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2화 (113/1,419)

〈 112화 〉 113. 사태 수습

외빈실

".........."

"........."

"........"

"........"

세 명의 사람 그리고 한 마리의 영물이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그들은 그저 서로 눈치만 바라볼 뿐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그때였다.

"자,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주시지요."

녹의를 입은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 선우가 입을 열었다.

"............."

"............"

"............"

하지만 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선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운적자가 깨어나고 외빈실로 자리를 옮긴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이런식이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로 무력을 써서 그들을 진압하긴 하였지만 그 약빨이 과하였는지 누구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대로는 평행선을 달리게 될 것이다.

"운적자님"

"....말씀하시오."

운적자가 축처진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아무래도 선우에게 한 수에 제압당한 것이 못내 자존심이 상한 듯 보였다.

"이유를 말씀해주시지요, 왜 불허사태와 싸우셨습니까?"

"............"

그의 물음에 운적자는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회피할 뿐이었다.

"지금 당장 이유를 말씀해주시지 않는다면 청성은 2차 경매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

선우는 나름의 강수를 두었다

애초에 청성과 아미는 사업체를 인수하기 위해 당가를 방문하였다.

경매에 참여할 수 없다면 그 또한 곤란한 일이리라

"그리고 이번일에 대해서는 청성의 장문인에게 직접 항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우의 말이 끝나자 운적자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였다.

애초에 운적자는 청성을 대표하는 몸으로 당가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강기를 흩뿌리면서 당가의 연무장을 부숴놓다니?

말도안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 일로 경매까지 불참하게 됐다는 사실을 장문인이 알게 된다면 크게 노하리라

".......저 소저때문이오."

운적자는 힘겹게 입을 떼고 인면지주를 가리켰다.

"나? 나 왜?"

그의 손가락질을 받은 인면지주는 당황스러운 듯 되물었다.

별안간 자신은 왜 지적한단 말인가

"본인은 사십 평생동안 오로지 검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수도없이 검을 휘둘렀지. 손가락 군데군데 물집이 터져나갔고 굳은살이 갈라져 피가 흘렀지만 본인은 수련을 멈추지 않았소. 그저 최고의 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이오"

운적자는 회한이 담긴 눈동자를 띠며 말을 이었다.

"화기가 섞인 음식은 멀리하고 생식을 하였으며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하였소 그리고 여색 또한 멀리하며 도사로서의 수양또한 깊게 쌓아왔소."

운적자는 다시금 인면지주를 가리켰다.

"여자따위는 내 평생 연이 없을 줄 알았소, 검만 바라보며 살아도 도달할까말까한 경지일진대, 어찌 여자에 얽매인단 말이오, 하지만 이 아가씨를 보고 나의 모든 세상이 바뀌어버렸소."

운적자의 눈은 덧없이 진지해졌다.

"저 아가씨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운명이라는 것을 느꼈소, 내 평생 심장이 이리뛰는 것은 처음이더이, 그리고 결심하였소 저 여인에게 나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말이오."

운적자가 아미의 불허사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기 있는 불허사태가 순진무구한 여인을 비구니로 만들려고 하는데 어찌 가만히 두고 볼수 있겠소.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검을 뽑아들게 되었지."

말을 마친 운적자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인면지주를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내 마음을 전하고 싶구려. 이름 모를 아리따운 소저, 내 비록 억만금을 줄 수는 없겠지만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라오. 부디 내 마음을 받아주시구려."

선우는 다시금 이마를 짚었다.

불허사태와 싸운 이유를 물어보는 사정청취가 왜 갑자기 사랑 고백으로 바뀐단 말인가

의식의 흐름대로 고백을 해버리는 운적자의 개소리에 골머리가 아파왔다.

게다가 사십평생 여자라곤 일 푼도 관심 없던 사람이 반해도 왜 하필 인면지주한테 반한단 말인가

'걔 인간 아니야, 임마.'

선우는 속으로 함정을 골라버린 운적자에 대한 연민을 표하였다.

"사랑이 뭔데?"

인면지주가 의아한 듯 그에게 물었다.

