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32.검황劍皇 양태산-4
모습은 드러낸 선우의 모습은, 전과는 무척 달라져 있었다.
머리, 팔, 다리 할 것 없이 흑색의 갑옷 빈틈없이 휘감고 있었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흉포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자네, 앞은 보이는가?"
양태산은 얼굴마저 꽁꽁 감싸져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안면을 보호하기 위해 저리 입은 것 같았지만, 극단적으로 시야를 좁혀버리면, 오히려 무인으로서 불리하였다.
거기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갑옷인 만큼 무게 또한 상당할 것이 분명하였다.
전쟁터의 병사들이라면 모를까 , 경지에 이른 무림인에게 갑옷이란 것은 하등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검기 발출만 가능해도, 숭덩숭덕 썰려나갈 것이 뻔한데, 뭣하러 무거운 갑옷을 입는단 말인가
"갑옷은 벗는게 어떤가, 좋은 선택같지는 않구나."
양태산은 무림의 선배로서 , 나름의 조언을 해주었다.
저딴 식으로 입고 싸웠다간, 갑옷의 무게에 의해 더욱 느려지고, 허점투성이가 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일 상대이긴 하였지만, 그래도 싱거운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까와는 다를거다."
선우는 양태산의 무시에, 확신이 담긴 어투로 말하였다.
"그러길 빌겠네."
말을 마친 양태산은 검을 들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선우는 검을 들어, 양태산의 검격을 맞받아쳤다.
수없이 많은 검격이 오갔고, 선우는 검격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양태산이 지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날이 서있는 명검과도 같았던 예리함은 살짝 무뎌졌고, 태산같은 위압감을 조성하던 그의 기세도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이길 수 있어!'
양태산과 대치하고 처음으로 희망이 보였다.
선우의 붉은 기운이 더욱 크게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콰쾅
거대한 파공성이 들리면서, 양태산의 검이 순간적으로 뒤로 튕겨나갔다.
기습적인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리라
선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죽어라!'
그의 검이 되돌아오기 전 가슴을 베어버렸다.
스릉
하지만 베어낸 가슴에는 살이 갈라지는 특유의 파육음 대신 마치 철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뭐야!?'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당황하였다.
신체를 베어내버렸는데, 어찌 하여 철 긁는 소리가 난다는 말인가
이내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선우에게, 양태산의 검강이 날아들었다.
갑옷 째로 베어버릴 심산이었다.
갑옷에 검강이 닿았고, 양태산은 검을 쥔 손을 아래로 그어버렸다.
쾅
하지만 금속 특유의 마찰 소리가 나더니 반탄력이 일어나, 그의 검을 날려버렸다.
공격이 실패한 양태산은 그대로 거리를 벌렸고,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가 입고 있는 갑옷이 평범한 갑옷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찌 갑옷따위가 검강을 막아내고, 튕겨낼 수 있단 말인가
"귀물이로구나."
양태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검강을 튕겨내는 갑옷따위는 오 십평생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괴물이고."
선우 또한 양태산의 몸뚱이의 내구성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어찌 사람의 몸뚱이로 검강을 버텨낸단 말인가
사람이 맞나 싶을정도의 의심이 들었다.
그동안 유효타를 단 한번도 내본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양태산은 금강불괴의 경지에 이른 듯 하였다.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탐색전을 이어갔다.
드디어 서로 동등한 입장이 된 것이었다.
먼저 달려든 것은 선우였다.
양태산의 검이 자신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것을 느낀 후 과감해진 것이다.
검강이 닿았을 때, 살짝 내장이 뒤틀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긴 했지만, 못 버틸 수준은 아니었다.
깡
깡
깡
양태산의 검강이 선우의 몸을 두드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기(技)차이가 확연한지라, 서 너번은 베이고 나서야 한 번정도 베어낼 수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눈앞의 남자에게 검을 박아넣을 수만 있다면 내상따위는 아무래도 좋았기 때문이다.
