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105. 모여드는 사람들-2
금태산은 지금 무척이나 당황하였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황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당가의 외척인 자신이 외빈실에 배정된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자신말고 수많은 이들이 외빈실에 드글드글대고 있는 것이 두 번째이유였다.
면면을 살펴보며 다들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력을 자랑하는 이들 투성이었다.
저 중앙에는 구파일방에 속해있는 청성파와 아미파의 장로들을 필두로 그의 제자들이 앉아있었고 그 외곽에는 유력한 상단의 단주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사천에 뒷세계를 지배하는 흑도 방파부터 시작해서 척보기에도 범상치않은 기도를 풍기는 무인들 또한 수두룩하였다.
거기다 자신을 비롯한 당대부인의 처가인 운씨세가 이부인의 처가인 이월상단 사부인의 처가인 적씨세가, 오부인의 처가인 감씨세가 등 외척가문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외빈실의 자리가 남아나지 않았다.
'젠장 조금만 더 일찍 올것을!'
그 모습을 본 금태산은 속으로 크게 한탄하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안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분명 당가라는 거대한 먹잇감을 먹어치우기 위한 수작이리라
당가는 중원제일세가라고 불리울 만큼 중원 곳곳에 거대한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광범위한 사업체를 가진 대신 경쟁자들 또한 곳곳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호시탐탐 당가를 노리던 경쟁자들이었다.
분명 당가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헐값에 사업체를 넘겨받기 위해 온 것이 분명하리라
하지만 금태산 입장에서는 아니될 말이다.
당가가 망했다면 그 사업체의 지분은 당연히 외척가문인 자신에게 있는게 아니던가
그의 입장에서는 외빈실에 있는 모두가 도둑놈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도둑놈의 새끼들이!'
금태산은 의지를 다졌다.
이번에 당가가 가지고 있는 알짜배기 사업체들을 모두 인수만 한다면 만금전장은 사천의 패자로 우뚝 설수 있다.
아니 사천의 패자를 넘어서 중원의 패자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이 마련 되는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한다면 정신이 나간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모두가 같았는지
다른이들 또한 도둑놈보듯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태산은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이들을 상대하고 이권을 챙기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봐 운가주께서는 어찌하여 이곳까지 친히 오셨습니까?"
"어허, 운가와 당가가 어디 남인가? 당연히 우리 가려와 사위가 걱정이 되어왔지. 자네야 말로 여기는 어쩐일인가?"
금태산의 물음에 운씨세가의 가주인 운지림이 말을 하였다.
"저 또한 사돈된 입장으로서 사위와 우리 적화가 걱정되어 왔습니다."
금태산은 속내를 숨기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대체 뭐하러 이곳에 왔다는 말입니까?"
"그러게 말일세, 보나마나 당가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혹여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하고 찾아온 승냥이같은 자들이 분명할걸세."
"쯔쯧, 아무리 무림의 도가 떨어졌다지만 설마 구파에 속하는 청성과 아미까지 당가로 오다니요."
"그러게 말일세, 말세가 따로 없구만."
"이럴때 일수록 저희끼리 단단히 뭉쳐 당가를 보호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리해야지! 어찌 외인들에게 당가의 이권을 넘겨준단 말인가!"
'좋았어!'
운가주의 반응에 금태산은 쾌재를 불렀다.
반응을 보아하니 그 또한 청성과 아미가 부담스러운 듯 했다.
그렇기에 금태산이 손을 내미니 덥석 잡는게 아닌가
금태산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혼자서 힘들다면 외척 세력들을 끌어들이면 된다.
그들과 힘을 합친다면 청성과 아미 또한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후 금태산은 적가의 가주와 이월상단의 단주 그리고 감가의 가주에게 까지 말을 걸며 은근한 협력을 권유하였다.
그들의 심정 또한 운가주와 다르지 않았는지 금태산의 협력 요청을 혼쾌히 받아 들였다,
그들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혼자선 안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외척 세력간의 암묵적인 연합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외척 세력을 등에 업으니 금태산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비록 하나 하나 떼어보면 구파 소속인 청성과 아미에 미치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모두가 하나로 뭉친다면 그들 못지않은 세력과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금태산은 천천히 중앙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명분을 없앨 심산이었다.
중앙에는 청성과 아미가 자리가 잡고 있었다.
