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38. 사천으로 향하다.
"그녀는 죽게 될 것이다."
음양마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황하였다.
그리고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사랑해마지 않는 옥령이 죽는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덜 덜
손이 덜덜 떨려왔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뛰기 시작하였다.
"그...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선우는 상대가 음양마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언성을 높이며 되물었다.
"귀청 떨어지겠다. 새끼야."
"말씀해주십시오!!"
"내상이 너무 심각하다. 손을 쓰기 힘들정도로 말이지."
"음양조화기를 불어넣어 치유하면 되지 않습니까!?"
"네놈은 음양조화기가 무슨 만능 물질인줄 아느냐?, 회복력을 활성화한 뒤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지, 상처 자체를 없애주는 만능치료제가 아니란 말이다."
"저는 치료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네가 음양조화신공을 익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음양조화신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너 또한 저 아이와 별 다를바가 없었을 것이니라"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소용없다, 이미 글렀다."
"그럴리 없습니다.!!,"
"억지 부리지마라, 나도 연이 있는 아이라 살리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다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니라."
쿵
"제발 음양조화기를 다시 한번 흘려보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우는 그대로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멍청한놈, 이미 그녀의 내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있느니라, 너와는 경우가 다르단 말이다, 네놈은 저 갑옷 덕분에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고, 음양조화신공을 익힌 덕에 치료할 수 있었지만, 저 아이는 다르다. 화경 끝자락에 다다른 무인의 절기를 맨몸으로 받아내고 멀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음양마는 선우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음양마 또한 매한가지였다.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는 그였지만, 딸이 남긴 유일한 제자가 이대로 죽는다면 뒷맛이 찝찝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입은 내상은 너무나도 심각하였다.
더구나 검황의 태청강기가 그녀의 몸속에 남아 내상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음양조화신공을 흘려보내어, 태청강기를 해소시켜려하였지만, 그 반발력이 워낙 거세였기에 함부로 해소시킬 수조차 없었다.
강제로 해소시켰다간 태청강기가 폭주하여, 그녀의 온몸을 갈가리 찢어발길 것이리라
선우와는 경우가 달랐다.
선우의 경우 패왕귀면갑이 태청강기를 모두 튕겨냈을 뿐더러, 남아있는 강기의 잔재 또한 음양조화기가 잡아먹어버렸기에, 큰 탈없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옥령은 달랐다.
그녀는 맨몸으로 검황의 태청강기에 노출되었으며, 유(柔)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내력이, 강(强)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태청강기를 밀어내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좋은 묫자리나 알아보고, 잘 묻어주거라."
음양마는 단호하게 끊어내었다.
안될 일에 매달리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도 없다.
딸의 단 하나 뿐인 제자였지만, 이미 오욕칠정을 거의 초월한 그는 거침없었다.
"싫습니다."
"뭐야!?"
"옥령을 치료해주십시오."
"내가 무슨 의선(醫仙)인줄 아느냐?, 난 천하제일마인 이호선이다. 치료는 내 전문이 아니야."
"그녀가 죽는다면 저도 따라 죽겠습니다."
선우는 굳은 다짐을 하듯 말을 이었다.
"무슨 개소리를!!!"
선우의 말을 들은 음양마는 노호성을 터트렸다.
죽긴 왜 죽는단 말인가
세상에 널린게 여자일진데, 여자 한 명 죽었다고 따라 죽다니, 이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인가
"웃기지말거라!, 네 녀석은 이재원을 죽일 때까지 죽어도 못 죽어!!"
음양마는 당황하여, 언성을 높였다.
선우는 이재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였다.
그런데 그 도구가 스스로 부러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말고 옥령을 치료할 방법을 강구 해주십시오!!."
순 억지투성이인 녀석이었다.
치료할 방도가 없다고 말했것만
치료할 방법을 내놓으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네놈.....죽고싶은게냐?"
음양마는 무형지기를 천천히 흘리기 시작하였다.
버르장머리없는 꼬라지를 슬쩍 고쳐줄 요량이었다.
"커억...."
무형지기에 노출된 선우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또한 숨이 턱 막혀왔으며, 식은 땀이 절로 흐르기 시작하였다.
잊고 있었지만, 눈앞의 이 노인은 천하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를 남자였다.
