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화 〉 1.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그렇게 무림을 지배하려는 천마 대제의 야욕을 부숴버린 이재원은 천무맹 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였고 무림 정의를 수호하며 수 많은 부인들과 아들 딸들을 낳으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그동안 '고3! 무림에 가다.' 를 구독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후에 더 좋은 작품으로 뵙겠습니다.
"아, 진짜 꾸역꾸역 억지로 읽었네 망할"
선우는 읽고 있던 폰을 그대로 집어 던져버렸다.
그가 읽고 있었던 책은 '고3!,무림에 가다"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무림세계로 환생한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천고의 무공을 기연으로 얻어, 절대고수로 성장한 후 무림을 지배하려는 악의 무리로부터 세상을 지킨다는 전형적인 이고깽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제목이라 그런지 읽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유추가 가능할 정도지만, 막상 직접 읽어보면, 예상보다 더욱 개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다.
개연성따위는 엿 먹으라는 듯이 생각나는대로 때려박은 설정과 똑똑한 주인공을 묘사하고 싶은 작가의 욕심 때문인지 멍청하게 그려지는 주변 인물들 그리고 그저 주인공만 보면 홀딱 반하는 매력없는 히로인들까지
언뜻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양산형 이고깽 무협의 표본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은 그 일반적인 이고깽 소설보다 더욱 더 수준이 낮은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제일 개 같은점은 주인공이 과연 모험을 하는 것인지 떡을 치려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성애묘사만이 가득하다는 점이였다.
처음 무공을 가르쳐준 스승부터 시작해 사매 동기 사고 가릴 것 없이 섭렵하면서 떡협지의 신화를 써 내려갔다.
무림출도 후에도 미약에 중독된 여인만 6명이나 만나게되는데, 이들 각 각 육대세가의 무남독녀라는 설정까지 있었다.
심지어 나중에 흑막으로 등장하는 마교의 성녀까지 따먹으면, 이야기 전개를 수월하게 하니 말 다했다.
이 개같은 책에서는 주인공과 떡을 치면 그게 어쩔 수 없이 하였든 좋아서 하였든 간에 무조건 주인공에게 반하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점은 주인공이 익힌 무공의 특성상 떡을 칠 수록 더욱 강해지는 음적이나 익힐 것 같은 무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무림 공적으로 몰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주인공을 찬양하기 바쁘다.
주인공의 스펙 업과 사건 전개 그리고 문제 해결까지 떡으로
시작해서 떡으로 마무리하는 저질 소설인 것이다.
물론 성애묘사만 가득한 무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애초의 작가의 목적이 노루표 무협지처럼 노골적인 성애묘사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딴 것도 아니었다. 성애묘사가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꼴리지가 않았다.
노루표 무협은 성애묘사가 야해서 꼴리기라도 하지, 이 소설은 성애 묘사 또한 필력이 구려, 전혀 꼴리지 않고 지루하기만 하였다.
선우는 처음 이 소설을 구매한 스스로에게 반성하였다.
제목만 보고, 전권 구매를 누른 것이 잘못이었다. 쓴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읽어 나가긴 했지만 숙제 하 듯 꾸역꾸역 읽은 결과, 결국 찝찝함과 불쾌함만이 남게 되었다.
"아니 출판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딴 소설을 낸거야?"
선우는 작가보다 출판사 욕을 하였다.
예전에 인쇄 값이 아까워서라도 어느정도 거름망으로 걸러서 이정도로 처참한 소설은 안 나왔었는데 디지털 서적화가 활성화된 이후에는 어쩐일인지 자극적이기만 하면 이딴 쓰레기조차 출간시켜주는 경우가 우후죽순하였다.
작가가 폭주하면, 막아야 되는데, 이정도로 막장이면, 출판사 잘못이 더 크다.
그리고 억울했다. 자신이 뭘 그리 잘못했길래 이 딴 똥같은 소설은 고르게 한 것 인가
선우는 나만 당할 순 없다는 생각에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기위해, 비평란 열심히 비평을 작성하였다.
소위 말하는 낚시 글이었다.
다행히 '고3!,무림으로가다.'를 읽은 사람이 얼마 없던 것인지, 아니면 쓸 가치가 없던 건지, 비평 란과 별점은 텅 비어있었다.
조회수는 별점과 비평이 이라는 말이있다. 그만큼 비평에 의존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증거였다.
별점은 만점을 주었고 비평은 아주 기차게 써 내려갔다.
쓸데없이 기억력은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소설에 나온 설정 같은걸 조금씩 비틀어, MSG를 가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이 작가에 대한 칭찬과 작품에 대한 찬양을 이어 나갔다.
"됐다. 나만 당할 순 없지, 니들도 꼭 봐라."