"누군가를 볼때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그 사람을 보기만해도 절로 몸이 움츠러들며 생각만하여도 가슴 떨리는 마음을 말한다오."

"아항, 그렇구나."

인면지주는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을 받아주시겠소?"

"안돼."

"어째서!?"

운적자는 충격받은 듯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자신의 진심어린 사랑을 고백했것만 왜 받아주질 않는단 말인가

자신이 비록 나이가 사십이 넘긴 했지만 무공을 익힌 덕에 서른 중반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청성의 장로라는 무림에서도 꽤나 높은 지위에 위치해 있었다.

넉넉치는 못하지만 평생을 부족함 없이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재산 또한 가지고 있었으며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단 말인가

운적자의 얼굴이 울상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나 사랑하고 있거든."

"그 자식이 대체 누구란 말이오!"

인면지주의 대답에 운적자는 절망하였다.

대체 어떤 개자식이 저 순수하고 정결하며 순진하기 짝이 없는 여인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단 말인가

그는 분노하였다.

어떤 개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분명 반반한 얼굴로 저 순진한 여인을 꼬여냈거나 돈으로 그녀의 환심을 샀을 것이 분명하다.

'음적녀석!'

분명 그 개자식은 저 여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여인의 몸만 탐하는 음적이 분명할 것이다.

"얘."

인면지주는 고운 손가락을 뻗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운적자와 불허사태의 손가락이 인면지주의 손가락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가리키는 누군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뭐, 나?"

인면지주의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의 사내, 당가주의 모습이 보였다.

선우는 당황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금 골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저새끼는 왜 또 지랄이야.'

선우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갑자기 상황을 왜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든단 말인가

"아..아니....당가주!"

운적자는 놀란 얼굴로 그에게 언성을 높였다.

"어찌 당가주께서!?"

이는 불허사태도 마찬가지였다.

당가주의 나이는 오십이 넘었다.

이는 운적자보다 열 살 많을 정도로 고령인 것이다.

거기다 부인 또한 다섯이나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렇게 젊고 어리고 아리따운 여인의 사랑을 받다니

[뒤질래?]

선우는 전음밀입으로 인면지주에게 협박을 했다.

여기서 그딴 말을 하면 대체 어떻게 수습하라는 말인가

더구나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리가 없지 않았던가

서로 죽이고 싶으면 모를까

"왜!?"

인면지주는 다시금 억울하다는 듯이 새되게 외쳤다.

"널 볼때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데?"

이건 사실이었다.

선우를 볼때면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 괴롭힐까 심장이 두근두근 하였다.

그러니 자연히 보기만해도 절로 몸이 움츠러들수 밖에 없었고 생각만하여도 가슴 떨렸다.

이 모든게 운적자가 말한 그대로였다.

그런데 왜 또 협박을한단 말인가

"너만보면 절로 몸이 움츠러들고 생각만해도 가슴이 떨린다고!"

그녀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였다.

'망할년이!'

선우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 무슨 참신한 개소리란 말인가

"설마 당가주 새로운 첩을 맞이하신건가요!?"

불허사태 또한 언성을 높이며 그에게 되물었다.

그녀를 아미파로 데려가려던 불허사태 입장에서는 그녀가 당가주의 첩이란 소리는 곤란한 말이었다.

멀쩡히 지아비가 있는 여인을 비구니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그녀는 첩이 아니오."

선우는 애써 그녀와의 관계를 부정하였다.

여기서 더욱 혼란을 야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여인을 첩으로 맞이한 것도 아니면서 그녀를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오?"

그때 운적자가 다시금 선우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화가났다.

저 정갈하고 순수하며 아름답기 그지 없는 본부인도 아니고 첩도 아닌체 사랑만 나누다니!?

그저 당가주의 질척이는 욕망에 희생당한 희생양이란 말이 아닌가

운적자는 화가 어찌나 났던지 그가 삿대질하고 있는 사람이 사천 최고의 고수인 독왕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하였다.

선우는 다시 기세를 흘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어 있다.

한번쯤 환기할 필요가 있는 듯하였다.

