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88.거래를 하다-1
"보물을 줄게!"
인면지주는 검을 치켜든 선우를 향해 소리쳤다.
뚝
'응?'
그말을 들은 선우는 지켜든 검을 멈춰세웠다.
별안간 보물은 무슨 보물이란 말인가
"보물?"
선우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래 보물, 내단에 상응하는 보물을 줄테니까 제발 나를 살려줘."
그녀는 울먹이며 선우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선우는 그녀의 대답에 다시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죽여서 내단을 섭취할 생각이긴 하였지만 보물을 준다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억지를 부리긴 했지만 목숨의 구함을 받은 것은 사실이 아니던가
내단에 상응하는 보물이라면 살려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물론 둘다 차지해도 되지만'
선우는 머리속에 나쁜 생각이 고개를 드는것이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그런 보물이 진짜 있긴 한걸까?'
선우는 별안간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인면지주의 내단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의 보물 중에 보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보물과 맞먹는 가치를 가진 물건을 과연 눈앞의 인면지주가 가지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벌려고 거짓말하는거 아니야?'
선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가녀린 인상의 절색미녀가 알몸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선우는 깊은 고심에 빠지게 되었다.
"흐음"
선우는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인면지주는 그런 선우의 눈치를 슬그머니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생각을 마쳤는지 선우가 턱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다시금 검을 쥐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보물을 준다니까!!!!"
선우가 검을 들자 인면지주가 기겁하며 소리를 쳤다.
"고독관에서 수 백년을 썩은 네가 무슨 보물을 가지고 있겠어?"
그녀의 대답에 선우가 코웃음을 쳤다.
수 백년간 고독관에 처박혀있던 그녀에게 그런 값진 보물이 있을리 없었다.
"왜 말을 안믿는거야, 직접 본 것도 아니잖아!"
"보나마나 맛있는 독초라던가 예쁜 나무껍데기 같은 거겠지."
한낱 미물따위와 인간이 생각하는 보물이 같을리가 없지 않은가
선우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이건 날 이곳에 처박았던 인간이 애지중지하던 물건이라고!"
"뭐!?"
그녀의 말에 선우는 놀라 되물었다.
"그게 진짜야?"
"정말이야 , 그 인간이 고독관에 올때마다 항상 애지중지했던 물건이야."
그녀의 말에 선우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인간이 애지중지하던 물건이라면 그또한 얘기가 달라진다.
그녀말대로 진짜 대단한 보물일 수 도 있는 것이다.
"너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첫 눈을 삼백 번 정도 봤어."
그녀의 대답에 선우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첫 눈을 삼백 번을 봤다는 것은 삼 백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곳에 갇혀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시기라면 고독관이 설립된 시기와 날짜가 겹쳤다.
그말인 즉슨
인면지주 한 쌍을 고독관에 처넣은 자의 정체는.........
".......독황"
과거 천하제일인으로 불렸던 당가의 절대자 독황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상당히 놀랐다.
설마 그녀를 이곳에 처박았던 자의 정체가 독황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보물에 대한 신빙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독황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방계나 익히던 귀원공을 뜯어고쳐 만류귀원신공으로 탈바꿈시킨 후 독공으로 반선의 경지에 오른자이면서 사천당문에서 배출한 유일한 천하제일인이 아니던가
더구나 그는 과거 혈불과의 전투에 승리하여 무림을 구한 대영웅이었다.
보물이라면 차고 넘칠 것이 분명하였다.
선우는 반색하였다.
다행히 이 여자는 보물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때? 이제 흥미가 돋아나?"
선우가 반색하는 것을 본 인면지주는 슬며시 웃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아무래도 그녀의말이 통한 듯 싶었다.
"확실히 흥미가 가긴하네."
선우는 솔직히 말했다.
독황의 보물이라니 끌리지 않을리가 없었다.
더구나 독마와 싸우면서 보물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새기게 된 그였다.
만약 그가 패왕귀면갑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인면지주의 도움이 없이도 충분히 그를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재원의 손에 박살나긴했지만 신묘한 기운이 있었는지 자가 수리가 되던 녀석이었다.
그 녀석이라도 들고왔으면 훨씬 더 여유롭게 그를 상대했으리라
잠입할 때 불편할 것같아 그냥 놔두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이제 화경에 오르긴 하였으나 무림에는 아직도 그보다 강한 이가 수두룩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패왕귀면갑같은 기물의 힘이라도 빌려야하지 않겠는가
만약 인면지주가 말한대로 독황이 애지중지하던 보물이라면 패왕귀면갑 못지않은 물건일 수도 있었다.
선우는 기대감에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하였다.
"좋아, 만약 내단에 상응하는 보물이 맞다면 살려주지."
"정말!?"
선우의 말에 그녀가 반색하며 되물었다.
