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68.당가풍운唐家風雲-2
초절정의 경지와 절정의 경지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이 화두에 대해서는 칼을 막 잡기 시작하는 어린아이부터 경지에 오른 무인까지 모두가 궁금해 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초절정과 절정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이있고 그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고 말이다.
또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래봤자 어차피 사람이 아니냐고 칼이 들어가면 피륙이 갈라지고 피가 나며 죽는 것은 매한가지가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절정에 이른자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에게 작은 생채기조차 내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호신강기의 유무때문이었다.
초절정 경지에 오른 자는 호신강기라는 것을 익히게 되는데 이는 강기를 몸에 둘러 몸을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술이다.
초절정에 이른 자에게 상처입히기 위해서는 호신강기라는 벽을 뚫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작 절정에 불과한 자의 실력으로는 호신강기를 뚫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호신강기 없는 상태라면 어떨까?
초절정의 고수라고 상시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절정에 이른 실력으로도 충분히 초절정에 다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틀린말이었다.
호신강기가 없다하더라도 절정이른 실력으로는 초절정의 고수에게 닿을 수가 없다.
초절정 고수와 절정의 고수에게는 호신강기 보다 더한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숙련이었다.
초절정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숙련도가 필요하였다.
물론 숙련이라는 것은 재능의 차이로 짧은 기간에 충분히 메울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만약 재능이 부족하다면 평생을 단련한다해도 절정의 경지에서 멈춰서게 될 정도로 중요하였다.
이 숙련의 차이가 나기때문에 초절정에 이른 고수에게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닿을 수 없는 것이다.
내력만 많다고 검기나 검강을 휘두를 수 있다면 영약을 밥먹듯이 먹는 약선문에서 천하제일인이 나왔을 것이다.
그만큼 그 격차는 상상도 못할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악귀대주 고월
그는 마교의 타격부대 중 하나인 악귀대의 대주로서 초절정 상경에 이라 불리우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고월은 무료한 표정으로 사천당문의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얼굴에 악귀 가면을 쓰고 있는 수많은 악귀대원들이 시립해 있었다.
과연 위세에 걸맞게 정문조차 거대하기 그지 없는 크기였다.
"당가주는?"
"지금 남문으로 빠진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뒤에 있던 악귀대원 중 하나가 말을 받았다..
남문과 본가간의 거리는 신법을 이용하여 전심전력으로 달린다하더라도 족히 한 시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한 시진이라면 당가가 불바다가 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거기다 악귀대의 출정이라면 그 시간은 반으로 줄어들리라
지금 당가 내부에는 자신을 상대할만한 고수가 없었다.
독왕은 이미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 속으로 제발로 걸어나갔으며 대장로와 대원로 비롯한 초절정의 고수들은 지금쯤 고독관 안에서 후계 쟁탈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결국 당가에 남아있는 세력이라 해봐야 중도를 표방하는 장로와 원로들 그리고 아녀자들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빈집 상태인 것이다.
무료했던 악귀대주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당가의 계집들은 무림에서 아름답기로 정평 나있기에 하물이 욱신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는 악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잔뜩 흥분하여 상기된 기색으로 그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세월동안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고월은 몸을 돌려 악귀대원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당했던 고통과 울분 그리고 치욕을 모두 갚아주거라, 마음껏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 범해라, 그리고 당가의 이름으로 된 것은 모두 불태워버려라!"
"넵!!"
악귀대원들은 상기된 목소리로 거칠게 대답하였다.
"오늘 당가는 지워진다."
고월이 말을 마치자 악귀대원들은 하나 둘 당가의 정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당문의 멸망은 위대한 천마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악귀대주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대계(大計)의 시작이었다.
*************
가장 먼저 악귀대의 목표가 된 것은 정문을 지키고 있던 위사들이었다.
그들은 여느때처럼 정문을 지키며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단의 무리가 사천당문으로 몰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전부 어두운 흑의를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흉측한 악귀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필히 좋은 의도가 아닌 것이 확실히 보였다.
"누구냐!"
정문위사 중 하나가 검을 빼들고 그들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다른 한 위사는 입에 호각을 물고 있었다.
여차하면 지원군을 부를셈이었다.