그 악랄한 이재원조차 주인공 보정이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죽음을 당할정도로 강대하기 그지 없는 자였다.
그런 자가 내뿜는 무형지기에 노출되었으니, 멀쩡할리가 없었다.
딱 딱 딱
이빨이 쉴새없이 부딪히기 시작하였다.
까득
이빨을 꽉 다물고,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옥....령..을...살려...주십시오...."
선우는 공포로 인해 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음양마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상에 여자가 저 아이 뿐이더냐, 어찌 목숨을 거는게냐?"
"후..회하고...싶지..않습니다."
"뭐라?"
음양마는 무형지기를 그대로 풀어버렸다.
쿨럭 쿨럭
무형지기가 풀리자 막혔던 숨이 통하면서 선우는 몇 번이고 기침을 하였다.
그리고 굳은 눈으로 음양마를 쳐다보았다.
"지금 그녀를 잃게 된다면 전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게될 것입니다. 후회속에 살아갈바엔 그녀와 같이 죽겠습니다. "
"삶과 죽음 모두가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자연의 이치이거늘, 어찌 너의 잘못이라고 여기며, 후회를 하느냐"
"제가 백화봉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속이지만 않았더라면, 이재원에게 쫓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녀는 평화로운 일상을 구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백화봉으로 옴으로서 그녀는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이대로 그녀를 잃게된다면, 저는 백화봉에 온 과거의 제 자신을 후회하고 경멸할 것이며, 종국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럴바엔 죽는게 낫습니다."
선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를 잃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눈물샘을 자극하였기 때문이다.
"........."
선우의 말에 음양마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골머리가 아파왔다.
이재원같은 찌질한 새끼도 싫었지만, 이런 감성적인 새끼도 싫었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천하제일인은 물론 고금제일인도 꿈이 아닐진대, 어찌 계집따위에 목메어 일을 그르친단말인가
"하아, 썩을 새끼가 진짜."
언젠가 인성교육을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 방도가 있다."
고개 숙여 울고있던, 선우가 머리를 치켜들었다.
'시발새끼가 장난하나.'
그리고 상당히 불손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아니 방도가 있다면 처음부터 말을 할 것이지.
어찌 장난질 쳐서, 사람 애간장을 태운단말인가
"누누히 얘기하지만, 눈깔 예쁘게 안뜨면 파버리겠느니라."
음양마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짜증이 나긴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무서웠다.
"짜증내는 것은 이해한다만,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운 일이라 방도가 없다한 것이니라."
"어떻게든 해내겠습니다. 말씀만 해주십시오."
희망을 찾게된 선우는 의욕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독정이다."
"아니 치료를 하는데, 독정이 왜 필요합니까?"
"원래 약과 독은 한 끗 차이니라, 독정에 있는 독을 해독시키면 오로지 순수한 약 기운만이 남는데, 저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다."
음양마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턱 벌리고 말았다.
'아니 그걸 어떻게 구해!?!?!?'
선우는 다시금 절망하게 되었다.
독정이란
독의 정수라고 불리우는 보물이었다.
독정은 수천가지의 독초와 독물들을 혼합한 뒤 수십 년동안 독기가 가득한 독 지대에 잘 숙성시켜야 비로소 만들 수 있다.
워낙 만들어지는 양이 극소량이었기 때문에, 천하제일독가라 일컬어지는 사천당문에서조차 구경도 하기 힘들정도로 귀한 물건이었다.
독정은 가진 독기가 어찌나 강력한지, 독공을 익힌자가 섭취 할시 초절정 고수도 일 수에 중독 시킬만한 독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독을 다루는 독인들이라면 꿈에서조차 염원할 정도로 보물 중의 보물인 것이다.
지금 음양마는 그런 보물을 구해오라고 하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독정은 돈이 많이드는 물건이었다.
수많은 종류의 독초와 독물들을 수집해야하며, 독 지대를 따로 만들어야하고, 수십 년간 그곳을 지킬만한 인력또한 필요하였다.
그렇기에 그런 물건을 만들만한 곳은 사천당문이나 남만의 오독문정도 밖에 없었다.
선우는 그 두 곳 중 한 곳에 가서 독정을 구해야하는 것이다.
"........."
선우는 할말을 잃었다.
"것보거라, 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음양마는 선우에게 핀잔을 주었다.
과연 음양마의 판단이 맞았다.
