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50화 (51/1,419)

〈 50화 〉 51. 독서시毒西施 당서윤-2

"우리 진지한 얘기 좀 나눠보자구."

선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당서윤에게 말을 걸었다.

"다짜고짜 묶어놓고 진지한 대화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당장 풀어."

"그건 안돼, 점혈이라도 풀면 골치 아파지거든."

"겁쟁이네."

"신중한 거지."

"너는 대체 누구지?"

당서윤은 남자에게 의문 담긴 물음을 건넸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사천당문 한복판에서 직계혈족인 자신을 감금한단말인가

"나는 장선우라고 한다."

선우는 그녀의 물음에 답한 후 축융공을 운용하였다.

우드득 우드득

뼈가 뒤틀리면서 선우의 모습이 점차 바뀌기 시작하였다.

몇 번의 뒤틀림이 끝나고 이내 선우의 외관은 당세기로 바뀌어져 있었다.

"지금은 당세기의 모습을 빌리고 있지."

그 모습을 바라본 당서윤 크게 놀랐지만, 짐짓 신색을 회복하고 되물었다.

".........당세기를 죽인건가?"

"맞아, 내가 죽였어, 워낙 쓰레기라서 말이야."

"미쳤군 너는 미쳤어. 그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당가의 적통을 죽여버린거다. "

그의 대답에 당서윤은 놀라 되물었다.

그리고 과연 눈앞의 남자가 제정신인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당세기가 천하에 다시 없을 개망나니는 맞지만, 당가의 직계 혈족이었다.

이 남자는 섣부른 판단으로 중원제일가라 불리우는 당가 전체를 적으로 돌린 것이다.

"그럴 각오도 없었다면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선우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당세기를 죽인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만약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더욱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다.

"미친놈"

그의 덤덤한 대답을 들은 당서윤은 한마디로 그를 정의해버렸다.

눈앞의 남자는 미쳐도 곱게 미친 자가 아닌 듯했다.

"나한테 정체를 드러낸 의도가 뭐지?"

"왜 그럴까?"

"말 길어지는건 딱 질색이야 , 용건만 말해."

그녀는 선우의 행동에 목적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애초에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녀가 기절했을 때 죽였으리라

"넌 겁이라는 것도 없냐?"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녀의 입담에 선우는 혀를 내둘렀다.

여장부도 이런 여장부가 없었다.

아니면 지금 상황을 인지 못할정도로 머리가 나쁜 것 일까

"이봐 당서윤, 너는 지금 정체불명의 괴한한테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구?"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겁탈이라도 할셈인가, 잘됐네, 처녀 귀신은 면하겠어."

"미친년."

선우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가 생각하는 보통 여자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었다.

무림의 여인들이란 다 이런 것일까

의문을 품은 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기선제압을 하기엔 이미 글러버린 듯 했기 때문이다.

당서윤이라는 여자, 연약해보이는 외관과 달리 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무공에 미친 여자다운 독기였다.

"용건은 간단해, 나는 독정을 얻을 생각이다, 도와줘"

"미친놈."

그는 다시 한 번 선우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냥 미친 놈이 아니고 제대로 미친 놈인 것이 분명하였다.

당가의 직계혈족을 죽이고 모습을 빌려 잠입한 것도 모자라서, 독정을 훔칠 수 있게 도와달랜다.

그것도 당가의 직계혈족인 자신에게 말이다.

개망나니인 당세기에게 따로 정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당가의 직계혈족이었다.

당가의 직계혈족을 죽인 눈앞의 남자와는 불구대천 원수인 것이다.

.

그런 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말도 안되는 걸 넘어 미친 소리였다.

"내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왜, 너도 인면지주의 내단이라도 내놓게?"

당서윤은 코웃음을 쳤다.

요즘따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왜이리 많이 온단 말인가

"만천화우(滿天花雨)를 가르쳐주지."

".........."

선우의 황당한 말에 당서윤은 할 말을 잃었다.

만천화우(滿天花雨)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늘에 가득 메우는 꽃처럼 암기의 비가 내린다하여, 만천화우라 불리우는 암기술의 정수가 아니던가

독공에 만류귀원신공이 있다면 암기공에는 만천화우가 있다는 말이 있다는 말로 대변할 정도로 만천화우는 당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무공 중 하나이다.

