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155화 (155/159)

〈 155화 〉 155. 몽마학원의 지하(2)

* * *

“마더.”

“우리가 누굴 데려왔는지 봐.”

“유니크한 아이를 데려왔어.”

나는 그들이 마더라고 부르는 존재가 지하의 주인이라는걸 알 수 있었고 그녀가 내뿜는 악취 때문에 그녀가 어디서 날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요괴 거인이 날 바닥에 내려놓고 사라지자 등을 돌리고 있던 마더가 내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요괴 거인보다도 더 끔찍한 요괴였다. 요괴 거인은 그나마 몸매라도 좋았다. 그런데 마더의 몸은 엄청나게 비만인데다가 하반신은 촉수로 이뤄진 문어나 해파리같은 무척추 동물의 느낌이 들었다. 아니, 상체에는 분명 척추가 있을테니 그저 끔찍한 혼종이라고 밖엔 설명이 불가능할까.

그런데 이렇게 생긴 마더가 나를 향해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면 어떻겠는가. 세상 밖으로 나가본지 오래돼서 아직까지 자신의 미모가 이곳에서 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주변에 죄다 요괴밖에 없는데다가 전부 못생기게 만들어놨으니까!

주변을 둘러보자 마더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요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죄다 기괴한 모양이었는데 그나마 마더의 얼굴이 정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무렇게나 생긴 얼굴들이었다.

아까 봤던 삼두 요괴가 낙제한 인큐버스들을 모아서 만든거라면 그들은 대체 뭘까? 서큐버스들? 아니면 교칙을 어기고 호기심 때문에 지하를 찾아온 멍청한 것들? 아니면... 좀비 서큐버스들을 피해서 높이뛰기를 하다가 계단 밑으로 추락한 나같은 새끼?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었고 자꾸만 나를 향해 유혹의 눈길을 던지는 마더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대로 고자가 되거나 요괴가 될 것인가. 내 머릿속에서 누군가 질문했다. 나는 단언컨대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성기준의 인생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일단 자리에 앉은 채로 마더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녀엉.”

마더의 굵직한 입술이 떨어지며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그 안에서 구취가 심하게 나서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크흑...”

대게 헛구역질을 하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래, 나는 울고 있었다. 그러자 마더가 날 향해 측은한 눈길을 보냈다.

“넌 어떤 걸 원해서 이곳에 왔니?”

“예?”

“뭔갈 원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야? 너의 욕망을 얘기해봐. 나는 뭐든 만들어줄 수 있단다.”

“뭐든요?”

“그래. 적당한 가격만 지불한다면. 잠깐만...”

마더는 내쪽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거대한 문어발이 한발 앞으로 나오더니 어느샌가 나와 그녀 사이의 간격을 줄여놨던 거다. 그러더니 다리에 붙어있는 그 수많은 촉수들을 내 쪽으로 향해왔다.

짝­ 짝­ 짝­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 피부 위에서 뭔갈 빨아먹기 시작한 마더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갑자기 버럭 성질을 냈다.

“크앗! 너, 너... 네 욕망은 엄청나게 커다란 복수심으로 가득하구나. 지금 당장 원하는 게 없을 줄이야. 심지어 섹스마저도! 인간의 욕구라고 불리는 수면욕과 성욕 그리고 식욕마저도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냐!”

수면욕이야 나는 이승 사람인데 이곳이 이승이 아니라서 수면욕이 없는 거고. 성욕은 지금 당장 해버리면 고자가 되니까 없는 거고. 식욕은... 그쪽이 워낙 심각한 악취를 뿜어대니까 없는 거잖아!

“과한 복수심이야... 이런 복수심은 처음이다... 그래, 네 욕망을 들어주려면 복수... 그 복수를 할 수 있으면 되겠구나.”

“복수.”

그 단어가 나오자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하긴 마더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복수라면 다른 것 따위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 심지어 내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녀석들이 다 지옥에 떨어졌으면 좋겠다. 그뿐이겠는가? 지옥에서 최악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공간에서 영원토록 고통받았으면 좋겠다.

