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03화 (104/1,419)

〈 103화 〉 104. 모여드는 사람들-1

청성일검(靑城一劍) 운적자

누군가 그에 대해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답할 것이다.

구파일방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검수라고 말이다.

그리고 청성에서 제일가는 검이라고 말이다.

일검(一劍)이라는 칭호는 한 문파를 대표하는 최고의 검객에게만 내려지는 칭호이다.

운적자는 감히 일검이라고 칭하기 충분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의 무력은 수많은 검객들이 즐비하고 있는 구파일방에서도 그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성파가 구파의 말석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은 청성제일검의 존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강대하기 짝이 없는 고수인 것이다.

그런 고수가 지금 사천당문을 방문하였다.

비상이 걸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일이었다.

운적자와 청성의 제자들은 외빈실로 안내받아 걸어가고 있었다.

제자들의 얼굴에는 뜻 모를 열기가 내비쳐지고 있었다.

이는 운적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외빈실로 안내되면서 당가의 풍경을 한 번 둘러본 참이었다.

오는 길에 본 전각의 반은 불탄 흔적이 역력하였고 아예 무너져 내린 곳 또한 수두룩하였다.

지금 당가가 어떤 상황인지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시이리라

그렇기에 그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 정녕 사실이었던 것이다.

사실 운적자는 처음 당가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받았다고 소문이 돌았을 때만해도 헛소문이라 치부하였다.

사천제일을 넘어 중원제일은 넘보는 당가가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리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당가에는 독왕(毒王)이 있었다.

기존의 무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괴물이 있것만 어찌 당가가 무너질 수 있으랴

그런데 그 소문은 사실이었고 운적자는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회였다.

사천제일의 칭호를 넘겨받을 수 있는 기회말이다.

같은 사천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재정적 피해를 받았던가

사천의 주요 알짜배기 사업체들은 모두 당가가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어떤 상가든 함부로 사천에서 사업을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그러니 굳이 청성과 연을 맺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고 자연스레 속가제자의 수는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당가의 존재때문에 속가제자가 모이지가 않는 것이다.

속가제자가 모이지 않으니 자연스레 문파의 인지도와 영향력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국 당가가 중원제일세로서 위명을 떨칠 때 청성은 구파에서 쫓겨날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적자는 심해졌고 결국 청성자체에서 운영하는 사업체들까지 전부 헐값에 팔아치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정적인 부담은 여전히 남게 되었다.

돈이 없으니 제자를 양성할 수 도 없었고 제자를 양성할 수 없으니 돈이 벌리지가 않았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악순환의 최고조는 전대 장문인이자 운적자의 스승이었던 적허자가 벌인 최악의 선택에 의해 더욱 고조되게 되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전대 장문인인 적허자는 동분서주하며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러던중 만금전장에서 서역상단행에 투자할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되었다.

서역상단행은 무척이나 위험이 컸지만 그만큼 엄청난 이윤이 남는 도박성 짙은 사업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서역상단행을 중원에서 대대로 명성을 날렸던 만금전장에서 주도한다니 신뢰도가 상승하였다.

저렇게 거대한 전장에서 하는 사업이 망할리 없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적허자는 사업체를 정리하고 받은 돈은 물론 청성의 모든 운영비를 끌어다 모아 만금전장에 투자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초절정에 달한 일대제자 둘과 절정에 달한 이대제자 열 명을 파견시켰다.

서역상단행에 모든 사활을 건 것이다.

운영비를 모두 끌어다 썼기에 청성의 모든이들은 궁핍하기 그지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몇 달 후면 그 돈의 수십배의 이윤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며 있지도 않는 돈을 아끼고 또 아끼며 버텨내었다.

모두가 성공이라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역상단행은 의문의 습격자들의 의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파견 보낸 제자들은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적허자는 절망하였다.

모든 사활을 걸고 도전하였던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잃게된 것은 돈뿐만 아니었다.

문파의 주요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일대제자 두 명과 문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이대제자 열 명까지 잃게된 것이다.

결국 적허자는 홧병을 참지 못하고 적송자에게 장문인의 자리가 돌아가게 되었다.

사실 일대제자 누구도 장문인의 자리를 맡고 싶어하지 않았다.