방어따위는 일절 없었다.
무식하게 들이박고,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한편 양태산은 선우의 저돌적인 공격에 치를 떨었다.
아무리 갑옷이 방어해준다지만, 검강에 베이면, 내상을 입을 것이 분명 할터인데도, 눈앞의 남자는 공세를 이어갈 뿐이었다.
마치 오늘만 사는 것처럼말이다.
스릉
선우의 저돌적인 공세에, 양태산의 몸에도 검이 닿기 시작하였다.
금강불괴에 이른 몸이었지만, 그 또한 사람인지라 내상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선우와 양태산 간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깡
깡
깡.
선우의 검격을 연달아 받아낸 양태산은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옥령과 선우를 연달아 상대하면서, 상당한 체력과 내력을 소모하였다.
거리를 벌린 양태산은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 허억"
호흡은 거칠어졌고, 검의 날카로움은 무뎌지기 시작하였다.
'이거 위험한데.'
기(技)만으로 선우를 농락했던 그였지만, 아무리 쓰러뜨려도 , 바로 달려드는 선우에게 , 벅참이 느껴졌다.
'실수다, 저 귀물을 입기 전에 끝냈어야 했거늘.'
양태산은 자신의 방심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설마하니 저런 귀물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검강을 유지할 만큼의 내력 또한 남아있지 않았다.
반탄력에 의해 손목은 퉁퉁 부어올랐으며, 정신적인 피로도 또한 상상을 초월하였다.
눈앞의 대적자를 상대하고, 처음으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호랑이를 못 알아본 댓가이리라
양태산은 검을 들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이재원에게조차 보인적 없는 최후의 절초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비록 미완성에 불과했지만, 그 위력은 확실하였다.
그는 남아있는 모든 내력을 끄집어내기 시작하였다.
후우우웅
상당수의 내력이 모아졌지만. 이정도로는 부족하였다.
양태산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불리우는 진원지기까지 끌어모으기 시작하였다.
진원지기는 사람이 날때부터 가지고 있는 진기로,일반적인 내공심법을 모은 진기보다는 더욱 정순하고 강력하지만,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한 번 소모된 진원지기는 다시는 보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양태산은 목숨을 걸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양태산은 거침없었다.
오늘만 사는 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그의 내력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한 편 양태산의 심상치 않은 기운를 느낀 선우는 긴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양태산이 내뿜고 있는 엄청난 기운은, 처음 그를 봤을 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이 타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패왕귀면갑 덕분에, 대등한 것처럼 보이긴 하였지만,사실 선우의 내상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다.
단순히 검을 들 때조차 창자가 꼬이는 듯한 아픔이 찾아왔고, 걸을 때마다, 속이 뒤틀렸다.
이정도 고통이면 , 언제 쓰러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패왕귀면갑은 그런 선우를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고통마저 없애주지는 못하였다.
그런 상황에, 심상치 않은 양태산의 모습을 보니,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잡생각을 없앴다.
옛적에 죽어야할 목숨이 것만,천운이 겹치고 겹쳐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왔다.
그렇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선우는 남아있는 모든 내력을 사용하여, 음양조화신공을 극한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웅
두 남자 주위에 엄청난 기운들이 몰아치기 시작하였고, 이내 유형화된 기운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선우은 최후의 일격을 가하였고, 양태산을 베어버렸다.
양태산의 검또한 마찬가지로 휘둘러졌고, 그대로 선우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둘다 특유의 쇠를 두드리는 소리따위는 나지 않았다.
"쿨럭"
선우가 피를 토하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베이고 만 것이다.
"어째서?"
선우는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양태산에게 물었다.
그가 베인 곳이, 패왕귀면갑 너머에 있는 가슴이었기 때문이다.
양태산의 검은 패왕귀면갑을 베지 않고, 그 너머를 베고 만 것이다.