"길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악귀 가면을 쓴 자 중 한명이 위사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가까이 오지마라!"
하지만 위사의 말에도 악귀 가면의 남자는 여전히 그에게 걸어왔다.
"이이익!"
그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위사는 검을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그의 검은 허공을 가를 뿐 무엇하나 베어내지 못하였다.
'뭐지!?'
위사가 당황하는 사이
푹
"커억"
악귀대원의 검에 목이 찔려버렸다.
'언제?'
추욱
검에 찔린 위사는 그대로 축 늘어져버렸다.
절명해버린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 말이야."
남자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삐이이이익!!
동료가 죽는 것을 지켜본 다른 위사는 재빨리 호각을 불었다.
어서 당가 내부에 이 사실을 알려야했다.
"적습이다!!!"
그는 호각을 분 뒤 내력을 담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그리고 그의 외침은 마지막 유언이 되어버렸다.
스컥
남자의 검에 의해 그대로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기때문이다.
악귀 가면을 쓴 남자의 온 몸이 피를 물들여버렸다.
"하아..하아..하아"
피를 본 악귀대는 더욱 흥분하여 신음성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토록 바라던 살육의 시간을 말이다.
콰쾅
악귀대원들은 그대로 정문을 부숴버렸고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적습이다!"
"직계 혈족들을 불러와라!"
호각 소리와 정문이 부숴지는 소리에 듣고 당가의 무사들은 검을 뺴들었다. 그리고 몇몇은 적습에 대비하여 지원군을 부르기위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적습이다!"
"모두 검을 들고 적습에 대비하라!"
"아녀자들을 대피시켜라"
그리고 얼마나 지나지 않아 수백의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짧은 사이 수많은 당가의 무사들은 모여든 것이다.
그들은 어느새 악귀대원들을 둘러쌌고 기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수백의 기파가 쏟아지니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 신속한 대처를 본 고월은 감탄하였다.
'과연 중원제일세가인가'
적습에 대비한 교육을 철처히 받은 것일까
모두가 적재적소하게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었다.
재밌었다.
만만치 않은 당가의 저력이 느껴져서
즐거웠다.
이 중원제일가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린다는 생각에
그때였다.
"이놈들!"
앞마당이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상당한 내력이었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당가 무사들 사이에서 비척 비척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온단 말이냐!"
그의 정체는 당가의 원로인 당방한이었다.
후계 다툼에 끼지 않고 중도를 표방하는 원로로 거처에 쉬고 있다 별안간 적습이라는 외침에 헐레벌떡 달려나왔다.
"당방한 원로님이다!"
"원로님이 오셨어!"
"원로님이다!"
당방한의 등장에 당가의 무사들은 환호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얼마전 초절정 경지에 이르렀던 당방한 원로였다.
그런 그의 등장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하였다.
당방한은 당가 무사들의 환호에 우쭐함이 들었다.
과연 경지에 오르고 나니 대우조차 달라짐을 느꼈기때문이다.
"내가 왔으니 걱정말거라!"
당방한은 큰소리를 치며 침입자들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칠흑과도 같은 검은무복에 흉측하게 생긴 악귀 가면을 뒤집어쓴 형상이 왠지 모를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이 내뿜는 기세는 상상보다 강하였다.
'흠'
당방한은 침음성을 삼켰다.
내뿜어지는 기세 자체가 남달랐다.
'오늘은 득보다 실이 많겠구나.'
아마 저들과 당가의 무사들이 부딪히게 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으리라
자신 또한 초절정에 이르지 않았다면 낭패를 봤을지도 모를 정도로 저들의 기세는 호흡조차 정련되있었다.
당방한은 내력을 끌어올렸다.
기습을 가하여 저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줄 심산이었다.
그때였다.
쇄애애애액
뒤쪽에서 소름돋는 파공성이 들려왔다.
당방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서 자리에서 벗어났다.
촤아아아아악
당방한이 있던 자리에 검흔이 새겨졌다.
누군가 검풍(劒風)을 날린 것이다.
"누구냐!"
검풍이 날아온 곳은 전각 위에 있는 지붕이었다.
당방한은 검풍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이봐 영감, 애들은 애들끼리 놀게 놔두고 영감은 나랑 놀자고."