선우는 자신이 만든 비평을 읽어보았다.
무협을 봐 온지 어언 15년 내 인생은 무협이란 이 소설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무척이나 충격적인 소설이 였습니다. 언뜻 보면 유치할 것 같은 제목이지만, 제목과는 불일치 할 정도의 엄청난 필력과 스토리 속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떡밥들과 수준급의 서비스 신까지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설 속에 빠져들어버렸습니다........ 중략.........만약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글을 쓰는 걸 목표로 삼은 예비 작가나 초보작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번 읽는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인생에 한 번쯤은 봐야 될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소설 속 세상이라면 저도 꼭 들어가고 싶네요.ㅎㅎ
이 소설을 읽은 이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코웃음 칠 정도로 구라가 가득한 비평이었다. 그래도 틀린 말은 전혀 없었다고 자부하였다.
이딴 병신같은 소설도 출간된다는 것은 무협인생 15년 동안 처음이 보는 일이 였으며, 유치한 제목보다 더 대단할 정도로 엉망인 필력을 자랑하였으며, 스토리 속에 숨어있는 떡밥들도 분명 존재 하였을것이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회수를 안 해서 그렇지, 묘사가 안 꼴려서 그렇지, 상황자체는 꼴리는 게 많기도 하였다.
그리고 인생에 한 번 쯤은 볼만하다는 말도 진심이었다. 이런 쓰레기같은 글을 쓰는 작가도, 책을 출간하는데, 예비작가들이 보면, 얼마나 힘이 나겠는가
많이 축약해서 그렇지, 거짓내용은 전혀 없었다.
소설을 열심히 쓰다보니, 어느새 시계 바늘이 11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쓸데없는 일에 열을 올렸지만, 그래도 만족감을 느낀 선우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버렸다.
'치킨이나 시켜 먹자.'
힘이 빠져버렸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마침 내일이 일요일이기도 하니, 이대로 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한 자신을 위한 보상이 필요했다.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줄 영혼의 안식처는 단 하나리라
띠링
-50분 후 배달예정
그렇게 황금빛 기름 치킨을 시킨 선우는 뭐 또 볼 소설이나 없나 싶어 휴대폰을 켰다.
치킨이 배달 올 때까지 시간을 떼울 요량이었다.
'응?'
그때였다.
앱을 켜니 상단에 쪽지가 왔다는 표시인 물음표가 보였다.
'뭐지?'
선우는 검지를 올려 쪽지를 터치를 하였다.
그러자 쪽지의 제목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비평 남겨주신'고3 무림에가다' 작가입니다.]
문단의 시작은 놀라웠다. 설마하니 작가가 직접 쪽지를 남겼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선우는 궁금증이 일어나 쪽지를 터치한 후 전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였다.
-안녕 하세요. 비평을 남겨 주신 '고3, 무림에 가다' 작가입니다. 써주신 비평 잘 읽었습니다. 제 소설에 대해 이렇듯 깊은 고찰과 애정을 가진 독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쁩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제 소설에 대해 이렇게까지 고 평가해준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당연하지, 누가 그딴 똥같은 소설을 칭찬해주겠냐?"
선우는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낚시하려고 쓴 비평에 작가가 감동을 하니 괜히 미안함이 든 것이다.
-(중략) 그리하여, 제 독자 1호이자 제 문학세계를 이해해준 구독자님에게 작은 선물을 드릴까 합니다.
쪽지의 내용은 갈수록 점입가경 이였다. 선물은 무슨 선물이란 말인가, 팬심 이라곤 1도 없는데 그래도 준다는 선물은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받아 둘 생각 이였다.
-전에 제 소설 속으로 들어가 살고 싶다고 하셨죠?, 그 소원 이뤄 드리겠습니다. 부디 제가 만든 세계속에서 즐겁게 살아주세요.
"선물은 무슨, 이 새끼는 끝까지 개소리를 하냐."
선우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적어 놓은 작가의 욕을 몇 번하고, 쪽지를 휴지통 넣어버리고, 삭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기 시작하였다.
"뭐지?"
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풀려버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정신마저 오락가락하면, 혼미해지기 시작하였다.
"아., 시발 치킨 먹어야 되는데........"
그렇게 선우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짝 짝 짝
"일어나 이 녀석아, 언제까지 자는 것이냐!"
누군가 뺨을 가격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왠 험악하게 남자가 선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이 녀석이 미쳤나 정신 못 차리냐 장삼!"
그의 고함소리에, 선우는 번쩍 정신이 돌아와버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야에 수많은 사람들이 잡혔다.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좌석을 가득 메우고 앉아있는 사람들.
하나같이 중국식 복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선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야!?!!?!?'
선우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