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138. 86번 교육생(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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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번은 여전히 토라진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자기 앞에서 파트너가 다른 여자랑 신나게 떡을 쳤으니 말이다.
“말 걸지 마.”
“아니...”
내가 그녀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자 팔로 뿌리친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행동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 질투심이 강한 모양이다.
문제는 이제 곧 섹스 대전을 시작할텐데 이런 상태로 대전에서 이길 수나 있겠는가. 이 대전이 얼마나 중요한걸 안다면 이해심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조금 화가 났다.
“내가 섹스를 거부할걸 그랬나?”
내가 비아냥거리는 식으로 말했다고 생각했는지 86번은 날카로운 눈을 떴다. 나는 여지껏 그녀의 동그란 눈이 날카롭게 변하는걸 본적이 없었다.
“너도 알잖아. 나 너 아니면 섹스 못해. 넌 그걸 이용하고 있는거 같아. 어차피 다 잡아놓은 물고기라 이거지.”
“... 나는 그렇게 생각한적 없어.”
“아니야. 넌 그렇게 생각했어.”
이럴땐 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전생에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나는 지금 아주 평범한 연애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입장에서의 연애 말이다.
망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난관이 펼쳐지는지 모르겠다. 이것 역시 13번의 계략이었을까. 86번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직도 그 자식의 계략이 끝나지 않았을것만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복도 한쪽에서 옥식각신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쪽에서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나와 86번은 말싸움을 하다가 멈춰서 그 소리를 자세히 들었다.
“널 믿은 내 잘못이지. 아주 걸레같은 년. B클래스 새끼한테 박히면서 좋아죽는 꼴이라니.”
“으..! B클래스지만, 내가 봤을땐 그 이상이었다고! 그 커다랗고 소중한걸 보기나 했어? 그리고 애초에 너가 그 새끼 발기 못하게 만들고 86번 따먹겠다고 했었잖아! 왜 계획이 이렇게 딘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후, 말을 말자... B클래스한테 신음 질러놓은 주제에.”
“아니, 그러니까!”
“주변에서 널 뭐라고 부르는지 아냐? 젖탱이로 B클래스 유혹한 걸레년이라고 소문 쫙 퍼졌어. 넌 이제 끝장이야.”
“하, 그래. 나 끝이다! 그래서 너한테 아주 좋은 일 생겼겠다? 이번 대전에 나 참전 안 할 거야. 너한테 다리 절대 못 벌려줘!”
“크크. 지금 말한거 후회 안 하는 거지?”
“... 어? 어! 절대 후회 안 해!”
“푸흐흐... 좋아. 난 너가 그렇게 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뭐..?”
13번은 자신의 파트너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이제 꺼지라는 소리야. 난 졸업반에 있는 진짜 서큐버스랑 대전에 나간다.”
“... 그게 말이 돼? 너 따위가 뭐라고 시니어급 교육생이랑...”
“나라서 가능한 거다.”
13번은 여자를 밀쳐냈고 여자는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뒷걸음질치다가 넘어졌다. 커다란 유방이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렸고 넘어지면서 가랑이가 벌어지더니 꽤나 야릇한 자세를 취하게 됐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도 13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시니어 교육생...”
옆에서 86번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는 시니어 교육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물론 A클래스 보다도 더 뛰어난 외모를 갖고 있을뿐더러 섹스의 기술이라던지 상대방을 유혹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직원들만큼의 외모를 겸비하거나 능력은 없겠지.
적어도 나는 그 정도까지만 생각했다.
근데 86번은 그점이 꽤나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13번과 대결을 한다지만, 86번은 그 시니어 교육생과 대결을 해야한다. 대전 자체는 보여지는 것이니 오르가즘의 횟수도 횟수지만, 보여지는 그림이 야릇하고 섹끈해야 한다는 의식도 당연히 존재했다.
교장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을지언정 세간에 깔려있는 시선은 그렇다는거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탈 B클래스인 86번은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어보였다. 그래서 외모적인 얘기를 꺼낼 때 도 내가 항상 그녀를 안심시켜줬던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격려차원에서 해결될 부분이 아니었다. 스스로 해결해야할 자격지심이었다.
“시니어는 차원이 달라...”
그녀는 이미 겁을 먹고 있었던 거다.
“그 여자가 널 유혹하면 넌 그냥 넘어가 버리겠지. 왜냐면 너는 아무하고나 다 자는 그런 놈이니까!”
...
나는 대답할 여력도 없어서 그저 우두커니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진심으로 저러는 모양이다.
그래도 대전은 해야지.
우리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있으니까.
86번은 날 떠나는 순간, 망자로 돌아가는걸 자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 역시 86번이 나를 떠나면 다른 파트너와 섹스를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13번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결국 망자 신세를 면치 못하겠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대전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의 대전을 궁금해하는 모든 교육생들은 전부 별관 1층에 있는 대강당으로 찾아왔다. 교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거의 학원 전체 인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졸업예정자들인 졸업반 교육생들과 시니어 클래스 몇몇만을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모인 상황.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장내에 자리를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잠잠해질 즈음, 교장 릴리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걸을 때마다 엉덩이살이 살짝씩 보일 정도로 짧았다.