지붕 위에 있는 남자, 악귀대주 고월은 무료한 말투로 당방한에게 말을 걸었다.
당방한은 남자의 말에 긴장을 하였다.
분명 조용히 읊조리는 것이 분명할터인데도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선명히 들렸다.
이는 적어도 경지에 이르렀다는 증거이리라
'이 남자 내 밑이 아니다.'
당방한은 침음성을 삼켰다.
당가의 무사들이 유리한 고지를 잡을 수 있도록 저 악귀같은 놈들 중 몇 놈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이 남자의 등장이 당방한의 계획은 망쳐버린 것이다.
고수 간의 대치에서는 틈을 보여선 안된다.
조금의 틈이라도 용납하는 순간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악귀놈들을 공격하는 순간
저 남자는 서슴없이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리라
'저놈부터 잡는다!'
생각을 마친 당방한은 내력을 용천혈에 보낸 후 그대로 전각 위로 뛰어올랐다.
탁
전각 지붕 위에 착지한 당방한은 남자를 노려보았다.
"오냐, 네놈부터 상대해주마!"
"심심하진 않겠구만."
무료한 표정을 짓던 고월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주 전력이 전부 빠져나간 당가라 그런지 심심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초절정에 이른 고수가 나타나니 기쁘지 않을리 없었다.
고월은 웃으며 흉흉한 살기를 뿜어대기 시작하였다.
그 기세에 당방한은 움찔하였다.
지독할 정도의 살기였다.
희대의 살인마라도 되는 것인가
당방한 또한 내력을 피어올렸다.
여기서 기세 싸움에 밀린다면 불리할 것이 뻔하였다.
당방한이 뿜어내는 내기와 고월의 살기가 부딪히며 힘싸움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월은 재밌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재밌네, 당신 같은 고수가 남아 있을 줄이야, 이름이 뭐지?"
"나는 일수필독(一手必毒) 당방한 사천당문의 장로다! 네놈이야 말로 뭐하는 놈이길래 당문의 앞마당까지 쳐들어 온 것이냐?"
당방한의 대답에 고월은 진한 웃음을 흘렸다.
"나는 악귀대주 고월이다. 마교의 타격대주지."
그의 말을 들은 당방한은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20여년전 궤멸했다고 알려졌던 악귀대가 당가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더구나 마교라니
20년전 정마대전에서 살아남은 마교의 잔당들은 지금 십만대산에서 숨을 죽이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갑작스럽게 마교라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마교라니, 네놈들이 20여년 전 묵사발이 나놓고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언제적 얘기를 하는 것인가,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는 것은 늙은이들의 버릇이지."
고월의 말에 당방한의 얼굴을 붉혀졌다.
"마교 따위가 당가를 그리고 천무맹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당방한의 말에는 확신이 차있었다.
20년전 패퇴해버린 마교였다.
이미 중심이 되었던 천마대제는 절대무신의 손에 죽어버렸고 최고의 위용을 자랑하던 흑갑철기병은 독왕의 손에 전멸해 버렸다.
그들은 모두 없어졌지만 절대무신과 독왕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분이 돌아왔다."
고월의 말에 당한방은 소름 돋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천마께서 돌아오신 것이다!"
고월의 목소리에는 희열이 담겨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당한방은 눈쌀을 찌푸렸다.
"웃기지마라, 천마가 절대무신 이재원의 손에 핏물이 된 장면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돌아오다니? 그게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인가!"
천마가 소멸하는 장면은 정마대전 당시 지원을 갔던 당한방 또한 똑똑히 보았던 장면이었다.
분명 그자는 절대무신에 손에 핏물이 되어버렸다.
죽은자가 되돌아 온다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기적을 행할 수 있으니 신인 것이다."
고월은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있었다.
"미친놈"
당한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닌 듯했다.
당한방은 내력과 독기를 끌어올렸다.
"20여년 전에 치욕을 다시 새기거라, 과거의 망령이여."
"그때와는 다를 것이다."
말을 마친 고월은 묵빛 검을 꺼내들었다.
당방한은 고월을 향해 엄청난 양의 독기를 뿜어대었다.
두 초절정에 이른 고수간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