특히 청성의 도사들의 경우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명문대파인데 명분도 없이 자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근거있는 자신감덕분이었다.
"큼큼 본인은 사천당가의 가주인 독왕 당진철의 장인이 되는 금태산이라하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분들께 제가 한 말씀 올리고 싶어 이렇게 자리를 나서게 되었소 ."
중앙에 나선 금태산은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는 외빈실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말을 이었다.
그가 말을 내뱉는 순간
외빈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동자가 그를 향하기 시작하였다.
꿀꺽
금태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상당한 압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겁먹을 수는 없다.
이대로 있다간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 뻔했다.
이들 내쫓아야 했다.
"본인은 여기 모인 수많은 분들께서 당가에 대한 걱정과 혹시모를 사태를 대비한 도움을 주기위해 모였다고 생각하는 바요. 이에 대해 본인은 당가의 사돈으로서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요."
금태산은 그들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난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현 당가는 한시라도 빨리 세가를 정비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할 판국이기 때문에, 이렇듯 많은 외빈들까지 기꺼이 맞이할 만한 여유가 없소, 당가를 걱정하는 마음은 본인이 가주께 잘 전해줄터이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게 어떻겠소?"
그때였다.
"자네는 누군가?"
상당히 고급진 의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금태산을 보며 입을 떼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본인은 현 가주의 사돈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네의 성씨가 무엇인가?"
"......금씨입니다."
"그럼 닥치고 있게나, 어디서 수작을 부리는가?"
남자의 말에 금태산의 안색이 굳어졌다.
분명 자신이 신분을 밝혔것만 이 무슨 무례란 말인가
"말이 심하십니다!"
"심하긴 개뿔, 자네들도 다들 당가에서 한 몫씩 뜯어먹으려고 모인게 아닌가?"
"무슨 그게 말도 안되는!!"
"아님 말지 뭘 그리 언성을 높이는가?, 어쨌든 본인은 당가의 사업체를 인수하러 온 것이라네, 당가를 걱정하거나 도울 마음은 일푼도 없다네."
남자는 신랄하게 자신의 속내를 말하였다.
사돈이라는 신분을 앞세워 수작을 부리는 꼴이 영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이 무슨 무례입니까! 당가의 사정을 알고도 그리 말하다니! 당신에게는 의협심도 없습니까?"
"흥, 장사치에게 의협심따위가 어디있겠는가 그저 돈이 있을 뿐이지 ."
금태산의 말에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누구길래 그런 막말을 지껄이는 것이오!"
금태산은 언성을 높였다.
말리면 안되었다.
여기서 말리면 본전도 못찾게 되어버린다.
"본인은 태화상단의 상단주인 가진명이라네, 이름정도는 들어봤겠지?"
"황금수(黃金手) 가진명!"
남자의 대답에 금태산은 놀라되물었다.
태화상단이라하면 중원 오대상단이라 불리우는 거대 상단이 아니던가
태화상단은 황실의 외척 가문으로서 성장한 거대 상단으로 주로 황실에 납품을 주로하고 있는 상단이었다.
가장 빼먹기 좋은 돈이 나랏돈이라고 하지 않던가
태화상단은 비록 역사는 짧지만 황실 납품업으로 챙긴 어마어마한 이득을 바탕으로 사업을 키워 창단 이십년만에 중원 오대상단에 이름을 올린 곳이었다.
그리고 가진명은 그런 태화상단의 단주로서 조그마한 상단에 지나지 않았던 태화상단을 거대한 상단으로 키운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어찌나 사업수완이 좋은지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이나 황금을 무더기로 끌어들인다하여 황금수라는 별호를 갖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돈이 썩어넘칠 인간이 어찌 당가를 찾는단 말인가
"아니....태화상단주께서는 어찌하여 당가에.."
금태산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였다.
"말했지 않는가, 당가의 사업체를 인수하러 왔다고 안그래도 요 근래 사업을 확장할까 싶었는데 마침 당가가 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겠는가? 열일을 제쳐두고 제일 먼저 달려왔지."
이 말은 사실이었다.
황금수 가진명은 마침 새로운 사업체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
노는 돈은 많은데 쓸만한 곳이 없어 골머리를 썩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지역마다 오대상단과 육대세가 그리고 구파의 세력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기에 마땅히 자리잡을만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당가가 마교에 의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진명을 쾌재를 불렀다.
안그래도 당가의 병장기 유통 사업이 탐이 나던 참이었다.