“복수도 대신 해줍니까?”

“그르륵... 네가 원한다면 해줄 수 있지. 그런데 네 복수가 너무 강하구나. 날 좀먹어 버릴지도 모르겠어. 하아... 벌써부터 불 타올라... 아랫도리가 심하게 불타올라!”

어딜 말하는 걸까. 촉수에 붙어있는 흡입기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다리 위쪽에 붙은 살덩어리들? 그것도 아니라면 문어 다리 사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여성기를 지칭하는 걸까? 젠장, 이 요괴가 하는 말은 다 괴상한 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복수를 대신 해준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가 상당할 터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들었다.

“마더... 라고 하셨죠?”

“그래. 난 이곳의 마더다. 이 아이들의... 어머니지.”

“만약 제가 당신의 욕망을 해결해준다면 저에게 뭘 해주겠습니까?”

“느흥?”

마더는 듣고싶은 말을 들었는지 콧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내 욕망을 해결해준다고? 무슨? 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얘기해보거라.”

이제는 코에서 콧바람까지 뿜어져 나왔다.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걸까.

“마더의 욕망은 어떤 건데요?”

“보면 모르겠느냐? 나야 당연히 섹스를 하는 거지.”

“흠, 그렇다면 지상 최고의 섹스가 필요하실거 같은데요.”

“느흥! 느흥! 당연하지. 난 예쁘고 잘생긴 남자의 몸도 탐이 나지만 어쨌거나 기술의 퀄리티도 상당히 높게 평가해주지. 너에게도 어쩌면 그런 향기가 느껴질 수 있겠구나. 어떻게... 지금 당장...”

나는 마더의 촉수가 내 바짓가랑이를 파고 들어오기 전에 약간의 연기톤을 섞어서 말했다.

“흠... 이거 참 아쉽네요.”

“뭐가 아쉽다는 거지?”

“이번에 몽마학원에 오면서 남자 둘을 데려왔어야 했는데 못 데려왔지 뭡니까. 그런데 둘 중에 하나는 지구 상에서 가장 섹스를 잘한다는 야왕이라는 자이고 하나는 소년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잘생긴 남자입니다. 젊은 남녀 사이에서는 우상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죠.”

“오, 그런 인재들이 있단 말이냐? 느핫! 벌써부터 흥분되는구나. 그래, 그래서... 언제쯤 다시 데려올 생각이냐?”

나는 씩하고 웃었다. 여기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얘기를 좀 더 하죠. 마더가 어떤 남자들을 좋아하는지 더 알게 되면 좋을거 같습니다. 지상에서는 이런 걸 이상형 월드컵이라고 부릅니다.”

“오... 좋구나! 뭔지는 몰라도 좋아하는 성향을 묻는거라면 하루종일이라도 말할 수 있으니까. 응힛!”

“자, 그럼 지금부터 제가 보여드리는 남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됩니다.”

“컥! 이 둘 중에는 그 누구도 고를 수가 없구나. 둘 다 갖으면 안 되는 거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이상형 월드컵으로 누군가를 갖으려는 게 아닙니다.”

“그럼?”

“가장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찾아내는 겁니다.”

“오호... 그렇구나. 그럼 왼쪽 아이를 선택하겠다.”

“이제보니 마더께서는 무쌍에 베이비 페이스인데 귀엽지만 몸매는 야성적인 남자들을 좋아하는군요.”

“그, 그렇지. 케헤... 그래서 사실 널 처음 봤을 때도 아랫도리가 불끈불끈 달아올랐던 거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내 입담은 그녀의 욕망보다 뛰어나니까.

“제가 다음번에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 둘을 이곳으로 데려오겠습니다. 하지만 절 보내주시지 않으면 두 사람이 이곳에 오는 일도 없겠지요.”

꿀꺽­

마더는 욕망을 한움큼 집어삼켰다.

