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99.뒷수습-3
"저는 그 길로 가주에게 찾아가 당공자의 부고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당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죠."
선우의 눈시울을 붉힌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가주께서는 크게 노하셨고 배신자를 색출하기위한 작업을 하였지만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그들의 꼬리가 좀처럼 밟히지 않았기 때문이죠."
선우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에게 당세기로 역용해줄 것을 부탁을 하였습니다.. 대외적으로 당세기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세가에 혼란이 올 것이고 그 혼란은 배신자들에게 판을 깔아주는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마침 역용술을 익히고 있던 저는 그렇게 당공자를 행세를 하며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한 밑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당대부인은 무척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그녀와 정을 통한 아들의 정체가 사실은 장선우였다는 사실이 그의 입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교의 간자를 잡아내는 것은 어려웠고 저희들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주께서 한 가지 꾀를 내셨습니다. 그들을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의 나서게 하는 방법을 쓰자고 말이지요."
선우의 말에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수가 설마?"
"맞습니다. 바로 고독관의 개관이었습니다."
"말도안돼! 고독관 개관이 어떻게 배신자를 색출한다는 말입니까!"
선우의 말에 금적화가 딴지를 걸어왔다.
고독관 개관은 외척세력의 배척 및 후계자 선출을 위한 악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악습따위로 배신자들을 색출한다는 말인가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애초에 고독관이라는 수세기 전에 없어진 악습을 굳이 부활시킨 이유가 왜겠습니까? 모두 마교에 붙어먹은 배신자들을 색출해내기 위한 가주님의 혜안이지요. 고독관이 개관하여 후계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들은 소가주 후보들을 죽이기 위해 고독관에 입관하게 될테니까요 . 그래서 저희는 역으로 함정을 파 그들을 전부 잡아죽일 작정이었습니다."
선우는 그녀의 반론에 담담히 대꾸하였다.
실제로도 후계자 싸움에 끼어든 장로와 원로들이 당가를 비우지 않았던가
일반적으로는 말이 안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일이 일어났으므로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주께서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후계 싸움이 가주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치열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고독관에 소가주 후보들이 입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 파벌의 장로와 원로들마저 고독관에 입관하였습니다. 경합을 이기기 위해서 말이죠."
선우의 말을 들은 금적화는 표정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자신 또한 아들인 당산을 돕고자 파벌의 장로 몇 몇을 고독관 내부에 들여보냈기때문이다.
"결국 장로들과 원로들의 파벌 싸움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파벌도 없는 당세기의 모습으로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를 죽이려고 하더군요. "
선우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나름의 설득력이 들어가 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던 중 그가 나타났습니다."
"그라면?"
당대부인이 되물었다.
"독마(毒魔) 말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금적화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빠르게 고개를 도리질 쳤다.
순간 나쁜 상상을 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초절정에 육박하는 장로와 원로들이 수십이었다.
설마 한 사람에게 당하겠는가
꿀꺽
"그렇다면 장로님들과 원로님들은?"
"전부 몰살당하였습니다."
선우의 말에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쁜 상상은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당가의 주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로들과 원로들이 독마라는 절대고수 한 명에게 떼로 몰살당한 것이다.
그들이 몰살당했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가를 지켜줄 전력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다.
전력의 부재는 곧 당가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녀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그...그럼 산이는? "
그리고 이내 금적화가 깨달은 듯 불안한 표정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선우는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흐윽,....흑흑"
선우의 그런 모습을 본 금적화는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하나뿐인 금쪽같은 자식이 죽어버린 것이다.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장공자....그렇다면 욱아도?"
당대부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우에게 물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독마에 손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선우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녀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흐흑....흑흑...흑"
당대부인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이내 방울진 눈물들이 쉴새없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간신히 참고 또 참아뒀던 눈물이 터지고 만 것이다.
두 사람다 졸지에 자식을 잃은 어미가 된 것이다.
남편을 잃은 여인을 과부라고 부르고 아내를 잃은 남자를 홀아비라고 부르며 부모를 잃은 아이의 경우 고아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들를 지칭할 만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표현할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가히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에 잠겨 울고 또 울었다.
