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110. 인면지주, 사고를 치다-3
부웅 부웅 부웅
한 여인이 한 자루의 창을 휘날리며 연무장을 온통 휩쓸고 있었다.
팡 팡 팡
창이 지나간 자리에는 파공성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정순하기 그지 없는 기운이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창에 담긴 위력과 정순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허억...허억...허억.."
창을 휘두르던 여인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파르르깎은 머리, 고운 아미 , 회색 바탕의 가사의 그리고 몸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정심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여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인 정체는 불허사태로, 이번에 당가의 사업체를 인수하러온 아미파의 장로였다.
"후우"
그녀는 숨을 어느정도 고른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을 아무리 휘둘러도 심란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희망에 가득 차있었다.
당가 내부로 들어섰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것은 반쯤 불타버린 전각과 무너져 있는 담장들이었다.
그녀는 쾌재를 불렀다.
무림문파에서 건물들은 그 세가의 위세를 상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고 웅장하게 짓는것은 물론 조금의 흠집도 용납 못하기 때문에 몇 번이고 보수하기 마련이었다.
건물에 흠집이라도 날라치면 자존심 강한 무인들은 세가의 명예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가는 문파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건물들의 수리가 전혀 안되어있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뭐겠는가
문파의 자존심을 챙길 여력이 없을만큼 쪼들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고소를 머금었다.
아무래도 일이 잘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일이라는 것이 어찌 생각대로 되던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불안의 전조는 청성의 운적자의 등장이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살짝 불안감이 들었다.
자신이 아미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이긴하나 운적자 또한 청성을 대표하는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와 무력적인 대치를 이룬다면 손해가 극심하리라
때문에 그녀는 대치보단 협력을 택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당가의 사업체를 아미파가 홀로 차지하기에는 크기나 너무 크기도 하였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생각은 당가주의 등장으로 모두 어그러지기 시작하였다.
독왕 당진철
사천 최고수이자 천하제일독인이라고 불리우는 전설적인 인물.
분명 그는 마교의 습격으로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것만 오히려 멀쩡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사태께서도 자리를 비워주시지요."
그 남자가 자신에게 지껄인 말이었다.
당시에는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없다 생각하여 물러섰지만 다시와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기가 죽었던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자신은 그 남자에게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 분통하고 억울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릴적 그녀의 꿈은 천하제일인이었다.
계집따위가 꿈이 크다며 비웃음 당하기 일쑤였지만 그녀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청운의 꿈을 안고 아미파에 입성하였으며 오직 무공의 성취만을 위해 달려왔다.
다행히 그녀는 열정만큼 충분한 재능도 있었다.
결국 그녀는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초절정 상경에 들어서게 되었고 아미파에서도 손꼽히는 고수가 될 수 도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당가주의 기세는 충격 그자체였다.
그는 아미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겁먹었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그리고 아미파가 안일해도 너무 안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 전력이 빠졌다고는 하나 독왕은 홀로 왠만한 문파정도는 간단히 찜쩌먹을 정도의 무력을 갖춘 이었다.
그런 자가 멀쩡히 살아있는 당가를 무력으로 겁박하려고 했던 자신들이 부끄러워졌다.
분명 중태를 입고 있다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벽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의 기세를 처음 느끼고 알 수 있었다.
그가 팔한짝이 날라간 상태라해도 자신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에휴"
불허사태는 깊은 한숨을 다시금 내쉬었다.
결국 알짜배기 사업체들은 경매를 통해 거상들이 채갔고 아미파는 단 하나의 사업체조차 낙찰 받지 못하였다.
자존심이 상한 것과 별개로 본래의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독왕...독왕!'
그녀는 독왕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다.
모두 그자 때문이다.
그자만 없었더라면 아미파는 더욱 위로 도약 할수 있는 발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명의 절대고수 존재의 영향력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살아 있는 한 사천제일을 넘보는 것은 무리인 듯 싶었다.
번뜩
순간 그녀의 머리에서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다.
독왕이 살아있는 한 사천제일이 힘들지 모르지만 그가 죽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차피 당가는 후계를 이을 만한 이들을 잃었다!'
이번 사태로 당가는 직계혈족들은 대부분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말인 즉슨 그의 뒤를 이을만한 후계자의 부재를 의미하였다.
이제 쉰이 넘은 당가주가 다시 아이를 낳을리 만무하고 낳는다하더라도 제 구실을 할 때쯤이면 이미 당가주는 세상을 떠나고 없을 것이다.
생각을 그리하니 마음 속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일대제자나 이대제자의 세대가 아닌 삼대제자의 세대라면 충분히 사천제일의 칭호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머리 속에서 삼대제자들을 천천히 떠올리기 시작하였다.
명자배 불호를 지니고 있는 삼대제자들이었다.
"흐음"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생각에 잠겼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인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공에 재능이 있으면 심성이 유약하였고 독기가 있으면 무공에 재능이 없었다.
그밖에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제자들 투성이었다.
"하아"
그녀는 다시금 한숨이 나왔다.
후대에 사천제일의 칭호를 얻기위해서는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좌중을 압도적할 만한 엄청난 재능이 필요하였다.
"어디 천무지체라도 뚝 안떨어지나?"
그녀는 말도안되는 망상을 입밖에 내뱉었다.
천무지체가 뒤집 똥개도 아니고 갑자기 튀어나올리 만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만큼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리라
그때였다.
"안녕."
어디선가 고운 미성의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음색이었다.
불허사태는 깜짝 놀라며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불허는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가 자신이 수련하고 있는 것을 엿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공을 수련하는 무인을 엿보는 것은 심하면 목숨을 내놓아야할 정도로 무척이나 실례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여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따끔하게 훈계한 후 정체를 물어볼셈이었다.