드디어 살아날만한 구멍이 생긴 것이다.
"대신"
선우가 사족을 붙였다.
"응?"
"만약 내단에 상응하지 않을시 그냥 순순히 내단을 넘겨."
"그런게 어딨어!"
선우의 말을 들은 인면지주는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었다.
그말은 즉슨
보물이 있는데까지 데려다주었다해도 보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싫으면 지금 죽던가"
선우는 다시금 검을 슬며시 들었다.
"아...아니야 할게!"
선우의 검을 본 그녀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일단 살고봐야 했기 때문이다.
'나쁜새끼'
그녀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수백년의 세월동안 자신을 이렇게 대한 이가 어디있었겠는가
이곳에 자신을 처박은 자마저
빨리 자라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았던가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모든 독물들중에서 가장 진한 독기를 소유하고 있는 왕이자
먹이사슬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포식자들 중에서 최고의 포식자이자
수어번의 탈피를 거듭하여 요선에 가까워진 요물이 아니던가
인면지주는 새삼 처량해진 자신의 신세가 서글퍼졌다.
하지만 그 모든 수식어들이 이 남자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자신보다 강하였고 자신은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아, 안내해"
선우는 그녀에게 손짓을 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보물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만 일단 회복 좀 하고 알려줄게."
"개소리하네"
선우는 코웃음을 쳤다.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란 말인가
"일어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알려주란 말이야!"
그녀는 선우의 코웃음에 지지않고 언성을 높였다.
"네가 회복할 시간을 줄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하게?"
"안겨."
"뭐?"
"안겨서 가라고 "
탁 탁
선우는 그녀에게 자신의 품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회복할 시간을 버는 것이 못미더운 듯 보였다.
그런 선우의 반응에 인면지주는 쾌재를 불렀다.
얌전히 안겼다가 회복하는 즉시 가슴을 꿰뚫어버릴 생각이었다.
"알았어."
그녀는 혼쾌히 선우에게 대답하였다.
그때였다.
"잠시만"
선우가 다시금 검을 쥐었다.
서걱
촤아아아악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가슴팍을 베어버렸다.
핏물이 터져나오면서 그녀의 몸을 적시기 시작하였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분명 이야기가 잘통한 것이 아니던가
별안간 왜 갑자기 칼질을 한다는 말인가
그녀는 원독에 찬 눈으로 선우를 쳐다봤다.
"나도 보험은 들어둬야지, 혹시 알아? 갑자기 돌변해서 공격할지?"
그녀의 원독어린 시선에도 선우는 담담히 말하였다.
애초에 선우는 그녀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상대는 엄연히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적이 아니던가
지금은 살기위해 협력한다고는 하지만 틈을 보인다면 언제든 공격할지 모를 여자였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험을 들어둬야했다.
서걱
서걱
선우는 내력을 담아 몇 차례 그녀를 더 베어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그때마다 그녀는 원독에 찬 비명소리를 내질렀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았다.
상당히 많이 베어내고 나서야 선우는 안심하듯 검을 집어넣었다.
"휴우 이제야 안심되네."
선우는 손을 들어 이마에 흘린 땀을 훔쳐낸 뒤 말을 이었다.
"훌쩍....나..쁜..새끼...훌쩍."
선우의 검에 베인 인면지주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무나 큰 고통에 눈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 베인 상처에서 피가 새어나왔고 그 상처들을 회복하느라 기력이 빨리기 시작하였다.
선우를 습격할 계획은 저 멀리 날아간 듯 싶었다.
"이정도는 보험을 들어놔야 널 안고가지?"
그녀는 처량하게 말을 이었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았다.
어디 괴물주제에 사람행세를 한단말인가
그것도 다짜고짜 죽이려고 했던 녀석이 말이다.
조건부로 살려준다는 약속을 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할 것이다.
"이제 가자"
선우는 그녀를 들어올린 후 그대로 안아들었다.
"꽉 잡아라."
인면지주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선우의 목을 꽉 잡았다.
선우는 발을 굴러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보물을 챙길 시간이었다.
************
"훌쩍....훌쩍,....훌쩍"
인면지주의 울음소리가 선우의 귀를 강타하였다.
"그만 좀 처울어!"
선우는 짜증이 치밀어올라 그녀에게 소리를 쳤다.
"훌쩍...아픈걸 어떻게 해! 이 개같은놈아!"
그녀는 되려 지지 않고 욕설을 내뱉으며 맞받아쳤다.
그녀는 억울했다.
자신이라고 울고 싶어서 울겠는가.
아파도 너무 아픈 고통을 참지 못하고 눈물이 새어나왔다.
그걸 자신이 어떻게 제어하란 말인가
거기다 짜증까지 부리는 선우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만든 장본인주제에 말이다.
