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130화 (130/159)

〈 130화 〉 130. 교장 릴리아

* * *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자가 누구냐?”

복도의 한쪽 끝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추상적인 의미의 열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열기였다.

릴리아는 이 학원의 학원장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교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교장으로써 상당히 열이 나 있는 상태였다. 자고로 교장이라는 직권은 교육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였다. 그들에게 딱히 보호자가 없지만, 이곳의 규율을 지키는 수장으로서 폭력사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릴리아는 자초지종을 들었는지 나와 86번이 있는 교실 쪽으로 걸어왔다.

“네 놈이냐?”

릴리아의 키는 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담한 키와는 무담하게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마력이라고 해야할지 카리스마가 확 뿜어져 나오면서 내가 갖고 있는 육체적인 힘을 바닥내고 말았다.

나는 아까 내가 피떡으로 만들었던 놈들처럼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크윽...”

압도적인 힘이 위에서 가해지고 있다. 누군가 어깨를 세게 붙잡고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건 86번도 마찬가지였다. 옆에서 같이 무릎을 꿇어서 피해자임에도 흡사 가해자가 되어 처벌을 받는 것처럼 보여졌다.

“말해봐라. 어째서 규율을 어기고 폭력을 가했지?”

“으윽... 그건...”

이곳에서 릴리아의 힘은 절대자에 가까웠기에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지옥의 각 구역에는 대표자들이 있다. 특히나 재판장들이 그 주를 이루고 마왕성에는 마왕이나 분할구역의 영주들이 대리 지배자가 된다. 그곳에서의 지배자들의 힘은 막강했고 따라서 반역이 일어날 수 없이 권력이 세습된다. 그러다 마왕이 투표를 통해 자리를 임관하게 되면 전체적인 영주들도 줄에 따라 바뀌면서 가끔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때에만 지배자의 특권이 사라진다.

몽마학원의 교장은 이 소규모 단체의 지배자 특권을 일임받았고, 내가 알기로는 몇 천년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들었다. 그만큼 릴리아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카리스마에 억눌러져 대답을 하지 못하자 릴리아는 영압을 조절해서 우리를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어서 말해라. 왜 폭력을 행사했지? 네 주제넘은 행동의 원인이나 들어보자! 그저 망자 따위가 성에 못 이겨서 한 짓이라면 내가 책임지고 널 불구덩이로 보내주마. 원래 형량보다도 더 무거운 형벌을 내릴 것이다.”

나는 릴리아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어쩌면 그녀가 내 눈빛을 아니꼽게 볼 수 있다는걸 알면서도 노려보듯 올려다봤다. 릴리아는 한쪽 눈썹을 치켜 뜨며 묘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하기로 결정했다. 되든 안 되든 아무것도 안 하면 바로 불구덩이다.

“교장선생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곳에 망자가 올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뭐?”

“이곳은 악마들의 터전입니다. 게 중에는 망자에서 악마가 된 이들도 몇 있겠죠. 이곳과 비슷한 수준의 등용문을 지나서 새 삶을 부여받는다. 이것이 그에 따른 취지가 아닙니까? 허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망자는 아직 악마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릴리아는 묘한 표정에서 완전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에게 이 몽마학원이라는 곳의 규율은 낯선 환경입니다. 전생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면 내가 지켜야 할 존재에게 응당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 맞다고 배웠습니다.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지옥에는 사랑도 의리도 없습니까?”

릴리아는 86번을 봤다. 그리고 86번은 놀란 눈으로 날 봤다. 감정선은 그렇게 교차했다. 나는 릴리아의 의중도 파악할 수 있었고 86번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86번은 의외라는 생각을 가졌을 거다. 그 동안 자신이 얼마나 차갑게 굴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내 진심을 알아버린게 아닐까.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나의 본심만큼은 진실이었다는 것을.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겠구나. 허나.”

그 ‘허나’라는 단어는 내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추후 발언권도 없이 바로 징계가 이뤄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몽마가 되기 위한 길에 감정이라는 단어를 섞는다는건 미련한 짓. 애초에 이곳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규율이라는 건 작용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으며 체계가 무너지기 마련이니 일벌백계로 처벌을 할 수밖에. 지금까지 발언은 잘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의 결단을 바꿀만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겠느냐, 더 변호할 생각이 있느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저렇게 말하면 뭐라고 말해도 결론은 같다. 규율을 무너뜨릴 정도로 항변을 할 수 있는가? 일단 내 머릿속에서는 무리였다. 지금껏 규율을 잘 지켜왔던 적도 없거니와 이에 내 자신을 변호해보려 생각한 적도 없었다. 단순히 합리화 및 변명거리를 내뱉는다고 해서 벗어날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더 이상 말을 하면 오히려 릴리아의 반심을 살 것이라고 생각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때, 86번이 뭐라고 읊조리기 시작했다.