빚과 구멍 투성이인 문파를 이끌어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거지로 자리 앉게된 적송자는 골머리를 썩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형인 적허자가 뿌린 똥이 너무나 커서 치울 엄두가 안났기 때문이다.

사고도 어지간히 쳐야 수습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청성이 가진 모든 자금을 냅다 꼴아박았으니 해결할 엄두조차 안났다.

하지만 이대로 문파를 망하게 할 수는 없었기에 적송자는 결단을 내었다.

속가 개혁이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무골이나 오성이 뛰어나지 않는 자가 청성의 속가로 들어오려면 본산 제자와 연이 있거나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여야만 속가제자로 발탁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청성은 이러한 기준을 엄청나게 완화시켜버린 것이다.

돈만 쥐어준다면 누구나 속가제자로 받아들였고 무골과 오성이 기준 또한 대폭 낮춰버렸다.

또한 속가에게 제자에게 개방되는 무공 또한 그 양과 질을 높여버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나이 제한 또한 풀렸는데 보통 늦어도 십 세 미만부터 받던 속가의 기준을 십 오세미만까지 확장시켜버렸다.

적송자의 파격적인 개혁은 수많은 반발을 불러왔지만 당장 먹고살길이 막막했던 청성의 장로들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청성은 그덕에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상위 무공을 익힐 수도 있고 나이 제한까지 여유로웠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청성으로 몰려들었고 청성은 재정적 압박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문파의 장로들은 이 일을 치욕적으로 생각하였다.

문파의 무공을 팔아 제자를 모집한 것이기 때문이다.

치욕이었다.

비록 문파가 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지만 자존심 강한 그들에게는 부끄러운 치부였다.

그리고 더욱 자존심이 상했던 것은 이렇게 속가 개혁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성의 재정은 여전히 적자였다는 점이다.

어찌어찌 속가제자를 유치하긴 했지만 그들의 질이 너무 낮아 이렇다할 성과를 보이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싸들고 오는 돈만으로는 겨우 현상유지할 정도의 수준 밖에 안되었다.

결국 적송자가 야심차게 준비한 속가 개혁은 문파를 망하지 않게 만드는 선에서 멈춰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깨달았다.

돈이 없는 설움과 치욕을 말이다.

그런데 당가의 꼴을 보니 과거 자신들과 똑같은 꼴이 된 것 같았다.

이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으랴

'흐흐흐흐흐'

운적자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망하다고 들었다지만 이정도까지 상태가 심각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돈을 주운 것 같았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먹고산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꼴을 보아하니 삼 년은 커녕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꼴이었다.

물론 중원제일세라 불리울 정도로 거대 세력을 구축한 당가이기에 쉽게 망하지는 않겠지만 엄청난 타격을 입게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번에 주전력이었던 당가의 장로과 원로들이 떼로 죽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업체가 아무리 커도 지킬만한 힘이 없다면 망하기 마련이었다.

당가는 지금 힘이 없다.

청성은 힘없는 당가로부터 수많은 이익을 뜯어낼 것이다.

과거 그들이 청성에게 했듯이 말이다.

"이곳입니다."

안내를 맡은 시종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어느새 외빈실에 도착한 듯 싶었다.

끼익

시종이 문을 열자 커다란 외빈실 내부가 보였다.

그리고 내부를 본 운적자는 눈썹을 찌푸렸다.

외빈실 내부에는 반갑지 않는 선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는군요. 운적자."

반갑지 않은 선객은 운적자를 향해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군, 불허사태"

그렇다.

선객의 정체는 바로 아미파의 장로인 불허사태였다.

아미파를 대표하는 고수이면서 운적자와 함께 사천제이를 다투는 맞수이기도 하였다.

맞수의 등장 탓일까

운적자를 보는 불허사태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신가요?"

"그것 이쪽에서 묻고 싶소, 어쩐일로 오신 것이오?"

둘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웃는 낯을 하며 말을 이었다.

"당가가 마교의 의해 상당한 피해를 받았다고 하여 사실조사 및 재건 도움을 주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물론 개소리였다.

사실 확인 후 사업체를 홀라당 먹어리기 위해 몸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왔지만 불허사태는 그런 속내를 내심 숨겼다.