수 백년전 독황 당태강이라는 희대의 기인이 등장하기 전만 하더라도

독공만으로는 경지에 이른 고수를 상대하는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절정의 경지만 이루어도 내력을 이용하여, 몸속의 독기를 태울 수 있으니, 독공 따위는 약하기 그지 없다는 의견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생각은 독의 명가인 당가 또한 마찬가지였고, 위력이 약한 독공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했다.

단독으로 쓰였을 때, 경지에 이른 고수에게 맥을 못 추는것은 그들에게도 고민거리였기때문이다.

좀더 효율적인 중독 방법을 찾아야 했고, 수 세기의 연구 끝에 찾아낸 방법이 바로 암기술이었다.

암기는 그 어떤 도구보다 독공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였다.

일반적으로 독을 중독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독을 직접 섭취시켜 중독시키는 방식, 독무를 피어올려 호흡기를 통해 중독시키는 방식 그리고 독기에 발출하여 피부를 통해 중독시키는 방식등 다양한 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방식은 공통적인 단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독이 퍼지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절정의 고수를 중독시키기 힘든 것이다.

독이 온 몸에 퍼지기 전에 전부 태워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기를 통해 독을 중독시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독이 묻은 암기에 박히는 순간 혈관을 타고 급속도로 중독시키기 때문에, 경지에 이른 고수조차 자칫 방심하다간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이다.

암기라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낸 당가는 더욱 더 연구를 거듭하였고, 결국 암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암기공이라는 무공을 창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인해 육대세가 말석에 불과했던 당가는 육대세가 중 수위를 다투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암기공 중 최고의 암기공이 바로 만천화우(滿天花雨)였다.

시전하는 즉시 온 하늘을 암기의 세례로 가득 채워버리는 전방위 기술로, 암기술의 정점이라 불릴만큼 엄청난 기술이었다.

만천화우는 일 수에 전방위를 점할 정도로 위력적인 무공인 만큼 익히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시야를 가득 채울 만큼의 수많은 암기들은 모양과 크기에 따라 내력 배분이 각 각 달라지기에, 비급이 없이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극상위 무공이었다.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무공이었지만 익힐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 있었다.

하지만 오로지 직계 중에 직계라 할 수 있는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비전무공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직계혈족이라면 누구에게나 개방된 무공이었으나, 현재는 오직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으로 제한되어버렸다.

전전대 가주가 있던 시절에 가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장로 한 명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가주 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동조자들을 이끌고, 당문을 들쑤시고 다니며 수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거기다 반란을 일으킨 장로는 만천화우를 극성으로 익히고 있었기에, 그보다 무공이 낮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반란은 때 마침 당문으로 돌아온 가주에 의하여 진압되었지만 너무나도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가에서는 만천화우의 위험성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시전자보다 무공이 약하다면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죽어나가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직계 혈족에 한정되게 개방되어 있다지만, 가주 위를 넘볼 정도의 강력함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경각심을 느낀 그들은 세가 회의를 통해 직계 혈족이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던 만천화우를 오직 가주만이 익힐 수 있게 제한하여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게 되었다.

후에 나이가 차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무척 한탄하였다.

하필 자신이 익히기도 전에 무공에 제한이 걸려버린단 말인가

이미 혼인따위는 포기하고 무공에만 평생을 바칠 생각이었것만, 어찌 이리 시기가 안 맞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만천화우를 얻어낼 방법 따위는 없었다.

몇 번이고 만천화우를 익힐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당서윤이였지만,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경계하고 있던 장로들과 원로들은 결코 그녀에게 만천화우를 허락해주지 않았고 그녀는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무공에 미친 당서윤 입장에서는 가질 수 없기에 더욱 탐내던 무공이 바로 만천화우였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가 만천화우를 언급하니 눈이 돌아가지 않을리 없었다.

"뭐...뭐라고!?"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어버렸다.

무슨 제안인가 궁금하여 귀를 기울여것만 말도안되는 제안이 나와버린 것이다

"어때, 이제 구미가 좀 당기지?"

선우는 피식 웃었다.

생각외로 격한 반응이었다.

"네가 만천화우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어쩌다보니"

"그게 말이된다고 생각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중요한게 아니잖아."

선우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너에게 그것을 줄 수 있다는게 중요하지."

"헛소리!"

