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106. 경매를 시작하다
"내 분명이 말하겠소, 혹여 병장기 관련된 사업을 노리는 이는 태화상단을 적으로 돌리는 것으로 알겠소, 이 말 명심하구려!"
"허어"
문 밖에서 그들의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선우는 헛웃음이 절로나왔다.
외빈실이 미어터질 정도로 방문객들이 쳐들어왔다길래 급히 채비를 하고 외빈실로 향하였더니 이상한 개소리를 듣고 만 것이다.
당가가 사업체를 넘긴다고 하지도 않았것만 자기네들 뭐길래 사업체가 자기것이니 뭐니 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한단 말인가
'병신인가?'
선우는 속으로 그들을 욕하였다.
이미 당가를 망했다고 전제하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왜 당서윤이 자신에게 비호 요청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저리도 뻔뻔한 승냥이 떼들이 달려드니 말이다.
"지랄하네."
옆에 있던 당서윤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고운 입에서 욕짓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애써 무표정하고 있긴 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엄청난 피해를 받았다고는 하나 이곳은 당가였다.
중원 육대세가 중 하나이자 과거 정마대전을 온 몸으로 막아낸 영웅의 가문이었다.
그런데 저리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야"
뜬금없이 당서윤이 선우를 불렀다.
"응?"
"뒤집어버려."
그녀는 가타부타 한 마디를 꺼냈다.
판을 뒤집는 것이라
선우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것이었다.
"서류작업 보단 백 배는 쉽겠네."
그녀의 말에 선우는 씨익 웃으며 답한 후 천천히 걸어가 외빈실 문 앞에 섰다.
그리고 표정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이제 눈앞에 문을 여는 순간
자신은 완벽한 독왕이 되어야 했다.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고 선우는 앞으로 나아갔다.
외빈실 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중앙 쪽에는 파르르 머리를 깎고 있는 여승들과 남색 바탕에 학이 자수되어있는 무복을 입은 도사들이 있었고 그 외곽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선우는 기세를 끌어올렸다.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우우우웅
"재밌는 말씀을 나누고 계셨구려."
선우는 목소리에 은근한 내력을 담아 외빈관 안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였다.
중후하면서도 한없이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강타하였고 몇 몇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 없게 바뀌었다.
잠깐이긴 하나 화경에 오른 선우의 내력에 노출된 부작용이리라
그의 모습을 본 수많은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분명 독왕은 마교의 침입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 건재한 모습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이고 우리 사위 드디어 왔구려."
그때였다.
뒷편에 있던 금태산이 반가운 기색으로 선우에게 말을 걸었다.
'뭐지, 이 아저씨는?'
선우가 그를 의아한 듯 쳐다보자
[삼부인의 아버지인 금태산이야, 너한테는 장인이지.]
그때 뒷편에 있던 당서윤의 전음 소리가 들려왔다.
친한 척을 하길래 누군가 싶었더니 아무리래도 삼부인 금적화의 아비인 듯 싶었다.
"오랜만입니다. 장인어른."
선우는 금태산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그래, 어디 다친게는 없는겐가 , 내가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네, 마교 그 육시랄 놈들이 감히 당가에 쳐들어왔으니 말일세. 내 마음 같아서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당가를 찾고 싶었으나 고질병인 와병이 도지는 바람에 도저히 올 수 가 없었다네 그리고.........."
금태산은 선우가 아는체를 하자 신이 났는지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다른이들에게 당가주와의 친분을 과시할 목적인 듯 싶었으나 너무 과했다.
[적절히 끊어버려, 저자도 어차피 여기 온 자들이랑 별다를바 없는자야.]
그의 난감함을 알았는지 당서윤이 전음을 하였다.
"장인어른"
"그래서 내가........으응?"
선우는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가던 금태산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해우는 나중에 푸시지요."
그리고 기세를 흘려 입닥치라는 뜻을 돌려 말하였다.
"..하.하...하하하 알겠네. 우리 해우는 나중에 꼭 품세."
선우의 기세를 느낀 탓일까
그의 의도를 알아챈 금태산은 어색하게 웃으며 재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이래저래 눈치가 빠른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벅 저벅
선우는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갔다.
중앙 상석에는 청성제일검 운적자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선우는 천천히 그를 쳐다보며 기세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나와 새끼야.'
운적자 또한 그의 기세를 느끼고 기세를 흘려 응수하였다.