릴리아의 키는 정말이지 아담했다. 가슴은 B컵 정도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았다. 브래지어를 차지 않았는지 사뿐사뿐 걸을때마다 적당히 커다란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거렸고 가끔씩 흔들거리는 유방 가운데에 새꼬롬한 유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저렇게 평범한 몸매로 교육생 및 교직원들을 전부 긴장시킬 정도로 유혹적이란 말인가. 뿜어나오는 아우라와 보고만 있어도 쌀것만 같은 어여쁜 얼굴 탓이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다가 성기가 부풀어오르는 것을 1차적으로 느꼈고, 그 이후로 성기 끝에서 쿠퍼액이 찔끔 쏫아져 나오는걸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이건 정상적인 수순이었으며 비단 남자들에게만 작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여자들의 얼굴은 빨갛게 익었으며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렸고 팬티가 젖어들어갔다. 온갖곳에서 밤꽃 냄새가 뿜어져나왔고 금새 강당은 야릇한 기운으로 가득찼다.
‘이게 교장의 힘인가.’
한번쯤은 그녀와도 섹스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86번은 여전히 내게서 토라진 모양이다. 다른 교육생들과는 다르게 얼굴빛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오로지 내쪽으로만 신경질적인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릴리아가 모든 교직원이 앉아있는 자리를 지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와 13번은 강당의 정가운데 선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섰다.
그러자 주최측에서 가운데 선을 기준으로 양쪽에 침대를 설치해줬다. 주변에는 여러 가지 소품이 놓여져 있었는데 이것들을 잘 활용하라는 뜻으로 보였다. 얼핏 보니 오일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성인용품들이 잔뜩 있었다. 확실히 구스트는 이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섹스를 알려주는 확원이고 서열이 섹스 능력으로 결정되다보니 이런 대전이 이전에도 몇 번 일어난 모양이다.
섹스 대전의 시작.
여자들은 각자 옷을 갈아입으러 어디론가 갔고 남자들은 대중 앞에서 옷을 벗었다. 우리가 뭘 걸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자 교육생들이 뭘 입을지가 가장 중요했다.
나는 아직 상대방의 얼굴도 모르고 몸매도 몰랐다. 그리고 86번이 무슨 옷을 입고 올지 언질조차 받지 못했다.
시니어 클래스라고 했지... 나왔는데 상대방 파트너가 너무 예뻐서 눈이 돌아가지 않게 조심해야했다. 만약 그랬다간 대전 중에 뺨을 맞을 수도 있다.
꿀꺽
이제 여자들이 나올 시간이었고 나는 침을 삼켰다. 86번은 어떤 의상을 준비해왔을까.
떨리는 가운데 관중석 쪽에서 외침이 들렸다. 외침은 열띤 함성에 속했고 그 함성의 끝을 따라가보니 여자들이 우아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또각또각
한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상대방 파트너의 등장이었다.
‘저게 시니어 클래스의 비주얼인가.’
나는 지금껏 시니어 클래스의 여자 교육생을 본적이 없었는데 저 정도일 줄이야.
13번의 파트너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거뭇한 피부를 지녔다. 건강미가 넘쳐흐르는 모습. 그걸 다 떠나서 남자들이 환장해 죽을 법한 가터벨트를 착용하고 나왔다는 점에서 일단 합격점. 확실히 시니어 클래스가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점을 느꼈다.
남심과 낭심을 동시에 저격한다. 그녀의 옷차림은 반나체였다. 젖꼭지만 겨우겨우 가려서 가슴은 넘실거리는데다가 아래쪽으로 뻗어내려가는 가죽은 성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제 노란머리를 닮은 노란 털을 드러냈고 젖가슴은 속이 훤히 비치는 실크 재질로 된 투명한 천으로 덮고 있었다. 마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신같은 상체. 하체는 지옥에서 등장할 법한 섹시한 악마. 나는 이 서로 다른 매력에 취해서 아까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오는건 당연히 86번이었다.
86번 역시 또각또각거리며 구두소리를 냈다. 이때, 나는 허겁지겁 눈으로 그녀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앞에 나왔던 시니어 클래스 교육생은 이제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았다.
새로운 모습을 하고 나타난 86번의 모습에 나는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물에 젖은 듯한 커다란 와이셔츠 하나만 입은 그녀. 강당의 빛이 그녀를 비춰 속을 훤히 드러냈고 바람에 따라 펄럭이며 보일 듯 안 보일 듯 얼핏얼핏 둥그런 여체를 보여주는데 이 때문에 가슴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대놓고 섹시한 것보다 은근히 섹시한 게 더 매력적이다.
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혹방식이기도 했는데, 86번은 이 공식을 정말 잘 소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
지금까지의 모습이 노메이크업이었다는걸 과시하기라도 하듯 약간의 분칠을 하고 나타난 86번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강당 2층에 앉아있던 교직원들이 전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감탄했다.
교육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86번은 일약 이 순간의 스타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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