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112.인면지주, 혼나다.
챙 챙 챙
운적자의 검과 불허사태의 창이 맹렬하게 부딪히며 합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둘은 마치 생사대적을 만난 것마냥 한 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챙 챙 챙
청성에 최고의 검공 중 하나인 만상귀일검법이 운적자의 손에서 펼쳐지며 불허사태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크윽"
그 부드러우면서도 강맹하기 짝이 없는 검세에 불허사태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운적자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비록 당가주에게 밀렸다고는 하나 자신은 청성제일검이었다.
불허사태 따위에게 질리 없었다.
그의 검세는 흐름을 타며 더욱 강맹해지기 시작하였다.
챙 챙 챙
운적자의 강맹한 검세를 맞받아치던 불허사태는 당혹스러웠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였지만 직접 맞붙어보니 상상이상이었다.
거기다 운적자의 검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아무리 싸움이 붙었다지만 같은 정파의 일원이 아니던가
그런데 생사대적을 대하는 것처럼 손속을 두다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불허사태의 창에 살기가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너무 살기가 짙어 사장되다시피했던 아미의 절학인 칠살창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챙 챙 챙
운적자는 갑작스러운 불허사태의 변화에 당황하였다.
방금 전까지 만해도 부드럽기 짝이 없던 그녀의 창에 살기와 거칠기 짝이 없는 기운이 담기기 시작하였다.
운적자는 긴장하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득보다 실이 많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콰쾅 콰쾅 콰쾅
운적자의 검과 불허사태의 창이 부딪힐 때마다 엄청난 굉음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아마 만상귀일기와 관음구음기의 충돌에 의한 여파이리라
그때였다.
짝 짝 짝 짝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박수소리의 진원지는 저 멀리서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인면지주였다.
그녀는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띤 채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저 둘이 가진 강맹하기 짝이 없는 기운들이 부딪히면서 주위에는 정제된 기운들이 넘칠정도로 흩뿌려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흩뿌려진 기운을 흡수하며 내단을 회복하고 있었다.
저 둘이 죽일 듯이 싸울 수록 흩뿌려지는 기운의 정제도가 더욱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인면지주는 그 모습을 보고 박수까지 쳐가며 싸움을 독려하고 있었다.
공짜로 기운을 퍼다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녀의 박수소리가 커질 때마다 왠지 모르게 싸움 또한 격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히히히히히히"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은 친절하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부탁은 그리도 잘 들어주면서 왜 다른 사람을 만나면 못 죽여서 안달이 나는 것일까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치는 않았다.
저들이 격하게 싸울 수록 흡수할 기운은 넘쳐나니까 말이다.
"누가 더 강해요?"
그녀는 그들을 향해 나름의 도발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그러자 그들의 기운은 더욱 강해졌고 강기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짝 짝 짝 짝
"히히히히히히히"
그녀는 연신 웃으며 박수를 이어갔다.
말한마디에 저리도 열심히 싸우는 꼴을 보니 너무나도 웃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밌는 유희거리가 또 어디있겠는가
그녀는 부디 저들의 싸움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빌고 또 빌었다.
당과와 월병을 먹으며 침상 위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렇듯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싸움을 구경하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게다가 저 둘은 과거 선우를 연상케하는 강자들이었기에 그 싸움이 더욱 흥미로웠다.
그때였다.
부르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더니 무언가 등뒤를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되었다.
'뭐지?'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하였다.
어디선가 섬뜩하면서 친근한 기운이 느껴졌기때문이다.
친근함마저 느껴지는 이 섬뜩함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선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였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인간이 갑자기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녀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만약 여기서 잡히게 된다면 처맞을게 뻔했다.
도망가야했다.
그녀는 내단에서 힘을 끌어와 신체능력을 최대한 향상 시켰다.
그리고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오르려는 순간
터억
대롱대롱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온 선우에 의해 그녀는 목덜미를 붙잡혀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튀어오르자마자 잡힌것이다.
"뭔 짓거리했냐?"
선우는 그녀를 쳐다보며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딱봐도 심기가 무척 불편해보였다.
"하..하하하하하"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웃음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니까! 나는 그냥 부탁했거든 검 휘둘러달라고 그러더니 부웅하고 휘두르고 힘들어서 털썩! 쓰러지고 그러다가 저 이상한 머리한 여자한테 가서 인사했더니 갑자기 손 잡더니! 연꽃! 이러면서 와락 안았다니까! 그러다가 저 남자가 오니까 갑자기 작대기를 꺼내들고 챙 챙 챙 하는거야!"
