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144. 그 자식 안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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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놈들의 명함을 쓰레기만도 못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안성권은 나에게 쓰레기를 투척한 것보다 심한 짓을 한 것이다.
그래도 받긴 받아야겠지. 대놓고 권성철의 안면에 침을 뱉는 것만 못한 행동이니까.
‘그래. 이런 예의를 차리는 것도 얼마 안 남았다.’
나는 너무나 기뻐하며 안성권의 명함을 챙겼다.
“도움이라면 어떤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요?”
내가 흐뭇하게 웃자 안성권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시다시피 Z 기획은 많은 업적을 달성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꽤 유명해진 걸그룹으로 따지자면 에이커도 있고 지금은 기획사를 옮겼지만 릴리도 해외에서 꽤 잘 나가고 있죠. 아마 아실 겁니다.”
잘 알고 있다. 에이커의 인지도는 안성권의 말마따나 꽤 있는 편이다. 하지만 대표곡 2곡 정도를 제외하면 10년 동안 Z 기획에서 간판으로 미는 걸그룹임에도 불구하고 그닥 성적이 좋지 않다. 좀 유명한 기자들 사이에서는 애들 상태가 점점 병신이 되어가고 있다는 평이 있을 정도. 기획사라던지 매니지먼트에서도 Z 기획 애들은 얼굴이며 몸매며 합격점을 주지만, 인성만큼은 그닥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추세다. 그래서 얼굴이나 몸매가 좋은 지망생들이 등용문으로 활용하는 정도의 기획사라고. 그래서 릴리도 첫 앨범을 낸 이후에 한국에서 유명세 좀 타다가 곧바로 미국 진출을 위해 Z 기획을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망생을 탈출하자마자 Z 기획사를 버리고 도망간 아이돌들 천지 삐깔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많은 자원의 아이돌들을 육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맞았다. 그 이미지가 오히려 좋은 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거다. 그래서 Z 기획사하면 꽤 쳐주는 곳도 많을 정도. 그래서 아이돌 지망생들이 많이들 Z 기획사에 지원을 하고 많은 돈을 지불해가면서도 자기 자녀들을 그곳에 맡기는 거다.
그런데 권성철 밑에서 안성권이 하는 짓을 생각하면 화가 날 수밖에. 그 순수한 마음으로 등용문에 찾아온 새싹들을 순식간에 더럽혀 버리니 말이다.
‘미성년자 애들은 안 건드리나 몰라.’
“사장님께서는 특히나 저를 이용해서 아이들을 육성하시죠.”
“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요?”
“간단합니다. 제가 직접 1대1로 마크해가면서 트레이닝을 해주는 거죠. 저희 기획사 애들이 몸매도 좋고 피부도 좋잖아요? 다 거기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아... 그럼 그쪽은 어떻게... 트레이너인건가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종합 엔터테이먼트를 겸비하고 있는 연예 지망생 전문 트레이너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확실히 믿음이 가는데요. 확실히 저희 출전자들 중에 지우는 상대방에 비해 꽤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B조에 속한 리카랑 제이가 걱정이에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근데 지우 씨도 완전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게 사실입니다.”
마침 지우와 대결 상대가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는 중이었다. 지우는 구릿빛 피부가 섹시하게 드러나는 찢어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라이더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숏레더자켓을 입고 그 안으로는 크롭티를 입었는데 섹시함이 물씬 뿜어져 나왔다.
‘확실히 지우는 유니크하다. 이번 경연에서 돋보이는건 사실인데... 아니, 내 멘탈을 흔들려는 수작인가.’
내 짬밥이 얼만데 지금 날 우롱하려드는 걸까. 나는 물끄러미 안성권을 쳐다봤다. 안성권은 재빨리 말을 이어나갔고.
“저희 Z기획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모든걸 다 합니다. 이번 콘테스트를 통해서 스탠다드 컴퍼니가 확실히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승이 필요하겠죠.”
“그래서요?”
“만약 원하신다면 지우 씨가 손쉽게 결승까지 올라갈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왜죠?”
“저희 쪽에서 스탠다드 컴퍼니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만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쪽에서 얻을 수 있는게 없을 텐데요.”
그러자 안성권이 웃으면서 여유로운 손동작을 보였다. 하나같이 다 가식적이고 꼴보기 싫은 자세들이었다. 내가 그의 행적들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달갑게 보이지 않았다.
“연예계는 인맥이 전부입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10년 동안 여기 정글에서 살아남으면서 남은게 있다면 그 교훈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어린 사장이라는걸 감안하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 아무리 봐도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안성권은 지금 나보다 훨씬 나이가 있다. 중학생 때부터 연습생을 시작했다고 쳤을 때,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지금은 이십대 후반. 데뷔를 하긴 했어도 브루스라는 이름이 잠깐 떠올랐던적이 있긴 있어도 과거의 영광은 과거의 영광일뿐. 지금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기획사 붙박이에 불과하다. 그나마 권성철의 신임을 받고 있기에 그가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거다.