인간으로 탈피하고 본체의 내구성이 약해져도 너무 약해졌다.
거기다 거미의 모습이었을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감정이 풍부해졌다.
인간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요선(妖仙)의 경지에 가까워졌다는 반증이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간처럼 다양한 감정마저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아픔에 더욱 민감하였고 서러웠고 슬펐으며 화났다.
모든 감정이 선명히 느껴졌기때문이다.
선우도 선우 나름대로 당황스러웠다.
한낱 괴물이 인간으로 둔갑한 주제에 하는 행동은 인간과 별다를바가 없지 않겠는가
누가 그녀를 보고 수백년을 묵은 인면지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뭔가 괴물자체라고 느끼기엔 감정이 너무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뭔 인간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니 온몸을 난자한 것이 살짝 미안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괴물이 아니던가
쓸데없는 감정이었다.
"훌쩍...훌쩍...여기서 백 장만 더 가면...훌쩍,....보일거야"
또 울면서 말은 잘한다.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긴장을 풀어선 안된다.
'얘 괴물이라고 미친새끼야!'
선우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은 후 덤덤히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삼 백장의 거리라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머지 않아 닿을 수 있으리라
.
.
.
.
.
.
그렇게 얼마지나지 않아 선우는 거미줄로 된 거대한 둥지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이 인면지주가 말한 보물이 있는 곳이리라
"여기가 네가 말한 그곳이야?"
"훌쩍...맞아...안에 들어가면 그 남자가 애지중지하던 물건이 있을 거야.."
그녀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아직도 상처가 낫지 않은 듯 싶었다.
선우는 속도를 줄여 천천히 거미 둥지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혹여 무언가 튀어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크큭...왜 속도를 줄여? 혹시 겁먹은거야?"
그때 뒤에서 조롱기 다분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강대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겁먹은 듯 조심스레 둥지로 접근하는 것을 보니 웃음이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조롱어린 웃음에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당하고도 그놈의 장난기는 못버린 듯 싶었다.
쾅
"아악!"
선우는 주먹을 들어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쥐어박았다.
상당수의 내력을 불어넣기 때문인지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왜 때려!"
"그냥"
"이이이이이익!"
그녀는 마음에 안든 듯 선우를 노려봤지만 그는 애써무시하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탈피한 인면지주와 말을 섞다보며 자꾸 유치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물만 얻고 빨리 헤어지자.'
찰팍 찰팍
거미줄로 된 둥지 안에 들어서자 바닥에서 끈적이는 점액질이 느껴졌다.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뭐야?"
"독액이야."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히 대답하였다.
"아니 무슨 집에 독액을 뿌려놔?"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뒀던거야."
그녀의 대답에 선우는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독액을 땅바닥에 던져놓고 퍼먹는단 말인가
짐승은 짐승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액 뿐만아니였다.
거미줄 내부에는 역한 독무까지 가득 차 있었다.
만약 경지에 오르기 전이었다면 낭패를 볼 정도로 독한 독무들이 말이다.
선우는 인면지주를 슬쩍 쳐다봤다.
'설마 중독시키려고 데려온 것은 아니겠지?'
"뭘 봐?"
선우의 시선을 느꼈는지 인면지주가 고개를 올려 물어봤다.
"아니야, 아무것도"
선우는 다급히 고개를 올리고 길을 따라 걷기시작하였다.
찰팍 찰팍
생각보다 내부가 깊었고 길이 이리저리 꼬여있었다..
"얼마나 가야되?"
"조금만 더가면 나와, 여기서는 오른쪽으로 꺾어야해."
선우는 그녀의 말에 따라 차근차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바닥이 생각보다 미끄러워 속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야, 저기!"
그녀가 손을 뻗어 저 멀리있는 무언가를 가리키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도착한 듯 싶었다.
선우는 걸음걸이를 좀더 빨리하기 시작하였다.
찰박 찰박 찰박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가 말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장소에는 거무튀튀한 상자 하나가 비치 되어있었다.
선우는 홀린 듯 천천히 손을 뻗어 상자를 만져보았다.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만년한철!?'
혹시나 싶었다.
이정도의 한기를 품고 있는 금속은 흔치 않았으니 말이다.
선우는 검을 뺴들었다.
"잠...잠깐만! 저 상자가 아니야 , 진짜 보물은 상자 안에 있다고!"
그 모습을 본 인면지주가 울먹이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선우의 검이 자신을 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선우가 검을 빼든 모습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것이리라
선우는 그녀의 울먹임을 무시하고 그대로 내력을 집중하였다.
그리고 이내 검에서 강기가 형성되었다.
선우는 형성된 검강을 휘둘러 그대로 상자에 내려쳤다.
깡
금속음이 나면서 선우의 검강이 튕겨나갔다.
선우는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대박을 건진 듯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