선우는 인면지주의 자초지종을 들은 후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이마를 짚었다.
대체 이게 뭔 개소리란 말인가
선우는 양 손을 들어 그녀의 말랑말랑한 볼을 꽉 잡았다.
주우우욱
그리고 옆으로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아파 ! 아파!"
"너 또 멍청한 척해서 빠져나가려고 그러는거지? 볼따구 뜯어버리기 전에 제대로 말 안해?"
"아아아아악! 알았어 알았어 말할게 말할게!"
선우는 인면지주의 격한 반응을 본 뒤에야 그녀의 볼을 놔주었다.
선우가 인면지주와 함께 생활한지 거의 이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는 그녀와 생활 하면서 몇 가지 느낀점이 있었다.
인면지주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지 영악할 정도로 똑똑한 머리를 지녔다는 점과 그 영악한 머리를 이용하여 때에 따라 일부러 멍청한 척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말이다.
저 영악하기 짝이 없는 녀석은 자기가 불리한 상황이 오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모른척을 하거나 횡설수설하며 어린아이인 척을 한다.
물론 진짜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선우는 기본적으로 그녀를 믿지 않았다.
머리통이 굵어질대로 굵어졌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왜 당대부인의 옆에 있어야할 네가 왜 여기있는지 부터 말해"
"그게......당대부인이 집무실로 갔어."
"왜 안따라갔는데!"
선우는 그녀를 향해 버럭 소리질렀다.
"집무실은 재미없단 말이야! 역한 냄새만 가득하고 거기가면 다른 사람들이 잘 놀아주지도 않고!"
"그럼 조용히 처박혀 있지 왜 밖으로 처 기어나왔어!"
"심심했단 말이야!"
쾅
선우는 그대로 인면지주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제대로 안말해?"
이주동안 그녀를 관찰한 결과 기본적으로 인면지주는 게을렀다.
그것도 무척이나 말이다.
심심하다고 몸을 움직여 심심풀이를 찾을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밖으로 처 기어나온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 내가 거짓말하면 뒈지게 맞는다고 했지? 이번에 뒈져볼래?"
선우는 그녀를 향해 살기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머리가 굵어진 그녀는 진짜 살기를 흘리지 않는 말을 들어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
살기에 노출된 그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였다.
선우는 이따금씩 살기 내비치기는 하였지만 그녀가 겁먹을정도로 농밀하게 내뿜은 적은 없었다.
왈칵 겁이 났다.
작정하고 패버리면 지금껏 간신히 회복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겁을 집어먹은 그녀는 선우에게 바른대로 고하기 시작하였다.
정제된 자연기를 쫓다 저 남자를 만났고 남자를 종용하여 자연기를 더욱 흡수하였다는 사실과 그 후 저 머리를 깎은 여자에게도 똑같은 부탁을 하였고 덕분에 정제된 자연기를 듬뿍 흡수할 수 있었던 사실까지 말이다.
"그럼 쟤네는 왜 싸우고 있는데?"
"몰라?"
선우의 물음에 그녀 또한 의문으로 답하였다.
그 이유는 그녀또한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갑자기오더니 냅다 검과 창을 휘두르는데 그녀가 알턱이 있겠는가
"그냥 오더니 막 싸우던데?"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면지주때문에 싸움이 난 것 같은데 정작 당사자가 모른다하니 답답했기 때문이다.
선우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혹여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뭘 그렇게봐?"
선우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탓인가 인면지주가 더듬거리며 말하였다.
"역시 패야겠어."
"왜애!"
"네 말이 안믿기거든"
"나 진짜 거짓말 안했어!"
인면지주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하였다.
사실대로 말했는데 때리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어차피 당대부인이랑 안나가기로 약속했는데 안지켰다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맞을만 해."
"새끼 손가락 안걸었어!"
꼼지락 꼼지락
인면지주는 선우를 향해 새끼 손가락을 치켜든 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새끼 손가락까지 건 약속은 아니었다는 나름의 항변이리라
"어쩌라고, 쨌든 너 때문에 저렇게 됐잔아."
선우는 강기를 내뿜으며 싸우고 있는 운적자와 불허사태를 가르켰다.