같은 재료를 썼다하더라도 당가에서 만들어진 병장기의 값은 그 이름값 덕인지 가격이 더욱 비쌌다.
이번 기회에 헐값에 독점 계약을 맺고 당가의 병장기들을 유통할 참이었다.
물론 될 수 있으면 당가의 야장들을 빼가는 편이 좋긴 하겠지만 말이다.
또한 병장기 유통 사업 뿐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사천의 알짜배기 사업체들을 모두 차지할 기회였다.
만약 당가의 사업체들을 그대로 인수하게 된다면 중원 오대상단이 아니라 중원제일상단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리라
그렇게 꿈에 부풀어 당가의 책임자를 기다리고 있었것만 왠 말뼉다구 같은자가 나서서 초를 치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돈이면 사돈인 것이지 무슨 권리로 사람을 오라가라한단 말인가
".........."
그의 대답에 금태산은 말이 없어졌다.
이리도 당당히 나오니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우리보고 나가라마라야?"
"맞소, 자신들이 뭔데 가라마라하는 것이오? 당신이나 가시오!"
"우리는 당가의 사업체를 인수하러왔다 갈거면 당신이나 가"
"저희 또한 당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독립하고자 왔습니다. 그쪽이나 가시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명의 말에 동의하며 금태산을 향해 야유를 보내었다.
그들의 야유에 금태산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금태산은 재빨리 외척가문들이 모여있는 뒷편으로 이동하였다.
아무래도 더 있다간 더욱 낭패를 볼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왕 말 꺼낸김에 한 마디 더하지."
태화상단주는 금태산이 뒤로 물러나자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본인은 아까 말했다시피 당가의 사업체들을 인수할 요량으로 이 곳에 왔소,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본인과 같은 의견이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한 가지는 확실히 하겠소 병장기 사업은 태화상단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독점할 생각이오, 다들 눈 독들이지 마시오."
"태화상단이 무슨 권리로 그런단말이오!"
그때 한 남자가 나서서 말하였다.
"어디에 누구시오?"
"대명상단에 기주자라고 하오!"
"대명이라....혹여 실례가 안된다면 어디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소?"
가진명의 말을 들은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어찌 산동 십대상단 중 하나인 대명을 모른단 말이오!"
"미안하구려 조그만 지역 상단의 이름까지 알수는 없구려."
그의 말에 가진명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럼 묻겠소, 대명은 태화보다 돈이 많소?"
"그...그것은 아니오."
산동십대상단이라고는 하지만 중원오대상단 중 하나인 태화와 비교하면 보름달 앞에 반딧불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 또 묻겠소 아니면 황실에 연줄이라도 있소?"
"..그것또한 아니오."
황실의 연줄은 커녕 산동성의 성주와도 마땅한 연줄이 없었다.
"그럼 뭘 믿고 내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신 것이오?"
"............."
가진명의 신랄한 말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가진명의 태도는 예의가 없어보이기는 하나 틀린말또한 아니었기에 남자는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분명이 말하겠소, 혹여 병장기 관련된 사업을 노리는 이는 태화상단을 적으로 돌리는 것으로 알겠소, 이 말 명심하구려!"
그의 말에 외빈실의 그 어떤 누구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무려 중원오대상단이었다.
거기다 상대는 황금을 갈퀴처럼 긁어보은다는 황금수(黃金手) 가진명이었다.
누가 그를 적으로 돌리고 싶어할까
이는 청성과 아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행태가 상당히 건방지기는 하나 굳이 상대할만한 자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들에게 있어서 병장기 사업은 관심 밖이기도 했고 중원오대상단과 척을 진다는 것은 구파의 입장으로서도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가진명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 다시 자리로 가 앉았다.
아마도 병장기 관련 사업은 독점적으로 따낼 수 있을 것같았다.
태화상단의 이름으로 이렇게 겁을 줬는데 누가 나설 수 있으랴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외빈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냉막한 인상의 사내가 마치 칼을 벼린 듯한 기세를 품으며 외빈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냉기가 풀풀 서린 시선으로 가진명을 쳐다보았다.
"당...가주."
그렇다.
외빈실로 들어온 사내의 정체는 독왕 당진철이었다.
"재밌는 말씀들을 나누고 계십니다."
그를 보던 당진철이 입을 떼었다.
가진명은 긴장어린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