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151. 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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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오랜만이라고..?
송하윤과 홍푸른이 내 앞에서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들을 브리핑하고 있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그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랜만이라는 단어. 그 단어가 날 급하게 조여들고 있었다. 설마 내 존재를 알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지... 근데 그러면 대체 왜 그런 뜬금없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저기... 대표님..?”
홍푸른이 뭔가 이상한걸 눈치채고 내 시야에 얼굴을 비집고 들어왔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어? 아니... 아니다... 그래, 계속 얘기해봐. 권성철이 뭐?”
“권성철... 그 사람 생각보다 더 끔찍한 사람이더군요. 백그라운드가 장난이 아니던데요. 근데요 대표님... 대체 왜 그런 사람이랑 척을 지려는 건가요? 아무리봐도...”
“왜.”
“너무 거대해서요.”
“거대하면 건드리면 안 되냐? 놈이 무법자야?”
“아뇨. 그런건 아닌데...”
“무서우면 손 떼라. 나도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예..?”
“권성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놈일 수도 있어. 그래도 나는 끝까지 갈 거야. 송하윤, 너도 마찬가지야. 정보를 케다가 누군가 죽을 수도 있어. 아마 이번 건을 계기로 그 정도는 알게 됐을 거야.”
“...”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을 먹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두 사람도 잠시 주춤하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트레이너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정보비로 주는 급여가 상당했기에 섣불리 선택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 밑에서 충성을 바치는게 낫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다.
그래도 목숨이 걸린다면 얘기가 달라질...
“하겠습니다. 대표님께서 끝까지 가신다면 저희도 끝까지 가야죠.”
먼저 결단을 내린건 의외로 송하윤이었다. 홍푸른도 나지막하게 끙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저도 끝까지 가겠습니다.”
이런 줏대 없는 새끼... 다른 상황이었으면 뭐라고 했을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냥 봐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빨리 데뷔시켜야겠다. 내가 정상 궤도에 입성해야 권성철이 나에 대한 의심을 안 한다. 그리고 내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기도 했다.
현재 상황은 이렇다. 지우는 토너먼트 결승전까지 쭉쭉 치고 올라갔다. B조 2차에서는 미래가 제이와 대결해야 하는 상황. 나는 이번 대회, 토너먼트 결승전에 스탠다드 기획 인재 3명이 모두 랭크에 오르는 결과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야 본선에 들어갔을 때 후광이 우리 기획사 쪽으로 비춰질 테니까.
핫바디 콘테스트는 아주 오래 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잡지사에서 행해지는 남자들을 위한 최고 권위있는 콘테스트였다. 1년에 한 번밖에 진행되지 않는만큼 전국에 있는 내로라하는 핫바디들이 출전하려고 한다. 우승상금 뿐만 아니라 우승했을 때 유명세를 탈 수도 있었고 심지어 핫바디 콘테스트에서 역대 1위를 차지했던 이지현이 남성 로션의 CF를 따내고 장어구이집 CM송까지 부르는데 이어 축구팀의 마스코트 아이콘으로 초청받는 일까지 생겼다.
그 정도 광고계 블루칩을 탐내지 않는 방송사는 없을 터, 소속사에서는 재빨리 우승자와 함께 팀을 꾸려 이른 데뷔를 시켰다. 그리고 데뷔는 성공적이다. 핫바디 콘테스트로 눈도장을 찍어둔 탓에 수많은 남성팬을 확보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보수적인 아이돌보다는 이렇듯 개방적인 아이돌에게 더 찬사를 날리는 오늘날의 대중들이었다. 따라서 핫바디 콘테스트의 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올라갔다.
그러니 여기서 승부를 띄워야 했다.
나는 제이와 리카를 믿지 않는건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포텐을 확실히 끌어올리기 위해 둘을 지옥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뭐? 두 사람을 지옥으로?”
벨라는 기절초풍할 노릇이라며 반대했지만, 내가 끝까지 억지를 부렸기에 어쩔 수 없이 내 말을 따랐다. 사실 이쪽 세상의 일은 전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져야만 했다. 내가 지금 벨라에게 해준 게 얼마던가. 그녀는 나 하나 잘 키웠다고 악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일개 몽마가 악신이 되는데에는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니,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악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결국 몽마에게도 수명이 있어서 늙다리가 되어 굶어죽거나 아니면 나같은 섹서를 만나서 공개처형을 당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러니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다.
“가끔씩 널 보면 정말 예상하지 못할 방법들을 떠올리는거 같단 말이야...”
“악신들이 세 여자를 후원했을 때는 안 그렇고? 나는 그때가 내 인생 최대로 깜짝 놀랄 일이었어.”
“하긴... 누구 제자인데. 그 스승의 그 제자라는 건가.”
“나한테 스승이 있었나.”
“허, 그렇게 말하면 곧 만날 스승들이 정색하지.”
“하라지.”
나는 제이와 리카를 데리고 지옥문을 열었다. 당연히 제이와 리카는 지금이 꿈속이라고 생각했다.
“어..? 꿈치곤 꽤 리얼한데..?”
“리카? 대표님? 이게 무슨..?”
“어, 안녕. 얘들아. 왜 새삼스럽게 놀라고 그래? 오늘 연습있는 날이잖니?”
“... 그건 맞는데. 여긴 어디..?”
지옥 문 앞이지. 이걸 본인이 열지 않으면 아무리 영혼이라고 해도 넘어갈 수 없다. 원래라면 넘어가는 순간 망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테스트가 진행되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수 많은 악신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이 상황에서도 섹스트림은 가동 중이다.