둘은 서로에게 무척이나 집중하고 있는지 선우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아채지 못한 듯 싶었다.
"내 잘못 아니야!"
그녀는 나름 억울했다.
자신이 한 것라곤 울고 있는 남자를 위로한 것과 멍때리고 있는 여자에게 인사한 죄밖에 없지 않은가
지들 끼리 알아서 싸우는 것을 왜 자신에게 책임전가한단 말인가
"니 잘못이야."
쾅
선우는 주먹에 내력을 듬뿍 담아 그녀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인면지주의 머리통에는 상당한 충격음이 발생하였다.
"크윽"
선우의 주먹을 머리통에 정통으로 맞은 인면지주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멋대로 빠져나온 것은 맞으나 이렇게 맞을만한 짓은 하지 않았기에 더 억울했다.
"왜 때려!"
인면지주는 선우에게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곱게 맞아주기엔 너무 억울하였다.
쾅
하지만 그녀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선우의 주먹은 자비가 없었다.
"크으으윽"
그녀의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까지 올라왔다.
쾅
그리고 선우의 주먹이 그녀의 머리통을 다시 한번 강타하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앙!!!!!!"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서러웠다.
서러워도 너무 서러웠다.
자신이 멋대로 행동하긴 하였지만 사람도 안잡아먹고 함부로 해치지도 않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자신의 그런 노력을 몰라주고 쥐어패기만 한단 말인가
"우와아아아아아앙!"
한 번 울음보가 터진 그녀는 더욱 더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크으윽"
바로 앞에서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선우는 귀를 막았다.
목청이 얼마나 큰지 그녀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강타하였기 때문이다.
"그만 울어!"
선우는 짐짓 협박조로 다시 말했지만 그녀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으면 더 커졌지 멈출 기색이 없었다.
그때였다.
"당가주! 지금 뭐하는 짓이오!"
저 멀리서 운적자가 시뻘개진 얼굴로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저 아이를 울리다니 무슨 짓입니까!"
불허사태 또한 상기된 얼굴로 뾰죡한 음성을 내질렀다.
선우는 골머리가 아파왔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앙!!!!!!"
"지금 그 작고 여린 여인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당가주 , 지금 아미의 문하에 들어올 제자에게 해를 가한 것입니까?"
"우와아아아아앙!!!!!!!!!!!"
"아미에 들어간다니 멀쩡한 여인을 왜 비구니로 만든단 말이오!"
"비구니가 어디가 어때서요!? 지금 아미를 비하하시는 것인가요?"
"그런 말이 아니지 않소!"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앙!"
선우는 머리속에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인면지주의 울음소리, 운적자와 불허사태의 말싸움이 한데 섞여 장내를 온통 울렸기 때문이다.
뭔가 어디서부터 해결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당서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모르겠다.
그녀라면 어떤 현명한 방법이 있었겠지만 자신은 그녀가 아니었다.
현명한 방법따위 있을리 없었다.
그리고 이내 머리속에 단 한사람이 떠올랐다.
'만약 음양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이건 알것도 같았다.
비록 자신은 음양마는 아니였지만 짧은 시간 겪어본 그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인간은 아니였다.
스릉
선우는 검대에 꽂혀져 있는 검을 빼들었다.
"지금부터 한 마디라도 입을 여는 인간은 베겠소."
검을 빼든 선우는 음양조화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기세를 흘려 장내 모든 이들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뚝
그 기세에 노출된 인면지주는 거짓말처럼 울음소리를 뚝 끊었다.
인지한 것이다.
선우가 작정하고 화가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이지만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서운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선우의 변화를 눈치챈 것은 인면지주 뿐인 듯 하였다.
"당가주 그게 무슨 말도.....!"
쾅
선우는 검을 들어 그대로 운적자를 향해 휘둘렀다.
운적자는 가까스로 그의 검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검에 담긴 내력을 감당치 못하고 뒤로 날아가 담장 벽에 처박혔다,
"사태도 입을 열 것인가?"
선우는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불허사태를 쳐다보았다.
"................"
그의 번들거리는 눈빛을 맞이한 순간 불허사태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라도 내뱉었다간 저 멀리날라간 운적자 꼴이 나리라
"이제야 조용하네."
선우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씨익 웃었다.
폭력적이긴 했지만 가끔은 음양마처럼 막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