우우우우웅

그가 기세를 흘리자 무겁기 그지 없는 기운들이 외빈실 내부를 천천히 감싸기 시작하였다.

"허업"

"흐읍"

그 기세에 놀란 운적자와 불허사태는 과열되었던 감정을 천천히 가라앉히기 시작하였다.

"운적자께서 어찌하여 검을 빼든 사연은 잘 알겠습니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씀도 잘 새겨들었구요. 하지만 이곳은 사정청취를 들으려고 마련한 자리입니다. 운적자의 개인 감정을 토로할 시간이 아니란말입니다. 저 또한 질문을 받는자가 아닌 질문을 하는 자입니다. 위치를 망각치 말아주시지요."

선우는 기세를 듬뿍흘리며 운적자를 압박하였다.

이는 사실이었다.

지금 자신은 당가의 가주로서 당가에서 연무장을 부숴버린 두 무인들에 대한 사정청취를 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신이 질문을 하는 자리이지 질문을 받는 자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선우는 날선 목소리로 이들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주제를 알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

그의 경고를 알아들었는지 운적자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럼 다음은 불허사태께 묻도록 하겠습니다. 운적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를 비구니로 만들려고 했다던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런 운적자의 반응이 마음에 든 것인지 선우는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불허사태를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저또한 그녀에게 운명을 느꼈습니다."

불허사태는 그런 선우의 물음에 꺼리낌없이 말하였다.

딱히 숨길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두 배는 어릴 것같은 여인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운적자보단 무재가 보여 제자로 들이고 싶다는 자신이 더 낫지 않겠는가?

"..........."

그녀의 말에 선우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무리 아미가 여인들의 문파라지만 여인끼리 서로 사랑하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그..그런게 아닙니다!"

선우의 당황하는 빛을 읽은 것인지 불허사태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제자로서의 운명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불허사태는 저 여인에게 운명을 느꼈던 이유를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연꽃향이 나는 천향지체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그녀의 몸안에 맥을 내력을 흘려보낸 것까지 전부 말이다.

"그녀는 관음구음기를 무리없이 받아들일 뿐아니라 흡수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미의 무공을 대성할 수 있는 최고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주께서도 정녕 그녀의 미래를 생각하신다면 아미로 보내어 무공을 대성할 수있도록 하셔야 합니다."

불허사태는 단호한 음색으로 선우에게 말하였다.

이정도까지 말한다면 운적자와 선우 모두 이해해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선우 입장에서는 영 아니올시다였지만 말이다.

아니 잠깐 한 눈 판사이에 무슨 사고를 이렇게 연달아쳤다는 말인가

'아오 저 새끼 진짜'

불허사태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짜증섞인 시선으로 인면지주를 노려보았다.

움찔

선우의 눈빛을 받은 인면지주는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또 얼마나 괴롭힐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넌 나중에 보자]

선우는 그녀에 전음밀입으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하였다.

선우의 말을 들은 인면지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또 나중에 처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두려움이 찾아왔기때문이다.

선우는 겁이 질려 안색이 바뀐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마음이 어느정도 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불허사태와 운적자를 쳐다보았다.

사실 상황은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두 연놈들 모두 운명을 부르짖으며 인면지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각자 다른 이유로 말이다.

골치가 아프왔지만 여기서 매듭을 지어놔야했다.

그들은 나름 청성과 아미라는 거대 문파의 대표들이다.

그들과 감정적인 매듭이 꼬여있다면 앞으로 고달파질지도 몰랐다.

'후우'

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하긴 했지만 그래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인면지주때문에 이리저리 얽혀버린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그들에게서 인면지주만 배제시켜버리다면 될 것이다.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저 여인은 저의 여섯 번째 부인입니디."

선우는 인면지주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뭐라!?"

"뭐라구요!?

그 말에 운적자와 불허사태가 놀라 되물었다.

당가주의 나이가 몇인데 정실 부인을 또 맞이한다는 말인가

"당가의 일이 정리되는대로 혼인을 올릴 사이지요."

그의 파격적인 말에 운적자와 불허사태가 입을 벌렸다.

인면지주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되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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