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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00화 (101/1,419)

〈 100화 〉 101.관계정리-1

가주 집무실

"무엄하다!"

선우는 짐짓 목소리를 내리깔며 소리쳤다.

"아니예요, 좀더 날카롭게 내보세요."

그 목소리를 들은 금적화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콩 콩 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다시금 성대를 조정하였다.

"무엄하다!"

"아니예요, 이번에는 너무 날카로워요."

하지만 이번에도 금적화는 다르다며 핀잔을 줄뿐이었다.

'존나 까다롭네.'

선우는 속으로 내심 불평을 내뱉었다.

당진철의 목소리가 어색하다는 말을 듣고 성대를 조정하며 흉내낸지 반시진이 지났다.

하지만 금적화는 요구하는 당진철의 목소리에 도달하기에는 요원한 듯 싶었다.

미묘하게 울림이나 호흡이 달라지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챘기때문이다.

"삼부인, 그냥 대충하면 안되겠습니까?"

선우는 금적화에게 물었다.

그의 말에는 비슷하기만 하면 충분하지 않냐는 저의가 깔려있었다.

"안돼요."

하지만 금적화는 그런 선우의 의견을 깔끔히 부정해버렸다.

"목소리는 그 사람의 존재를 나타내는 울림이예요. 확실히 따라하지 않으면 듣기에 따라 위화감을 느낄 수 도 있어요."

"하아'

선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당진철의 목소리를 따라하기 시작하였다.

번거롭기 짝이 없는 작업이었지만 필요하다는데 어떻게하겠는가

당대부인과 금적화의 조력을 약속 받은 직후

선우는 그녀들에게 당가주의 모든 행동과 말버릇 등을 조정받고 있었다.

당진철을 흉내내는 것은 당세기처럼 흉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렵고 까다로웠다.

당세기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무관심하기도 하였고 워낙 교류가 없던 탓에 성격이 바뀌어도 대놓고 의심할 일이 없었지만 당가주는 달랐다.

앞으로 수많은 무림인사들을 만날 것이고 당가의 혈족들과 대면할 입장이었다.

완벽한 당진철이 되어야한다는 말이었다.

선우는 골머리를 썩었다.

생각보다 난이도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각만 쉬고 다시하시죠. 여기 물좀 드세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목이 쉴 기미가 보이자 금적화가 수통을 건네며 휴식을 권고해왔다.

선우는 혼쾌히 그녀가 내민 수통을 받아들였다.

안그래도 목이 갈라지던 참이었다.

벌컥 벌컥

캬하"

선우는 수통에 있는 물을 전부 마신 후 금적화에게 건넸더.

"감사합니다. 삼부인."

"별말씀을."

수통을 받아든 그녀는 그대로 집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쩝"

선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입맛이 썼다.

'아직은 같이 있기 어색한 건가?'

금적화는 조력을 약속한 이후에도 사무적인 일이 아니면 선우와 단 둘이 있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일처리하나 만큼은 완벽하였다.

모든 실무관련된 일은 그녀와 논의할만큼 말이다.

하지만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사적인 친분을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앞으로 같이 일하려면 더욱 친해져야 할텐데 '

선우는 그녀가 선긋는 모습에 입맛이 썼다.

그때였다.

와그작 와그작

어디선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 소리를 따라가니 집무실에 한켠에 마련된 침상에서 월병을 먹고 있는 인면지주가 보였다.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방실 웃어대며 침상을 뒹굴고 있었다.

"야"

그 모습이 아니꼬왔던 선우는 그런 그녀를 불렀다.

"왜?"

인면지주는 선우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나가서 놀아."

"난 여기가 편한데?"

사실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보호해주기로 한 선우의 근처가 가장 편하였기 때문이다.

"그럼 월병 좀 그만 처먹던가"

"이거 맛있는데?"

선우는 짜증이 절로 올라왔다.

불리하면 꼭 딴소리를 한다.

근데 정말 화가나는 것은 이게 진짜 눈치가 없는 것인지 눈치없는 척 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간다는 것이다.

터벅 터벅

인면지주에게 다가간 선우는 그대로 그녀의 월병을 빼앗아버렸다.

"아, 내 월병!"

인면지주는 빼앗긴 월병을 보며 소리질렀다.

그리고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혼자 잘놀고 있는 자신을 왜 건든단말인가

와그작 와그작

선우는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그녀의 눈앞에서 월병을 씹었다.

정신적인 피로가 쌓였을 때

한 번씩 그녀를 괴롭해주면 기분이 풀리곤 하였다.

이러면 안된다는 것은 알지만 인면지주는 놀려먹는 재미가 있었다.

