끼 손가락을 내민 뒤 그녀의 손가락과 맞잡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잡았을까

요랑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당서윤은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그녀는 조만간 육부인으로서 당가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될거야."

"그런데 괜찮겠어?"

선우는 짐짓 걱정된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얘는 사람이 아니잖아."

선우의 말처럼 그녀는 사람이 아닌 영물이었다.

그것도 수백년을 묵은 영물말이다.

그런데 그런 영물을 족보에 올려도 되는 것인가라는 걱정이 들었다.

"너도 당가주가 아니잖아."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애초에 선우조차 당가주 행세를 하고 있지 않던가 가짜 부인 따위야 문제 될 것 없었다.

"아."

그녀의 말에 선우는 이내 수긍하였다.

듣고보니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요랑님의 처우에 대해서는 해결했으니까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얘기해줄게."

선우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며 당서윤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좋아."

선우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말을 경청하였다.

요랑 또한 알아듣지는 못하였지만 귀를 쫑긋 세우며 그녀의 말에 집중하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