그녀는 선우의 말을 단숨에 헛소리로 일축시켜버렸다.

언제 당세기로 변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천화우는 직계혈족인 당세기조차 감히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숨겨져 있는 비전 중에 비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에게 만천화우를 준단말인가

"설마 가주가 되도록 도와주면 몰래 익히게 해준다는 헛소리는 아니겠지?"

그렇게 쉽게 생각한 것이면 사람 잘못 찾아온 것이다.

남초사회인 당가에서 아녀자의 몸으로 숱한 핍박과 차별을 받아온 그녀였지만, 당가의 핏줄이었다.

소중한 자신의 가문을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살인마가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놔두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리고 가주 위따윈 관심없다. 나는 오로지 독정만 있으면 돼."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쳐줄셈이지?"

"비급을 주지."

"!?!?!"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만천화우의 비급은 가주의 집무실에 있는 금고 안에 고이 모셔져있다.

그걸 빼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만천화우의 비급은 가주의 집무실에 있다. 그걸 네가 뺴올 수 있다고 생각해?"

이는 전설적인 도둑 비천호리가 살아돌아온다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가 훔쳐온대, 내가 직접 적어줄게."

"거짓말!"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이었다.

당가주만 익힐 수 있는 비전 무공을 정체조차 불분명한 남자가 어찌 알고 있단 말인가

당서윤은 고개를 좌우로 붕붕 돌렸다.

현혹되서는 안된다.

이자는 당가를 전복시키기위해 들어온 반란분자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에 손에 놀아나면 안되었다.

그때 그녀있는 침상 위에 책 한권이 떨어졌다.

"이게 뭐지?"

"만천화우 전반부 구결과 초식이다."

선우의 말을 들은 그녀는 눈이 휘둥그래해졌다.

설마 진짜로 가지고 있을 줄이야.

"어때, 신뢰도가 조금은 올라가는 것 같아?"

아니다 아직은 모른다.

너무나 선뜻 책자를 내놓는 선우의 태도를 보니 겉만 그럴듯하게 만든 가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컥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선우가 그녀의 팔을 묶고 있던 족쇄를 풀어주었다.

"펴봐."

선우는 그녀에게 책자를 펴보길 권유하였다.

그녀는 자유로워진 손이 만천화우의 비급이 있는 곳으로 뻗었갔다.

천천히 천천히 말이다.

그녀의 손은 조금씩 떨리기 시작였고, 비급에 가까워질 수록 그 떨림은 더욱 커져갔다.

꿈에 마지않던 만천화우의 비급이었다.

가짜일지 진짜일지는 모르지만 만약 진짜라면 이는 다시없을 평생을 갈망해온 것을 잡을 기회이리라

그리고 비급이 손 끝에 닿을 찰나였다.

"대신 그걸 펴는 순간 너는 나랑 한배를 탈 수 밖에 없어. 신중히 생각하고 펴봐."

선우의 말을 듣는 순간

당서윤은 번뜩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이대로 만천화우의 비급을 펼쳐볼 수는 없었다.

만약 비급이 가짜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으나 비급이 진짜라면 자신 또한 가법을 어긴 중죄인이 되는 것이다.

특히 만천화우의 경우

반란과 관련되어 제한된 무공이였기 때문에, 펴본 것만으로도 반역죄를 물어 중하게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천화우을 바라보는 그녀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성과 욕망사이의 엄청난 갈등이 시작 된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선우는 갈등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녀의 선택에 선우 또한 모든 것이 달려있었다.

무조건 그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제발, 제발!'

이내 그녀의 떨리는 손이 비급에 닿았다.

'됐다, 시발!!'

촤르르르

그녀는 그대로 비급을 펼쳐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비급을 덮고 선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

'됐다!'

선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분명 만천화우의 비급이 진본인 것을 확인한 것이리라

"한 배에 탄걸 축하해."

선우는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선우의 손을 거칠게 후려쳤다.

"친한 척하지마, 내 도움은 네 녀석이 독정을 얻을 때까지만이야."

"그걸로 충분해."

그녀의 앙칼진 대답에도 선우의 입가에 미소는 떠나갈줄 몰랐다.

이로서 독정을 얻기 위한 첫 단추를 채울 수 있었다.

일시적이지만 독서시 당서윤과 동맹을 맺게 된 것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