저벅 저벅
멈칫
하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몇 발자국가지 못하고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여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순간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기때문이다.
아름답다.
그 말로는 모든 것을 표현하기 힘든 외관이었다.
마치 쾌활한 소녀와도 같으며 성숙한 여인과도 같은 기묘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아미파답게 아미파에도 아름다운 여인들이 더러 있었지만 눈앞의 여인과는 비교 자체가 안되었다.
압도적인 미(美)
불허사태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만 것이다.
멍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아름다움에 그녀는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여인은 환하게 웃어주었다.
번쩍
순간 불허사태는 멍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같은 여자마저 매료시킬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니 마치 독서시 당서윤을 보는 듯 하지 않는가
이내 정신 차린 그녀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린 후 그녀를 훈계하려고 하였다.
아름다운에 넋이 나간 것은 사실이나 그 사실이 무공 수련을 엿본 죄를 정당화시켜주진 못하였기 때문이다.
"킁킁"
하지만 그녀는 곧이어 코 끝에서 맡아져 오는 향기에 의해 행동을 멈추게 되었다.
저 여인의 주위에서 무척이나 향긋한 내음이 풍겨져오기 시작했기때문이다.
대체 여인에거 풍겨오는 저 향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연..꽃."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그 향기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 향의 정체는 연꽃 향기였다,
저 여인은 몸에서 연꽃 향을 풍기고 있는 것이었다.
불가에서 연꽃은 그저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처렴상정(處染常淨)이라는 말이 있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깨끗하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 탐진치 심독에 물든 중생들이 사는 세계에서도 깨달음의 향기를 잃지 않는 연꽃은 불교의 그자체를 상징한다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불문인 아미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에게는 특히 연꽃의 의미가 더욱 특별하였다.
연꽃은 씨앗이 떨어져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는다.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 인연이되면 다시금 꽃을 피우게 된다.
인연(人緣)을 뜻하는 것이다.
두근 두근 두근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사부가 넌지시 말했던 적이 있었다.
무림에는 천향지체(溅香之體)라고 불리우는 특별한 체질을 가진 여인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녀들은 타고나길 꽃의 향을 품고 태어나기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향낭을 가진것처럼 짙은 꽃내음이 난다고 말이다.
저 여인은 천향지체인 것이다.
그것도 인연을 뜻하는 연꽃향을 풍기는
두근 두근
불허사태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마음 속에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향지체가 천무지체처럼 무공을 대성하기 쉬운 체질인 것은 아니었지만 풍겨오는 연꽃향이 그녀의 기대를 높였다.
그녀는 천천히 여인에게 다가갔다.
"손을....한 번만...잡아봐도 되겠느냐?"
불허사태는 떨리는 심장을 가라않히고 더듬거리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응!"
여인은 아무런 꺼리낌 없이 그녀에게 팔을 내밀었다.
남에게 자신의 혈맥을 서슴지 않게 맡긴다니
무림인이라면 결코 하지않을 행동이었다.
여인의 손목을 잡은 불허사태는 내력을 흘려보냈다.
불허사태의 내력이 막힘없이 여인의 혈도를 순환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르르륵
불허사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왜...왜 울어?"
갑자기 그녀가 울자 앞에 있던 여인이 당황한 듯 되물었다.
"기뻐서...기뻐서 그렇단다."
와락
불허사태는 그대로 여인을 껴안았다.
드디어 아미파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찾은 것이다.
처음 그녀의 혈도를 순환할 때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녀의 혈도가 노폐물 따윈 전혀 없이 뻥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처럼 말이다.
아무리 단련된 무공의 고수라 하더라도 이렇듯 깨끗한 혈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개정대법을 받거나 경지에 올라 환골탈태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여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닐까 싶어 단전까지 내력을 흘려보내봤지만 단전은 텅텅 비어 있었다.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흘려보낸 관음구음기를 부담없이 쑥쑥 흡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 여인이 아미파의 절학인 관음구음신공과의 상성이 찰떡처럼 잘 맞는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불허사태는 눈물을 흘렸다.
아마 그녀의 정성에 부처가 감복하여 이러한 인연을 내려준 듯 싶었다.
비록 천무지체는 아닐지라도 이 여인이라면 아미파의 무공을 대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천제일의 칭호를 되찾는 것이 꿈이 아닌 것이다.
비록 무공을 입문할만 한 나이는 지난 것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보통 어릴 때 무공을 입문하는 이유는 혈도에 노폐물이 쌓이기 전에 내력으로 그것을 방지하고 혈도를 넓혀두려는 의도에서 비롯하였다.
물론 오랫동안 내력을 쌓으려는 의도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 여인이라면 그런 과정 따위는 필요없었다.
수십년을 무공을 연마한 자신보다 깨끗하고 넓은 혈도를 가지고 있었다.
부족한 내력은 영약을 통해 채워주면 된다.
방해될 것이 하등 없었다.
그때였다.
"나, 부탁이 있어!"
눈앞의 여인이 불허사태에게 말을 걸었다.
나이도 한참 어려보이는 여인이 반말을 지껄였지만 불허사태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그녀에 대한 호감도가 끝까지 차올라있었기에 모든 행동이 귀여워보였기 때문이다.
"어떤 부탁이 있느냐?"
"저거 아까처럼 계속 휘둘러줘."
그녀는 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걸 휘두를 때면 기분 좋은 기운이 느껴지거든"
그녀의 대답에 불허사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칠살창을 휘두를 때 뿜어져나오는 관음구음기를 느끼고 하는 말인 듯 싶었다.
그녀는 혼쾌히 창을 들었다.
미래의 제자에게 사부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고픈 생각이었다.
부웅 부웅 부웅
그녀는 평소보다 더욱 힘을 주며 창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여인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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