'흐음'
그의 기세에 운적자는 속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중상을 입은 자라고는 상상도 안되는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객이 상석에 앉는 것은 무슨 경우입니까?"
선우의 말에는 뼈가 담겨있었다.
보통 상석에는 집 주인이나 혹은 정말 귀한 귀빈들에게 안내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당가입장에서는 외빈실에 있는 이들이 반가운 손님일리 없었다.
모두가 당가를 뜯어먹으려고 온 승냥이들이 아닌가
선우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실례를 범하였소."
그의 틀린 말도 아닐 뿐더러 당가주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상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외빈실 내 사람들은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
분명 독왕은 마교의 습격으로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청성제일검을 기세만으로 물러나게 한 것이다.
일이 쉽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적자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선우는 이번에는 옆에 있는 불허사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또한 기세를 흘렸다.
"사태께서도 자리를 비워주시지요."
당가입장에서는 그녀 또한 운적자와 다를바없는 승냥이였다.
이 동네 승냥이들은 양심이 없는지 주인보다 상석에 앉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선우가 기세를 흘리자 그녀 또한 어느정도 버티나 싶더니 이내 새침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녀 또한 운적자처럼 굳이 기싸움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리라
선우는 그대로 운적자가 일어난 자리에 앉았고 뒤에 따라온 당서윤은 불허사태가 앉아있던 곳에 앉았다.
외빈실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시선을 모았다.
"자 이제 논의를 시작해보죠."
선우는 그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왜 오셨습니까?"
무척이나 단도직입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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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던 상황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불타다 만 전각들과 무너져내린 담장들 그리고 주 전력이 빠져버린 당가의 전력, 마지막으로 마교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당가주까지
그들은 빌빌거리며 자신들 앞에서 저자세로 나오는 독왕의 모습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왠걸 막상 외빈실 안으로 들어온 당가주는 치명상을 입은 사람처럼 보기에는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거기다 기세를 흘려 청성제일검 운적자와 아미의 불허사태를 물러나게 했기 때문이다.
'젠장 만만치가 않은데?'
'분명 중상을 입었다면서? 대체 이게 어떻게?'
그때였다.
"당가의 사업체를 인수하러 왔소이다."
태화상단주 가진명이 앞으러 나서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누구십니까?"
선우는 그의 정체를 물었다.
"본인은 태화상단의 단주인 가진명이라 하오, 이름 정도는 들어봤으리라 생각하오."
"반갑습니다. 태화상단주님 그런데 인수라니 그게 무슨소리오?"
선우는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시치미 뗄 필요 없구려, 이미 외빈실로 오면서 당가의 상황을 보아두었소, 전각들은 불타있었고 담장은 무너져 있더구려 , 천하의 사천당문이 말이오. "
"계속 말씀해보십시오."
"이는 사천당문에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증거가 아니겠소? 천하의 당문에 인력이 없겠소? 아니면 돈이 없겠소? 그런데 세가 내 전각 수리조차 못할 정도라면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생각하오."
이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말대로 현재 당가에는 여유가 없었다.
마교의 침입으로 죽어버린 당가의 혈족들은 못해도 기백이 넘었고 주 전력들까지 빠진 상황이었다.
보통 돈은 말일에 일괄적으로 들어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달 초순에 사망자들에 대한 장례비용과 보상금까지 일시불로 지불하니 세가에 여윳자금이 돌지 않았다.
게다가 전각을 수리하는 비용이 한 두푼도 아니었고 세가내 인력조차 부족하였기에 수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남아있는 세가의 혈족들 또한 주요 사업장에 추가로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당가에는 돈과 인력 둘다 부족한 상황이었다.
가진명은 그점을 날카롭게 꿰뚫어본 것이다.
물론 이는 가진명 뿐만아니라 세가의 상태를 직접 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만한 상황이지만 말이다.
"해서 태화상단은 당가주에게 병장기관련 사업의 독점 계약을 요청하는 바이오."
가진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내었다.
당가의 야장기술은 천하제일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무인들은 당가에서 만들어진 무기를 찾았고 군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너도나도 많은 상단들이 그들에게 접촉하여 사업권을 따내려고 하였지만 자체적인 상단 운영으로만 병장기를 유통하는 당가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전력의 공백이 생긴 당가라면 애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자체적인 상단을 운영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가진명은 이점을 파고들었다.
