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47. 고독관蠱毒館에 대해 듣다 -2
'고독관(蠱毒館)!?'
당진철의 말에 선우는 의아함이 들었다.
그는 당세기를 포함한 모든 아들들을 회의장으로 부르더니 후계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독정만 훔쳐서 달아날 선우입장에서는 하등 관계없는 일이라 한 귀로 흘리고 있었것만
듣도보도 못한 단어가 나와버렸다.
'고3, 무림가다'를 전부 정독한 선우였지만 고독관이라는 것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당세기의 어미인 운가려의 경우 울기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가주, 그건 너무 잔혹합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운가려가 눈시울을 붉힌 채 가주에게 재고를 요청하였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오, 번복은 없소이다!"
"하지만...."
"당대부인."
굳은 표정을 지은 당진철이 그녀의 이름이 아닌 직책을 불렀다.
.
공식선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가주로서의 권위를 침범하지말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하였다.
한낱 아녀자가 세가 회의에서 함부로 나서면 가주의 권위가 떨어져버린다.
그녀를 아무리 사랑하는 당진철이라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고개를 푹 숙였다.
도저히 자식들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독관에 대해서는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이 사실 인듯 대부분 형제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 또한 고독관의 악명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어릴 적 말을 안들으면 고독관으로 보내버리겠다는 말을 하며 겁을 줬을까
"하지만 상세한 내용은 모를터이니, 내 자세히 설명해주마."
그의 말에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고독관은 수 대 전 천하제일인이었던 독황 당패강 선조께서 후계자 선별을 위해 만든 거대한 기관이다. 영웅호색이라 당시 독황께서는 수 많은 부인들이 있었는데, 그만큼 많은 자식들이 태어났지,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독황의 피를 이은 자식들은 하나같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기에 소가주 책봉에 난항이 생긴 것이다."
당진철은 반 호흡 정도 다시 고르고 말을 이었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라 볼 수 있지. 독황은 누구보다 강한 후계자가 탄생하기를 원하였고, 그 바램을 실현시키기위해 고독관이라는 거대한 기관을 만들었다. 독지대 위에 만들어진 고독관 내부에는 수 많은 독물들과 독무들이 가득 차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각종 기관들이 설치 되어있기에, 생명을 장담조차 할 수 없다. 그런 곳에서 너희들은 단 한명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게 될 것이다."
그의 말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당진철의 말은 그들의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잔혹하였다.
독물과 독무가 가득 찬 독지대라는 사실과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기관이 설치 되있다는 것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워야한다는 말에 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말그대로 골육상쟁을 야기시키는 악습이 아니던가
그때였다.
"지금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유도하는 것입니까!?"
3공자 당기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얼마나 흥분하였는지 얼굴이 시뻘개져 있었다.
"맞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가주 책봉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라지만 서로 죽이라니 이 무슨 어불성설 입니까!?"
"납득 할 수 없다면, 포기하면 된다."
당진철은 단호히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하면 된다.
아니 당진철의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너도나도 다 관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또한 자식들이 죽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고독관의 입관은 지원자의 한에서만 이뤄질 것이다. 만약 지원 하고 싶지 않은 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뒤를 돌아 밖으로 나가거라. "
아들들의 진심을 알기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었다.
만약 선택을 지금이 아닌 나중으로 미룬다면 외압과 협박에 의해 강제로 고독관에 입관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램과는 반대로 단 한명도 자리를 비우는 이가 없었다.
당진철은 속으로 크게 한탄하였다.
포기하는 아들이 몇 명 나올 줄 알았것만, 그 누구 하나 뒤를 돌아 나가는 이가 없었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지만 형제간의 상쟁을 강요하는 정신나간 짓거리에 동참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게 분명하였다.
