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150화 (150/159)

〈 150화 〉 150. 오랜만의 재회

* * *

아이돌들에게 있어서 내 능력은 눈이 뒤집힐만한 일이다. 이것만 있으면 아이돌계를 씹어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섹스라는건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많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섹스만 하면 지금 데뷔한 아이돌 중에서도 탑급으로 예뻐지는데 잠자리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안성권 따위랑 하는 섹스보다 기분도 훨씬 좋을텐데 굳이 그놈 자지를 찾으러 돌아갈 이유가 없어진단 말이다.

나는 이제 완전히 뒤바뀐 자세로 미래와 마주 앉았다. 미래는 공손하게 다리를 모았고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나는 입에 담배를 물었고 미래는 내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럼 이제부터 다시 아까 얘기를 해볼까? Z사에 대해서 말이야.”

“... 루랑 아민이가 왜 여기로 왔는지 이제 알겠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네.”

“제, 제가 양심도 없이 스탠다드 컴퍼니로 와도 되는 걸까요?”

“흠...”

나는 완전히 갑이 된 채로 턱을 굈다. 미래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걱정하는 거다. Z사가 무너지게 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될 대상은 그들을 제외하고 안성권과 신랄하게 떡을 친 아이돌들이 될 테니까.

결국 상처 입은 새끼 강아지라는 건데. 이걸 거둬줄지는 온전히 내 판단이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너만 오겠다고 결정하면 상관없어. 나는 이 회사를 꽤 크게 키울 생각이니까.”

“하, 다행이다. 그럼 저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요?”

“일단 얘기나 좀 들어보자. 너가 Z사를 나오지 못하는 이유.”

“그거야 간단하죠... 저는 데뷔가 꼭 하고 싶어요. 아이돌 되고 싶다고요.”

“안성권한테 조공을 하면서도?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거 다 알아. 뭔데 얘기해봐. 무슨 약점을 잡혀서 거기에 있는 거냐고?”

미래는 망설였다. 무슨 얘긴가 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그 말은 그녀의 입안에 맴돌았고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의 일단락을 지어버렸다.

“없었던 일로 하자. 그냥 Z사로 돌아가.”

“아, 아니에요! 마, 말씀 드릴게요.”

나는 다시 경청 자세로 돌아갔고.

“비디오가 있어요.”

“비디오?”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정말이라니.

“섹스테잎이요...”

“하... 그렇구나.”

일이 터지면 안성권이 지만 죽지 않으려고 섹스테잎이 퍼질거다. 아니면 그걸 빌미 삼아서 협박을 하겠지. 젠장. 섹스테잎이 있으면 다른 지망생들 테잎도 남겨놨다는 얘긴데... 잠깐만...

“잠깐. 그러면 그만큼 증거도 많다는 얘기네.”

“네? 하, 하지만 그건...”

“그건?”

“우릴 무덤에 묻는 거잖아요. 내 얼굴에 침 뱉기... 비슷한건가. 암튼! 그걸 증거자료로 이용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 근데 그 증거물을 우리가 챙기면 되잖아? 그러면 명분도 생기는 거고.”

“음. 하지만 그 증거물이 어딨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하드로 빼놨다고 해도 인터넷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일이고요.”

“안성권의 손가락이라도 자르면 될 일이지.”

“뭐, 뭐라고요? 진심이세요?”

“말이 그렇다는 거야. 안성권이 절대 키보드 위에 손 한번 올리지 못하게 만들면 그만이라는 소리야.”

미래는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냐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 방법이 있었다. 권성철이나 안성권 두 사람 모두 어떤 동영상을 빌미로 협박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넌 나만 믿어. 그리고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되.”

“퇴사... 하라는 뜻이죠?”

“아니. 퇴사는 아직이야.”

아직 퇴사할 타이밍은 아니었다.

나머지는 지우가 해야할 몫이었다.

*

“미래랑 잘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안성권은 특유의 실실거리는 얼굴을 했다.

“미래 얼굴이 확 펴졌더군요. 뭐가 달라졌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역시 여자애들 변화는 딱히 그 포인트를 잡기 어렵더라고요. 근데 확실히 예뻐지긴 했나 봅니다. 이대로라면 콘테스트 중간에 데뷔를 해도 문제가 없겠어요.”

“그 정도인가요?”

“그럼요! 누가 트레이닝 해주셨는데요! 제가 들어보니까 사장님께서 예전 BD짐에서 잘 나가는 팀장님이었다고요. 현 대표님과도 친하시다고. 권성철 사장님께서도 그 얘기를 듣고 반가워 하셨습니다.”

약간 고개를 들어서 안성권의 표정을 다시 살폈다. 무슨 생각이지? BD짐 얘기를 꺼내는걸 보니까 권성철이 확실히 경계를 시작하는 건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친하다기보단 그냥 인맥이죠. 지금 저희 둘 관계처럼요. 아무튼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기는 한데요. 태도가 좀 불량해졌달까요. 저한테 하는 행동이... 예전이랑 좀 많이 달라졌어요.”

“무슨?”

“음... 뭔가 근거없이 자신감이 생긴 느낌이랄까요. 얼굴이 예뻐지면 그럴수도 있다고 치긴 합니다만... 저한테 살갑게 굴지 않았던적이 없는데 이상해져서요.”

