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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36화 (37/1,419)

〈 36화 〉 37.대적자-3

선우가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몸에 상태가 말이 아니다보니, 눈꺼풀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눈을 억지로 떴지만 앞은 온통 어두컴컴하였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몸을 일으켜보려고 하였지만,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힘이 빠져버린 탓인가

눈을 뜨고 난 이후 무엇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신은 분명 옥령을 데리고 백검문의 은신처로 피난한 후 고통 속에 몸부림쳤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후가 기억 나지 않았다.

'혀를 깨물었던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혀를 깨물어 생을 마감한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기절하였고, 아직도 꿈속을 헤매이고 있는 것인가

모르겠다.

전혀 기억이 안났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던 때였다.

뚜벅 뚜벅

저 토굴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긴장하였다.

저 발소리의 주인은 누구인 것인가

옥령?, 음양마? 누가 되든 좋으니 이재원만은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뚜벅

그리고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깼느냐? 오질라게 처자는구나."

음양마였다.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발소리의 주인은 이재원이 아니였던 모양이었다.

음양마의 모습을 보자, 잊혀졌던 기억들이 차츰차츰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자신은 자결하려고 하였고, 음양마는 그런 자신에게 음양조화기를 불어넣어주어, 목숨을 살려주었다.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우는 대뜸 감사인사부터 하였다.

진심으로 고마움이 절로 일었기때문이다.

음양마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자신과 옥령은 꼼짝없이 이재원의 손에 참혹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옥령은 간살당했을 것이고, 자신은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으리라

거기다 이재원에게 도망칠 시간까지 벌어주었으니, 이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으랴

"됐다, 딱히 네놈을 구해줄 요량은 아니었다."

선우는 그 말에 의문이 들었다.

설마 자신의 후인이라서 구해준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선우는 음양마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선우는 의문이 들면서도, 내심 자신을 구해주기위해 나타났는 가정을 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뜬금없이 백화봉에 20년전 사라졌던 음양마가 나타날일은 없지 않겠는가

동네 마실이라도 왔다가 들린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제가 음양조화신공을 익힌 후인이라 구해주신게 아니였습니까?"

"내가 네놈이 그걸 익혔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기의 파동을 느꼈다던가...."

"미친놈."

음양마의 단호한 대답에 선호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추론이 틀렸던 것 같다.

선우는 뻘쭘함에 입을 꾹 다물었고, 둘 사이는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침묵을 먼저 깨준 것은 음양마였다.

"나야말로 묻자, 백화봉에 왜 오게 된 것이냐?"

"그..그게..."

선우는 순간 고민에 휩싸였다.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옥령에게 그랬듯 거짓말을해야하는지 말이다.

"참고로 속일요량이거든 들키지 않도록 잘 하거라. 만약 어설프게 속였다가 들킬시에는 양물을 뜯어내주마."

선우는 순간 양물 부분이 서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말을 잘못했다간 정말로 뜯겨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짓말은 안하는 걸로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만약 음양마가 자신과 이재원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들었을 경우

그냥 사실대로 줄줄히 말하면 된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무척이나 난감하였다.

대뜸 당신들은 소설 속에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랬다간 개소리라며 머리통이 깨지고 말것이다.

오랫동안 고심하던 선우는 입을 천천히 떼었다.

"저는 절대무신 이재원의 대제자인 장삼이라고 합니다.......본디 저는 억울하게 누명을..........우연히..........무림맹의 은신처에......그곳에서 음양조화신공을........쫓기다.....우연히....백화봉에.....그리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선우는 장삼으로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였다.

어째서 쫓기게 되었고, 어떻게 음양조화신공을 익히게 되었으며, 백화봉에 이르게 되었는지까지 말이다.

누명을 쓴것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독자로서 선우가 의도한 선택이었지만, 모두 우연으로 치부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하지만 장삼 입장에서는 전부 우연의 산물이었으니, 모두 거짓말은 아니지 않는가

가만히 선우의 말을 듣던 음양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두근 두근

선우는 심장이 쿵쾅뛰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진실을 말할 수도 그렇다고 거짓말을 말할 수도 없었던 그는,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어버렸다.