“교육이었어요.”

“응?”

릴리아가 나 대신 의문을 표현했다.

“교육. 더 뛰어난 사람이 밑에 사람을 교육하는게 이곳 규율이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절 상대로 여러명이서 집단 섹스를 하려고 했고 여기 있는 제 짝은... 그들을 교육했어요. 더 뛰어난 사람으로써요.”

언제 와서 듣고 있었는지 13번이 옆에서 콧방귀를 뀌었다.

“이 놈보다 내가 더 못하다고?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

“쉿, 조용히 해라.”

“아... 예...”

릴리아가 13번을 조용히시켰고 86번에게 계속 얘기해보라고 턱짓했다.

“원래 여기서는 더 섹스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명령을 하게 되어있고 알게 모르게 그에 맞게끔 서열이 정리되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죠. 그렇다고 폭력의 정당성을 얘기하려는건 아닙니다. 무조건 잘못된 일이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망자 출신의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그건 왜지?”

“저는 일반적인 서큐버스보다 훨씬 연약합니다. 따라서 제가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제 짝은 그동안 제 순결을 지켜줬었고요. 그런데 13번이 그걸 훔치려고 했던 겁니다.”

“순결이라니? 그럼 너... 여기에 들어와서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냐?”

“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이냐?”

릴리아의 말에 86번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릴리아는 눈치를 채고 86번의 머리에 손을 얹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호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오히려 폭력은 그들을 지키려고 한 행동이구나.”

“..? 무... 무슨?”

옆에 있던 다른 교육생들은 나를 참교육할 생각에 잔뜩 흥분된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흥분상태에 찬물을 끼얹어버리자 올랐던 열기가 사그라든 모양이다.

나 역시 상황이 역전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구나...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릴리아는 86번의 머리에서 손을 뗀 후 그녀를 끌어안 듯 감쌌다.

“13번과 너. 둘 다 이 여자를 놓고 싸우는 꼴로 보이는구나. 어쨌든 86번이 제시한 의견이 타당성이 있으려면 섹스 기술이 누가 더 좋은지 겨뤄보면 되지 않겠느냐?”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또한 릴리아는 한 가지 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겨루는건 자유. 하지만 들어올땐 들어오더라도 목숨 하나 정도는 걸어야겠지. 둘 중에 지는 자는 바로 퇴학이다. 어떠냐, 하겠느냐?”

릴리아의 제안은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나는 86번의 논리의 타당성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13번과의 섹스 대결에서 승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13번 역시 내게 질 생각이 없었기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붙어도 상관없습니다.”

“좋다. 그러면 각자 상대할 여자를 하나씩 골라라. 몽마학원 내 교육생 및 교생과 교사들을 전부 포함해서 그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다. 기한은 이틀. 이틀 후, 방과 후에 이곳에서 시합을 개시할 것이다. 심사위원은 나를 포함해서 관련자들이 심사를 봐줄 것이다. 자, 그럼 해산! 어서 기숙사로 돌아가라!”

13번을 비롯한 교육생들은 궁시렁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 탓에 릴리아에게 한 차례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정말이지 사고뭉치들이 따로 없었다. 인큐버스라는 혈족 탓에 저렇게 쳐맞아 피떡이 되었어도 시간이 지나니 피부가 재생되면서 원상복구됐다.

반면 우리는 망자...

86번의 마음 속에 새겨진 깊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막 태풍이 지나간 탓에 긴장했던 다리가 풀렸는지 86번은 자리에 쓰러져 앉으며 엉엉 울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감싸줬다.

“어떻게 그런걸 다 생각한 거야? 덕분에 살았어. 그러니까 울지마.”

86번은 내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까지 풀었다.

“후에에에엥... 엄청 무서웠어, 진짜아... 으어어어어엉...”

그럴만하다. 나는 충분히 그녀의 감정을 이해했다. 나는 말 없이 그녀의 등을 다독여줬다.

‘그나저나 섹스 대결이라니... 어떻게 하지? 나랑 섹스할 서큐버스 교육생 따위 있을 리가 없는데.’

당장 생각나는건 아이언메이든밖에 없었다. 근데 과연 그녀와 섹스하는 것이 섹스 대결에서 도움이 될까.

섹스 대결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몇 차례 보내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섹스 경험이 무수히 많은 아이언메이든을 보내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대략 1시간 동안의 피스톤질 끝에 결국 그녀를 싸게 만드는데 성공했던 거다. 지금껏 그녀를 시원하게 홍콩으로 날려보낸 이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결국 섹스 대결에는 환상적인 콤비가 될 수 없었다.

릴리아는 알고 있었을까. 내가 상대할 교육생이 없다는걸.

이대로는 퇴학이 확정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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