그리고 가장 의아한 것은 막내 공자인 당세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녀석들이야 그렇다쳐도 아픈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고 , 귀찮은 것은 더 싫어하는 그가 제일 먼저 나갈 줄 알았것만 소가주 자리에 욕심이 있었는지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고독관은 운이 좋다하여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독지대의 맹독을 버틸 수 있는 무공, 몇 달이고 버틸 수 있는 생존능력, 혈육조차 끊어낼 수 있는 단호함 그리고 평생 다시 없을 필생의 운까지
이 모든게 합치되어야만 비로소 통과할 수 있는 것이 고독관이었다.
그런데 저 멍청한 녀석은 고독관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조건에서 걸러질 녀석이니,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고독관은 말했다시피 독지대이다. 엄청난 농도의 독기들이 가득 차 있지, 자격이 되지 않는 자가 들어갈 경우 한 걸음도 떼기 전에 중독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본 가주는 사랑하는 자식들의 개죽음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자의로 입관을 결정했다하더라도 입관날까지 만류귀원신공이 5성에 이르지 못한자는 입관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그 말에 몇 몇 아들들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5성이 이르지 못한 것이 분명하리라
"또한 입관 한 후에도 중도 탈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대신 중도탈관한 자는 후계의 자격을 잃는 것은 물론 적자로서의 권리조차 잃게 되고 방계취급을 받을 것이다. 고독관 입관은 앞으로 한달 뒤다, 신중히 결정하도록 하라!"
당진철의 말을 들은 소가주 후보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경합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하였지만, 설마 고독관이라는 최악의 선택지가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피를 형과 동생의 목숨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빼앗아야한다.
아무리 소가주가 탐난다지만 천륜을 거스른 패륜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가주인 당진철은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는가
고독관이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한 편 선우 또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독정만 취하고 튈 예정인 그에게, 고독관 따위에 입관할 이유는 없었다.
남은 5달 동안 빨빨거리며 돌아다녀도 모자를 판국에 왠 후계자 쟁탈이란 말인가
선우는 입관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었다.
당세기의 모습으로 변모한 선우에게는 그럴 여유도 이유도 없는 짓거리였다.
마침 당진철이 근사한 핑계까지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낮은 무공을 핑계대고 입관을 거부한다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게 맘놓고 있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당진철의 말이 들려왔다.
"최종적으로 고독관을 통과하게 된다면 소가주로 책봉 될 것이며, 독정을 취하도록 할 것이다."
순간 좌중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래해졌다.
이는 장로들과 원로들도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고독관의 개관에 관해선 찬성하였다지만 독정을 취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가주, 대체 그게 무슨!?"
"처음 듣는 일입니다!"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독정은 오로지 가주가 되었을 때 비로소 취할 수 있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침묵만이 감돌고 있던 장내는 열기 가득찼고, 과열되기 시작했다.
"그만."
짧지만 내력이 실린 당진철의 외침에 열기가 어느정도 식혀졌다.
하지만 장로와 원로들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대장로인 당주기가 제일 먼저 입을 떼었다.
"독정의 성취는 오로지 가주 위에 오른자만이 가능합니다. 소가주로 책봉이 확정 됐다하더라도, 독정을 취할 순 없습니다. "
말그대로였다.
독정이 무엇이란 말인가
수 십년의 가까운 세월동안 엄청난 양의 금자를 들이붓고 들이부어 만든 독의 정수가 아니던가
수 십 수 백 수 천 가지의 독물들을 한데 집성한 후 숨만 쉬어도 중독 될만큼 치명적인 독기를 뿜어대는 독 지대 속에 수 십년을 묵혀두어야 비로소 독정을 만들 수가 있었다.
기본 재료만하더라도 상당 수의 금자가 필요하였고, 독정이 파묻힐 맹독 지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였다.
아무리 독하디 독한 독기라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독지대에 매일 새로운 독들을 들이부어야하고, 독기가 날아가지 않게끔 최적의 온도와 습기를 유지해야만 하였다.
때문에 이에 따른 관리 금액 또한 어마어마하였다.
오죽하면 당문의 예산 중 3할이상이 독정을 만드는데 들어간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하지만 이렇듯 수십년간 어마어마한 금액을 들어가는 일임에 당문은 포기하지 않고 독정을 만들었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귀물이었기 때문이다.