나는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1024강 남자 아이돌 이상형 월드컵을 휴대폰으로 틀어주면서 마더의 군침을 돌게 만들었고 릴리아가 말한 시간을 채울 때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이 사람... 이 사람은 정말 존재하는 사람이 맞는 거냐? 너무도 아름답구나. 인큐버스들보다도 훨씬 멋져... 혀를 잠깐만 써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이건 그냥 이미지일 뿐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네 얼굴을 한번만 핥아도 되겠느냐고 물은 거다.”

“... 그것도 안 됩니다.”

“그건 어째서지?”

“욕망을 참으면 참을수록 나중에 거대한 쾌감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또... 지금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제 방송을 보고 있을 겁니다. 만약 저를 통해 욕망을 해소한 걸 알게 되면 여기 나와있는 남자들 중에 어떤 남자는 마더한테 실망할 수도 있을 겁니다. 기껏 데려왔는데 하기 싫은걸 억지로 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나는 여태 그런 섹스만 해왔다.”

“쌍방이 원하는 섹스를 하시면 다시는 그런 섹스를 하지 않게 될 겁니다. 사, 사랑이란 건 위대한 겁니다.”

“사랑?”

“예.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영원불변합니다. 그러니 저기 있는 삼두 거인처럼 되지 않고 영원토록 마더가 사랑을 줘도 좋다는 말입니다.”

“푸... 다들 그렇게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척해지기만 할 뿐이었지.”

“하지만 지상의 야왕이라면 어떨까요?”

“야왕이라면..?”

“밤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즉, 지상에서 가장 섹스를 잘 하는 남자를 야왕이라고 합니다.”

“음... 그렇다면 참겠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내 서방님을 위해서라도 오늘부터 금욕을 시행하겠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미래의 서방님도 분명 탄복해 하실 겁니다.”

“크흣! 생각만 해도 좋구나. 그래. 이상형 월드컵을 계속 하자꾸나.”

마더는 나와의 대화를 상당히 만족해 했다.

그렇게 이상형 월드컵이 끝났고 나는 다시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야 할 때가 됐다.

다시 처음 왔을 때처럼 삼두 거인이 날 손에 잡은 채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마더가 내 마중을 나와줬다.

그런데 그렇게 출구쪽으로 나가는 동안 마더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넌 참 신기하구나. 내가 너를 유혹하는 마법을 계속 걸었는데도 나한테 넘어오지 않았다. 너에게는 복수심만 있는게 아니라 나에 대한 내성도 있는 듯하구나. 예전에 그런적이 있었지. 내가 만든 약이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여기있는 삼두 거인 중 하나는 내기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그 약을 썼는데 상대방한테 먹히지 않아서 결국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오기만 했지. 나는 그때 그 예쁘던 아이를 석 달 내내 따먹으면서 좋은 추억을 쌓았지. 그 녀석 번호가... 13번이었던가. 지금은 13번이 실종되서 영구결번이지만.”

아.

13번이구나. 이 삼두 거인 중 한 대가리가 13번이었다니... 꼴 좋게 됐다.

“너구나.”

마더가 눈치를 채고 말했다.

“너였어. 나한테 약효가 들지 않는걸 보니 너가 분명해.”

마더는 내게 적대심이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내 덕에 13번과 좋은 추억을 쌓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날 잡고있는 대가리가 그 말을 듣고 열이 받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어디선가 봤다 싶었던 얼굴. 그러니까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만 어느정도만 남아있는 13번의 얼굴이 날 정확히 노려보기 시작했던 거다.

“시발... 마더! 저는 이쯤에서 작별인사를 해야할거 같아요!”

“아닛! 이렇게나 빨리 가려는 거냐?”

바로 그때 파리채로 후려치듯 거인의 반대쪽 손이 나를 덮쳐왔고 나는 간신히 몸을 던져서 빠져나왔다.

“반드시 두 남자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절대 금욕이예요!”

그렇게 나는 계단을 따라 도망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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