그 결과 이 모든 일들이 우연의 우연에 의한 우연적 결과라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되어버렸다.

선우는 깊은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얘기할때는 몰랐는데, 막상 질러보니 너무 개소리였다.

이러다간 양물을 뜯길지도 몰랐다.

선우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음양마의 얼굴을 슬며시 살펴보았다.

음얌마는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 '우연'이라 이말인가?"

"그렇습니다."

음양마의 얼굴에 무척이나 흡족한 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역시나군."

"네?"

"너는 유일무이하게 이재원을 죽일 가능성이 있는 존재다."

"네!?"

선우는 음양마의 말에 눈이 휘둥그래해졌다.

자신이 이재원을 죽일 존재라니 그건 또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이재원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세계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소리이다.

거기다 천하제일인이면서 반선이라고 불리우는 현경에 이른 고수이다.

그런 인외에 가까운 존재를 자신이 어떻게 죽인단말인가

선우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음양마를 쳐다보았다.

"눈깔 그딴식으로 뜨지말거라, 그대로 파주랴?"

음양마의 살벌한 말에 선우는 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뭐, 네 녀석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만, 나름 근거가 있는 말이니라."

음양마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너는 나와 그 새끼 중 누가 더 무공이 고강하다고 생각하느냐?"

"네?"

음양마의 말에 선우는 고심에 빠졌다.

설정상 천하제일인인 이재원이 더 강할 것이 분명하였지만, 실제로 본 음양마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 이재원을 공격을 손 짓 하나로 흩어버리지 않았는가

고심하던 선우는 입을 열었다.

"이재원이 더 강할 것 같습니다."

"틀렸다., 내가 더 강하다."

"그렇다면 왜 그를 죽이지 않는 것입니까?"

음양마의 말에 선우는 의문을 품었다.

만일 음양마의 무공이 더욱 고강하다면 어째서 음양마는 이재원을 진작 죽이지 않는 것일까

이재원은 음양마를 죽일 뻔한 철천지 원수가 아니던가

선우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데 이길 수가 없더구나."

"네!?"

그의 대답에 선우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면 되물었다.

무공이 더욱 고강한다 이길 수 없다니 그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란 말인가

"그 새끼랑 싸우면 처음에는 무공이 고강한 내가 유리하지만, 싸움이 진행될 수록 그 자식은 성장하더구나, 나와 동등할 정도로 말이다!"

음양마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실전만큼 위대한 스승이 없다는 말도 있긴하지만, 그걸 감안 한다하더라도 그는 말도 안되는 속도로 성장해버리더구나. 고작해야 막 현경에 입문한놈이 현경의 끝자락 도달한 나와 맞을 정도로 말이다!"

음양마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몇 년 혹은 몇 십년동안 쌓아온 깨달음을 홀라당 뺏겨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옹의 거처에서 첫 패배를 한 이후 나는 몇 번이고 그와 싸웠다, 그리고 한 가지 가정을 세우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그가 패배하지 않도록, 그가 이길 수 있도록 세상을 조율하고 있는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말도안되는 성취와 천운이라고 불릴만한 행운이 성립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음양마의 말에 선우는 무척이나 놀랐다.

음양마는 소위 주인공 보정이란 존재를 눈치 챈 것이었다.

주인공보정은 주인공을 위한 소설적 장치이다.

강대한 적을 이길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한다던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천운을 작용하여 살아남게 되는 등 수 많은 클리셰를 가지고 있었다.

작가의 편의주의에 의해 애용되는 소설적 장치로서, 스토리를 전개한다던가

극적 긴장감을 해소하는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고3, 무림에가다'에서는 이 주인공보정이 떡칠 되있는 작품이였기에, 이재원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음양마는 그 불합리함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선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결국 나는 그 새끼를 습격하는 일을 포기하였다. 무척 분통터지는 일이긴 하나 나를 발판삼아 더욱 더 성장해버린다면 그만큼 배알 꼴리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니라."

그때 갑자기 음양마가 선우의 어깨를 잡아버렸다.

"그런데 오늘 네 녀석을 보게 되었다. 고작 초절정에 불과한 나약해빠진 몸으로, 온 세상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는 이재원이 뜻대로 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를 말이다!"