"내꺼야! 먹지마!"

물론 인면지주입장에서는 짜증이 치밀어 오를 일이지만 말이다.

저 월병은 운가려라는 젖통 큰 여자가 자신이 예쁘다며 쥐어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왜 가져가 먹는단 말인가

인면지주는 그대로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어어?"

선우는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인면지주를 보며 당황하였다.

항상 놀려먹어도 볼을 부풀리거나 성질 부리는 것외엔 별반응이 없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달려드니 살짝 신선하였다.

"줘어! 줘!'

인면지주는 선우의 손에 든 월병을 빼앗기위해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선우는 그녀에게 월병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손을 휘젓고 뒷걸음치며 그녀를 농락하였다.

이미 화경에 오른 선우였다.

인면지주가 화경에 근접한 괴물이라해도 그의 동체시력을 따라잡는데는 무리가 있었다.

"이이익!"

하지만 인면지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억울함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월병을 가져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

선우는 그녀의 신선한 반응을 즐기며 더욱 놀리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집무실 책상이 등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어라?"

더 이상 뒷걸음 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인면지주는 그런 선우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선우에게 덮쳤고 선우는 그대로 책상위에 눕혀지게 되었다.

"내놔!"

"야아아아 저리가!"

우당탕

선우와 인면지주는 서로 뒤엉키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름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라 그런지 둘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하였다.

"이런!"

인면지주는 상당수 힘을 회복했는지 만만치 않았고 선우 또한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러다간 월병을 빼앗기게 된다.

"이 정박아년이!"

선우는 그녀에게 욕짓거리를 내뱉고 거칠게 저항하였다.

"이 개같은 놈아!"

인면지주 또한 욕설을 내뱉으며 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끼익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묻어나는 우아한 여자.

금적화였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집주실 책상에 뒤엉켜있는 선우와 인면지주를 바라보았다.

그들 행태는 가관이었다.

옷매무새는 흐트려져 있었고 선우는 책상 위에 등을 대고 누웠있었고 인면지주는 그위를 포개고 있었다.

거기다 둘다 뭐가 그리 힘든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누가봐도 오해할만한 상황인 것이다.

이는 금적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금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잠...잠시만요 삼부인!"

선우는 당황하여 그녀를 불렀지만 이미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간지 오래였다.

선우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휘익

"월병!"

그때였다.

손에 쥐고 있던 월병을 인면지주가 가로챘다.

와그작 와그작

그리고 혹여 뺏길세라 전부 입에 털어넣은 뒤 씹어먹기 시작하였다.

와그작 와그작

오독 오독

와그작 와그작

집무실에는 그녀의 월병 씹는 소리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쪽 쪽

이내 월병을 전부 먹은 그녀는 손가락에 묻은 부스러기를 빨아먹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에 정신 든 선우는 그대로 인면지주를 노려봤다.

인면지주는 그런 선우를 보며 방긋 웃었다.

마치 자신이 이겼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먼저 장난은 건 것은 선우였지만 왠지 모를 얄미움이 올라왔다.

선우는 그대로 손을 뻗어 그녀의 말랑말랑한 볼을 잡았다.

"응?"

갑작스레 볼을 잡힌 인면지주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주욱

그리고 불안감을 현실이 되었다.

선우가 그녀의 볼을 좌우로 주욱 잡아당긴 것이다.

그것도 무척 세게 말이다.

"아파아아아아아아!!!!'

인면지주는 볼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이 망할놈의 거미새끼야!"

단순히 좌우로 잡아당기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선우는 위 아래로 위치까지 바뀌가며 그녀의 볼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아아아아아아!"

집무실에 그녀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드르륵

다시금 문이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것은 당서윤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선우와 인면지주를 바라보았다.

선우는 인면지주의 찰떡같은 양볼은 주욱 잡아당기고 있었고 인면지주는 울먹이고 있었다.

당서윤은 머리를 짚었다.

안그래도 해결 해야 할 일이 산더미것만 벌써부터 놀면 어떻게한단 말인가

"그만해."

그녀의 말에 선우는 인면지주의 볼에서 손을 떼었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아깝긴하였지만 당서윤의 심기가 불편해보였기 때문이다.

인면지주는 빨갛게 부어오른 볼을 만지작 거리며 선우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선우는 그런 그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 이번에 건의할 안건이랑 대본이야, 미리 숙지해놔."

그녀는 책상 위에 커다란 서류 뭉텅이 하나를 내려놓았다.

얼마나 무거운지 책상에서 진동이 울릴 정도였다.

"뭐가 이렇게 많아?"