독정을 구해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천당문은 절대무신인 이재원의 처가임과 동시에 지난 300년간 사천을 지배해온 패주였다.
일류고수들로만 구성된 타격대만 서른 개가 넘어갔고, 각 타격대의 대주들은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세가의 실질적인 실세인 장로원과 비록 은퇴하였다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원로원에는 초절정고수들이 즐비하였다.
또한 현 당가주인 독왕 당진철의 경우 화경에 오른 절대지경의 고수였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바로 지금의 당가인 것이다.
그런데 그곳을 털어 독정을 가지고 오라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자결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그 거대한 세력을 고작 초절정 고수에 불과한 선우 혼자서 뚫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스승님이 훔쳐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자신은 불가능하였지만 천하제일인인 음양마라면 가능하였다.
거기다 오욕칠정을 초월하였다고하니 쪽팔릴 것도 없지 않겠는가
"쯔쯧, 미친놈."
음양마는 선우의 발상에 혀를 찼다.
한없이 약한 놈인 줄 알았것만 골떄리는 구석이 있는 새끼였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누가 저 아이의 생명을 유지해줄 수 있겠느냐."
음양마는 옥령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가르쳐 주신다면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너 맥 볼줄 아냐?"
"이론은 압니다."
"침을 놔봤고?"
"이론은 압니다."
"기 치료 해본 적은 있고?"
"이론은 압니다."
"야"
"네?"
"닥치거라"
"네."
선우는 시무룩해졌다.
"상태가 심각치 않다면, 네놈에게 맡겨도 되겠지만, 그러기엔 이 아이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 어설프게 건들였다간 삼도천을 건널 것이니라"
".........."
맞는 말이었다.
음양마가 사라진다면 옥령은 생명 유지조차 안될 것이 분명하였다.
사천당가가 주는 위엄에 쫄아버려 잠시 정신이 나간 듯하였다.
이성적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짝 짝
선우는 양 손을 들어 두 뺨을 힘차게 후려갈겼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선우는 일단 사천당문은 제처두고, 오독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천당문이 최전성기를 이루고 있다면, 오독문은 사천당문에 밀려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천마대제가 습격할 당시 마교의 편에 섰기때문에, 중원인들의 미움을 받은 것도 있었고, 정마대전 당시 너무 많은 전력을 잃은 감도 있었다.
만약 독정을 훔친다면 오독문에 있는 것을 훔치는 것이 나으리라
"오독문으로 가겠습니다."
선우는 결심한 듯 말하였다.
"미친놈."
선우의 결심이 무색하게 음양마는 욕짓거리를 하였다.
"왜요?"
선우는 의문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거기가 망한지가 언젠대. 뭔 놈의 오독문이야?."
선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독문이 망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분명 장삼의 기억 속의 오독문은 쇠락하긴 하였지만 멀쩡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독문은 대체 언제 망했습니까!?"
"반년 전에"
지금으로부터 반 년전이라면, 선우가 한창 토굴에서 무공수련을 하던 때였다.
"아니 왜요?"
"모르지, 이재원 그 새끼한테 물어봐라."
선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재원 이새끼는 어째서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것인가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문파를 별안간 왜 멸문시킨다는 말인가
방도가 없었다.
결국 독정을 얻기위해서는 사천당문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심에 빠졌다.
자신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 아이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봐야 반 년이다. 반 년안에 어떻게해서든 독정을 얻어와야한다."
반년이라는 시간에 선우는 화들짝 놀랐다.
짧아도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기간을 더 늘릴 수는 없나요?"
"미친 새끼야, 반 년도 최대치로 잡은거다. 강제로 귀식대법을 시전하여 생명 활동을 거의 정지 상태에 가깝게 만들고 음풍신월공으로 얼릴 생각이다."
그의 말에 선우는 화들짝 놀랐다.
무슨 무림인이 냉동인간을 만든단 말인가
"그럼 얼어죽지 않을까요?"
"네 녀석이 반 년안에 안오면 죽겠지."
음양마는 심드렁하게 대답하였다.
선우가 억지를 부려 도와주긴 하겠다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천으로 가겠습니다."
선우는 굳은 결심을 하며, 말을 이었다.
사천당가는 두려웠지만, 옥령을 잃는 것은 그보다 더 두려웠다.
그의 사천행은 그렇게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