그의 목소리는 격앙되었고, 언성은 더욱 높아만 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네 녀석이라면, 유일하게 이재원을 꺽을 수 있는 대적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음양마의 말에 선우는 혼란에 빠졌다.

솔직히 우연이라기보단 독자로서 알고있는 소설 속 맥거핀들을 활용한 결과가 아니던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음양마의 말처럼, 유일하게 세상의 주인공인 이재원이 뜻대로 할 수 없는 인물인 것 또한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이재원처럼 상위차원에서 온 존재였고, 위기의 순간 음양마가 나타나는, 말도 안되는 행운이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네녀석을 단련시켜, 이재원과 대적시킬 속셈이다."

"......."

선우는 음양마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모든 말을 이해하긴 하였다.

이재원에게는 주인공 보정이란 것이 있고, 그것이 작용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인 자신이 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적자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음양마가 자신을 단련시켜줄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그의 무공을 익혔고, 자신과 옥령의 목숨을 구해주긴 하였지만 그는 엄연히 천하제일마라 불리우며, 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던 대마두였다.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냥 피해다니면 될 일을 왜 굳이 제자까지 키워가며 복수를 한단말인가

이재원은 평범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어쩔 수 없는 재앙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개연성이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입니까?"

"원수니까."

일말의 고민도 없이 시원스레나온 즉답이었다.

".........."

음양마의 대답에 선우는 지금까지 자신이 현대인의 관점으로 무림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이들은 무림인이었다.

치욕받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였고, 원수는 몇 대가 지나더라도 꼭 갚았으며, 말보다는 검으로 말하였고,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그런 족속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감당치 못한 시련이 닥쳤을 때, 그대로 주저앉아 절망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무림인이라는 족속들은 감당치 못할 시련이 닥친다하더라도 주저앉기 보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하는 자들인 것이다.

음양마는 이재원이라는 재앙같은 인간에게 굴복하고 피해다기니 보단 당당히 맞서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참고로 네 녀석의 동의따위는 필요치 않다. 나는 네녀석을 단련시킬거고 너는 강해져야한다. 이재원을 이길때까지말이다. 이는 권유가 아닌 통보이니라."

"........."

물론 안하무인인 면모까지 철저한 무림인다웠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선우는 그대로 머리를 박고 구배지례를 하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그는 강해져야 했고, 이재원을 죽여야했다.

이용할수 있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이용하리라

물론 옥령은 빼고 말이다.

순간 옥령에게 생각이 미친 선우는 급히 구배지례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승님, 그런데 옥령은?"

"빨리도 물어보는구나."

음양마의 대답에 선우는 뻘쭘해졌다.

목숨처럼 아낀다해놓고, 이제와서 기억해낸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었다.

"그 아이라면 반대쪽 토굴에서 기절해있느니라."

음양마의 대답을 들은 선우는 곧바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가장 먼저 확인했어야 했거늘

자신의 불찰이었다.

옥령은 선우가 눕혀놓은 평평한 바위 위에서 숨을 고르며 자고 있었다.

그런데 상태가 영 이상하였다.

그녀의 안색은 눈에 띌정도로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으며, 호흡은 무척 거칠어 숨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뭐야!?'

그 모습을 본 선우는 급히 이마에 손을 대었다.

불덩이었다.

선우는 이마에 손을 뗀 뒤 그녀의 장문에 손을 얹고 음양조화기를 그녀에게 불어넣기 시작하였다.

음양조화기를 이용하여, 그녀의 혈도를 강제로 순환시켜, 회복력을 활성화시킬 요량이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호흡은 여전히 더욱 거칠었고, 선우의 속은 바싹 타들어갔다.

"옥령!"

그녀의 이름을 다급히 불러봤지만, 그녀는 깨어날 기미가 전혀 안보였다.

"소용없다."

타박 타박

그때 토굴 밖에서 음양마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음양조화기를 아무리 때려박아도 소용없다는 말이니라."

"그게 무슨!?"

"그녀는 죽게 될 것이다."

음양마의 말에, 선우의 눈이 휘둥그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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