나는 속으로만 웃었다. 그러게 평소에 얼마나 자존심을 깔아뭉갰으면... 믿을게 생긴 미래는 이제 더 이상 안성권의 말을 듣지 않을 거다. 반면에 안성권은 미래를 꼭 데뷔시켜야만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라도 맞춰주기 위해 노력할 거고.

“뭐, 그건 그거고. 이제 제가 한지우 씨에게 도움을 줄 차례군요.”

“아, 그렇네요. 저도 항상 Z 기획이 어떤 식으로 매니지먼트를 하는지 궁금했던 차였어요.”

“정말요? 하하... 별게 있는건 아닙니다. 스탠다드 컴퍼니만큼의 재량을 보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10년 차 짬바가 있잖습니까? 하하하!”

나는 마주 웃어주면서 맞장구를 쳐줬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사장님을 좀 모셔왔는데 괜찮으신가요?”

“... 네?”

나는 권성철이 여기에 왔다는 소릴 듣고 깜짝 놀랐다. 순간 주변을 둘러보며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정말입니까?”

“예. 지금 올라오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스탠다드 컴퍼니의 대표님을 뵙는 자리에 저희 대표님이 자리를 하시는게 맞을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뭐, 상관없으려나.

그렇게 안성권이 자리를 비켜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밑층에서 누군가 올라왔다.

저게 권성철? 아니... 잠깐만...

정말이지 놀랄 노자였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권성철이라는건 알겠는데... 그의 옆에 함께 있는 여자는 내 전생의 처였던 은주였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권성철은 여전히 능구렁이같은 성격인 모양이다. 그가 내쪽으로 후다닥 달려오면서 손을 맞잡고 그대로 악수를 감행했다. 나는 얼떨결에 손을 잡았는데 그와중에도 계속해서 은주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때야 정신을 차리고 권성철을 마주봤다.

“제 와이프입니다. 구면이신가요?”

“아, 아뇨! 사모님이 참 미인이십니다.”

“하하.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아, 참. 와이프도 같이 자리해도 상관 없으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멍하게 은주의 얼굴을 바라봤다.

은주... 내가 사랑했던 여자였다. 그런 은주가 권성철에게 갈아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꽤나 충격에 빠졌었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건 아니다. 내가 죽었다는걸 알았으니까... 그녀도 앞날을 위해서라면 의지할 사람을 찾는게 맞다. 그런데 어째서 남편이 죽었는데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단 말인가. 덕분에 장례식장은 아주 조촐했다. 내 인맥들은 모두 날 배신했고 내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장례식에 나타나지도 않았으니까.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걸까? 내가 죽고난 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궁금함에 미칠거 같아서 계속 은주를 봤는데 은주가 내 눈길을 마주 받으며 씩 웃으면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사람을 너무 빤히 바라보시는데요. 부끄럽게.”

“아, 죄송합니다.”

“푸핫! 아줌마가 참 주책이야. 저기요, 아주머니. 나이 오십 넘어서 이십대 사장님 보니까 꼬리치는거 같아요?”

저런 소리를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건 최용수나 권성철밖에 없을 거다. 미친 쓰레기들. 왜 다들 자기 와이프를 아끼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런 소리 마세요.”

“하하. 그래, 그래. 아, 아. 오늘은 사업 얘기를 하려고 왔으니까! 수완이 아주 좋으신 것 같습니다. 스탠다드 컴퍼니... 도저히 신생 컴퍼니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데요. 어떻습니까? 저희랑 같이 앨범 작업 하나 하시는게요.”

“앨범 작업..?”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에 고개를 갸웃했다.

“네. 저희가 작곡가 하나를 붙여드리겠습니다. 히트곡 대다수 보유하고 있는 유명한 작곡가예요. 몰이라고.”

“아, 몰이... 알고 있죠. Z사 소속이었군요?”

“저희 회사가 알게 모르게 인재들이 참 많습니다. 아직 메스컴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곧 있으면 빵빵 터질 거라니까요! 하하하! 아참... 그런데... 혹시 그 소식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무슨..?”

“최용수 대표 말입니다. BD짐 대표였는데 지금은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모르는 일입니다. 이수진 현 대표님께서도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할 정도로 친하지는 않으니까요.”

“아, 그러세요? 하하하! 하아... 아무튼 앨범 작업은 되는대로 그쪽으로 오퍼를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아홉명이서 한 그룹이잖아요?”

“일단 계획은 그런데 나중에는 세 명씩 유닛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그것도 참 좋은 방법이죠! 멤버가 많으면 얼굴 알려지는게 한 두명 밖에 없으니까요. 푸흐흐. 역시 우리 젊은 사장님이 시장조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고 들어오셨네. 애들 비주얼 보니까 엄청나던데요. 피겨돌 지원한 애들 프로필도 잠깐 봤거든요. 아, 그러고보니 나머지 세 사람은 뭘 준비하는 중이죠? 그 중에 저희 출신 애들이 둘이나 있을 거잖아요?”

...

말이 많았다.

이상하게 권성철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게 느껴졌다. 권성철과 은주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것에서 나는 이만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것도 인연인데 밖에서 술이라도 한잔 하실까요?”

“아, 아뇨! 잠시만요... 생각해보니 일정이 있어서... 저는 이만 일어나볼까 합니다.”

“음, 그래도 오랜만인데...”

“아닙니다. 그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빠르게 자리를 이동했다.

‘아니, 잠깐만... 오랜만이라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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