권성철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아오라고 시켰을 것이고 가능하다면 가까워지라고 명했을 거다. 안성권은 그 명령에 잘 따르고 있을 뿐이고. 나는 이미 그 의중을 간파했을 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짜로 뭔갈 해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의심해라. 그것이 내가 이전 생과 지옥에서의 삶을 살면서 남긴 거라곤 그 교훈밖에 없다, 이 새끼야.
“확실히 그 말을 들으니 끌리는 데요.”
“역시. 말이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장님과 저는 약간 닮은 구석이 있거든요.”
‘닮은 구석? 묘하게 기분 나빠지네.’
나는 순간 표정 관리를 못할 뻔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네요. 이렇게나 멋진 아이돌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요.”
“사장님 외모면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솔직히 사장님 정도면 지금 당장 아이돌 데뷔하셔도 될 정돈데요.”
립서비스 때문에 똥꼬가 다 헐겠다. 내가 아무리 피지컬이며 외모가 빼어난다 해도 그 정도는 아니다. 사실 나이도 나이지만, 요즘 아이돌들 특히 남자 아이돌은 외모만으로 뽑히지 않는다. 10년 정도는 되는 안무 연습기간과 특출난 보컬 실력이 있어야 성공이 가능하다. 그만큼 잘난놈은 많고 여기에 자기 인생을 다 바친 놈들도 데뷔하기 힘든게 이 연예계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저 아이돌 팬들한테 매장 당합니다.”
“푸하하. 요즘 아이돌 팬들은 그렇게까지 극성은 아닌 듯해요. 옛날에는 진짜 집까지 찾아와서 난리치고 그랬잖아요?”
“오, 그 시절 기억이 있으신가봐요?”
“아, 그럼요! 저도 예전에 선배님들 보면서 꿈 키웠는데요. 아마 선배님들이 그렇게까지 인기가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선배님들이 지금 널 보면 과연 뭐라고 할까. 여자 지망생들 따먹느라 힘 쓸 시간에 안무 하나라도 더 따라고 하거나 래퍼면 벌스를 따고 특출난 재능이 없으면 작곡이나 악기 하나라도 더 연습을 해야한다.
물론 그렇다고 섹스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어느 정도의 섹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할 터였다. 자기 만족도도 높일 수 있고 자존심이 높아지면 그만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다를 뚫기 위해 시간을 쏟아 부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쯧쯔...
“그럼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안성권이 건네준 명함을 들어올리며 말했고 안성권은 약간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 그런데 안성권 씨?”
“브루스라고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하하... 제가 아직 그런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익숙하지는 않아서요. 나중에 좀 더 친해지면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아, 예. 말씀하세요.”
“안성권 씨는 오늘 Z 기획 참가자들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일 테죠?”
“그렇습니다. A조에 한 명이 있고 B조에 한 명이 있으니까요.”
“보니까 어떻습니까? 그 눈으로 보기엔 그 중에 하나가 우승을 할 것 같은가요?”
내가 묻자 안성권은 잠깐 멈칫했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열심히 해봐야겠죠.”
“아니. 떡잎부터 알 수 있다는 그 눈이 궁금해서 하는 말입니다.”
“음.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스탠다드 컴퍼니에 미안한 말이긴 합니다만 저희 쪽에서 우승자가 나올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쟁사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군요.”
“...”
멍청한 놈... 이 정도도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접근했으니 말문이 막히는 거다.
나는 그래도 녀석에게 구원의 손길이라도 건네줬다. 지금 녀석과 친해지면 나중에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질 테니까.
“하지만 경쟁도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서로 상부상조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그쪽 우승 후보자 하나를 저희 기획에게 트레이닝 맡기시는 걸로요. 그럼 저희는 지우를 안성권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러면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받기만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오..! 오..! 그런 말씀이셨군요..! 저는 그만 다른 생각을 하는 바람에... 좋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겠죠. 크흠. 지우 씨 정도면 저희 애들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크크... 가능하면 B조에 있는 친구였으면 좋겠는데요.”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그림이 예쁘니까요. A조에는 한지우 씨가 올라가고 B조에는 저희 쪽 아이가 올라가는 걸로요.”
나는 연신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건넨 손은 안성권의 마음을 녹여내는데 성공했고 녀석은 곧바로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멍청한 놈. 이제 나한테 단단히 걸려들었다.
이제 슬슬 권성철이라는 성을 함락시켜 볼까.
지우의 촬영은 더 볼 것도 없었다. 촬영 결과물이 개판이 아닌 이상 지우의 승리는 확정이었다. 그만큼 상대가 약했다는 얘기도 되겠다.
나는 조용히 안성권을 밖으로 불러내며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담배 한 대 괜찮죠?”
“아, 네...”
그는 여유로웠던 자세들이 무너지면서 한 순간에 내 페이스에 말려들었고 본인도 그걸 느끼는 듯했다.
뭐, 느껴봐야 이미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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