이익을 멀리하고 무도를 추구하는 정파의 자존심이리라

"청성 또한 마찬가지오, 같은 정파의 동도로서 어찌 당가의 위급함을 모른척 할 수 있겠소?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리 왔소이다."

이는 운적자도 마찬가지였다.

실상은 당가에서 차지하고 있는 알짜배기 사업체를 꿀꺽하려고 온 것이지만 굳이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

"호호호 과연 명문대파다운 풍모이군요. 역시 청성입니다."

"하하하하하 아미야 말로 이리도 넓은 아량과 배려를 보여주다니 과연 부처의 가르침을 받는 불법 제자다운 풍모입니다."

그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였다.

물론 입은 애써 웃고 있지만 그 눈까지 웃는 일은 없었다.

상대가 왜 당가에 왔는지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구리 같은놈.'

'불여우같은 년.'

사실 그들의 등장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당가 전력의 공백으로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어진 사천의 패권을 차지할 기회가 눈앞에 펼쳐졌는데 이것을 마다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것도 수십 년동안 당가에 치여서 빛을 보지 못하였던 청성과 아미는 오죽하랴

끼익

그때였다.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사천당문 삼부인의 아비인 금태산이란 말이다!"

뒷편에서 밖에서 누군가 언성 높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자는 빠짐없이 모두 외빈실로 안내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네 이놈 정녕 네놈이 곤죽이 될 때까지 맞아야 정신차리겠구나!"

"곤죽이 되더라도 명을 이행해야 합니다. 부디 외빈실에서 기다리시길"

운적자는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금태산이라니

당가와 더불어 청성의 망하게 만들뻔한 주범이 아니던가

그의 눈이 희번뜩해지기 시작하였다.

"응?"

부르르르

그리고 그와 눈을 마주친 금태산은 왠지 모를 오한이 서리는 것을 느꼈다.

저 남자는 누구길래 자신을 저리도 살벌한 시선을 쳐다본다는 말인가

금태산은 천천히 남자의 외관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는 매우 짙은 남색 바탕에 소매에는 학 마리가 자수가 놓아져 있는 무복을 입고 있었고 옆구리에는 날이 번뜩이는 날카로운 한자루의 검을 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금태산의 안색이 급속도로 나빠지기시 시작하였다.

장사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목이었다.

때문에 장사꾼들은 기본적으로 주요 문파들의 대표하는 문양과 특징들을 전부 외워두는 편이었다.

언제고 실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만금전장주 또한 마찬가지였고 눈앞에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자의 정체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남색바탕에 학의 자수새겨져 있는 무복은 입는 곳은 단 한 곳 밖에 없었다.

'........청성'

그렇다.

자신을 노려보는 이는 과거 서역무역행에 전재산을 투자했다 말아먹은 청성의 도사였던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군, 만금전장주."

운적자는 살기를 가득 담아 그에게 말을 걸었다.

과거 그는 스승인 적허자를 따라다니며 수행했던지라 만금전장주인 금태산과 안면이 있었다.

그 옛날 뱀같은 혓바닥을 놀리며 순박한 스승님에게 도장을 찍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만금전장주 금태산이었다.

시선이 고울리가 없었다.

"반...반갑습니다. 운적자님!"

"난 그리 반갑지는 않네만"

금태산의 말에 운적자는 여전히 살기를 품으며 말하였다.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멱을 따고 싶지만 참고 또 참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투자를 결정한 것은 스승이 아니던가

금태산에게 화풀이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또한 만금전장을 크게 말아먹을 뻔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명분 생긴다면 바로 멱을 따주마.'

운적자는 속으로 간절히 염원하였다.

만금전장주를 처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길 말이다.

"다들 서있으실 건가요?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들의 무거운 분위기를 인지한 탓인가

불허사태가 나서서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아직 제대로 된 협상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운적자는 제자들과 함께 외빈실 중앙 쪽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만금전장주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운적자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빈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그의 가까이 있기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후 수많은 사람들이 외빈실을 방문하였고 커다한 외빈실은 곧이어 수많은 인파들로 인해 가득차버리게 되었다.

모두가 당가라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차지하기 위해 달려든 승냥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견제하며 부디 빨리 당가의 대표가 오길 고대하고 또 고대하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