"나는 베고 싶은 것을 베었을 뿐이라네."
"쿨럭 쿨럭"
내상과 외상이 겹쳐지자, 엄청난 고통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자네는 영광으로 알아도 된다네, 미완성이긴 하지만 심검(心劒)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았으니 말이세."
양태산의 말에 절망을 느꼈다.
자신은 지고 만 것이다.
겨우 겨우 닿았다 여겼것만, 결국 실패하고 만것이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실패한 것은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옥령이 죽는다는 사실에 감당치 못한 슬픔이 밀려들어왔다.
"그러니 자네도 언젠가는 이 경지에 다다르기 바라겠네."
"?"
갑작스러운 양태산의 말에 선우가 의문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였다.
피슉
콸콸
양태산의 목에 있던 상처가 커지면서, 피가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내력으로 어찌어찌 막고 있었지만, 결국 터지고 만것이다.
선우는 최후의 일격으로 옥령이 베어놨던 목을 노렸다.
단 한 번의 기회였기에, 금강불괴에 이른 그의 신체를 확실히 파괴할 수 있을 곳을 노린 것이다.
"반 치가 더 들어가버렸군."
쿵
그 말을 끝으로 양태산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20년 전 천하제일인 이재원과 함께, 중원을 집어삼키려는 천마대제의 야욕을 물리치고, 무림을 구했던 대영웅이자, 이재원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다고 여겨졌던 천하제이인자 검황(劍皇) 양태산은, 그렇게 패륜색마라 불리우는 장삼에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쿨럭, 쿨럭"
양태산이 쓰러지는 모습을 본 선우는 당황하였다.
설마하니 그가 쓰러질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안도감에 선우는모든 힘이 풀려버렸다.
심각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자신과 옥령은 살아남은 것이다.
그것도 검황 양태산에게서 말이다.
양태산에 대해서는 독자였던 선우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게 얼마나 말도안되는 일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고3, 무림에가다' 에 나오는 조력자 포지션의 인물로서, 주인공 다음가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기재 중에 기재.
천마대제와의 최후의 결전에서까지 얼굴을 비추는 최강의 조연들 중 하나였다.
엔딩 이전에도 이미 화경에 이르렀던 그였기에, 20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초절정에 불과한 자신이 꺽어버린 것이다.
물론 여러가지 천운이 따르긴 하였다.
옥령과의 혈투로 소모된 내력과 체력 ,패왕귀면갑이라는 귀물에 존재 그리고 옥령이 최후의 일격으로 남겨뒀던 목의 상처까지, 천운에 천운이 겹쳐진 결과였지만, 선우는 만족하였다.
결국 살아남은 것은 그였고, 옥령은 죽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위치가 발각된 이상
백화봉을 떠나야하긴 하지만, 옥령과 함께라면 어디를 가든지 행복할 수 있으리라
일단 지금은 몸이 회복 될 때까지, 한숨 푹 잘 생각이었다.
서서히 눈이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깨고 난다면 엄청 개운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때였다.
"지금 잠이오냐, 장삼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름돋는 목소리에, 선우는 눈을 번뜩 떠 버렸다.
오던 잠이 싹 다 날아가버렸다.
딱 딱 딱
밀려들어오는 공포에, 이빨이 쉴새없이 부딪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제발 그가 아니길
제발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말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실실 웃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우리 장삼이 존나 쎄네?, 태산이가 나보단 좆밥이긴한데, 그래도 약한 새끼는 아닌데, 목이 따여 죽어버렸네?"
그 남자의 정체는 이십여년 전 마교의 침공으로부터 무림을 구한 대영웅이자 최고의 성세를 구가하고 있는 천무맹주이면서 천하제일인으로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남자.
이재원이었다.
이재원은 실실 웃으며 , 선우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미소를 본 선우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표정이 왜그래?, 스승을 봤으면 문안 인사라도 드려야지. 장삼"
이재원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