“오늘은 여기서 연습하자.”
“제가 생각하는 그 연습이 맞죠?”
“... 이건 꿈이야... 분명 꿈일 거야.”
서로 꿈이라고 읊어대는 두 사람은 아직까지 크게 의심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오늘 모델 선생님 초청했으니까 빨리 넘어가자. 자, 문을 열어보렴.”
나는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악당 계모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지옥문을 열도록 유도했다.
충성도가 높은 리카가 먼저 지옥문을 열었다. 그녀가 그 안으로 사라지자 제이가 내 옆얼굴을 새초롬하게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기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지. 지가 안 들어가면 어쩔 건데? 다 지들을 위한건데 말이야.’
나는 나쁜짓을 한다는 죄책감 없이 두 여자를 따라 들어갔다. 지옥문 게이트는 그때마다 목적지가 다르다. 우리의 경우엔 당연히 몽마학원이었다.
몽마학원으로 들어가자 수 많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 수강생들이 이열로 길을 만들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제이와 리카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앞에 펼쳐진 위압스러운 광경에 부들부들 떨었다.
“대표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다 계획된 상황이라고 말해줘요. 제발.”
“푸하하. 맞아. 다 계획된 상황이야. 이 사람들은 다 관객. 그러니까 겁 먹지 말고 날 따라와.”
서큐버스들과 인큐버스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졸업자인 나를 마중 나온거다. 아, 물론 내가 그 정도 명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도 있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옥으로 함부로 넘어오지도 못했겠지만.
행렬의 끝에는 내가 요즘 들어 무척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다름아닌 릴리아였다.
“오랜만이네. 그때 수강 번호가 몇 번이었지. 기억도 안 나.”
나는 릴리아의 앞까지 걸어가서 대답했다.
“번호를 기억할 필요가 없죠. 저는 성기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요.”
“흥. 까불긴. 그래, 여기있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면 되는 거야?”
“네. 좋은 선생님을 좀 붙여주세요.”
“대, 대표님. 저분 뒤에 이상한... 꼬, 꼬리가...”
“아니. 그것보다 지금 허공에 떠 있는거 안 보여?”
“으... 으아... 뭔가 야시꾸리하게 입은 것도 좀 이상하고.”
“머리에 작은 날개같은거 자세히 보면 섬세하게 움직이고 있잖아. 서, 설마... 악마?”
“에이, 언니... 악마겠어?”
“그, 그치? 내가 과민반응하는 거지?”
어떻게 보면 참 무례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두 여자. 나는 릴리아와 눈이 마주치고 그녀가 쿡쿡대면서 웃었기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성격이 불같은 릴리아가 혹시라도 화를 내면 그때는 정말 큰일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이 애들한테 뭐라고 하고 왔을지 정말 궁금해 죽을 지경인데!”
“얘들아. 이분은 이 학원의 총 지배인이셔. 악마라느니 이상한 소리를 하면 결례가 아니겠니?”
“아, 아니... 근데 지금 떠 있는거...”
“요즘 과학으로 안 되는게 어딨니? 자기부상 신발이라도 신으셨겠지.”
“아, 그, 그래요... 그래... 이건 꿈이니까.”
“제이. 너도 꿈이라고? 나도 꿈인데?”
“이상하네. 우리 꿈에서 만난건가? 그럼 대표님도 허구의 인물인가봐.”
‘푸하! 허구의 인물이라니... 참 문학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네.’
나는 두 여자를 귀엽게 쳐다봤고 그건 릴리아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녀는 두 민간인이 참 재밌다는 듯이 배까지 끌어안고 웃었다. 이열로 줄 지어있는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도 웃참을 하느라 고생 깨나 하는 모양이었다.
“그, 근데 여기 확실히... 대단한 곳인건 맞는거 같아. 아무리 꿈이어도 사람들 죄다 너무 예쁘고 멋지잖아.”
“여기서 모델 포즈를 배우는 건가... 나 너무 창피할지도.”
“근데 외국인들도 있나봐아... 나 정신 나갈거 같아. 무서워.”
“꿈이라고 생각해, 리카 언니. 그러면 조금 나아. 자, 봐봐. 나 이제 손도 안 떨잖아.”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걸 알게 되면 그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다. 나 역시 죽고나서는 현실을 부정했고 이곳이 지옥이라는걸 안 순간 끝도 없이 막막한 공포감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으니까.
“자, 시간낭비는 이제 그만하고 선생님한테 데려다줄게.”
“아, 릴리아... 씨.”
내가 릴리아 씨라고 말하자 릴리아는 힐끗거리며 날 노려다봤다.
“그래. 너 졸업자니까 이제 여기 수강생 아니지. 릴리아 씨... 참 적절한 표현이겠구나.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남자 선생님은 필요 없다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응?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이성을 유혹하는 법을 배우는데 인큐버스가 필요없다고?”
“예.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여기있는 아이들은 제가 보호하는 아이들이거든요. 다른 남자의 손길은 필요 없습니다.”
릴리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꼬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꼬리 끝으로 두 명의 서큐버스 교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너! 지금부터 이 두 꼬맹이들을 가르켜라. 이성을 유혹하는 법을 알려주는 거야.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색기가 확 돌게.”
“네.”
“그리고 너, 성기준.”
“예.”
“지금부터 이에 따른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할 거야.”
나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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