선우는 그녀들의 울음이 그쳐질 때까지 그저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흐흑...기아야,.....흐흑 흑흑 욱아..."
"흐흑흑흑....산아....명아..."
그녀들은 죽은 아들들을 애타게 부르며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진정이 됐는지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울음을 멈췄다.
하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퉁퉁 부어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말이다.
"부군은 어찌 되었는가?"
그때 대뜸 당대부인 선우에게 가주의 안위를 물어왔다.
"............독마와 양패구상 하셨습니다."
".....그런가요"
".........."
남편의 부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부인은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이었다.
금적화 또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식을 잃었다는 너무나 큰 슬픔을 겪을 탓일까
마치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우리에게 굳이 이런 속사정까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대부인은 다시금 그에게 물어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우의 입장에서는 이런 속사정까지 그녀들에게 말해줄 의무는 없었다.
딱히 전력에 도움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망해버린 당가의 안주인 따위에게 힘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당가를 재건하여 훗날에 마교의 준동을 막아낼 세력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장공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저희는 도와줄 수 있는게 없어요. 당가가 망해버린 걸 알게되는 순간 외척 가문 또한 저희를 외면할겁니다."
금적화는 음울하게 말을 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당가라는 유력 세가에 빌붙기위해 딸을 시집보낸 가문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당가가 망했다는 것을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할 것이다.
당가가 가지고 있던 콩고물이라도 주워먹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만약 당가가 망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재건은 커녕 제일 먼저 나서서 당가를 헤집으리라
'나는 어디 돈 많은 늙은이의 첩을 팔려버리겠지?'
금적화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남편과 자식들을 잃은 것도 모자라 늙은이의 첩을 팔려갈 상상을 하니 자신의 인생이 서글퍼졌기 때문이다.
"아니요, 부인들의 도움만 있다면 충분히 재건할 수 있습니다."
선우는 확신하듯 그녀에게 말하였다.
"대체 어떻게 한다는 소리죠?"
당대부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때였다.
끼익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그 다음부터는 제가 설명할게요. 부인"
당서윤이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어떻게?"
"저 또한 장공자를 도운 조력자니까요."
그녀의 말에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어안벙벙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우의 말만 놓고보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내용이 상당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정도 걸러서 듣고 있던 차에 당서윤이 나타난 것이다.
가주인 당진철의 여동생이면서 여인의 몸으로 초절정 상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고수가 말이다.
그녀의 등장과 옹호는 장선우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반신반의하던 것이 확신이되는 순간이었다.
당서윤의 등장에 선우는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생각한 결정타는 당서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급히 만들어낸 이야기였기에 여기저기 상황에 따라 맞춘 구멍 투성이 같은 이야기였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 해보이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아리송한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의혹을 당서윤이 등장하면서 모두 타파시켜버린 것이다.
완벽했다.
"저는 그에게 비호를 부탁했습니다."
"아가씨, 비호라뇨?
의아함을 느낀 금적화가 그녀에게 되물었다.
비호(庇護)라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비호란 누군가 나서서 편들고 보호해주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던가
그런데 저런 젊디 젊은 청년이 누굴 비호한다는 말인가
"장공자는 화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녀의 말에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경악하였다.
고작해야 이립도 안되보이는 청년이 화경에 이르렀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비록 무림사에 어두운 아녀자에 불과하다지만 그녀들 또한 눈이 있고 귀가 있는 법
화경이 어떠한 경지인지에 대해서는 귀가 딱지가 박히도록 들었던 그녀들이었다.
저 별과도 같은 구파일방에 수장쯤은 되야 , 아니 수장이라 하더라도 감히 도달하지 못할 정도로 지고하기 짝이 없는 경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 지고하기 짝이 없는 경지를 이 젊디 젊은 청년이 도달하였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말도안됩니다. 화경이라니...."
금적화는 당서윤의 말을 부정하였다.
아무라 생각해도 무리였다.