그들의 야장기술을 무역할 수만 있다면 그는 중원오대상단이 아닌 중원제일상단이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정도로 그들의 야장기술은 독보적이었고 탐나기 그지 없었다.
"내 저치들처럼 양심이 없지는 않소."
가진명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돈이 많았다.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서 값을 깎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합당한 가격을 제시하겠소, 내게 병장기 유통권을 넘기는게 어떻겠소?"
그는 최대한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야장기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비싼 값을 치루더라도 어떻게든 얻어야했다.
원래라면 절대로 넘기지 않을테지만 지금이라면 달랐다.
돈이 급한 저들은 자신에게 손을 벌리게 될 것이다.
"병장기 유통권만 넘긴다면 다른 사업체까지 넘길 필요가 없을 것이오. 그만한 가격을 치룰 터이니."
사실 기회를 봐서 다른 사업체까지 인수합병할 요량이었지만 당가주가 멀쩡한 꼴을 보니 그 기회는 오지 않을 듯 싶었다.
때문에 그는 병장기 유통권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아마 당가주는 자신의 제안을 결코 거절 못하리라
"태화상단주께는 미안한말이지만 거절하겠소."
물론 선우의 생각과 그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미친!'
그의 말을 듣자 가진명은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아니 이렇게나 좋은기회가 왔것만 어찌 그 기회를 날려버린단 말인가
'누굴 등신으로 아나?'
선우는 그런 가진명을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당가의 병장기 유통은 다른 사업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이윤을 남기는 사업이었다.
다른 모든 사업체를 다 판다하더라도 결코 놓아서는 안되는 사업인 것이다.
건물관리나 상가 경영과 같은 것들은 시국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어떤 때는 호황기를 맞이하면서도 어떤 때는 불황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확실성을 가진 사업체를 지키려고 대체 불가한 독점 사업권을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예상대로 현재 당가는 기존의 사업체를 유지할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업체를 정리할까 합니다."
그의 말에 외빈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사업체를 헐 값에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망했으면 망했지 수십 년을 일궈온 사업을 헐 값에 넘기라니요. 어불성설이지요."
그의 말에 대다수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망한다면 본전은 커녕 수십년의 사업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만약 사업체를 헐값에 넘기기라도 한다면 사업초기자본정도는 충분히 건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경매를 할까 합니다. 각 사업체 별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입찰할 수 있게 말이지요. "
선우의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물론 당가의 사업체가 망하길 기다렸다. 그대로 합병하시는 방법을 택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 것과 이미 완성되어 있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중 어떤게 더 쉬울지 다시 한번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대로 당가의 사업체들은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사업체를 유지할만한 여력이 없는데 어찌 망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상단입장에서는 망한 사업체를 그대로 인수합병하는 방법이 싸게 먹힐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사업체 구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되는 것이다.
당가 운영하고 있는 거대한 사업이 망하면 동종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이 뻔하였기에 그들과 경쟁하여야하는 것이다.
굳이 당가의 사업체를 인수한 이득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럴바엔 경매를 통해 사업체를 낙찰 받는 것이 나을 것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담합을 방지하기위해 경매 최소가는 저희 측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선우는 품 안에서 종이뭉치 하나를 꺼내들었다.
텅
"최소가격 밑으로는 팔지 않겠습니다."
선우는 그들을 향해 서류더미를 던졌다.
"그리고 태화상단주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병장기 유통권은 당가 자체 상단을 통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선우의 말에 가진명은 똥씹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다른 사업체를 모두 팔고 병장기 유통만 살릴줄은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선우는 운을 띄었다.
그리고 외각 쪽에 자리하고 있는 무인들을 향해 기세를 끌어올렸다.
"만약 당가를 불순한 생각으로 방문한 이들 있다면 지금 당장 자리를 뜨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음양조화신공이 녹빛을 기운을 내뿜으며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상단들의 방문은 분명 사업체나 헐값에 인수하려는 목적일테지만 무인들의 목적은 안봐도 훤하였다.
무력의 공백이 생긴 것을 확인하고 약탈을 자행하려던 생각일 것이다.
절대지경에 이른 선우의 기세가 그들을 압박하자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은 결코 중상을 입은 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의 기세에 겁을 집어먹은 무인들은 하나 둘씩 외빈실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전부 나가고 나서야 선우는 무거운 표정을 풀 수 있었다.
"경매를 시작하지요."
그는 남아있는 이들을 돌아보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