선우는 그녀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 무슨 회의 한 번하는 데 건의할 것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원래는 이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특별하니까"

당서윤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세가 회의라고 해봤자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달에 한 번 정도였고 안건이라고 해봤자 사업체 관리 및 확장과 세가 운영에 대한 기타 제반사항의 확인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마교에 의해 궤멸적인 피해를 입은 당가는 정리해야할 것이 태산이었다.

일단 이번 사태에서 죽은 이들의 장례를 대대적으로 치뤄야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계급별로 순차적으로 지급해야한다.

그리고 이번사태로 부숴졌거나 불타버린 전각이나 기물들을 모두 복구해야했고 주 전력이 빠진 지금 사업체 또한 정리해야했다.

초절정 고수와 절정의 고수들의 존재는 무가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할정도로 존재감이 어마어마하였다.

때문에 그 숫자에 따라 무가의 명성이나 신뢰도가 증가하였고 그에 따른 사업체 운영도 원활하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수많은 고수들을 잃어버린 당가 입장에선 지금까지 세를 확장시킨 사업체가 부담으로 다가왔고 정리하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없었다.

거기다 고수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새로운 인재 또한 양성해야했기 때문에 당가 비고의 개방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을 늘어날 수 밖에 없었고 선우가 외워야할 사항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선우는 골머리가 아파왔다.

그저 행세만 하면 충분할줄 알았것만 가주는 그의 예상보다 더욱 바쁘고 고달픈 일이었다.

"그리고 청성과 아미에서 전서를 보내왔어."

"뭐라고?"

"사업체를 넘기라더군."

그녀의 말에 선우는 입맛이 썼다.

남 잘 된 소식보단 남 망한 소식에 민감한 것은 현대나 중원이나 같은 듯했다.

마교가 당가를 들쑤신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당가를 찔러본단 말인가

"뭐라고 대답했는데?"

"적법한 가격에 넘긴다고 말했지."

"그러더니?"

"직접 협상하러 온다더군."

말을 마친 당서윤의 표정이 짐짓 굳어졌다.

그 말이 의미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마 무력시위를 하겠다는 의미리라

"내가 뭘해야 할까?"

"그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할거야. 그때 가주의 건재함을 보여줘."

"쉬운일이네."

그녀의 말에 선우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무력으로 깽판치는 것이 이렇게 책상에 앉아 서류만 훑어보는 것보단 더욱 적성에 맞는 일이리라

"그리고"

그리고 당서윤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인면지주님은 어떻게 할거야?"

당서윤은 손가락을 쭉 뻗어 인면지주를 가리켰다.

이미 선우에게 인면지주의 정체를 들은 그녀였다.

수백년 묵은 영물이었기에 그녀는 인면지주에게 존칭을 썼다.

"나?, 나 왜?"

인면지주는 당서윤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의아한 듯 되물었다.

"지금 가주가 이시국에 여색에 빠져 새로운 첩을 들였다고 말이 많아."

당서윤은 심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할 것 같은데?"

".........."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선우도 그 고민을 안해본 것은 아니었다.

인면지주는 당진철로 위장한 그의 곁에 두기에는 너무 눈에 띄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는 짓은 애같았지만 당서윤과 맞먹을 정도의 절색의 미모와 나올데 잘나오고 들어갈때 잘 들어간 완벽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녀는 선우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당가주가 절세의 미녀를 첩으로 들였다는 소문이 나버린 것이다.

하지만 마땅치 해결책 또한 없었다.

아직도 몸이 회복이 안된 그녀는 선우에게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미안, 방법이 없네."

이미 그녀를 지켜주기로 약속한 그였다.

이제와서 방해된다고 내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그간 정이 든 탓도 있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일단 입단속을 최대한 시키는 수밖에."

당서윤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선우또한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것보다 당대부인한테 가보는게 어때?"

"당대부인?"

선우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지금 엄청 심란해 하고 있어, 네가 한 번 찾아가 관계 정리를 해야할 것 같아."

그녀의 말대로 당대부인은 적극적으로 선우를 조력하는 금적화는 달리 거처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아마 남편과 아들잃고 외간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리라

선우는 아차 싶었다.

갑작스레 일거리가 산더미가 쌓여 그녀를 챙기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알았어, 그럼 지금 가볼게."

선우는 재빨리 몸을 돌려 집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누군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당서윤이 보였다.

그녀는 말없이 집무실에 올려져있는 서류뭉치를 가리켰다.

선우는 그녀의 눈치를 슬며시 보았다.

그리고 이내 몸을 다시 돌려 조심스레 집무실 책상에 앉았다.

아무래도 빠져나가는 것은 무리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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