그처럼 젊은 나이에 화경에 도달하는 것은 말이다.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는 혈궁대라 불리우는 마교의 부대를 홀로 전멸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당서윤은 의심에 가득 찬 금적화에게 담담히 말하였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그녀에게는 정확한 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나으리라
"혈궁대를?"
그녀의 말에 금적화는 또다시 놀랐다.
마교의 부대를 전멸시켰다니 마치 젊은 시절 흑갑철기병을 홀로 전멸시킨 가주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당서윤이 직접 말한 사실이니 분명 거짓은 아니리라
"그가 화경에 이르렀다지만 당가의 혈족들이 그의 비호를 반기겠습니까? 그는 외인입니다."
그때 당대부인이 뼈있는 한마디를 건넸다.
이는 사실이었다.
기는 것보단 죽음을 택하는 것이 바로 당가의 혈족들이었다.
그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반기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죠, 외인이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외인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우두두둑 우둑
그때였다.
당서윤의 말이 끝마치기 무섭게 선우의 골격이 변하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면 시작했다.
눈, 코 ,광대 ,턱이 차근 차근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이내 젊은 청년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어지고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으로 바뀌게 되었다.
당진철이었다.
그 모습을 본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이내 수긍하였다.
가주가 살아있는 행세만 한다면 당가가 무력히 무너지는 일은 없으리라
"그렇다면 대외적으로는 장공자께서 당가주 행세를 하고 내부에서는 아가씨께서 당가의 전권을 장악하겠다는 말인가요?"
금적화가 질문을 하였다.
그가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한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는 그에게 세가에 대한 전권을 넘길 생각입니다."
"말도 안됩니다!"
"그는 외인입니다."
당서윤의 말에 당대부인과 금적화가 맹렬히 반대의견을 피력하였다.
아무리 당가를 구해준 은인이라지만 그는 엄연히 외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외인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것은 당가를 갖다바친다는 것밖에 안되었다.
"그렇다면 부인들께서는 다른 방도가 있으신가요?"
"............"
"..........."
당서윤의 말에 그녀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마땅한 방도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기때문이다.
"어차피 장공자가 아니라면 당가는 봉문을 넘어서 멸문할 것입니다. 외척 세력들은 도움은 커녕 너도 나도 권리를 주장하며 당가를 찢어놓을 것이고 사천에 아미파와 청성파는 기회라 여기며 세를 확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온 중원의 거대 문파들이 보호한다는 핑계로 당가를 휘하에 두려고 할 것입니다. 부인들 정신차리세요. 지금 당가는 망하기 직전입니다!"
당서윤은 그런 그녀들을 향해 호되게 질책을 하였다.
당가를 지켜줄 울타리들이 다 무너진 지금 무엇을 따진단 말인가
"당가가 무너지면 부인들께서는 멀쩡할 것 같으십니까? 처가에 간다고 하더라도 애물단지 취급이나 받으며 곱게 늙어가게 되겠지요. 운이 나쁘면 새 시집을 갈지도 모르지요."
당서윤은 그녀들을 향해 신랄하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새언니에게 대하는 태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역시 틀린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순화된 것이리라
"아니면 장공자를 회유할 방법이라도 있으신겁니까? 단순히 가주와 외견만 똑같아선 안됩니다. 그에 걸맞는 무력까지 갖춘 이가 필요한겁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그녀들에게는 장선우를 회유할만한 방법도 대체할만한 이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선우가 아니면 안되었다.
"그는 제가 화경에 오를때까지 당가를 섭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당가가 사는 방법입니다."
당서윤은 더 할말없다는 듯 확고히 말하였다.
"만약 그가 전권을 사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감수합니다."
즉답이었다.
"저는 그를 믿습니다. 적어도 부인들의 외척가문보다도 휠씬 말이지요."
".............."
".............."
그녀의 말에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짐짓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을 지켰다.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어..언니!"
당대부인이 입을 열었고 금적화는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아무래도 당대부인은 판단이 선 것처럼 보였다.
"간단합니다."
당서윤은 손을 뻗어 선우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들 앞으로 질질 끌고왔다.
"장공자를 진짜 당가주로 만들어주세요."
당서윤의의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