독정은 말그대로 독공을 익힌 자들에게는 꿈에서라도 마지않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보통 경지가 올라갈 수록 내력의 수발이 자유로워, 독이 침투하였을 시 몸안에서 태워버리는 것이 가능하였다.
때문에 독공의 경우 하급무사들에게는 치명적인 존재일지는 몰라도 경지에 이른 무인에게는 귀찮을 뿐 그리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였다.
하지만 독정이 품고있는 독은 그 차원이 달리하였다.
독공을 익힌 이가 독정을 온전히 흡수할 수만있다면 초절정 고수조차 사경을 헤매게 만들 수 있는 극독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절대지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발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현 가주인 당진철조차 독정을 흡수하고 화경이라는 절대지경에 도달하지 않았던가
그만한 가치를 가진 독정을, 가주도 아닌 고작 소가주 책봉에 하사한다니 이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소가주로 책봉 된다해서 , 무조건 가주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 사망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 탄핵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도안되는 일이었다.
막아야한다.
지금 가주는 너무 감정에 휩싸여있다.
이를 막는 것이 원로들과 장로들의 역할이었다.
"가주, 절대 안됩니다!"
"이는 결코 동의할 수 없소!"
"말을 거두어주십시오, 지금 가주는 감정에 휩싸여져 있습니다."
너도 나도 반대를 피력하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되묻겠소. 그렇다면 누가 독정을 섭취해야하오?"
"그것은 당연히 가주위에 오른 이입니다."
"다시 묻겠소, 고독관을 통과한 이가 아니면 누가 가주 위를 계승할 수 있겠소?"
"..........."
"..........."
장내는 침묵이 감돌았다.
맞는 말이었다.
분명 가주는 고독관을 들지 못한 적자에게 후계에 관련된 모든 권리를 박탈한다고 선포하였다.
이는 후에 만약 불미스러운 일로 소가주가 자리가 비워진다하더라도 그 자리에 앉을 권리가 없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만약 책봉 된 소가주께서 불미스러운 일로 가주가 되지 못하는 경우는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다음 세대의 독정이 완성 될 때 까지 소가주 자리는 공석으로 비워두겠소."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기존과는 비교 불허할 정도의 경합이라네, 그만한 값어치는 있어야하지 않겠소? "
"그렇다해도 독정은....."
"되었네, 본 가주는 이미 결정을 마쳤소, 고독관을 통과한 자라면 누가 되었든 가주 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불미스러운 일로 소가주가 죽거나 자리를 내놓게 된다하더라도 자격이 잃은 자를 소가주로 책봉되는 일은 내가 살아있는 한 없을 것이오. 번복은 없소."
당진철은 굳은 표정으로 진심이 담긴 말을 한 자 한 자 힘있게 내뱉었다.
그의 굳은 의지를 확인한 장로들과 원로들은 난감함에 빠졌다.
분명 말리고 싶은 일이긴하나 말릴만한 명분이 없었다.
이미 고독관 개관을 찬성한 시점에서 명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주의 명을 받드옵니다."
가주의 최측근인 대장로 당주기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명을 받드옵니다!"
"명을 받드옵니다!"
"명을 받드옵니다!"
그를 필두로 너도 나도 찬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독정은 고독관을 통과한 자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가주 후보들의 얼굴에는 흥분이 어리게 되었다.
고독관을 통과한다면 모든 정치적인 공세와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위치마저 확보하게 된다.
지금 같이 각 파벌들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소가주로 책봉된다하더라도 반대 파벌들의 정치적인 공세라던가, 암살의 위험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정을 흡수하게 된다면 경우가 달라진다.
가주로서 완전히 내정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독정을 흡수한 소가주를 지킬 것이고 그 누구도 감히 가주 위를 탐내지 못할 것이다.
고독관만 통과한다면 말그대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흥분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형과 동생을 죽여야한다는 죄책감따위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탐욕과 희열만이 자리잡게 되었다.
단 한사람, 당세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